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의 수천 가지 꽃을 훤히 꿰는 야생화전문가처럼, 그는 삶 속에 피어난 만여 개 직업을 연구하는 직업전문가다. 해마다 ‘한국직업사전’을 편찬해 사회구성원의 인생농사를 돕는다. 세월 따라 뜨고 지는 직업이 생겨나게 마련이지만, 그가 보기에 유망 직업은 없다. 어느 직업이든 자기 고유의 개성과 전문성을 꽃피우는 사람만이 전도유망하다고 말한다.
인생은 길고, 직업은 많다
“한국직업사전은 우리나라 직업의 기초를 나타내는 인프라입니다. 직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직업전망을 조사하는 데 바탕이 되는 자료지요. 주로 교수, 연구원 등 전문가가 이용합니다. 우리나라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지침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직업사전>편찬을 담당한 박봉수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1969년 <한국직업사전>이 처음 발간됐다. 이후 매년 <한국직업사전>을 만들고, 그것을 모아 6-7년 마다 통합본을 낸다. 지금까지 통합본은 85년, 97년, 2003년 세 차례 걸쳐 발간됐고 앞으로 2011년도에 발행 예정이라고 한다.
‘세월따라 직업따라’ 직업의 희로애락史 족히 십 센티는 넘어 보이는 <한국직업사전>의 묵직한 두께는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 펼쳐짐을 예고한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펼치자 작물시험원, 환경소재연구원, 건축감리원 등 만여 개의 숨은 보석 같은 직업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사전’이다. 개념위주로 설명되어 있어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박봉수 연구위원은 이를 재료로 <2009년 한국직업전망> <알고 싶은 직업 만나고 싶은 직업> <세월따라 직업따라> 등 ‘재밌는 책’으로 엮어냈다. 직업선택의 정보가 필요한 청소년, 구직자, 실직자 등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적극적 방법인 것.
“직업은 시대상을 반영하지요. 전차운전사, 염부, 미싱공 등 한 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다가 쇠퇴한 직업이 있고 주산강사, 양복재단사 등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한 직업도 있습니다, 게임마케터, 소믈리에 같이 새롭게 생겨난 직업도 있고요. 요즘처럼 삶의 질이 중요해진 시대에는 패션디자이너, 패션모델, 푸드스타일리스트, 인쇄기술자 등이 계속 전문화되고 성장하는 직업군이죠.”
박봉수연구원이 강연을 나가서 조사해보면 일반인이 아는 직업은 의사, 변호사, 교사, 회사원, 연예인 등 스무 가지 남짓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학부모들의 경우 오직 ‘사’자 붙은 직업을 선호하고, 다른 직업은 ‘밥 굶는다’고 단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볼 때 이는 기성세대 인식의 한계다. 요즘은 불황의 여파로 병원 문을 닫는 의사도 많고, 춤 하나로 최고가 된 비보이도 있다. 즉 무조건 직업군의 가치를 평가하기보다는 당사자와의 궁합이 중요하므로 다양한 직업의 세계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열린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각 국공립 도서관이나 학교에 비치된 직업정보 자료를 참조하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포털 워크넷과 한국직업정보시스템 등의 e-book을 활용하는 것도 현명한 직업선택을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그는 조언했다.
‘나만의 전문성’ 살려야 유망직업 “제 직업이 직업연구가인 관계로 어디를 가나 요즘 뜨는 유망한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럴 때면 우선 각종 지표에 따라 원론적인 부분을 충실히 설명해드리죠. 그리고 나서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립니다. 유망한 직업이라는 ‘추상적인 덩어리’를 보는 건 무의미하다고요. 어떤 직업이든 그 안에서 전문성과 열정과 특화된 점을 갖춘 사람만이 본인도 즐겁고 세상에서 인정받는 유망한 인재로 살아갈 수 있다고요.”
박봉수 연구위원의 경력은 특이하다. 공학도 출신으로 석사까지 마치고 포스코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어느 날 문득 ‘존재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내 삶이 뭔가?’ ‘내가 정말 원해서 한 일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리고는 고민 끝에 박사과정에서 인력개발학으로 과감히 방향을 틀어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됐다. 그는 “내가 했던 고민을 사람들과 나누어 진로선택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는 의도대로 지금은 구직자나 실직자 등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의 경우처럼,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던져보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진지한 물음은 결국 ‘직업’의 문제로 귀착된다. 그래서 니체는 직업을 ‘삶의 척추’라고 말했다. 척추가 튼튼해야 건강하듯이 삶의 중심이 바로 서야 행복해지는 법. 박봉수 연구위원은 “직업은 행복한 삶을 위한 도구”라며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doing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being차원에서 접근해야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충고했다.
“아버지 세대는 평생'직장'의 시대였죠. 요즘은 평생'직업'의 시대로 바뀌었다면, 앞으로는 고령화 시대에 따라 평생'다직업'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어느 한 가지에 편중되지 말고 폭넓은 시각으로 삶의 가치를 고려하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