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있으면 웃음 떠날 새가 없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단짝친구 같은 형제였다. 동생이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날 때도 등을 두드리며 용돈을 쥐어준 오정일 사우는 요즘 ‘인기 개그맨 오정태’를 동생으로 둔 덕에 유명세를 치르느라 행복에 겹다. 웃으면 다 감기는 튀밥 같은 눈이 쏙 빼 닮은 붕어빵 형제의 ‘웃음은 형제애를 싣고'
개그의 피가 흐르는 정일이 동생 정태
여기는 MBC 일산드림센터. 대한민국의 주말 밤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MBC간판개그프로 <개그야> 팀이 모였다. 봄꽃마냥 알록달록 생기진 표정에 왁자지껄 인사말 오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개그맨 오정태 씨가 동료들에게 ‘우리형’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와~ 형이세요? 그러고 보니 닮았네요.” “어머, 형은 잘생겼다~” "정태형! 형이 더 형 같아요. 이마에 주름도 펴고 피부 관리 좀 해에~”
창밖에 목련 터지듯 한바탕 화사한 웃음꽃이 터진다. ‘형’ 오정일 사우와 ‘동생’ 오정태 씨도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환하게 웃는다.
오정일 사우는 1녀 2남중 둘째다. 위로 두 살 터울의 누이와 네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는데 그가 바로 개그맨 오정태 씨다. 두 사람은 네 살 터울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유독 형제애가 돈독했다.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여 형제들끼리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마치 자취하는 친구처럼 형제끼리 밥도 해먹고 함께 놀고 같이 공부하면서 우애가 깊어진 것이다.
“제가 형을 잘 따랐어요. 형이랑 집에서 노느라고 밖에도 잘 안 나갔죠. 형은 성격이 내성적이고 저는 외향적인데, 집에선 형이 저보다 말을 더 많이 하고 훨씬 더 재밌어요.”
오정태 씨에게 형의 모습은 뭐든지 잘하는, 요즘말로 ‘엄친아’였다. 집에서는 장차 개그맨이 될 동생을 웃길 정도로 재치와 입담이 대단했지만 학교에서는 완벽한 모범생이었다. 과묵하고 성적도 우수해 중학교 내내 반장을 도맡았다. 그랬던 형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춤에 빠져들면서 숨겨진 끼를 드러냈다. 대학축제 때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과 노래를 완벽하게 재현했던 일화도 있다. 이렇게 예능인의 피가 흐르는 두 형제는 비록 성향과 기질은 반대일지라도 코드가 잘 맞았다. 하여 “심하게 껄렁껄렁 거리고 말썽만 피우던” 동생을, 형은 구박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스코트처럼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다.
“정태는 참 착했어요. 어려서 누나가 수두에 걸렸을 때 저는 옮을까봐 도망갔는데 정태는 남아서 간호하다가 결국 수두를 옮아서 고생을 했죠.(웃음) 인정이 많아요. 그래서 제 친구들도 정태를 친동생처럼 되게 예뻐했고 친하게 지냈죠.”
형의 말에 오정태 씨는 억울하다는 듯 “그 수두자국이 남아서 얼굴이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너스레다.
“지금은 얼굴이 이렇지만 중학교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제가 귀엽게 생겼었거든요. 형이 중고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대학생 되고 친구들이랑 엠티 갈 때도 저를 데려갔어요. 나이 많은 형들이랑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세상을 배웠죠.”
형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생 배웠다
일찌감치 ‘기쁨주고 사랑받는’ 기술이 남달랐던 오정태 씨. 형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디서 주워들은 음담패설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좌중을 압도하는 등 남다른 입담을 과시했다고 자랑한다. 어쩌면 그는 형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웃음과 공감을 얻어내는 개그의 기본기를 익힌 셈이다.
그랬던 그가, 본격적으로 무대의 맛을 알아버린 건 군 복무중이다. 오정일 사우는 “공부는 등한시하고 놀기만 하던 동생이 군 제대 후 연기를 배울거라고 대학에 진학하더라”며 “그 자체로 집안의 대경사였다”고 회상했다. 어머님이 떡까지 돌릴 정도였단다. “연극에 미친” 동생은 졸업 후 무작정 상경했고, 춥고 주린 무명시절을 보냈다. “서울에 와서 형 집에서 2년 가까이 살았어요. 어려울 때 형이 용돈도 쥐어 주고 잘해줬죠. 그만두라는 말도 안 하고 묵묵히 격려해줬어요. 그 점이 너무 고맙죠.”
형을 비롯한 누나, 부모님 등 가족의 신뢰와 지지 속에 꿋꿋이 자기만의 길을 간 오정태 씨는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 남자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삐죽삐죽 솟은 폭탄 머리와 구수한 감자냄새가 나는 얼굴 등 개성 강한 외모와 ‘뭔 말인지 알지?’ 등의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인기개그맨의 반열에 오른 것.
‘동생 정태’가 뜨고 나자 형은 덩달아 바빠졌다. 매주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오정태 씨는 “형에게 ‘재밌다’는 문자가 오면 진짜 재밌는 거고, 형이 아무 말이 없으면 웃기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날카로운 모니터링을 해준다고. 이외에도 인터넷의 바다를 돌며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 등 고전코믹영화를 구해서 ‘학습용’ 자료로 보내주고, 동생이 출연한 코너를 동영상으로 편집해 팬 페이지에 올리는 것도 형의 역할이다. 동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첨단미디어 기술까지 활용해 뒷바라지를 책임지는 형이야말로 ‘내조의 황제’인 것.
“아, 형한테 진짜 고마운 거 있어요. 제가 처음 차 샀을 때 형수 몰래 네비게이션을 달아주었거든요.”
옆에 있던 오정일 사우는 “그건 공개하면 곤란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모니터링, 홈피관리 등 ‘내조의 황제’
아무려나, 네비게이션의 가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정일 사우는 인기개그맨 동생을 둔 덕분에 생활이 풍요로워졌다. 기쁘고 좋은 일이 많다. ‘개그맨 동생’을 화제로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유쾌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니 인간관계가 원만해진다. 동생과 같이 식당엘 가면 ‘원플러스원’의 서비스 음식은 기본이며, 심지어 돈을 안 받는 곳도 있다. 또한 동생이 <개그야> 출연진 전원의 사인을 받은 티셔츠를 전해주어 ‘선물용’으로 요긴하게 쓰기도 한다. 이처럼 서로에게 물질적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는 두 사람은, 요즘도 하루에 한두 번 통화를 하는 등 여전히 ‘친구 같은 형제애’를 나누고 있다.
오정태 씨는 형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극진하다. "어려서는 그렇게 속을 썩였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샐러리맨인 형보다 내가 어머니께 용돈을 듬뿍 드리는 귀여운 아들이 됐다”며 자화자찬이다. 그는 '효'의 여세를 몰아 5월 2일 서울 여의도 KT여의도웨딩컨벤션에서 송대관 씨 주례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다. “형과 형수가 금술이 좋고 자녀교육도 잘해요. 이번에 조카가 과학발명 영재로 선발되어 세계대회를 치르러 미국에도 가거든요. 형을 본받아서 행복한 가정을 잘 꾸리겠습니다.”
효성 지극하고 성실한 모습 그대로, 지금처럼만 살길 바란다고 당부하는 오정일 사우. 그는 동생의 결혼선물로 멋진 가죽소파를 준비했다. 형의 가슴처럼 푸근하고 널찍한 소파에서 기운백배 충전한 오정태 씨의 ‘따뜻한 웃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