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들 학교에 갔다. 아들 학교가 내년에 실시될 교원평가제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공개수업을 실시했다. 아들 반은 체육시간이었다. 전교생이 이천 명인데 운동장이 매우 협소하다. 100m달리기를 못해서 50m달리기로 시험을 봤을 정도다. 그 좁아터진 곳에서 다섯 학급이 체육을 하러 나왔다. 한 반에 40명 씩 200명에 학부모까지 모이니까 이건 완전히 추석 연휴 전날 서울역 대합실보다 더 바글바글 복잡했다. 체육수업이 과연 가능할까 염려스러웠는데 세상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 학급별로 달리기, 줄넘기, 농구 등등을 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기까지 했다. ‘다 살게 마련이구나...’
감탄을 하면서 지켜보는데 어떤 엄마가 말을 건다. “누구 엄마세요? 애가 학교생활 재미있다고 하죠? 담임선생님이 애들한테 참 잘해주시더라고요....” 아들네 반 딸아이의 엄마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나로서는 죄다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민망했다. 난 있는 그대로 말했다. “울 애는 집에 와서 학교 얘기를 상세히 안 해요. 뭘 물어보면 ‘좋아요.’ ‘없어요.’ '몰라요' 이렇게 세마디면 끝나요. 단답형이에요.^^;” “아들들이 좀 그렇죠. 저도 둘째가 아들인데 학교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몰라요.” 그 엄마가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날 엄마들이 한 스무 명 정도 왔는데 대부분이 드라이크리닝 비닐을 갓 벗긴 듯한 각 잡힌 아나운서 의상에 몇 분은 명품브랜드 2009 F/W 신상 가방을 들고 오셨다. 어찌나 꽃단장을 하셨는지 브로치가 빛나고 스카프가 날리고 가방 로고가 번쩍여 아주 그냥 눈이 부셨다. 그런데 나에게 말을 건 엄마는 운동 끝나고 왔다면서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었다. 딸이 보자마자 대뜸 “엄마, 옷이 이게 뭐야~” 구박했다. 딸들은 그렇게 예민하고 세심하다. 여학생들은 체육 하면서도 엄마한테 수시로 와서 매달리고 종알종알 말 거는데 남학생들은 못 본 척 농구공만 튕긴다. 내가 뭘 입었는지도 모르는 울 아들도 수업 끝나니까 와서는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먹게 용돈 달라고 그런다.
“으이구, 이놈 자슥, 용돈하고 밥 달랠 때만 엄마 찾지!”구시렁거리고 있는데 나보다 키가 훨씬 큰 건장한 아들 친구 녀석들이 줄지어 와서는 변성기의 탁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라며 한명씩 꾸벅꾸벅 인사를 한다. 난 꼭 아들 군대 보낸 중년부인 기분이었다. 그런데 키만 멀대 같이 컸지 하나같이 눈에는 장난이 탱글탱글하고 뺨에는 아직도 젖살이 남아 있다. “애기들. 단순하고 든든한 것들!” 애물단지지만 예쁘고 흐뭇했다.
아들이 수업이 5교시로 끝이라면서 햇님처럼 환한 얼굴로 친구들이랑 놀고 온단다. 바로 어제, 안습 성적표 보여주면서 내일부터 예․복습을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하더니 벌써 까먹고 그새 놀 궁리다. 믿은 내가 바보지. -_-
아이들은 곧장 파하고 엄마들은 교실로 향했다. 자기 아이 책상에 앉아 화면으로 교장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아무튼 지간에 예나 지금이나 교장선생님 말씀은 참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얀 스크린 옆으로 교훈액자가 눈에 띈다.
<때를 봐서 나서자> 이게 교훈이다. 너무 웃겼다. 나중에 아들한테 물어봤더니 학급회의를 통해 정한 건데 ‘나대지 말자’를 언어적으로 순화해서 표현했단다. 아들반이 수업분위기 좋다고 교무실에서 소문이 자자하다고 담임샘이 자랑하시던데, 아무래도 급훈의 힘인가 보다. 담임샘한테 학교현황 얘기 듣고 수업 참관 결과에 대해 설문조사에 표시하고 집에 왔다. 좀 있으니 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들어왔다. 냉장고 문 열고 우유를 통째로 벌컥벌컥 마신다.
“어디서 뭐하고 왔길래 그러니.”
“114동 놀이터에서 탈출했어요.”
“뭐 탈출? 수준 좀 높여라. 용우가 얼음땡 하고 논다고 해서 웃었더니 너넨 탈출이냐~”
“왜요~ 탈출이 얼마나 수준 높은 놀인데요. 민첩성과 순발력이 필요하고 운동신경도 발달해야 한다고요.”
“어이구, 아주 큰 일 했다! 용맹스럽다. 나중에 나라 구하겠구나~”
며칠 전에도 아들과 교내 놀이문화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점심시간에 뭐하냐고 물어봤더니 교실 뒤에서 ‘눈감고 잡기놀이’를 한다고 해서 어이가 없었다. (이 얘기를 중딩 교사였던 친구한테 했더니 그 학교 남자애들은 심지어 경도놀이도 한단다. 경도놀이란, 한 명은 경찰이고 한 명은 도둑이라서 복도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것이다--;)
"근데 아들아 잡기놀이는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그것도 눈감고 하다니 다치기라도 하면...” “얼마나 재밌는데요. 어쩔 때는 빈 깡통 차기도 해요.” "갈수록 가관이다. 그럼 여자애들은 뭐하고 노니?”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얘기해요. 어떤 애들은 책보고, 또 다른 반으로 친구 찾아가는 애들도 있고요.”
탈출과 수다. 공놀이와 인형놀이. 여기서 갈리는구나 싶었다. 아들과 딸을 키우다보니 (개인차는 있지만 보편적으로) 남녀의 성향이 확실히 다르다.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걸까 궁금했는데 소싯적부터 남녀 간 놀이문화가 나중에 큰 정서적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수다의 힘은 크다. 사람은 말하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남의 의견도 수용하고 경청의 힘도 기른다. 인형놀이를 하는 딸아이만 보아도 선생님도 맡고 엄마노릇도 하면서 타인의 자리에 서보는 기회를 갖는다. 역지사지로 남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판단력도 강화된다.
또 딸들은 편지도 잘 쓴다. 감수성과 표현력 훈련이 절로 된다. 언젠가 모임에서 딸엄마들이 애가 쓴 편지를 버리지도 못하고 처치곤란이라고 하니까 아들엄마들이 “딴 세상 얘기”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들은 일 년에 딱 한 번 어버이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쓰는 것 외엔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서 웃은 적이 있다. (사진은 어버이날만 편지 쓰는 중2아들과 매일 편지 쓰는 초1딸)
매일 수다 떨고 편지 쓰는 딸들. 그것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생활화되어 사고의 회로가 확장되면서 섬세하고 지혜로워짐은 분명하다. 물론 공차고 잡고 잡히고 한 곳으로 에너지를 모으며 자란 아들들의 단순함과 몰입의 기술도 훌륭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그간 인류의 역사에서 남자가 힘을 발휘했다면 점차 여자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까닭은 문명이 복잡계 수준으로 진화하면서 여성 특유의 오지랖과 섬세함의 정서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아들의 장래를 위한다면 학원을 줄이고 엄마랑 수다시간을 늘리는 것도 좋은 양육법이 될 것 같다. 헌데 쉽지 않은 문제다. 자꾸만 탈출하러 집에서 탈출하는 녀석을 어떻게 붙들어 놓고, 수다로 사고의 흐름을 단련시켜서, 때를 봐서 ‘멋지게’ 나서는 아들로 키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