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어느 주말의 촛불집회. 궂은 날씨에도 아이들이 참 많이 나왔다. 시위대 앞쪽에서는 강경진압이 시작됐지만 뒤편은 평화로웠다. 아이들이 눈에 밟혀 자꾸 카메라가 따라갔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던 중에 꼬마의 표정이 하도 똘똘해 사진을 찍었다. 아이 아빠의 요청에 따라 사진을 보내드렸다. 아이가 개념청년으로 잘 자라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1년 후. 다시 아스팔트가 뜨거워지니 시리고도 후끈하던 촛불의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오던 참이었다. 마음의 파장이 닿았던 걸까. 아이의 아빠가 '1년 전 메일을 보다가 생각났다'며 안부를 전해오셨다.
규원이는 미래의 개념청년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 ^^ 20년 뒤에도 이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되겠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저의 세 아이 중에서 제일 어린 규원이가 가장 MB정권의 말도 안되는 작태에 분노하고 그러네요...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국민장이 시청에서 있었던 날 찍었던 사진 보내드려요. 규원이 할아버지와 저, 규원이 이렇게 3대가 나갔던 거지요. 아버님은 그 전에는 이회창과 박근혜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셨던 분인데...이제는 오로지 경향신문과 가끔 지방에 사는 저희 집에 오셨을 때 한겨레 신문만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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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규원이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는 끊어진 반도의 허리도 이미이어져 있고, 무개념의 정치인이 이미 완전히 퇴출되어 도리어 보통의 사람들이 아무런 개념없이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충북의 소도시에서 살고 있기에 서울에서 열리는 힘을 모아야 하는 자리에 자주 올라가보진 못합니다...갈수록 경찰의 진압방식이 비인간적인 잔혹한 방식으로 나아가서 선뜻 규원이를 데리고 나서기도 주저스러워지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규원이가 자기가 합기도장 다니며 배운 솜씨로 몽둥이하나 들고 얍~얍하며 무찌를 수 있다고 따라 나서겠다고 한답니다.
아마도 이 불의한 권력이 물러날 때까지는 김송지영님이나 저나 생업의 터전에서 안주하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니, 또 다시 스치는 인연의 줄이 이끌어 광장에서,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거리에서 뵙게 될수도 있겠죠...
일 년 사이 규원이가 훌쩍 자랐다. 얼굴이 영글었다. 신기했다. 아빠따라 노짱 영결식에 나온 아이. 규원이가 자꾸 광장에 나와야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엄혹한 세월속에서도 쑥쑥 자라나는 저 파란 새싹을 보니 마음이 좋다. 신통하다. 규원이가 암울한 현실 밝혀줄 희망둥이다. 한겨레와 경향만 보시는 규원이 할아버지 사연도 감동이다. 촛불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바꿔놓았다. 아름다운 사람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들과 마음 닿아 있음에 행복하다. 우리가 거리에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