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새벽에도 눈이 번쩍 떠지고,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른다. 꿈이 아닐까 싶어 멍하니 있을 때도 많다.’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듯하다. 얼굴까지 뽀얗게 피어나는 것이, 영락없다. ‘행복 솔솔, 눈물 뚝뚝’ 나게 하는 변덕쟁이 날씨와의 연애담을 털어놓는 그녀는 MBC 새내기 기상캐스터 박은지 씨다.
자연의 날씨는 하늘의 뜻, 마음의 날씨는 나의 끼
박은지 씨는 기상센터에 불을 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방송국에 가면 3시가 조금 못된다. 그 때부터 6시에 있을 생방송을 준비에 들어간다. 분장도 하고, 기상청의 자료들과 기타 정보들을 취합해서 방송할 내용을 파악하고 결정한다. 지난(2006년) 1월 16일부터 방송을 맡은 ‘MBC 뉴스투데이’에서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날씨를 전하는 특명을 맡은 뒤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다. “아침 방송이라 사전 녹화로 방송을 내보낼 수 없거든요. 실시간 변하는 날씨의 흐름을 전해야하니까요. 그래서 더 긴장이 되고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돼요.”
1초가 1시간처럼 지나가는 아침, 바로 꺼내 신을 수 있는 서랍 속 양말처럼, 날씨는 손에 닿는 곳,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2시간 방송 중 총 6번이나 등장한다. 1회 방송 시간은 1분에서 1분 30초. ‘순간의 예술’을 요하는 일이다. 실수를 하면 방송이 끝나버리고 만회할 기회조차 없으니 말이다.
“처음엔 청심환을 2알이나 먹고 했어요. 그런데도 눈앞이 캄캄해지고, 내가 지금 방송하는 게 맞나? 싶고 실감이 안 났어요. 달달 외웠던 내용도 전혀 생각이 안 나고, 어느 날은 순간적으로 발아래를 내려다 본 거 에요. 완전 방송사고 수준이었지요.”
그녀는 긴장과 공포의 벽에 무참히 시선이 꺽이고 말았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오죽하면 “박은지 씨가 너무 떨어서 나도 같이 밥을 못 먹었다”는 시청자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의 ‘인간적인’ 실수에 대해 ‘너무도 인간적인’ 화답이 온 것.
방송 시작 후 얼마동안 흘린 눈물 덕에 이제 그녀는 더욱 단단해졌다. 긴장과 두려움은 눈물로 말끔히 씻어냈다. "선배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네가 방송하는 시간은 네 것이다. 완전히 너의 것으로 만들라는 얘기를 듣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틀려도 당당히 틀리자고 마음먹었더니 오히려 많이 편해졌어요. 이제 실수는 안 해요.” 수줍게 웃는 그녀에게 ‘틀려도 밉지 않은’ 새내기의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톡톡 튀는 감성 지닌 기상캐스터 꿈 꿔
박은지 씨가 방송인의 꿈을 키운 것은 대학교 2학년 때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옷을 만드는 것보다는 직접 입고 무대에 서는 것이 더 좋았다고 한다. 2003년도 미스유니버시티에서 출전해서도 “나를 알리는 것이 좋았고 별로 떨리지가 않았다”고 회상한다. 곧 자신이 무대체질임을 발견한 그녀는 단순히 무대에만 서는 것이 아닌 감동과 정보까지 전달할 수 있는 방송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작년 2월, 일본의 한 민간 기상청이 실시한 웨더자키 모집 공고에 응시하면서부터 기상캐스터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일본에서 8개월 정도 생활했는데 그 때의 웨더자키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날씨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생활력도 길렀지요. 일본어를 하나도 못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밤잠 설치며 공부했고, 3개월 지나서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웨더자키는 이동단말기의 날씨정보를 알려주는 모바일 방송 전문 진행자다. 그녀는 웨더자키 생활을 하다가 MBC기상캐스터 모집 공고에 응했고 ‘당차고 자신감 있는 태도, 톡톡 튀는 감성’으로 점수를 얻어 ‘바늘구멍’관문을 통과했다.
“머리가 늘 길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짧게 했어요. 그랬더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앞으로 경험을 쌓고 나면 조금 더 제 색깔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상캐스터가 되고 싶어요. 미술을 공부한 제 전공을 살려서 시각적인 도구를 이용한 볼거리 있는 일기예보도 하고 싶고요. 하늘의 날씨는 자연의 뜻이지만, 마음의 날씨는 저의 끼로 늘 밝게 해드리겠습니다.”
미명에 하루를 시작하는 성실함, 세계에서 인정받은 외모, 어떤 상황도 개척해나갈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 거기다가 아침에 먹는 사과 한 조각처럼 상큼함을 지닌 그녀는 뒤춤에 커다란 꿈 보따리까지 숨겨 놓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여는 하루는 ‘넘치는 끼를 가진 박은지 씨의 영향으로’ 오늘도 매우 맑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