기아자동차 망우지점 정송주 씨(38). 그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파는 사람이다. 판매대수는 2007년 248대, 2006년264대다. 한 달 평균 20대를 웃돈다. 주말을 제외하면 매일 한 대씩 판다는 얘기다. 어쩌다 일 년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3년 연속 국내 최다 자동차 판매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연히 억대연봉의 금자탑을 높다랗게 쌓아올렸다.
얼핏 그는 무척 평범해 보인다. 위인전보다는 전래동화 캐릭터에, 트렌드 드라마보다 일일연속극 등장인물에 가깝다. 하지만 구수한 표정과 조곤조곤한 말투 뒤에는 확고한 신념과 튼튼한 두 다리가 숨겨져 있다. 사람냄새 풀풀 나는 그는 말한다. 나는 차를 판 게 아니라 인격을 팔았다고.
6개월 실적미미...묵묵히 전단지만 돌렸다
정송주 씨는 94년 기아자동차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회사가 어려워지자 99년도에 판매직으로 전환했다. 애시 당초 아는 사람을 찾아가는 ‘연고영업’은 하지 않았기에 초반에는 어려움을 좀 겪었다. 한 6개월 정도는 실적이 거의 미미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활동구역을 정해놓고 매일 나갔다. 명함을 들이대는 대신 전단지를 돌렸다. 나를 알아달라고 내세우기보다 유익한 정보를 한 가지라도 더 챙겨주려 애썼다. 부지런한 농부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쉬지 않고 인연의 밭을 일구었다.
“차 한 대 파는 게 주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세 가지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첫째,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배우자. 둘째, 나중에 영업이 아닌 다른 일로 다시 만나더라도 변치 않을 ‘믿음’을 주자. 셋째, 회사가 어려우니까 내가 한 대라도 더 팔아야 생산현장에 있는 동료들이 살고 회사가 산다는 것을 늘 생각해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영업은 하지 말자’는 특이한 영업철학을 갖고 있다. 기존의 영업방식이 고객에게 부담을 주어 외려 고객을 밀어낸다는 생각에서다. 예를 들어, 그는 정말 가까운 지인에게는 차를 팔지 않는다. 소중한 이들에게 ‘자동차 파는 사람’이 아닌 ‘인간 정송주’로 남고 싶은 바람에서다. 또 고객에게 술을 접대하거나 경조사를 챙기지도 않는다.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인사치레는 하지 않는다. 이는 대한민국 영업맨의 관례상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객과 아무리 친해지더라도 깍듯한 존칭을 쓴다.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서로 조심하면서 다져 가면 관계가 오래가죠. 반면에 형님 동생하고 쉽게 생각하면 나중에 실망도 하고 관계가 와해되기 쉽습니다. 당장 앞에서 보여 지는 것보다는 신뢰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는 또한 까칠한 사람을 옆에 둔다고 한다. 좋은 얘기는 안일함에 빠지게 하는 반면, 불편한 말을 하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발전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배우자, 영업은 하지 말자’ 영업철학 실천
남다른 소신으로 무장한 그는 하루실적에 급급하기보다 ‘정직하게 멀리 보고 일하자’라는 자세로 임했다. 신실하게 갈고 닦은 영업의 텃밭에 인연의 씨앗이 뿌려지자 탐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차를 산 고객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며 그를 신망했고, 그들이 나서서 다른 고객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리고 일단 고객을 소개를 받으면 ‘100%’ 계약이 성사되었다. 어느새 그의 영업은 자체동력에 의해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가 되었다.
열정이 넘치는 이들이 대개 그렇듯 그에게도 하루해는 너무 짧다. 하여 “일반 영업직원에 비해 3배 이상 일한다.”고 그는 자신했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허투루 보내는 시간 없이 촘촘히 되알지게 근무한다.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회사에 나와 업무를 본다.
“제 일이 ‘일을 위한 일’, 즉 힘겨운 노동이 아니고 보람과 즐거움을 주니까 힘들지 않습니다. 또 한시적이라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도 말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바쁘게 살지만은 못한다고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올라가면 그 때부터는 6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약속했습니다. 정말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기반을 다져놓아야 하고요.”
그에게 행복한가 묻자 “행복하다”고 말한다. 성공한 인생인가의 물음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유는 하나. 판매왕의 자리에 등극해서가 아니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이다. 영업 초창기에 밤늦도록 고객에게 보낼 편지를 접는 등 동고동락한 아내를 ‘호강’시켜주고 싶었는데 그걸 이뤘기 때문이다. 매년 영업우수자에게 주어지는 여행의 기회를 아내와 누리는 기쁨은 무척 소중하다고 고백했다.
“영업은 이론 아닌 삶” 현장 뛰며 노하우 전할 것
“20대부터 항상 1년, 3년, 5년 단위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삼십대가 되니까 한계에 부딪치더라고요. 더 이상 안 되는 걸까 생각하던 즈음 자동차영업에 도전했고 판매왕이 됐습니다. 막연히 알고 있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가까이 겪으면서 그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어떤 단계를 넘어선 느낌이 듭니다. 아주 순간적으로요.”
고객과의 좋은 인연과 긍정적 기운으로 삶의 도약을 경험한 그는 이제 ‘내 모든 것’을 돌려줄 생각이다. 일전에는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를 팔아 모교에 컴퓨터를 기증하기도 했다. 또한 비정규직, 실업난 등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영업의 세계에 뛰어드려는 이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군대를 제대한 사람, 영업을 막 시작한 사회초년생 등이 개인적으로 판매노하우를 물어옵니다. 간혹 직접 찾아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고는 있지만 영업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이거든요. 하루 이틀 강의로는 배울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일선 현장에서 한두 달 매니지먼트를 하며 같이 뛰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에 대해 모색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자동차 판매왕에게 영업비결의 ‘두 줄 요약’을 부탁했다.
“단기승부 걸려 하지 말고 진득하게 일하세요. 영업사원은 고객이 기억할 수 있는 곳에 머물면서 고객이 차를 필요로 할 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사보 'I'm 모터스라인' 2008년 1월호. 인터뷰 기사. 사진-김경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