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소식 / 황지우 '저지르든가 당하든가'

[올드걸의시집]

 

 삶이란, 끊임없이 부스럭거리는 
 事故 
 그러니, 저지르지 않으면
 당하게 되어 있지
 그러니, 저지르든가
 당하든가
 서울에 도착하여 고속터미널을 빠져나올 때
 택시 주차장으로 가면 
 국민학교 교사처럼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신사가 핸드 마이크로,
 종말이 가까웠으니 우리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고
 외쳐대지 않던가
 사람들은 거지를 피해가듯
 구원을 피해가고
 그는 아마도 안수받고 암을 나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혼자서 절박해져가지고
 저렇게 왈왈대면
 저렇게,
 거지가 되지 


 - 황지우 시집 < 게 눈 속의 연꽃>



글을 쓰기 싫을 때는 더 책에 매달린다. 글 쓰기를 회피하는 가장 손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읽기의 쾌락'에 빠져들기다. 얼마나 좋은가. 책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 여기저기 전구가 들어오고 이걸 예전부터 알았더라면 더 잘 살았을 것 같고 지금이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며 앞으로 글 쓸 때는 조금 더 유려한 언어로 수월하게 써지지 않겠나 묘한 흥분마저 감돌다가 정점을 찍으면 그냥 이대로 아름다운 언어에 익사당하고 싶어진다. 영락없다. '쓰기'를 저지르지 않는 동안 '읽기'에 당한다. 읽기의 나른한 향락의 꾀임은 정말이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안수받고 암을 나은 사람처럼 나도 광화문 네거리 나가서 떠들고 싶다. '책 읽고 삶이 나았어요. 책을 믿고 구원받으세요."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는 책을 읽으며 배고픔을 잊고, 추위를 잊고 병을 잊었다고 하던데. 난 배고픔은 안 잊어진다. 책 읽다보면 커피가 그립고 커피 마시면 빵이 그립고 빵을 먹으면서 다시 책을 찾는다. 그렇게만 살면 좋겠다. 알람처럼 하루 세번 어김없이 '배고프다'며 밥 달라는 아이들로부터 해방된 일상. 책과 커피머신과 오디오만 있는 고요한 나만의 공간에 삼일만 갇혀있고 싶다. 아침이 밝으면 머리 맑을 때 니체의 책을 읽고, 오후에는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예쁜 공책에 다 베끼고, 깜깜한 저녁이 되면 아름다운 시를 골라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낭랑하게 읽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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