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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책을 보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혹은 음악을 듣다가 너무 찡해서 눈물을 짓는 건 흔한 일상사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울어본 적은 딱 두 번 있다. 울었다기보다 눈물이 절로 흘렀다고 해야 맞겠다. 한 번은 한대수 선생님 사진을 보고서다. 같이 취재 간 사진작가가 한대수선생님의 뒷모습을 찍었는데 흑백이었다. 한적한 홍대 뒷골목을 배경으로 가로등 불빛과 전선줄이 뒤엉킨 담벼락 사이로 검은 트렌치 코트를 입은 그가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쓸쓸하고 처연하고 신산스러웠다. 당신 한평생 살아온 생애의 이야기처럼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한대수선생님의 책 제목대로 '죽는 것도 제기랄 사는 것도 제기랄'의 미학적인 구현이었다.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두번째는 북한사람들 사진을 보았을 때다. 광화문 교보 뒤의 2층 카페에서 나는 사진을 한웅큼 손에 쥐고는 한장한장 넘겼다. 호기심어린 두 눈으로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북한사람'을 찾고 있었나보다. 바보처럼 물었다. "선배 북한사람 어딨어요?" "그치?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게 그거야."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한 북녘동포의 일상사가 담긴 사진에 뿔달린, 굶주린, 혹사당하는, 정치적 동물인 '북한사람'은 없었다. 사진전 제목이 '사는 거이 뭐 다 똑같디요' 였으니 사진의 메시지는 내게 성공적으로 전달된 셈이다. '좋은 사진'을 여럿이 나누고 싶었기에 기운센 남자후배랑 같이 가서 전시작품 걸어주는 것을 거들었다. 3일간 전시가 끝나고 사진을 떼는데 사진속 그들과 뜨거운 안녕, 헤어지는 느낌이었다. '있다가 없는 것'이 참 쓸쓸하고 슬픈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밤에 술한잔 하면서 그런 상념을 글로 끄적였다. 그리고 한달 반 후. 사진전을 보러왔던 분이 <견딜 수 없네>란 시집을 선물해주었다. 50쪽에서 51쪽. 시를 읽어가면서 내 마음의 기록의 환생이 '반가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다. 이 마저도.    




갈수록, 일월(일월)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정현종 시집 <견딜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