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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 문태준


엄마가 돌아가시고 첫 생일날에는 아침부터 이를 닦다가 울컥했다. 엄마가 나를 낳고 하루라도 입원비를 줄이려고 바로 그날밤 퇴원했다고 하셨다. 나는 애를 낳고서야 엄마의 궁상 혹은 결단이 실감나서 숙연해지고 말았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나의 출산스토리가 더욱 사무쳤다. 핏덩이를 품에 꼭 싸 안고 어그적 어그적 걸어가는 엄마의 불편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존재에 대한 연민에 복받쳤다. 저녁에 술을 '진탕' 마시고는 생애 첫 음주-구토를 일으켰다. 그것도 일급호텔 스카이라운지의 하얀 눈밭같은 테이블보에다가. 서울 한강의 야경을 배경삼아. 다음날은 생애 처음으로 원고기한을 어겼으며, 일박이일 간 머리를 바닥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슬픔이 가슴보다 커질 때는 술을 붓는다. 그 술은 마중물이다. 몸안에 것들을 위로 위로 퍼올리기 위한. 나의 육신은 슬픔을 처리하는 성능좋은 기계가 되어 열심히 돌아간다. 약 30시간 정도 가동되면 몸무게 2키로그람이 줄어든다. 살덩이 같은 슬픔이 비로소 빠져나간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시작된 슬픔사태는 달을 넘겼다. 몽유병 환자처럼 꿈결인듯 서해 곁을 떠돌았던 3박4일간의 여정을 이제야 마무리짓는다. 좀 덜 속쓰리게 잊고 싶어서 주종을 변경한 게 외려 화근이었다. 심하게 속병을 앓았으나 지금은 깨끗한 해피엔드다. 거의 매일 책을 읽거나 원고를 끄적이거나 가사노동에 투여되던 나의 일상의 외도, 마음의 외출은 괴로웠으나 한편 행복했다고 말하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라는 시인의 비석같은 가르침을 되새긴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 생각나는 순간은 알토란같은 의미로 충실했던 날들보다는 '쓸데없는' 방황으로 채워진 시간들일 게다. 사랑은 미친짓의 기억으로 위대해지고 인생 또한 미친짓의 기억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울렁이는 눈으로 보았던 샛노란 은행나무지붕 길과 해질녘 발갛게 충혈된 노을진 바다와 무서울만큼 까맣고 고요한 가로등 불 밝힌 대로와  눈물과 포옹의 이별장면들과 누군가 불러준 김광석의 '잊어야한다는 마음으로'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빈집같던 마음에 차차 볕이 들고 물이 차고 얼룩이 번졌으니.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내 몸을 지나가는 빛들을 받아서 혹은 지나간 빛들

     을 받아서 

       가을강처럼 슬프게 내가 이곳에 서 있게 될줄이야

       격렬함도 없이 그냥 서늘하기만 해서 자꾸 마음이

     결리는 그런 가을강처럼

       저물게 저물게 이곳에 허물어지는 빛으로 서 있게 

     될 줄이야

     주름이 도닥도닥 맺힌 듯 졸망스러운 낯빛으로 어정

    거리게 될 줄이야  



     - 문태준 시집 <가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