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서 불난다. 일단 끊자.”
겨우 달래 전화를 끊고 핸드폰 액정을 보니 60:44 라고 찍혔다. 한 시간 넘게 통화했다. 귀가 아직까지도 욱신거린다. 다짜고짜 멋지게 죽는 방법을 물어오는 그에게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진 못했지만, 매정하게 끊어버릴 수도 없었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떤 사건이 있었다. 자기는 교사로서 당연히 말려야했고 제지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고 그게 서운하단다.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상처받은 거다. 교직을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모든 걸 다 걸고 아이들을 사랑했는데” 돌아오는 건 배신감뿐이라고 한숨짓는다.
“애들로서는 뭐 할 말 했네. 애들 입장에선 당연한 말이야.” “뭐? 나도 애들은 이해해. 그런데...” “고2면 몇 살이지? 18살이네. 아직 어려. 어른도 정신 못 차리는 미성숙한 인간들 많은데 너는 애들한테 뭘 바래.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니까 애들이지. 또 그런 애들이니까 선생이 필요한 거 아니니? 자식 키운다 생각하고 마음 비우고 수양해라.” “언니! 자식은 남기나 하지. 얘들은 내가 정 줘봤자 다 뿔뿔이 흩어질 애들이야.” “자식이 남긴 뭐가 남아. 나중에 부모를 짐으로나 안 여기면 다행이지. 그건 자식이 없는 네 환상이야. 서로 노력하면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뿐, 부모라고 남고 스승이라고 떨어지는 건 없어.”
그래도 아니란다. 언니는 자기 심정 모른단다. 자기는 당최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푸념이 늘어진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대로 전부 도전하고 이루어 놓은 그다. 쌍코피 흘려가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로서 훌륭한 스펙 갖춰놓고 실력도 발휘하고 인정도 받는다. 그래놓고 갑자기 작은 사건 하나에 흔들리면서 자기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다.
“내 인생에서 애들한테 헌신했던 2008년 2009년을 지워버릴 거야. 나 그냥 내년에 고3담임 맡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된 거 뒤집고 해외연수 신청할까봐.. 사실은 1학년 때부터 맡은 애들 데리고 고2까지 왔으니까 고3까지 잘 키워보려고 했거든. 6등급인 애가 내가 시키는 대로 공부해서 한 등급씩 올라갈 때 보람을 느꼈는데 지금은 완전 의욕 상실이야. 다 꼴보기조차 싫어.”
“니가 지금 인생을 달력 뜯어내듯 구겨 버리겠다는 거냐? 뜯고 지울 수 있으면 지워봐. 어디 지워지나. 살면서 힘들 때마다 도망가는 건 방법이 아니야. 아마 가봤자 수렁 아닌 데가 없을 거다...그리고, 니가 애들한테 열정 퍼부으면서 너도 행복했잖아. 손해가 어딨어. 그걸로 다 보상받은 거지.”
"맞아. 행복했지. 애들이 오리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귀찮도록 질문하고...애들이랑 좋았지..."
가만히 듣더니 또 자기의 이런 증상이 ‘노처녀 히스테리’가 아닐까 의심-진단한다. 남편도 자식도 없으니 살 이유가 없단다. 남편과 자식 땜에 살고 싶지 않은 여성들도 많은데 그걸 모르고는, 선보고 결혼해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좀 놀다가 과외해서 돈 '왕창' 벌고 남는 시간에 자원봉사 하면서 ‘편히’ 살까 그런다. 정말이지 발언의 수위가 점입가경이다.
“참내...자원봉사는 너 아니라도 할 사람 많거든. 넌 너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연수는 나중에 가고, 계획했던 대로 애들 3학년까지 잘 키워봐. 원 없이 멋지게 잘 해봐. 니 할 일은 그거야. 이번 일을 잘 견뎌야 이런 일 수십번 지나야 넌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어. 좋은 교사 되기가 어디 쉽니..”
조금 누그러든 목소리로 말한다.
“고3 맡으라고 한 사람 언니가 처음이야!!”
자기 친구들은 전부 ‘해외연수’를 권했단다. ‘그렇게 힘들고 불행하면 행복한 길을 선택하라’고 했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가 되게 원했던 대답인데도 막상 그 얘길 들으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는데 언니 얘기는 ‘신랄하고 잔인하지만' 왠지 웃음이 난다면서 중얼거린다.
“내가 그 대답을 원했던 걸까”
당연하다. 좋은 교사에 대한 욕망을 가진 그는 애들을 떠나지 못한다. 제자들이랑 지지고 볶으면서 가르치는 게 지금까지의 인생을 지탱하고 이끌어준 동력이다. 사는 목표가 뚜렷했고 성심껏 온몸 바쳐 노력했다. 이대로 계속가면 될 거라 믿었던 거다. 하지만 연인관계가 그렇듯, 사제지간에도 완벽한 사랑이 고정태로 이뤄질 수는 없다. 순간순간 창조만 있지 영원한 합일은 없다. 본디 사람살이가 그렇다. 더 조금만 더 가면 굉장한 무언가 있을 거 같지만 막상 손에 쥐면 아무 것도 아닌 것, 채울수록 텅 비는 것이 삶(욕망)의 본질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당부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욕망의 풍부한 유적 사용으로부터 멀어져 극도로 제한된 것을 욕망하는 것은 자기 파괴적 행위다.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소외'되는 순간, 인생은 우울해진다. 그리고 아마도 훗날 이런 일 반드시 또 생기고, 마치 처음인 것처럼 새삼스럽게 또 열 받겠지만 그 반복을 의연하게 잘 견디라고 했다.
노무현대통령 돌아가시고 김대중대통령 돌아가시는 '잔인한 반복'의 시간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후배의 '반복되는 고민'을 들어주면서 나는 슬그머니 결론 내려본다. 삶은 반복이다. 그리고 반복을 잘 견디는 게 삶의 기술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