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배려 사이

[은유칼럼]

한동안 에스엔에스 계정에 아이들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두 아이가 초상권 침해를 주장할까 봐 눈치가 보였고 그보단 다른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고 김동준, 이민호군 이야기를 책으로 썼는데 그 아이들이 내 큰아이 또래고 유가족인 부모들은 나와 나이대가 비슷하다. 인터뷰 작업을 하면서 같이 눈물 콧물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 자식의 밥을 챙기는 일도 어쩐지 죄스러웠다.

세상이 이렇게나 불의하고 부실하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그런 세상에서 나는 ‘아직’ 안전하고 안온하다. 아이에게 고기반찬을 먹이고 하루에 3명이 일하다가 죽는 ‘헬조선’에서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하길 바라며 학업을 뒷바라지하고 가끔 휴가도 간다. 빤한 일상이지만 그조차 단숨에 빼앗긴 이웃의 생생한 고통을 듣고 나면, 삶의 허리 베고 들어온 죽음의 실체를 목도하고 나면 문득 나 사는 일이 어색해진다.

몇 달 전엔 나의 큰아이가 졸업전시회를 했다. 집안 재정 곡선이 최저점을 치던 시기에 대입을 치른 아이는 내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학업을 마쳤다. 정신없이 슬퍼하고 기뻐하던 날들을 지나 생의 한단락을 매듭짓자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기념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 ‘페친’인 동준이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큰아이를 축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동준이 생각이 났다고. 인터뷰에서 어머님이 들려준 말, “내 앞에서 쉬쉬하며 애들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눈치 보지 말고 말하고 나도 동준이 얘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떠올리며 사진을 올렸다고 했다. 동준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세상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비장한 다짐까지 보탰다. 곧 숫자 1이 사라지고 답이 왔다.

“잘하셨어요. 일상을 나누지 못하면 친구하기 어렵잖아요.”

아! 아무리 구구하게 풀어내도 설명되지 않던 복잡한 마음이 한 줄로 명쾌하게 정리됐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자, 산 자식 얘기하듯 죽은 자식 얘기도 하고 싶다는 것을 난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생활에선 감당하지 못했던 거다. 내 미안함이 미안했다. 어설픈 연민을 경계해도 세심한 배려엔 도달하지 못한 채 헤맨다. 공감과 이해는 매뉴얼이 없다. 매 순간 묵묵하고도 아슬아슬한 실천만 있을 뿐.

지난 연말엔 동준이 얘기를 담은 책이 네 군데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희소식이 나온 날이 마침 동준이 엄마 생일이었다. 그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기사를 검색하는데 기사를 하도 봐서 사건 당시 인턴기자 이름을 외우고 있을 정도다. 따끈한 소식이 좋은 선물이 되겠다 싶어 축하 인사에 곁들여 ‘올해의 책’ 관련 기사 링크를 보냈다. 다음날 응답이 왔다.

“생일 그게 뭐라고 우리 부부는 생일이 동준이 기일만큼 힘드네요.” 그는 동생들 축하에 웃으면서도 가슴이 저몄고 즐거운 시간 보냈지만 돌아간 후 터져버린 둑이 되어 한참을 우느라 답이 늦었다고 했다. 현자같이 의연하던 사람이 다친 새처럼 작아져 있었다. 그 며칠 후 세월호 유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들렸다. 고인은 아들을 떠나보낸 뒤 남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으나 갑작스러운 선택을 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괜찮아 보이는 것과 괜찮은 것의 간극은 삶과 죽음의 경계만큼 멀고도 가까운 것이다.

올해는 세월호 6주기고, 1월20일은 동준이 6주기다. 생일이 지나면 생일만큼 힘든 기일이 오고 기일이 지나면 기일만큼 괴로운 명절이다. 내 이웃이 슬픔의 둑이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져내리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상을 나누는 일상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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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말해도 될까요?

[은유칼럼]

“밥 먹으러 올래?” 텃밭에서 딴 호박이랑 가지로 무친 나물, 열무김치, 시레기국까지 너무 끝내주는 반찬이 생겼는데 혼자 먹기엔 양이 많으니 오라고 선배가 호출했다. 말만 들어도 침이 고였으나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갔다. 다음날 지역 강연을 마치고 상경하는데 해가 떨어지자 제대로 된 밥 생각이 간절했다. 나한테 ‘만족스러운’ 집밥을 차려줄 집-사람은 나뿐이다. 역 근처 식당을 검색했다.

내겐 배고픈 채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삶의 대원칙’이 있다. 배고프면 남을 미워하고 생을 비관하게 된다. 평상심 회복에 밥만한 게 없다. 메뉴를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검색창을 닫고 선배한테 문자를 넣었다. “반찬 아직 있어?” 택시로 30분. 집밥이 있는 밥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여니 갈색 도기의 정갈한 7첩 반상이 눈에 든다.

선배는 세끼 연속 같은 반찬이라고 했다. 물리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젓는다. “누구랑 같이 먹으면 또 맛이 달라.” 선배는 주말부부인데 이번주엔 배우자가 오지 못했다. 일요일 밤의 스산함과 혼자라는 느낌은 마음을 처지게 하므로 이렇게 얼굴 보고 먹길 잘했다 싶었다. 사람을 외롭게 하는 건 배고프게 하는 것만큼 죄니까.

밥 한끼로 우주적 평온을 경험한 순간, 화두처럼 물음 하나 떠올랐다. ‘나의 불행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까.’ 지난여름 청소년 비경쟁 토론대회에서 학생들이 만든 질문거리였다. 나는 좀 떨어져 아이들을 지켜봤다. 토론을 위해선 자기 불행을 드러내어 예증해야 하는데 그게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리란 확신이 없으니까 주저하는 것 같았다. 논제의 역설로 인해 두루뭉수리하게 이어지던 토론은 다른 질문을 낳았다. ‘관계 개선에 실패했다면 해결 방안은?’

그날 이후 난 ‘불행과 관계를 일상에서 논증하기’를 소일거리 삼았다. 내가 토론대회에 초대받은 것도 불행의 드러냄 덕분이다. 삭여지지 않는 불행의 기록이 책이 됐고,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만났다. 저자와 독자라는 관계가 발생했다. 일요일 밥 회동은 어땠나. 선배는 적적함을, 나는 허기짐을 드러냈다. 불행보단 불만족에 가까운 상태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불만족이 쌓여 우울감으로 번진다고 생각하면 사소하지 않다. 어쨌든 각자의 결핍으로 서로를 위무했다. 관계가 개선됐다. 며칠 전 모처럼 통화한 친구는 암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생선 굽고 나물 데쳐 저녁밥을 짓고 있었는데, 친구를 집으로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선배가 차려준 밥심의 기억으로 친구에게 밥상을 내주었다. 개선된 관계를 모방했다.

불행의 스펙트럼은 넓다. 허기, 권태, 불안 같은 일시적 감정부터 가난, 불화, 폭력, 질병, 낙인 같은 구조적 고통까지. 드러냈을 때 사람이 다가오기도 달아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불행은 말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내 불행을 나부터 숨기고 부정하면서는 남에게 이해받기도, 상황을 바꾸어내기도 어렵다. 또 터놓아 보아야 불행을 말해도 되는 안전한 관계로 내 주변을 구축할 수 있다.

약한 존재들이 기대어 사는 영화를 만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렇게 말했다.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하다”고. 찾아나서는 행위 자체가 나약함이 아니라 강인함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픔부터 투병생활까지 해결 의지가 있을 때 말도 한다. 살면서 불행 상태가 해소되는 순간은 짧고, 지치고 불행한 채로 사는 시기는 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행의 해결사가 아니라 불행을 말해도 좋을 관계, 일단 밥이나 먹자고 할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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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0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해요."

[은유칼럼]

내가 떠올리는 낭만은 두 사람이 버스에 나란히 앉아 줄 달린 이어폰을 한쪽씩 끼고 음악을 듣는 장면이다. 혼자지만 연결된 느낌, 좋음의 나눔, 적절한 소란과 고요의 공존, 정처 없는 떠남을 동경했다. 늘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싶었는데 그것이 혼자는 아니었다. 같이 있을 때 내 존재는 더 활성화됐다. 운 좋게도 직업으로 바람을 이뤘다. 인터뷰하느라 사람을 만났고 그들과 나눈 깊고 오롯한 대화는 매번 나를 예기치 못한 세계로 데려갔고 그 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서 나는 몸이 닳곤 했다.  

2005년도에 자유기고가로 명함을 팠다. 첫 취재가 봉사 경력 30년 된 중년여성의 인터뷰였다. 그 뒤로 블로그에 모아놓은 글의 카테고리 이름이 ‘행복한 인터뷰’다. 누적 147명. 만난 사람은 더 많지만 정말 행복했던 것만 등재했다. 인터뷰집 단행본도 냈다. 마을, 숲, 축제 만들기로 더 나은 공동체를 도모한 이들을 취재한 <도시기획자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서사를 기록한 <폭력과 존엄 사이>, 책 만드는 젊은 노동자들을 만난 <출판하는 마음>, 현장실습생 르포르타주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까지. 대개는 밥을 위해, 가급적 신념을 좇아 해온 작업이다. 

일간지 인터뷰 연재는 처음이라 두렵지만 설레었다. 첫회는 셀프 인터뷰로 시작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 무안한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을 때 담당 에디터가 그랬다. 자기는 월급에 ‘수모 수당’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나의 고료에도 ‘무안 수당’이 포함돼 있다고 여기니까 바로 수긍이 됐다. 무엇보다 인터뷰어는 익숙해져야 한다. 인터뷰 제안을 거절당하는 것도, 상대의 이야기에서 나의 무지를 알아채는 것도 무안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다. 새로운 인터뷰 여정을 떠나며 먼저 인터뷰이의 자리에 앉았다. <한겨레> 토요판을 만드는 신윤동욱 에디터가 질문을 건넸다. 그는 내가 <한겨레>에 4주마다 연재하는 칼럼 ‘삶의 창’ 편집 담당자이기도 했다. 

__________내가 본 것들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제가 (2018년 ‘삶의 창’을 담당하는) 여론팀에 있을 때 작가님의 글이 있는 금요일과 없는 금요일을 구분했어요. 항상 좋은 글을 빨리 보내줘 금요일 마감을 참 편하게, 편하게 했어요. 

“아 정말요? 고맙습니다.”(웃음)

―<한겨레>에 칼럼 쓴 지는 한 3년 반 되었죠. 쓰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하는 게 있나요?

“생각한 거 있죠…. 왜 갑자기 슬프죠? (한참 말이 없다) 신문이 파급력이 있으니까 지면에 실리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다 날라야겠다, 나름 각오를 했어요. ‘나는 전달자다.’ 제가 직업상 인터뷰나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듣는 이야기가 많거든요. 한 개인의 서사에 우리 사회의 모순이 집약돼 있더라고요. 깊게 들여다보면 보이는 사연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좀 다 슬펐던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좀 민망한 말이지만, 기자로서 제 역할이 한국 사회 운동과 주류 언론사 사이의 컨베이어 벨트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사회 운동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 통로가 되는 사람이다, 라고. 

“네. 나는 통로다. 예를 들면 학창 시절 왕따 생존자가 성인이 되어 어떻게 사는지 그런 건 뉴스 가치가 크게 없었잖아요. 어떤 사람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사회의 편견이나 차별 때문에 고통받는 게 지금은 조금씩 이슈가 되지만 예전엔 아니었거든요. 어떻게든 그런 이야기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삶의 창’ 칼럼이 짧은 글인데도 그런 분위기가 잘 전달됐어요. 집필을 언제 시작하나요?

“마감 일주일 전쯤 시작해요. 많이 고쳐요. 초고를 써놓고 (출판사) 편집자 친구들한테 보내서 컨펌을 받는데 글의 문제점을 지적받으면 다시 써야 하니까 서둘러 써요.” 

―왜 그런 습관이 생겼을까요? 어떤 사람은 되게 마감에 임박해서 쓰잖아요.

“전 쫓기면 불안해요. 그리고 조심스럽죠. 일간지에 글을 쓰는 것도 어떤 면에서 권력이잖아요.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할 길이 없어서 고공농성도 하고 1인시위도 하는 건데요. 제게 주어진 ‘지면 권력’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약간의 강박도 있고요. 저 스스로 글 쓰는 활동가 정체성도 있으니까 공을 들이고 싶었어요.”

―그런 신성함이 있군요.(웃음)

“네. 못 쓰는 것보단 잘 쓰는 게 좋잖아요.”(웃음)

_________글에서 밥이 나오는 기적

북콘서트에 가면 질문을 받곤 한다. 작가님은 어떻게 작가님이 되셨나요? 그러면 나도 천진하게 답한다. 제가 쓴 산문집에 소상히 나옵니다만. 말로 할 수 없어서 글로 썼는데 그걸 다시 말로 푸는 건 곤혹스럽다. 그래도 향후 인터뷰 독자를 위해 추려본다. 이건 무안함을 단련하는 셀프 인터뷰니까. 

은유는 필명이다. 은유 이전에는 한국 여성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된 김지영의 삶을 살았다. 소녀 지영은 여상을 다녔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취업이 결정되고 남은 학창 시절은 독서로 소일했다. 책벌레라기보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흠모하던 국어 선생님이 추천해주는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봤다. 1989년 졸업하고 증권회사 지점에서 일하다가 노조 집행부에 들어갔다. 홍보를 담당하며 노조 소식지와 신문을 펴냈다. 글 쓰는 밑천은 그동안의 독서, 그리고 대학 운동권 출신 동료들의 ‘첨삭 지도’였다. 꾸준히 배우고 쓰면서 글쓰기의 쾌락과 효용을 절감했다. 그때 만난 동지와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전업주부로 살다가 집안의 경제 위기를 맞아 재취업을 시도했다. 고졸에 서른다섯 경력단절 여성이 글 쓰는 직업을 얻을 확률은 예나 지금이나 제로에 수렴된다. 자포자기 단계에서 노조 시절 글쓰기 사수였던 선배의 도움으로 사보에 글 쓰는 일을 구했다. 한해 두해 지나면서 국내의 웬만한 대기업 사보 다수에 필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일의 재미와 또 삶의 실의에 빠졌던 즈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김선주 전 <한겨레> 기자가 여는 강좌에 참여한 적이 있다. 거기서 그와 인터뷰 짝이 되는 ‘행운 티켓’을 얻었다. (대박!) 당대 최고의 기자이자 닮고 싶은 선배가 나를 인터뷰하고 글로 써준 것이다. 오랜만에 추억의 서랍을 열어보았다. 첫 문장은 이랬다. “마흔살의 김지영은 글 쓰는 여자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끝난다. “한곳에 머물지 않는 김지영, 그의 몸은 비록 가정이라는 땅을 디디고 있지만 그의 정신은 계속 세상을 떠돌고 있는, 아마도 그는 진정한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10년쯤 뒤 그는 또 어느 곳에 서 있을지.”

―작가님 경력이나 글쓰기 세계를 구축해온 과정이 상당히 독특하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죠. 예상하지 못했던 삶으로 흘러온 거 같아요. 글 써서 돈을 벌리라는 것, 글쓰기 수업을 하리라는 것, 책 내는 것도요.” 

―근데 그걸 지난 15년에 걸쳐서 차근차근 이뤄온 거잖아요. 저는 작가님 같은 분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이거보다 어떻게 더 성공해요? <한겨레> 신문에 글 쓰면 출세한 거 아닌가요.”(웃음)

―글쓰기 작업을 하면서 생각한 ‘인터뷰는 뭐구나’ 같은 나름의 정의가 있을 듯해요. 

“인생 수업이요. 식상한 표현인데 정말 그랬어요. 글 쓰는 일을 시작할 무렵이 엄마도 돌아가시고 오빠도 병을 얻고 가세도 기울고 애들 둘이 손이 많이 가고 남편과 갈등도 크고 총체적 난국이었는데 인터뷰 다니면서 많이 치유받았어요. 대기업 대표이사부터 촉망받는 신입사원들, 기초생활수급자들, 유명한 예술가들, 온갖 결의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 듣고 글로 쓰다 보니까 정리가 되더라고요.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들은 고통과 불행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살아가는구나, 보는 세상이 넓어지니까 내가 가진 고통이 작아졌어요.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건너왔죠. 또 인터뷰를 하려면 준비가 필요하고. 자료를 찾고 관련 책도 웬만하면 다 읽었어요.” 

―아이고, 성실하기도 했네요. 

“그런가요? 원래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그게 대학에서 관련 학문을 배운 게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초기 세팅 없이 시작하다 보니까, 되게 원칙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어디다가 물어볼 수도 없으니까 서점에 가서 글쓰기 책을 찾아보고 내가 맞게 쓰고 있나 확인하고. 자신감이 바닥나면 훌륭한 작가들이 남긴 말 읽고 심기일전해서 또 쓰고요. 그때 모아놓은 글쓰기 명언들로 <쓰기의 말들>도 펴낸 거예요.” 

___________인생수업 심화반, 글쓰기 강좌

아, 자유기고가! 취재를 가서 명함을 주면 직장인들이 부러워했다. 얽매이지 않는 삶이라나 뭐라나. 그런데 이 자유는 마르크스가 얘기한 ‘굶어 죽을 자유’이고 고용 형태로는 ‘호출형 근로자’다. 한건씩 취재를 의뢰받고 원고를 납품했다. 내 글은 매번 자본의 시험대에 올랐다. 나를 증명할 학벌 자본, 경력, 직함이 없으니 내가 쓴 글들이 곧 명함이고 이력서였다. 원고료는 건당 15만원, 20만원, 가끔씩 30만원. 원고를 보내면 두세달 뒤 통장에 찍혔다. 먹고살려면 꾀를 부릴 수가 없었다. 언어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이 책 저 책 파헤치다가 니체를 만났고, 니체를 제대로 읽으려고 남산에 있는 수유너머에 강좌를 등록했다. 수유너머는 인문학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대학 바깥 공동체로 철학, 고전, 문학 등 대중강좌가 상시 열렸다. 

―인문학에 관심을 본격적으로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내 고통을 이해하고 싶었던 게 가장 컸던 거 같아요. 왜 나한테 힘든 일이 일어나고 심지어 안 끝나는지 알고 싶었어요. 내 일에 몰두할수록 애들은 방치되는 것 같고, 몸이 힘들고 생활이 빠듯하니까 한숨만 늘고 예민해지고. 이 내면의 괴물을 어떻게 다스리지. 사람이 미운데 어떻게 사랑하고 같이 살지? 그런 문제를 풀고 싶었어요.”

인문학은 위험했다. 철학을 공부할수록 기업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글이 쓰기 싫어졌다. 데이트처럼 두근거리던 인터뷰도 더는 짜릿하지 않았다. 누굴 만나도 비슷한 얘기를 쓰는 느낌. 나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다. 인터뷰의 참된 의미를 훼손하는 것 같아서 인터뷰를 ‘끊었다’. 

1년 정도 휴지기를 갖고 2010년 용산참사 1주기에 맞춰 연구실 동료들이랑 <위클리 수유너머>라는 웹진을 만들었다. ‘전선 인터뷰’라고, 지금 생각하면 참 비장한 제목을 짓고 나는 다시 인터뷰에 나섰다. 지면과 대상의 제약 없이, 원고료도 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서 쓰고 싶은 만큼 썼다. 

주류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방침으로 대상을 섭외했다. 잡년행진 참가자,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홈리스행동 대표, 한국군 ‘위안부’ 연구자…. 격주로 한명씩 100호 넘게 진행했다. 본 적 없는 불온한 삶은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자유기고가 일을 완전히 접고 글밥 먹던 노하우를 정리해 글쓰기 강좌를 열었다. 2011년 3월, 첫 수업에 입었던 재킷과 운동화, 뺨에 닿던 서늘한 공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은유 작가 글을 보면서 글쓰기 강연을 하면서 참 많은 걸 얻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맞아요. 내가 가진 정보나 지식을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보니까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배움은 주입할 수가 없잖아요. 글쓰기 팁을 몇개 안다고 글이 써지지도 않고요. 서로 자기 이야기를 내놓고 같이 모여 있음 자체로 서로가 성장하는 걸 경험했죠. 그걸 ‘배움이 일어난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 연결감 때문에 오래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퍼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받기도 해서.” 

나는 학인들을 통해 다른 세계로 접속했다. 성소수자들, 이혼가정 자녀들, 장애를 겪는 이들, 시민단체 활동가들, 착취당하는 딸들과 더 정확히는 그들이 겪는 고통과 연결됐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는 아픔이 참 많다는 것을, 그걸 내가 무척 알고 싶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 수업은 내겐 형식을 달리한 인터뷰, 인생수업 심화반이었다. 

_________연결이 많아질수록 성숙해진다

―‘은유의 연결’은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보다 더 넓은 범위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새로운 인터뷰 그라운드잖아요. 인터뷰를 오래해와서 피로감도 있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지 궁금합니다.

“지나고 보니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일을 하는 게 더 낫더라고요. 열심히 하게 돼요. 잘 모르니까 상대의 얘기를 말 배우는 아이처럼 귀담아 듣게 되고요. 제 식으로 표현하면, ‘내가 0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해요. 안 그러면 진부한 글이 나오고 그건 나도 싫고 내가 싫으면 독자도 싫겠죠.” 

―0이 되는 불안은 없나요?

“불안 크죠. 신문 인터뷰는 대상이 광범위해서 카테고리가 없다는 게 부담이죠.” 

―작가님이 전해온 우리 사회의 전해지지 않는,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몫 있는 자들(웃음)을 만나야 할 수 있잖아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주류 인사, 기득권층의 서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 호기심이 별로 안 생겨요. 그러면서 제 안에 어떤 편견이 쌓인 것도 있겠죠. 그 편견을 넘을 필요도 있겠단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요. 어쩌면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건데 반감을 극복하고 평상심에서 시작하는 인터뷰, 아 정말 어렵겠다.”(웃음) 

―은유의 ‘연결’이라는 말을 선택한 의미가 어떤 건지? 참 좋은 말이지만 좀 오래되고 보편적인 단어일 수 있어서요.

“제가 쓴 책들 리뷰를 검색해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는 독자의 반응이 제일 많아요.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강해지는 건 확신할 수 없어도 사람이 성장하는 건 많이 봤어요. 저도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좀 나은 인간이 된 거 같고요.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근데 우리 일상은 파편화되어 있고 보는 사람만 봐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서 자기 편향대로 정보를 택하고요. 의견 차이는 피곤하니까 가급적 피하고, 상처받은 기억으로 더 멀어지고. 그런데 어떤 계기로 남의 사는 얘기를 듣게 되면 이해가 생기더란 말이에요. 인터뷰가 나랑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물꼬를 터준다면 그 자체로 느슨한 연대의 형식이 될 수 있겠다 싶어요.”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살아보긴 힘들어도 알고는 있다, 이거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다 살아볼 순 없는데, 누군가의 삶을 아는 게 미처 몰랐던 자기를 발견하는 계기도 되거든요. 제가 쓴 <다가오는 말들> 부제를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이라고 했어요. 누군가의 말이 다가왔을 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면 연결되고 연결이 많아지면서 존재가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난봄 유럽 언론들이 1만7천명의 사람들에게 정치성향을 기입하게 한 다음에 대척점에 있는 사람끼리 만나 일대일 대화를 나누게 했더니 오히려 서로 이해가 깊어졌다고 해요. ‘연결’을 통해 하고 싶은 작업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지. 

“와, 그러면 너무 좋겠네요.”

―인터뷰 끝나고 필자와 독자가 어떤 걸 느끼게 되면 좋겠다, 이런 게 있다면요?

“그걸 지금 몰라야 이 연재가 좋은 인터뷰가 될 거 같은데요.”(웃음)

셀프 인터뷰를 마치고 바로 다음 인터뷰를 준비했다. 첫 인터뷰이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담당 기자가 연락했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나는 이메일을 띄웠다. 곡진한 마음으로 쓰다 보니 2825자였다. 결국 인터뷰는 불발됐지만 낙담하지 않는다. 만날 사람은 삶이 만나게 한다. 그 신비로운 믿음으로 은유의 연결을 시도한다. 녹취 이유진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9943.html?_fr=mt2#csidxccfa4ea97301f42bb7be5930d028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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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정아 [2019.12.20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년대가 끝나고 2020대를 멋지게 시작하는군요.
    간간히 들어와 지영씨의 나날이 새로와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 반갑고 흐믓해요.
    얼마남지 않은 2019년 마무리 잘하시고 건강하고 평화로운 새해맞이하길 바라요. ^**^

    어떤 인터뷰이를 만나 어떤 인터뷰기사가 탄생할지 궁금하고 기대가 많이됩니다

  2. 막사발 [2019.12.26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 작가님의 저서 "쓰기의 말들"을 경향신문 손수현의 내 인생의 책 칼럼에서 보고나서, 다음 날 알라딘에서 구입했습니다. 첫 장을 펼치니 지릿하며 감전이 되더군요...ㅎㅎ
    프롤로그에 내세운 에리히 케스트너의 말을 읽으며, 제게 소중한 사람(30대 며느리)에게 즉시 추천했습니다!
    책 표지 안쪽 갈피에 있는 블로그 주소를 찾아 들어왔습니다.
    블로그에 실은 글을 읽으며 작가님을 알아 갈수록 기쁨이 제 마음에 젖어들어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참고로 저는 60대 중반의 팬 "오케이, 붐"세대 남자입니다.^^

    "삶의 구체성을 벗어난 무책임한 비유가 아닌 일상의 구석까지 훑어 내는, 삶의 무자비와 세계의 인식 불가능성을 순순히 인정하는 진짜배기 글을 쓰고 싶었다." - 은유


  3. 포옹 [2020.01.15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지금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있어요.
    저또한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에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했거든요. 월급이 20만원이었던가...2000년대였는데...ㅋㅎ

    이후로 제대로된 스펙도 없이 전형적인 김지영의 삶을 살아서 그런지 재취업의 길이 험난하네요. 나이도 걸리고, 이력서를 쓸때마다 자기소개서에서 자꾸 막혀요. ㅎㅎ

    그럴때마다 작가님 글 찾아서 읽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나면 위로가 많이 돼요. 남들의 불행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용기를 얻는다고 해야할까요. 솔직하게 쓰자, 나 자신을 평가절하 하지말자, 모자라면 더 공부하자 다짐도 하고요. 언젠가 제 가치를 알아주는 일터를 찾을 수 있겠지요?

    작년에 시흥시도서관에 오셨을때 뵙고싶어서 책까지 챙겨 대기하다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갔어요. 아쉬워서 눈물이......ㅠㅠ... 담에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제 안도 들여다보고, 주위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제 길을 찾아 볼게요.

    늦었지만 따뜻한 2020년 보내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작가님의 다음 글도 기다릴게요. ㅎㅎㅎ

섞여 살아야 배운다

[은유칼럼]

필라테스 강습 시간에 선생님이 나에게 지구만한 고무공을 건네주며 말했다. “팔을 쫙 펴서 남편분 안듯이 꽈악 끌어안으세요.” ‘네? 아니, 왜요, 그다지 그러고 싶지 않….’ 운동기구에 누워 복부 근육에 힘을 주느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순간 공을 놓칠 뻔했다. 나이 든 여성이라도 남편과 자식이 없기도 하다. 저 사랑 넘치는 이성애 가족 판타지를 대체할 표현이 없을까. 고양이? 나무? 베개 안듯이? 그냥 두 팔을 최대치로 늘이라고만 해도 충분했을 것 같다.무심코 쓰는 일상어에 차별과 배제가 배어 있다. 청소년은 무조건 학생이고 고3이면 묻지도 않고 ‘수험생’이다. “공부하느라 힘들겠다”는 말을 위로로 건넨다. 탈학교 청소년, 비진학 학생, 특성화고생은 안중에 없는 존재다. 성인은 결혼-출산이란

이성애 생애주기로 초기값이 설정돼 있다. 나부터도 그랬다. 여성에겐 남친 있냐, 남성에겐 여친 있냐 무람없이 묻곤 했다. 이젠 상대의 성정체성을 고려해 ‘애인’ 있는지 묻거나 호구조사를 삼간다.


글쓰기 수업에서 성소수자 학인들과 깊게 만나면서 생긴 변화다. “나는 서른살 레즈비언입니다. 이 말을 하는 데 30년이 걸렸다”는 첫 문장의 좋은 사례로 기억한다. 연인이 동성이면 바깥에서 손을 잡거나 “자기야” 같은 친밀한 호칭으로 부를 때 눈치를 봐야 했다. 배우자가 아플 때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 없고 법적 가족이 아니라서 주택자금 대출을 이용하지 못했다. 내가 이성애자로 살면서 고민한 적 없는 성정체성 서사는 놀랍게도 나의 좁은 세계관과 한국의 낙후된 인권과 제도, 섬세하지 못한 언어와 표현의 문제를 드러냈다.


자신을 양성애자로 정체화한 한 친구는 부모의 몰이해와 탄압을 글로 썼다. 네가 전에는 남자를 사귀었으니 여자를 만나더라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관계 맺는 성소수자가 딸이라면 부모의 충격도 이해가 간다. 성소수자가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으니까 두렵고, 두려움은 판단을 흐린다. 잘 모르면 얘기를 듣고 공부하며 알아가는 게 순리지만 이해는 멀고 분노는 가까워 대개는 자기 불안을 혐오로 방어한다.


글쓰기의 관점에서 나는 부모가 걱정하는 불행한 미래가 아니라 치열한 과거가 보였다. 글로 써서 남들 앞에서 읽기까지 생각의 뒤척임, 단어 선택의 신중함, 자기부정과 인정의 반복을 견뎠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랑을 하는가. 자기를 알아가는 노력은 답도 없고 돈도 안 되고 힘에 부친다. 그러니까 스님이나 전문가에게 사는 법을 물어본다. ‘양성애자’라는 오염된 표상이 아니라 그 말이 편견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그가 발휘한 힘과 용기, 자기 배려의 의지를 생각하면 자식이 자랑스러울 일이다. 영화 <벌새> 주인공 은희도 양성애자인데 이것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은희에게 매우 자연스럽다고 감독은 말했다.


섞여 살아야 배운다. 사랑도, 용기도, 글쓰기도. 그런데도 일부 국회의원은 평등권 차별의 침해행위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삭제하는 등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악안을 발의했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감감무소식이다. 여기저기 지하철역 앞에는 성소수자 혐오 방송이 요란하다. 참 열심히들 혐오를 조장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꿋꿋하게 사랑을 살아낸다. 그 용기에 감화받고 전염된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글쓰기 수업 10년차에 접어들면서 체감한다. 성정체성을 서슴없이 밝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수업이 끝나면 여자 학인의 ‘남친’이 밖에서 기다리기도 했는데 최근엔 한 청년이 동성 애인을 소개했다. 이런 포부를 전하는 친구도 있다. “쌤, 저는 돈 많이 모을 거예요. 최초로 커밍아웃한 교사가 될 거예요. 잘릴 때를 대비해서 먹고는 살아야죠.(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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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들의 급소

[은유칼럼]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살면서 결심해본 적 있으세요? 연극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양구 연출가가 물었다. “담배 끊을 때요.” “회사를 자주 옮겼는데요, 입사할 때마다 이게 마지막이야 결심해요.” 몇명이 답하자 객석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나도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프리랜서 시절 원고료 떼이고 사장님한테 독촉 전화 걸 때마다 제발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했던, 잊고 살던 좀 우울한 일화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무산되는 약속의 연쇄와 그로 인한 일상의 여진을 담았다. 주인공 정화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다. 남편이 고공농성에서 승리해 내려왔지만 방 안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회사가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다. 생활에 쪼들리고 급기야 두 아이의 학습지 대금 지불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 딱한 사정을 아는 학습지 교사 선영은 회비를 대납하는 호의를 베푼다. 그런데 연체가 석달이 되어가자 지국장의 압박이 심해지고, 선영은 정화를 찾아간다.

“정말 14만원도 없어요?” 고개를 숙인 정화에게 선영은 목청을 높인다. 정 그렇다면 매일 1만원씩 받으러 오겠다고, 돈이 없어도 지갑에 만원은 있을 거 아니냐고 다그친다. 거기에다 전 알바생 보람도 임금체불내역서를 편의점주에게 전해주기로 한 약속을 안 지켰다며 정화를 원망한다. 가진 자들이 약속을 어길수록 ‘을들의 다툼’은 처절하다. 처지가 비슷한 나머지 그들은 눈앞에 있는 사람의 ‘급소’를 너무도 잘 아는 것이다.

14만원은 두 아이 학습지 3만5천원짜리 4과목 수업료다. 누군가 뮤지션 공연 티켓으로 결제하는 금액이고, 질 좋은 양모 니트 한장 사는 가격이다. 중산층 사교육비의 십분의 일 정도이고, 집필노동자가 원고지 14장 써야 받는 돈이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기보다 통장에 14만원이 없는 삶, 만원을 받아내려고 웃으며 인사하던 지인을 모욕하는 사람이 될까봐 겁이 나는데 그것이 개인의 의지나 노력의 문제가 아님을 연극이 잘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은 촌각을 다투며 일한다. 난 편의점 점원이 서서 계산만 하는 줄 알았다. 내가 계산만 하고 나오니까. 그런데 물품을 정리하느라 무거운 박스를 들어야 하고 무례한 고객을 응대하고 폐기 도시락까지 챙기는 점주의 눈치도 봐야 한다. 학습지 교사와 배달 노동자는 약속 시간이 지났다는 고객들의 독촉 전화에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어떤 일도 깊게 들여다보면 단순노동이라고 폄하할 수 없다. 식사 시간과 장소도 없는 열악한 일자리가 있을 뿐이고, 그런 자리는 이 사회의 부실한 약속의 안전망으로 인한 피해자들로 채워진다.

이 연극은 ‘파인텍 굴뚝농성’을 모티브로 삼았다. 고공농성이 지상의 일임을 편의점을 무대로 이야기한다. ‘노동존중 사회’라는 촛불 대통령의 약속이 요원한 가운데 고공농성은 진행형이다. 가스안전점검 여성 노동자가 ‘성폭력 없는 안전한 근무를 위해 우리도 형사처럼 2인1조 근무를 보장하라’며 고공에 올랐었다.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도 지붕을 점거했었고, 삼성과 싸우는 김용희도 철탑 위로 오른 지 백일이 넘었다.

왜 하필 그 높은 곳인가, 목숨을 건 위태로운 싸움에 나는 눈감고 싶었다. 연극을 보고 나니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올라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래서 소심한 약속 하나 걸었다. 부쩍 사망 사고도 잦은데 배달음식이 늦더라도 전화하지 말자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같이 큰 약속을 어기는 권력자들,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나라님이나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설렁탕집 주인, 야경꾼에게만 분개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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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임 말고 책모임

[은유칼럼]

추석 무렵 글쓰기 수업에서 한 삼십대 여성은 명절과 제사 때 시가에 가지 않는다고 썼다. 이유는 이랬다. “가족이라고 모인 사람들이 오히려 가족 단위로 다시 뭉쳐 또 다른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다.” 이 이상한 전통이 자기 선에서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며, 편가르기와 뒷담화의 자리를 대신해 부모님을 따로 찾아뵙거나 같이 여행을 가는 식으로 효행을 실천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나쁜 며느리’라는 친척들의 냉담한 시선을 감수하는 이행기를 거쳤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가 질긴 관습을 끊어낼 수 있었던 용기와 언어의 원천이 궁금했는데 글에는 나오지 않아서 물었다. 엄마의 당부란다. 대가족 집안의 배우자와 결혼하는 딸에게 완벽하려 애쓰지 말라고, 길게 볼 사람들이니까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조율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집단이 우선인 가족주의 체제에서 가장 약자인 며느리가 될 딸에게 ‘나를 지키는 법’, 즉 ‘다르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엄마는 참 멋지구나. 우리가 듣고 쓰는 말은 참 정치적이구나! 한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는 건 결국 자기가 접하는 말과 행위다.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몸에 흘러든 말들이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것을 준거 삼아 진로를 선택하고 경험을 해석한다. 행 혹은 불행을 느낀다.

사실 명절급 뒷담화와 잔소리가 상시 생산되는 장은 따로 있다. 계모임이다. 한 삼십대 비혼여성은 평소 멀쩡한 엄마가 친척이나 친구들 계모임에만 다녀오면 심란한 얼굴이 된다고 했다. 남들의 자식자랑 후손자랑을 듣고는 위축돼 온다는 것이다. 속상한 엄마를 보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나도 속상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 계모임만 안 나가도 신관이 편안하실 텐데.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 엄마들 모임에 합류했다. 초보들끼리 육아 정보와 양육의 고달픔을 나누니 좋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먹이고 놀리고 재우는 대화 내용이 사교육과 입시로 변해갔다. 그 욕망의 진도가 버거워졌다. 거기만 갔다 오면 나만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전신을 강타했다. 부모로서 직무유기를 하나 싶어 속이 시끄러웠다.약도 없는 원인 모를 두통 같은 불안은 책읽기나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며 사라졌다.

내 주변은 대학 진학,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같은 생애 기획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자기 좋음에 맞게 선별하는 사람들 비율이 높아졌다. 그들과 섞여 읽고 쓰며 사는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양육자로서의 혼란이 잦아들었다. 자기 속도와 방식대로 자라는 아이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그래서 저 비혼여성의 어머니께도 계모임 말고 책모임을 권하고 싶었던 거다.

요즘은 도서관이나 동네서점을 거점으로 읽고 쓰는 모임이 제법 많다. 그런 곳에선 비혼 상태를 동정하는 게 아니라 왜 결혼하는지 질문하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비혼만이 옳다는 게 아니다. 삶에 정답이 없음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경험을 다른 맥락 속에 넣어보게 하는 공적 관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는 방식은 많다는 걸 아는 게 해방이다.

나도 기성세대라서 젊은 기혼자들이 명절에 시가에 안 간다고 하면 일단 흠칫한다. 이론은 알아도 감각이 낡아서 그렇다. 가끔 할머니들이 결혼하고 이십년 동안 명절에 한번도 친정에 못 갔다는 얘길 들어도 입이 벌어지긴 마찬가지다. 어떻게 사셨냐고 여쭤보면 “그땐 다 그랬다” 하신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로 세상은 달라지는데, 그 변화는 어슷비슷한 욕망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집단이 아니라 상식과 규범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장에서 싹을 틔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1222.html?_fr=mt5&fbclid=IwAR37QvvHFvVOYCWr_Nsv4w8ar3x9luDEfVQZIX8LUg_QNTIxUUIT1tOCSeY#csidx7223b0a1fbd10d4ad76f8bb8b057f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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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에 대해 말하지 못할 때

[은유칼럼]

김순자는 1979년에 삼척고정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원가족 12명과 함께 잡혀갔다. 남편은 딴살림을 차렸고 열 살, 일곱 살, 네 살 삼남매만 남겨졌다. 외가 쪽 친척은 다 구속됐고 친가에선 외면했다. 엄마의 복역기간 5년간 아이들은 이집 저집 떠돌며 컸다. 학교에선 ‘여간첩의 아이들’로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다. 큰딸은 학교 갈 차비도 없는데 설상가상 생리를 시작했다. 한번은 하굣길에 생리가 터져서 아무 부잣집에 들어가 청소해드릴 테니 돈 좀 달라고 해 생리대를 샀다고 한다.

3년 전 국가폭력 피해자 인터뷰에서 들은 얘기다. 고문보다 오래가는 상처로 김순자는 큰딸의 생리대 일화를 언급했다. 나 역시 인상깊었다. 큰딸이 나랑 동갑이었다. 간첩사건은 <수사반장> 같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딴 세상 일로 알았는데 내 또래가 이토록 구체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다니…. ‘분단국가의 상처’가 일상의 맥락에선 생계부양자의 급작스러운 부재이고 그 자식이 생리대를 구걸하는 상태로의 몰락인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더니 가난도 디테일에 있었다. 그즈음 신발 깔창 생리대 사건이 보도됐다. 사연도 놀라웠지만 40년 시차가 무색하게 빈곤 여성청소년의 처지가 그대로라는 게 나로선 더 충격이었다.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밥 굶고 추위에 떠는 가난은 공론화되는데 생리대 못 사는 사안은 왜 이제껏 잠잠했을까.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에이드리엔 리치)고 했나. 그럴 만도 했다. 생리하는 날은 ‘그날’이고, 생리대는 ‘그거’고,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이고, 생리대는 까만 비닐봉지에 칭칭 묶어 운반하는 현실. 인구의 절반이 경험하는 월경은 강력한 금기어였고 철저히 비가시화됐으므로 문제점도 은폐된 거다. 그나마 신발 깔창에 덧대어 ‘생리대’란 단어가 공공연히 거론되면서 해결책도 모색하기 시작했다.

빈곤 청소년 생리대 무상지급과 관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설전이 오갔을 때, 그럼 남자도 수염이 나니까 면도기를 공짜로 달라는 의견이 ‘예상대로’ 나왔다. 누군가 응수했다. 남자도 길 가다가 수염이 갑자기 막 솟아나고 바지를 뚫고 나와 생활에 지장이 생기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그렇다. 월경은 제 몸에서 다달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고통이다. 생리대가 없으면 앉지도 서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기에 기본권이고 생존권이다.

동료 시민의 처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우린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생리대 무상지원에 관한 국민여론 설문조사가 이뤄졌다. 빈곤 여성청소년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청소년으로 대상을 확장하는 사안이었는데, 예산을 이유로 반대한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정작 여성청소년은 설문 대상에 없었다. 그건 마치 이성애자끼리 ‘동성애에 찬성합니까?’ 묻는 것처럼 질문 자체가 인권을 거스른다. 사람의 사랑이 그러하듯 사람의 안위도 찬반을 묻는 게 아니라 존중을 구할 사안이다.

세상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지만 나는 여성아이돌을 걱정한다. 저 딱 붙는 짧은 옷을 입고 생리 양이 많은 둘째 날엔 어찌 춤을 출까. 얼마 전 여성아이돌의 한 멤버가 공황장애를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다. 다른 질병처럼 ‘생리통이 심해서’ 같은 사정도 거리낌 없이 얘기되면 좋겠다. 그럴 때 “1970년대엔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남의 집에 가서 일했대” “2010년대엔 신발 깔창을 썼대” 하는 말들이 흑역사로 남고 자판기에서 무상으로 생리대를 뽑아 쓰는 날이 올 거다.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에 상관없이, 즉 가난을 증명하는 절차 없이 급식도 생리대도 지급되어야 아이들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성장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6919.html?_fr=mt5&fbclid=IwAR2H-_ZoAkbkRydmZvZppYbGXuw8d4yXkC7PiecP9nbjQI-I1RKfcfY5dHU#csidx54a7452589d4e409c4f90daa5109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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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이라고 말하고 싶어

[은유칼럼]

“무지에게 ‘응’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무지는 다 옳으니까.” 
교복을 입은 수레가 식탁에 앉아 계란후라이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는 보리차를 따르다 말고 멈칫했다. 시인이 앉아있나? 고개를 돌려보니 딸아이가 맞고, 시계를 보니 오전 7시다. 이불에서 십분 전에 빠져나온 아이의 말이 시적이다. 무조건 무지가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응’이라는 방석을 먼저 내어 주는 말. 지극한 존중이 묻어난다. ‘응’이라는 말이 이렇게 순정하고 온전했던가 싶다. 내가 고백을 들은 양 울컥한다.
 
며칠 후 나는 아껴둔 질문을 아이에게 꺼내 놓았다. 
“수레야, 왜 무지에게 응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어?” 
“무지가 좋으니까.” 
“근데 무지는 왜 다 옳아?” 
“무지는 거짓말을 못 하잖아.” 

수레의 무지에 대한 애정 세례는 새삼스럽지 않다. 아는 핸드폰 대리점에서 돌보던 길냥이가 낳은 새끼들 4남매 중 혼자만 입양이 되지 않고 남아있던 아기고양이를 손수 데려온 4년 전부터 시작됐다. 흰색, 갈색, 검은색이 조화롭게 자리잡은 ‘삼색이’ 무지를 보며 연신 감탄한다. “무지는 무늬가 너무 예뻐!” 무지도 수레 곁을 충신처럼 지킨다. 수레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슬며시 아이의 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수레가 공중에서 휘젓는 낚싯대를 따라 신나게 한판 놀다가, 숙제를 하는 수레 옆에서 잠이 들곤 한다. “무지는 나의 베스트프렌드”라고 으쓱하며 말하던 수레는, 열네 살 땐 커서 무지랑 결혼할 거라는 선언으로 날 놀래켰다. 그런 세속적 말들과 달리 이번에는 다른, 보다 너른 차원의 사랑으로 나아갔다. 졸음의 바닥에서 주워 올린 말. 선적이고 시적인 말. 그러고 보니 시도 있다. 문정희 시인의「응」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그때 너 시인 같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도로 삼켰다. 시인 같다는 건 시인이 아니라는 전제를 둔 말이니까. 시인과 시인 같은 사람의 경계를 아이에게 주입하고 싶지 않다. 인간과 고양이의 구분을 두지 않고 ‘결혼’하겠다는 아이니까. 시인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쓴 사람이 시인이다. 살면서 우리는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짓듯 시인지도 모르고 시도 짓는다. 잠결의 아이처럼. 

수레는 고2가 되니까 문학을 배워서 좋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어느 밤엔 내 옆에서 자려고 눕더니 묻는다. 
“엄마,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 알아?”
“응. 알지. 우리 집에 시집도 있을 걸.” 
“근데 왜?” 
“문학시간에 배웠는데 그 시가 좋아…… ‘귤값을 깎으며 기뻐하던 너를 위해/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수레는 제법 결연한 어투로 시구를 두 행 읊더니만 이내 잠이 들었는지 잠잠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그 나이를 두 번 산다. 열일곱 무렵부터 나도 시가 괜히 좋았다. 시집 표지가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노트에 정성스레 베껴 쓰곤 했다. 슬픔, 기쁨, 사랑, 그리움 같은 단어가 만든 감정의 둘레에서, 나는 마치 꽃그늘 아래 앉은 것처럼 더없이 안전하다 느꼈다. 아이는 왜 그 시의 그 부분이 좋았을까. 
수레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집 곳곳에 책이 있지만 나는 굳이 아이에게 권하지 않는다. 나도 한 때는 책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신앙에 얽매이는 엄마였지만, 똑똑한 게 사는 데 좋은지 나쁜지 어느 순간부터 헷갈린다. 그리고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교감하며 느낄 것은 느끼고 배울 것은 배운다는 걸 이젠 안다. 나이가 들고 오가는 타인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터득했다. 수레에겐 고양이 무지가 책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를 대하는 법을 일러주는 지침서이자, 도도한 상대와 관계 맺는 법을 알려주는 탁월한 심리에세이, 한 번도 같은 장면이 나오지 않는 마술 같은 그림책. 매번 설렘으로 첫 장을 여는 책.

 

#무크지'언유주얼' #10매소설 #무지와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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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맘썰렁 [2019.08.19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레 시인의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만드는 그네들의 삶이 마술같은 그림책이 맞네요!

졸음과 눈물

[은유칼럼]

한 중학교에 오전 강연을 갔다가 급식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12시 반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배고플까 싶었다. 돌아서면 허기가 올라와 2, 3교시 마치고 도시락을 까먹고도 점심시간엔 매점을 배회하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배고픔을 참고 강연을 듣느라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정말 잘 듣고 싶었는데 잠깐 졸았다고, 죄송하다며 말을 잇는다.

“근데 원래 1, 2교시엔 아침잠이 덜 깨서 졸려요. 3, 4교시엔 배고파서 힘들고요. 5, 6교시엔 점심 먹고 난 뒤라 비몽사몽이고 7교시엔 좀만 있으면 학교 끝난다는 생각에 들떠서 또 집중이 안 돼요.”

너무도 솔직한 고백에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가 이내 짠해졌다. 약간의 과장이 더해졌겠지만 결국 학교에서 ‘살아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뿐인가! 거기다가 생리까지 하면 배도 아프고 책상에 앉아 있는 게 더 힘들다고 옆 아이가 거들었다. 여학생들은 한달에 일주일은 생리 중이다. 생기 잃은 몸으로 장시간 학습 노동에 속박된 학교생활. 그런데도 아이들은 “해주는 밥 먹고 공부만 하는 그때가 제일 속 편한 때인 줄 알라”는 충고를 듣는다.

내 학창 시절엔 아이들이 이렇게 단체로 맹렬히 졸진 않았다. 사교육이 덜해서일 거다. 요즘처럼 집-학교-학원이 정규 코스가 아니었으니까. 그날 대화를 나눈 아이들도 밤 9시까지 학원에 있는다고 했다. 아직 중학생인데 직장인으로 치면 매일 야근인 셈이다. 실제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러니 책상이 침대로 변할 수밖에. 한창 배움과 활동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반수면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사실은 가까이서 봐도 비극, 멀리서 봐도 비극이다.

교사의 자리에 서 본다. 나는 강연에서 어쩌다가 조는 사람들만 봐도 의기소침해진다. 내 얘기가 재미없나, 지루한가, 잘못됐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그 쓸쓸한 기분이 감당이 안 돼서 비자발적인 청중이 모인 자리는 가급적 피한다. 그렇기에 더 의아하고 염려스러웠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아이들이 벼 이삭처럼 일제히 고개 숙이는 그 처연한 졸음의 풍경을 어떻게 날마다 견디는 걸까.

한 고등학교 교사들 책모임에 초대된 적이 있다. 자퇴하는 아이들이 그런단다. 학교에 와봤자 잠만 자고 하는 일도 없어서 그만둔다고. 그런데 그 하는 일 없는 학교의 복판에 자기가 있다고 한 선생님이 웃음 띤 슬픈 눈으로 말했다. 다른 교사는 글을 써왔다. “떠나가거나 무너져버린 친구들. 그 와중에 나는 직업인으로서 교사가 되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되지 못함을 한탄하는 교사인데, 때로는 온종일 엎드려 있는 학생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하고 싶다며 속으로 울기도 하는 것이다.”

한페이지 분량의 글을 그가 울먹울먹 읽어내려가는 사이 다른 교사들의 눈자위도 붉어졌다. 교실에서 눈물 흘리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의 모습은 낯설었는데 묘하게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알까. 선생님도 이토록 마음이 아프다는 걸, 너희와 잘 해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는 걸, 매 순간 무력감에 주저앉는 자신을 일으켜 교탁에 선다는 걸 말이다. 선생님의 눈물이 아이들의 지친 마음에 가닿는 장면을 상상하자 나는 잠깐 마음이 환해졌다.

서로 밀고 밀치며 욕망의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일부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언론을 장식하고 도드라져 보이는 세상,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졸음을 물리치고 눈물을 훔쳐가며 때로 한권의 책에 의지해 말문을 틔우고 고민을 나누며, 그러니까 제 가진 생명력을 총동원하여 매일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으로, 답 없는 공교육의 뿌리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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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롱이 [2019.08.29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생들과 교사의 마음을 잘 읽어 주셔 감동입니다. 매일 교단에 서는 것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으로 지내다 교실을 뛰쳐나온 1인입니다...또한 한사람의 학부모로 우리아들이 다녀야 할 학교가 어떠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잠재적 가해자라는 억울함에 관한 문의

[은유칼럼]

아들 둘 키우는 엄마는 고민이다. 스무살인 큰아이가 페미니즘 이슈에 부쩍 민감한 모습을 보이더니만 이렇게 투덜거렸다. “내가 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해요? 나는 여자들 괴롭힌 적도 없거든요.” 이럴 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이십대 여성이 말했다. 설령 잠재적 가해자로 몰리더라도 자기가 나쁜 짓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잠재적 피해자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잠재적 가해자의 억울함에 관한 문의’는 여학교 강연에서도 곧잘 나온다. 어떻게 반박해야 하느냐고 걸페미니스트들이 묻는다. 나는 이십대 여성의 언어로 답한다.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라서 억울하지만 여자는 잠재적 피해자이기에 위험하잖아요. 억울하면 바꾸자고 말해봐요.” 다 같이 깔깔깔, 울 일인데 일단 웃는다. 웃음 끝이 쓰다. 아이들에게 한탄 겸 질문을 던졌다. 여성들은 신체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왜 상대의 억울함을 이해시키는 임무까지 맡아야 하는지 우리 생각해보자고.

한 여자 대학생도 고민을 터놓는다. 생애 최초로 커트머리를 했다. 세상 가뿐했다. 샴푸도 절약되고 외출 준비 시간도 단축됐다. 한 남자 선배가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알아보길래, 그냥 호기심에 잘라봤다고 근데 이 편한 걸 그동안 남자들만 했느냐고 심상하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 선배는 누가 언제 머리 못 자르게 했냐고 받아쳤다. 안부에서 출발한 대화가 서먹해졌다. 그 일이 맘에 걸린다며, 여자 대학생은 남자들과 불편하지 않게 대화하는 법을 물었다.

글 잘 쓰는 법처럼 답 없는 질문이다. “머리 길이가 세상을 활보하는 여성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남자에게 10분 안에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인격체 이전에 관상용으로 취급받는 건 여성 공통의 사회적 경험이다. 그리고 대화에 불편함은 기본값이다. 생각의 결을 맞추는 일은 통증을 수반한다. 그보다 나의 궁금증은 이것이다. 남자 선배도 이 일로 뒤척였을까. 주변 사람에게 여자 후배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더니’ 예민해져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 대화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며 조언을 구했을까.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내 주변엔 이런 일상의 말 한마디나 에피소드 하나를 두고 그 상황을 복기하고, 반성하고, 모색하는 남성의 목소리는 드물다.

목마른 자가 샘 파는 이치 같다. 여자로 사는 일은 상대를 이해시키는 일이다. 밤에 다니는 것도,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어떤 직업을 택하는 것도, 결혼부터 화장까지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한글부터 페미니즘까지 공부하는 이유도…. 이 세상 ‘아버지들’에게 설명의 통행료를 지급해야 한다. 그래야 삶의 통로가 겨우 확보됐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공감력이란 게 있다면 이 자기 증명의 훈련 덕분일 것이다.

인류를 둘로 나눠본다. 살면서 사사건건 자기 사정을 남에게 설명해야 했던 사람, 굳이 남에게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사람. 페미니스트에 반감을 가진 아들을 둔 엄마도, 걸페미니스트도, 어긋난 대화로 고민하는 커트머리 학생도 태어나서부터 전자의 삶을 산 경우일 거다. 남(자)의 기분을 헤아려 조심스럽게 말하고 이해시키는 건 여자의 임무라고 배웠으니까.

나도 그랬다. 노동을 소통으로 알고 살았다. 설명되지 않은 것을 설명하는 혹독한 지적 정서적 감정적 노동을 한쪽에서 너무 오래 전담했다. 이 관계의 불균형이 공감 능력의 양극화를 낳고 있다. 사실 잠재적 가해자의 억울함은 잠재적 피해자의 고통을 알면 사라지는 감정이다. 제 몸 돌려 타인의 입장으로 건너가보는 일은 지구를 반대로 돌리는 일처럼 불가능한 게 아니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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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붓과펜 [2019.07.05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려 드는 사고부터 문제의 출발이라고 봅니다.
    머리 잘라서 생긴 일화의 선배 반응을 모든 남자의 반응으로 일반화시키고 계시잖아요.
    사사건건 남성대 여성의 구도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시각부터 고쳐야지 싶습니다.
    저런 상황에서 저는 남자선배 같은 반응은 안 했을 게 분명하니 남자로 묶어버리는 논리에 반감이 들고,
    또, '잠재적'에 방점을 둬야지 '가해자'와 '피해자'에 방점을 두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잠재적'인 건 그야말로 뒤의 명사를 한정시키는 거니까.
    잠재적 친구 vs. 잠재적 원수. 이런 상황에서 친구가 좋아 원수가 좋냐 묻는 건 말이 안 되죠, '잠재적'이니 친구가 될지 원수가 될지 아니면 둘 중 아무것도 안 될지 생각지도 않는 상황에 이미 가치판단을 한 단어로 상대를 옭아매려는 프레임일 뿐.

    • 은-유 [2019.07.08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남자선배의 경우를 모든 남자로 일반화하진 않았습니다. 실제로 드러난 경향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관계의 정서노동을 담당하는 것도 살해당하거나 피해 당하는 경우도 여성이 월등히 많습니다. 그런 경향성 안에서 이야기를 한 것인데, 이분법적이고 단정적으로 느껴졌다면 제 표현이 섬세하지 못했던 것이겠죠. 댓글 참고 삼아서 더 나은 글쓰기를 고민해보겠습니다.

    • 붓과펜 님 보세요 [2019.07.16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다 댓글 남깁니다.
      "잠재적 친구 vs. 잠재적 원수. 이런 상황에서 친구가 좋아 원수가 좋냐 묻는 건 말이 안 되죠, '잠재적'이니 친구가 될지 원수가 될지 아니면 둘 중 아무것도 안 될지 생각지도 않는 상황에 이미 가치판단을 한 단어로 상대를 옭아매려는 프레임일 뿐."
      이 문장들로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누가 보더라도 이 문장들은 요점이 없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2. 잠시들렀다가 [2019.07.17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생각은 현재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은 좀 억울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부모세대에는 누구도 남성을 성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조차 없었지만 잠재적 가해자의 소굴의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성희롱과 추행은 예사고 성폭력 또한 합리화 되는 말도 안되는 시대에 살아온 부모세대의 여성들은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미투 운동으로 여성의 반격의 서막(너무 거창하나? ㅎㅎ)이 열렸습니다. 중년이 된 여성들의 젊은 시절
    말못하는 피해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당시대의 성인지력이 떨어지는 남성들은 늙어 성폭력가해 대상으로 부터 멀어졌고 그 현상의 피해는 남성 자식 세대가 고스란히 떠 안겨졌다고 봅니다. 현재 청년들은 성폭력의 잠재적 가해라하기엔 너무 순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만큼 양성의 경제적 평등, 민주화 교육이 받았기에 성차별 요소가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적 가해자라는 딱지가 붙으니 억울한 면이 있을 겁니다.
    애비 잘못 만난 시대의 남성자식들의 하소연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현정부에서 남성청년들의 지지율이 높지 않는 이유인것 같습니다. 사람들 의식 않고 대로변에서 남녀가 격하게 말싸움을 하고 심지여 치고 밖는 광경까지
    여러차례 목격했습니다. 힘에 우위에 있지만 절재하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을 보며 참 묘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이 또한 과도기적인 상황이라고 생각되며 앞으로 말싸움이 폭력을 변질되지 않는 성숙한 의식이 자리 잡겠죠.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니. 경제발전과 민주정치가 페미니즘 시대의 도래를 앞당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은유작가님 알릴레오에서 첨 뵙고 즐겨웠습니다 ~

  3. 댓글에서까지 [2019.07.28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성분들은 정말 억울하시네요. 늘 억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