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조금 쓸쓸해졌을 때 가려 했다. 피서철 해운대처럼 인산인해를 이룰 때는 굳이 가지 않아도 좋았다. 그곳이 마른 겨울 논처럼 적막할 때 한 번 찾아뵈려 했다. ‘언제 한 번 보자’라는 말로 전화를 끊은 것처럼 마음의 숙제로 남겨두었던 참이다. 친구가 모임에서 간다기에 내 자리도 하나 마련해 달라고 냉큼 부탁했다. 원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낡은 편지 하나 손에 쥐고 어릴 때 헤어진 아비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딸이 되어 기웃기웃 그 마을길을 홀로 걷고 싶었는데... 현실계에서 가능한 일이 적어질수록 영화적 상상력만 발달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시댁식구들과 성묘를 마치고 귀경길, 천안 시내에 내렸다. 조신한 맏며느리에서 바람의 딸 유목민으로 모드변환. 내가 사랑하는 내가 되어 천안아산역에 당도했다. 이용객이 적은 대합실은 어쩐지 스산하다. 두 시간을 이 모델하우스 같은 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커피 한잔 들고 창가에 앉는다. 시집을 뒤적이다가 열차 타는 곳으로 갔다. 긴 의자에 가방을 베고 길게 누웠다. 등짝을 붙이자 그 휑한 곳이 조금 아늑해졌다. 얼마후 서울역에서 4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오는 친구와 성공리에 접선했다.
깜깜한 밤, 봉하마을 근방에 다다르자 ‘노무현대통령생가’라는 밤색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정약용 생가도 아니고 노무현대통령 생가라니. 모퉁이 돌 때마다 나타나는 표지판이 대형인장처럼 가슴에 쿵쿵 박힌다. 진짜 돌아가셨구나. 역사 속 인물이 되신 게로구나... 마을입구, 어둠 사이로 노란 현수막이 달빛처럼 비췄다. 노짱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9월 24일이 생신이었단다. 생신날 생가복원식을 마쳤나보다. 우리는 잔치가 끝난 마을을 찾은 셈이다. 눈앞에 검은 산이 드러난다. 저게 부엉이 바위일까. 생각보다 가깝고 높다. 차에서 내려 봉하의 흙을 밟는다.
작고 작은 시골마을. 어떻게 이런 시골에 내려와 살 생각을 하셨을까. 청와대 나온 남자가... 어떻게 이런 데서 사는 분을 그렇게 들볶아서 돌아가시게 했을까. 밀짚모자 쓰고 다니던 촌부를... 노무현대통령 묘역 앞. 쇠판에 넓적한 돌. 주위를 둘러싼 꽃바구니들. 커다란 쇠 벽. 이게 설치예술인가. 단독 오브제로도 멋도 없고 주변경관과 조화롭지도 않다. 묘역의 울타리나 경계가 필요했으면 나무를 심던지 돌담이나 흙 담도 있는데 왜 비오면 녹스는 저 쇠 벽을 세웠을까. 명박산성이 떠올라 속상했다. 따뜻한 분이셨는데 묘역의 전체적인 느낌이 너무 차고 시리고 초라했다.
묘역 앞. 전경 한 명이 서 있고 그 아래 어떤 아저씨가 쭈그리고 앉아 안주도 없이 소주병을 까고 있다. 우리 일행을 보자 더 고양된 목소리로 시국연설이 이어졌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 기라. 세상 천지에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는 나라가 어디 있어...김대중 대통령도 그랬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우리가 다 외면해서 그란기라.”
소주가 아저씨의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만 잦아들었다가 또 다시 시작되곤 했다. 고장 난 테이프처럼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자 거슬렸다. 조용히 애도하고 싶은데 집에 좀 가시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 반성했다. 그칠 줄 모르는 산속의 풀벌레 울음처럼 저분의 곡소리에 가까운 한탄도 다 자연의 소리 아니겠는가.
밤 11시. 친구 일행은 주변에 흩어져 명상을 한다. 난 묘역 앞의 돗자리로 갔다. 뭔지 모를 마음의 빚이 많아서 삼배로는 부족했다. 절을 시작했다. 일배.. 이배.. 삼배.. 목 안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여기저기 기도발 탓인지 주변이 일시에 숙연해졌다. 일장 연설을 하시던 아저씨도 조용해지셨다. 이십여 분 지났을까. 백팔배가 넘은 거 같은데 절을 계속 하니까 궁금했는지 큰 소리로 물으신다.
“천배 할라 캅니까?”
속으로 좀 웃겼다. 그냥 힘닿는데 까지 한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머뭇거리다가 계속 절만 했다. 아저씨가 급기야 소주병을 갖고 옆에 오셨다. 종이컵에 소주 한 잔 따르시더니 노무현대통령에게 올렸다.
“대통령님. 여기 젊은 처자가 천배를 올린답니다. 한 잔 드소.”
나는 노무현대통령에게 절을 올렸는데 아저씨가 위로를 받았나 보다. 아저씨는 울화의 술잔을 멈추시고는 온순한 고양이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 시간이 지났다. 땀이 났다. 절을 멈추고 앉았다. 찬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살갗이 사르르 어는 느낌이다. 하지만 차고 시리던 묘역은 좀 데워진 거 같았다. 체온의 나눔. 자정이 지나자 정토원 길 따라 켜진 전구가 꺼졌다. 묘역 앞 가로등 빛 한 줄기만 하염없이 비추고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철판에 새겨진 선언의 말.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꽃 화분에 리본에 새겨진 다짐의 말. 고백의 나눔.
새벽 1시가 넘어서도 드문드문 두 팀이 다녀갔다. 묘역 앞에서 새벽 세시까지 맴돌다가 친구 일행은 어디론가 떠나고 나는 차 안에 누웠다. 추워서 몸이 펴지지 않았다. 태아처럼 꼬부리고 덜덜 떨다가 아침녘 해가 뜨고서야 잠이 들었다. 한 두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봉하마을이 환하니까 다른 동네 같았다. 낯설었다. 논이 꽤 컸고 의외로 민가가 별로 없었다. 노무현대통령의 커다란 초상화와 온갖 사랑의 언약이 내걸린 마을회관 주변을 지나 생가에 들른다. 노무현대통령 생가는 민속촌에서 보는 여느 민초들의 집처럼 평범했다. 그렇겠지. 그는 아궁이에 불 떼고 사는 촌놈이었으니까.. 생가를 나와 사저 지나 정토원까지. 그분이 마지막 밟고 가신 그 길 따라 한 발 한 발 오른다. 부엉이 바위만큼 오르니 온 마을이 품에 가득 안긴다. 그곳에 서니 그분의 한 평생 삶이 보인다. 당신이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가셨구나. 바람이 되어 대지의 품으로 가셨다. 목숨을 던짐으로써 자연의 순리에 복종하셨다.
정토원에서 노무현 김대중 두 분 대통령을 뵙고 아침공양을 하고 내려왔다. 묘역 앞에는 아침부터 참배객들이 하나둘 다녀간다. 동네도 깨어난다. 생가에는 사진이 내걸리고 아주머니들은 밭에서 딴 호박을 늘어놓고 장사를 준비한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마시려다가, 하얀 분에 입술연지 바르고 장사 준비하시는 아주머니가 고와 보여서 천막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커피 되죠?” 어서 들어와 앉으라고 하신다. 노란 양은주전자에서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새소리만큼 정겹다.
“묘역 앞에 저 쇠 벽은 왜 세운 거래요? 무슨 뜻이 있나요? 좀 갑갑해 보여서.....”
“그렇죠? 우리도 그래얘. 뭐 말로는 건너편 밭일 하는 사람 보인다고 가린다꼬 했는데 마을사람들은 사자바위에서 내려오는 기를 막는다고 그라고...”
“그니까요. 없으면 더 좋겠어요. 보기에 멋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유홍준씨가 했대요. 그 분 알죠? 조선일보 칼럼 쓰는 역사학자. 노무현대통령이 키워준 사람이라꼬. 뭐 저 벽이 단풍색이라서 주변과 조화롭고 어쩌고 하는데 우리는 보기 갑갑한 기라.”
“제 말이....”
수다에 몰입하는 바람에 물이 180도 쯤 끓어버렸다. 손에 쥘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봉하커피 한 잔 들고서, 사람 사는 세상 봉하마을에 뜨거운 안녕을 고한다.
‘생의 마지막’ 이란 느낌은 대체 어떤 것일까 늘궁금했다. 봉하마을에 다녀오니 질문이 바뀐다. 삶에 과연 마지막이 있을까. 죽음이란 육화된 개체의 파멸일 뿐이다. 스피노자 말대로, 죽을 때 잃어버리는 것은 외연적인 것이다. 그의 삶을 구성했던 신의 영원한 부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양태로의 변용이 있을 뿐 영원한 부분은 더욱 크게 남는다. 불멸하는 이순신, 전태일, 김광석, 그리고 노무현처럼... 살아도 산 것이 아니듯이 죽어서도 죽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