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025)
장사익 소리꾼 - "나는 기생이여... 일어날 起 날 生" 그에게는 ‘식물성의 저항’이 느껴진다. 마르고 꼿꼿한 몸에선 소쇄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자분자분 절도 있는 몸짓에선 청량한 대숲소리가 난다. 세상을 향한 말걸기는 호기롭고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은 애달프다. 뼈마디를 울리는 칼칼한 목소리는 얼마나 진국인가. “밥 잘 먹고 똥 잘 누면 행복이지 별거여~” 호탕한 일갈로 담박한 행복론을 펴는 장사익. 마흔 여섯에 가수가 된 그는 삶을 온몸으로 받아낸 특유의 절절한 울림으로 장사익만의 ‘소리’를 길러내고 있다. 지난 2월 그를 자택에서 만났다. ‘하늘 가는 길’ ‘찔레꽃’ ‘허허바다’ ‘봄날은 간다’... 장사익의 노래를 듣다 보면 한줌 흙이 만져진다. 촉촉한 땅의 기운. 자연과 살 맞닿음의 확인. 콘크리트에서 나온 음악이 아니다. 필시 그는 자연 속에 거..
촛불집회, 전국노래자랑보다 웃기다, 백분토론보다 진지하다 “와, 진짜 신기하다. 투쟁가 한 번을 안 부르고도 두 시간이 지났잖아. 근데 지루한지 모르겠다. 집회 정말 재밌다.” 2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물문화제에 함께 간 선배가 남긴 소감이다. 맞장구를 쳤다. 2분 같은 두 시간이었다. 고작 지하철 한 정거장 지난 기분이다. 서울 도심 한 복판 장엄한 빛무리 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달콤한 한 때를 보냈다. 촛불문화제는 번듯한 음향이나 조명시설도 없다. 이름난 연예인도 안 나온다. 오직 촛불과 갑남을녀만이 넘실대는데, 그 자체가 천연조명이고 고성능 음향기기고 한류스타들이다. 그들이 제조하는 ‘명품 대사발’은 풍자와 기지로 가득했다. 7시가 조금 넘자 사회자가 나왔다. 차돌처럼 단단한 음성의 여성분이었다. “오늘 뉴스를 보니까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대책회의..
[느낌이 있는 헌책방] 동물 환경 이웃을 생각하는 '뿌리와 새싹' 신촌 기차역 맞은 편 주택가에 자리한 ‘뿌리와 새싹’은 오랜 연인같은 책방이다. 들어서자 마자 이내 마음이 푸근해지고 찬찬히 둘러볼수록 사랑스러운 것들이 눈에 차니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마냥 눌러앉게 된다. “손님들이 그러세요. ‘뿌리와 새싹’에 오면 볼 게 너무 많아서 막상 책을 못 본다고요.” 자랑인 듯 푸념인 듯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는 매니저 박하재홍 씨. 게다가 오묘한 미소까지 곁들여 여운을 남긴다. 아니, 책방에서 책이 뒷전이면 무엇이 우선이란 말인가. 그러나 뿌리와 새싹에서 들어서서 5분만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그 말뜻을 알게 된다. 물론 이곳의 8할은 헌책이다. 하지만 나머지 2할을 채우는 것들이 ‘뿌리와 새싹’ 고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재활용과 핸드메이드.. 따뜻한 인테리어 ‘뿌리와 새..
황금례 봉사자 - "세상에서 봉사가 제일 쉬웠어요." 백 여 명 아기, 빗물 같은 정으로 길러내 스무 살 무렵, 또래의 친구들이 좋은 사람 만나길 넌지시 소망하는 동안 황씨는 특이하게도 소록도에 가서 나환자를 돌보고 싶어 했다. 어떤 계기가 이었던 것은 아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러난 마음이었다. 그러나 신부님들이 힘에 부치는 고된 일이 많다며 극구 만류하시는 바람에 소록도의 소망을 접어두고 결혼을 했다.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왔는데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심심하고 무료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어요. 어느 날부턴가 지대가 낮은 우리 집에서 올려다 보이는 이웃집에 항상 하얀 기저귀가 널려 있는 게 보였어요. 그 집에는 나이 많은 분이 살고 있었는데 왜 기저귀가 있을까 궁금했지요. 알고 봤더니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되기 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
황인용 DJ - 예술인마을 헤이리 '카메라타' DJ로 돌아오다.. 생의 출렁이는 바다,음악 타고 흘러가리...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섞인 음악과 고색창연한 목소리 따라, 사람들은 추억의 거리를 헤매거나 못다한 사랑의 애잔함을 달랬다. 낭만을, 낭만인줄도 모르고 살았던 그 시절의 DJ 황인용. 이제 그는 작은 소리통이 아닌 헤이리의 커다란 공간에서 음악을 틀고 나눈다. 사람을 대하는 편안함과 온 얼굴로 웃는 선한 표정과 LP를 갈아 끼우는 손놀림은 여전하되, 그것들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향취는 더욱 그윽했다. 경기도 파주의 예술인 마을 헤이리.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 ‘황인용의 음악감상실 카메라타’가 있다. 벽면에는 거대한 30년대 웨스턴일렉트릭제 극장용 스피커와 앰프들, 그리고 1만 장이 넘는 LP음반이 빼곡하다. 평일 오..
주철환 OBS TV 대표 - 행복한 사람은 일터가 놀이터다 '내 인생의 키워드는 재미와 의미다’ 등의 프로그램으로 스타PD 시대를 연 주철환. 그가 교수로서 대학 강단에 서다가 다시 방송으로 돌아왔다. 오는 12월 개국하는 OBS경인TV 대표이사다. 외형상 직업은 바뀌었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재미와 의미를 나눈다는 알맹이는 그대로이고, 꿈꾸는 소년 같은 표정도 여전하다. “행복한 사람은 일터가 놀이터”라는 그만의 FUN철학을 들어본다. ‘의미와 재미’ 찾는 일상탐험가 경인방송 사장실. 너른 평상 크기의 책상에 갖가지 문건이 가득하다. 결재할 서류와 스케줄 표, 행사 안내문, 책 등이 하얀 눈처럼 뒤덮였다. 그의 눈빛 또한 눈사람 만들 생각에 들뜬 아이의 그것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단지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면 워커홀릭이겠지만, 저 산더미 같은 일이 사이사이에 박힌..
김동운 유정희부부- 20년 진보아지트, 그날이오면 "문 안 닫아요" ▲ 올해로 20돌을 맞은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은 마지막 남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이다. ⓒ 이강훈 '누가 길을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희성의 시구를 빌어서라도 좀 폼 나게 소개하고픈 곳이 있다. 관악산 자락 아래 녹두거리에 가면 오렌지빛 간판의 서점이 있으니, 마지막 남은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이하 그날)이다. 1988년 문을 연 이곳은 사회변혁세력의 몰락과 학생운동의 급퇴조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올해로 스무 살, 성년이 됐다. 고된 땀방울로 '그날'을 늠름히 키워낸 주인공은 김동운·유정희 부부다. 1990년부터 운영을 맡아왔다. 올해로 스무살, 20돌 기념행사 성황리에 마쳐 "지난 1월이 스무 돌이었어요. 조촐한 기념행사를 두 가지 치렀지요. 작년 말에 20..
박정대 시인- 낭만생활자의 기록, 네 권의 시집 낡은 노트 한 권. ‘마드리드행 야간열차’라는 친필 제목이 멋스러움을 더한다. 안쪽에는 파리의 지하철 표, 몽펠리에 공원 댓잎, 체게바라 엽서 등 일상에서 주운 낭만조각이 서리서리 담겨있다. 빛과 바람과 손때로 모서리가 다 닳았다. 문학소녀의 다이어리라 하기엔 농익었고, 순례자의 기록이라 하기엔 풋풋하다. 이 탐나는 물건은 누구의 것인가. 이 풍진세상을 살아가려면 낭만은 물처럼 매일 취해야한다고 말하는 시인 박정대의 소지품이다. ‘낭만’을 ‘물’로 알고 산 오류야 말로, 그를 지극한 낭만생활자로 만들었으리라. 낭만은 길을 묻지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 초판 1쇄 발행 2007년 3월 20일. 소월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수상시인 박정대의 네 번째 신작 시집 . 목차를 폈다. 고독행성, 나의 아름다운 세탁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