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하다는 점집에서 점 보고 온 기분이 든다. 용하다는 얘기는 <한겨레>에서 처음 들었다. 월화수목금 5일 동안 삼등분으로 접혀오는 신문 한 번 펴지 않고 분리수거에 직행하는 경우는 있어도 토요일 신문은 반드시 펴본다. 왜? 책 섹션이 있으니까. 기억하건대 이 책의 소개는 훌륭했다. 그야말로 싸구려 커피 한잔에 별일 없이 사는 울덜이 봐야할 책이로구나 싶었다. 서점에 갔다가 책 표지에 적힌 ‘불안과 고민의 시대, 일본 100만 독자를 일으켜 세운 책!’ 에 또 혹했다. 고민하는 힘이 살아가는 힘이란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대로 낚였다.
목차를 폈다. 나는 누구인가, 돈이 전부인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등등 나름 추려낸 삶에 관한 아홉 가지 문제설정은, 드라마에 꼭 나오는 ‘불륜’처럼 진부한 소재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진부한 사랑타령 불륜행각도 작가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참신하게 변주되어 사랑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법이니,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러니까 점을 본다고 뭔가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나 혹은 삶에 대한 점쟁이의 획기적인 해석으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될 줄 모른다는 심정으로 책을 봤다.
이 책은 돈, 사랑, 청춘, 늙음, 앎 등 삶에 관한 핵심적인 '질문'으로 이뤄진 듯 얼핏 보인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범'답안’을 맛보기로 흘린 빈약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청춘은 나이와 관계가 없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91) ‘사랑의 모습은 변합니다. 행복해지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 아닙니다.’(140) 이런 식이다. 아는 사람에겐 필요 없고, 모르는 사람에겐 소용없는 얘기들. ‘회사가 놓아주지 않는 1%가 되는 법’에 나오는 처세술과 비슷한 유형의 글들.
괜히 점 보러 갔다는 허무함을 느끼며 책장을 덮었다. 184쪽짜리 책에서 감히 삶을 견적 내려 하다니. 삶의 답을 알려 하지 말라는 교훈을, 지름길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삶의 중요한 문제는 답이 없다. 살아갈 밖에. 다른 질문으로 이전의 질문을 아우르는 수밖에. 참 당황스러운 것이 <고민하는 힘>은 대부분 익숙하고 어디서 많이 본 내용들이다. 질문의 격과 관점을 달리해주는 책이 아니기에, 혼돈스럽거나 아프지 않다. 무척 빨리 읽힌다. 막스베버와 나쓰메소세끼는 거의 우정출연. 카메오다. 굳이 곱씹거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제목을 배반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