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식사 / 황지우

[올드걸의시집]

매주 월요일 점심때면 아버지가 오신다. 빈 반찬통이 들은 가방과 아이들 과자를 한보따리 들고 오신다. 그러면 나는 일주일치 밑반찬을 만들어서 빈통에 담아 드린다. 반찬이랄 것이 뭐 별거 있을까. 멸치나 북어를 볶은 마른반찬 한 가지, 삼색나물 중 두어가지, 오뎅이나 두부조림, 불고기나 오징어볶음 같은 단백질류 등등이다. 일요일에 준비하거나 월요일 아침에 허겁지겁 준비하는데, 그 시간이 한없이 우울하다. 왜 우울한가. 아버지가 반찬가게에서 사 드시면 더 다양하고 맛있는 걸 드실 수 있을 텐데. 아니면 일하는 아주머니를 일주일에 두번만 불러도 더 따뜻한 반찬을 드실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나도 부담을 덜 수 있을 텐데. 하는 얄팍한 생각들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와서다. 매번 돌아오는 끼니의 영원회귀. 차이없는 반복의 압박감이 싫다. 아버지는 입맛도 엄청 까다로워서 엄마가 살아계실 때 매일 힘들어 했고 나에게 푸념을 평생 늘어놓았는데 반찬을 준비하다보면 엄마의 한숨이 자꾸 들리는 것 같다. 그러면 아빠가 밉다. 아빠의 이기적 유전자가 싫다.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아빠도 힘드시겠지만 아이들 둘 키우고 살림하고 밥벌이하는 아빠딸도 좀 힘들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이번주는 아파서 못해드리겠어요. 이렇게 전화  한통 넣어버리고도 싶다. 내 튼튼한 위장과 팔다리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머릿속의 반란일뿐. 엄마 돌아가시고 2년 반동안 단 한주도 거르지 않았다. 나도 징그럽고 아빠도 징그럽다. 하지만 아빠에게 필요한 건 '반찬'이 아니라 딸과의 '왕래'일 것이다. 나도 그래야 도리라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아빠에게 갖다드렸지만, 아빠가 가지러 오시는게 달라졌고..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부러 점심 때 오시라고해서 점심밥을 차려드린다. 한끼라도 따뜻한 진지 드시게 하리라는 애초의 기획의도는 간데없고 의지와 행동이 따로 논다. 어제도 아빠가 11시 30분에 오셨다. 지난주에 아빠는 친구들과 2박3일로 단풍놀이를 다녀오셨다. 재밌으셨는지 묻고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점심만 차려드리고 나는 부엌에서 반찬을 마저 만들었다. 아버지가 진지를 드실 때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라도 나눠드리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질 않는다. 보면 밉고 안 보면 측은하다. 마늘을 다지면서 곁눈질로 흘금흘금 혼자서 점심을 드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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