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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셨던 엄마의 기일


엄마의 기일이었다. 돌아가신지 3년이 흘렀다. 긴 시간이었다. 여자에게 엄마의 죽음은 아이의 출산에 버금가는 중요한 존재사건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나는 한 차례 변이를 경험했다. 세상을 감각하는 신체가 달라졌다. 삶이라는 것, 그냥 살아감 정도였는데, 엄마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서 보고 나니까 ‘삶’이라는 추상명사가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삶은 이미 죽음과 배반을 안고 시작된다. 그것이 ‘인생 별 거 없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죽으면 한 줌 재로 될 몸뚱이 나를 다 쓰고 살자’는 억척스런 삶의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엄마의 딸. 굳센 금순이가 됐다고나 할까. 이것은 존재의 깊이와 상관없는 강도다. 단단함. 억척스러움 같은 거. 생의 군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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