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분단은 이제 영화 속 소재로 더 익숙하다. 그러나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마을 사람들에게 6.25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전쟁 당시 매립한 지뢰 피해주민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국토 끝자락에 있는 그들을 ‘용케도’ 찾아내어 손잡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민통선 통일봉사단’이다.
라훈일 씨는 ‘민통선 통일봉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너나없이 잘 먹고 잘사는 법에 온통 관심이 쏠리는 이즈음, 그로 하여금 역사의 뒤안길에 소외된 사람을 찾아가게 한 사연은 이렇다. “분단이 없었다면 38선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38선이 없었다면 민통선과 지뢰는 없었을 것입니다. 6.25전쟁 직후 가난한 주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지뢰가 살포되어 있는 곳까지 들어와 집을 짓고 경작을 했습니다. 어떤 피해를 입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할 정도로 주민들에게는 당장 먹고 살 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민통선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하나 둘씩 지뢰를 밟아 소중한 생명과 몸을 잃게 되었고 이런 분들의 아픈 삶은 이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로 한 번 더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 그는 말한다. 혼자라는 절망에 빠져 있는 모든 민통선 마을 지뢰피해 주민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을 드리고자 지난 2004년 민통선 통일봉사단을 창립한 것이다. 그 후 해마다 농사가 한창인 3월부터 10월까지 한달에 한 번씩 대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들과 2박 3일 일정으로 이곳을 찾는다.
매달 90여 명 학생들과 주민들 농사일 도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678은 1997년에 민통선이 해제된 마을이다. 들판에는 ‘DMZ service' 'www.mintongsun.org'라는 로고가 새겨진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진달래처럼 무리지어 있다. 사방 어디에 눈을 두어도 막힘이 없는 너른 들판에서는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와 삽이며 가래, 낫을 든 이 붉은 악마, 아니 붉은 천사들의 얼굴을 더 벌겋게 피어나게 한다.
“학생들이 도와주니까 너무 좋고 고맙지.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하라는 대로 하나도 안 틀리고 해. 아, 작년에는 글쎄 콩을 심는데 세 알씩 심으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깐 꼭 세 개 씩 싹이 나더라니까.”
이날은 통일봉사단 활동의 하일라이트, 농사짓는 날. 80여 명의 학생들은 마을 주민들 집집에 10여 명씩 흩어져 밭을 갈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나르고 있다. 마을주민 이정희 씨(70)는 일손이 부족한 농한기에 찾아온 학생들이 마냥 기특하고 고맙다며 옆에 있는 라훈일 씨의 손을 꼭 부여잡는다.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만나게 되는 그는 이제 피붙이처럼 살갑다.
할머니와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눈 그는 곧 학생들 대열에 합류한다. 닭을 기를 때 만들어 놓은 계분을 경운기에 한 차 싣고 깨밭을 누비며 뿌리고 있다. 경운기에 오른 그와 학생들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도 된 듯 연방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장난이다. 여학생들도 ‘즐거운 힘쓰기’에 여념이 없다. 작은 양동이에 계분을 한가득 담아 몸을 반으로 접어 밭에 뿌리는 폼새가 제법이다.
“아침에 처음 시작할 때는 힘들었는데 벌써 몸에 익었나 봐요. 지금은 너무 재밌어요. 어제 밤에 도착해서 자료화면을 보면서 민통선 활동모습도 보고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했거든요. 또 전 세계적인 지뢰피해 실태에 대해서도 공부하고요. 새삼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기 할아버지께서도 지뢰피해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어른들을 뵙고 그분들과 일을 하니깐 평화의 소중함이 더 와 닿는 것 같아요.”
학교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참가 신청을 했다는 서수정 씨(20)는 아버지가 통일부에 근무하시는데 딸로서 통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아서 오게 됐다고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석한 남혜연 씨(22)의 소감도 남다르다.
“생활에서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은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무뎌져 가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됩니다. 작년엔 지뢰피해가구에 도배를 했거든요. 그 분들 웃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하루’와 ‘한 사람’의 소중한 힘을 믿는 통일농부
이처럼 민통선 통일봉사단 학생들은 하나같이 속이 깊고 착하다는 게 라훈일 씨의 자랑이다.
“여기 온 학생들은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살피지요. 그들의 맑고 순수한 마음을 느끼면 긴장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 시작은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왔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저를 끌고 가는 것을 느낍니다.”
민통선 통일봉사단은 우리나라 대학생들만으로 대상이 제한 된 것은 아니다. “봉사를 독점하지 않는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미 일본의 와세다 대학생들과 한국의 유학생, 여성 연합 등 타 단체나 외국 학생들도 통일봉사단 활동을 경험했다. 활동무대 역시 넓다. 작년에는 12박 13일 동안 캄보디아 지뢰피해주민 돕기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NGO견학과 지뢰피해주민을 위한 집짓기, 해양도전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의 지뢰, 즉 전쟁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캄보디아에 갔을 때 7살짜리 아이가 처음엔 저희를 경계하고 외면했었어요. 그러다가 며칠 지내면서 조금씩 친해졌죠. 마침내 집을 다 짓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제 손을 꼭 잡더라고요. 그 조막손의 따뜻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중에 함께 참가한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지요. ‘우리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집을 지은 거다.’라고요.”
그는 나비효과를 기대한다. 그 아이 혹은 통일봉사단에 참가한 누군가가 성장해서 사회인이 되었을 때 한반도 통일,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이 되어 38선이 뚫리고 지뢰가 제거되는 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지만, 그날의 희망을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실천하고자 합니다. 하루 동안의 봉사가 그 분들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지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어 우리의 정성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그분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순수 자원봉사로 일하는 그는 가난한 ‘통일 농부’다. 그러나 누구보다 밭을 열심히 갈며 거름을 뿌리고 있다. 이 비옥한 토양에서 피게 될 수천수만의 통일의 꽃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리라는 기대를 가슴 한켠에 품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