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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정지용/ 유리창 - 버스, 마을버스


버스 정류장. 말의 느낌부터 시적이다. 시적이란 건 느낀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정류장에서 나는 깨어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나무결 무늬가 들어간 벤취에 앉아있노라면 어디 강둑에라도 앉은 것처럼 관조하는 자세가 된다. 마음의 결이 올올이 살아난다. '나'에 불이 켜지는 느낌이랄까. 코드 빼놓고 살다가 버스정류장 아래 서는 순간 다시 작동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마 버스 정류장이 주거공간 바깥으로 나아가는 관문 같은 의미이기에 그럴 것이다. 정류장 아래서면 나는 한마리 새처럼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가로수의 나뭇잎 떨림 하나 사람들 표정 하나에도 눈길이 가고 하늘도 비로소 깊은 얼굴을 드러내니까. 아스팔트 사이에 난 잡초도 들여다보고, 내 구두의 뒤축이 어슷하게 닳은 것도 알아챈다, 수첩도 꺼내 보고 친구한테 안부 전화도 하고, 혼자 놀기 고수처럼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