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칼럼'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9.06.04] 이거 대화 아닌데요?
  2. [2019.05.06] 페인트 눈물
  3. [2019.04.08] 죽은 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2)
  4. [2019.03.11] 사람을 물리치지 않는 사람들 (2)
  5. [2019.03.04] 다가오는 말들 (6)
  6. [2019.02.11] 로마에서 엄마를 보다
  7. [2019.01.14] 조지오웰의 믿음
  8. [2018.12.14] 그렇게 당사자가 된다 (8)
  9. [2018.11.21] 자식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 (1)
  10. [2018.10.22] 작가의 연봉은 얼마일까

이거 대화 아닌데요?

[은유칼럼]

“엄마 아빠가 대화하자고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편하게 말하라고 하시는데 별로 할 말도 없고 앉아 있는 게 힘들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스무살 학인이 말했다. 대화는 관계의 윤활유라고 아는 난 혼란스러웠다. 알고 보니 부모가 운동권 출신이란다. 어릴 때부터 지속된 소통형 참교육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자식이 보기에 부모는 돈, 힘, 지식을 다 가진 강자다. 자식의 생살여탈권, 적어도 용돈권을 쥐고 있다. 그런 비대칭적 관계에서 약자는 발언의 수위를 검열하거나 잠자코 들어야 하는 정서 노동을 피하기 어렵다. 대화가 배운 부모의 좋은 부모 코스프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실은 나도 ‘이만하면 좋은 부모’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자 서로 바빠서 대화는커녕 대면 기회가 줄었다.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아이와 밀착하지 않으니까 집착도 덜어졌다. 내가 육아서에 나오는 모범 엄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식을 통제하는 극성 엄마도 아니란 은근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한번은 슬쩍 물었다. “엄마 정도면 괜찮지? 잔소리도 잘 안 하고?” 아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엄마도 짬짬이 잔소리 많이 해요.”

역시, 자기 객관화는 실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처럼 나를 가장 가까이 지켜보는 타인, 자식이 참스승이다. 그 후로 아이에게 말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이것은 대화인가 훈계인가, 무관심인가 무리수인가. 경계는 늘 알쏭달쏭했다. 매번 질문하고 검토하는 수밖에. 애써보다가도 내 기분이 엉망인 날은 슬그머니 짜증이 일었다. 내가 자식한테도 눈치 보고 쩔쩔매야 되나, 라며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내적 외침을 삼키곤 했다.

원래 인간관계는 공손이 기본이다. 그런데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한테는 막 해도 된다고 여기는 지극히 폭력적인 양육 관습을 나도 모르게 체화하고 있었다. 인문학으로 본 체벌 이야기를 다룬 책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을 읽고선 난 괜찮은 부모라는 환상을 벗었다. 자식에게 매를 드는 체벌만 폭력이 아니다. 빈정거림이나 비하 발언도 언어폭력, 방문을 쾅 닫거나 설거지를 할 때 탕탕거리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 정서 폭력,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말은 예고 폭력 등등 찔리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얼마 전 정부가 부모(친권자)의 자녀 체벌을 제재하는 방향으로 민법 개정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났다. 댓글 여론은 험했다. 보기에도 아까운 자식이지만 사람 만들려면 체벌은 필요하다거나, 교사의 손발을 묶더니 부모의 손도 묶는다고 개탄하는 의견, 내 아이니까 꿀밤 정도는 된다는 주장도 폈다. 이들은 꿀밤은 애정 표현이고 체벌은 폭력이 아니며 불가피한 부모 노릇이라는 믿음을 가진 듯 보였다.

‘사랑의 매’라는 말은 그 자체가 이중 폭력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고 폭력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대부분 최초의 폭력을 가정에서 경험한다. 그간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수많은 어른들은 집과 학교에서 겪은 폭력의 기억을 수십년이 지났어도 그대로 복기했다. 맞아서 사람 됐다는 증언은 어디에도 없다. ‘사랑의 매’는 때리는 사람의 언어이지 맞는 사람의 언어는 아닌 것이다.

‘미성년’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좋은 어른이, 부모가 되긴 어렵다. 자식에 대한 성실한 이해는 귀찮고, 빠른 복종을 받아내길 원하는 이들이 ‘사랑의 매’라는 죽은 문자를 신봉하는 게 아닐까. 아이들은 대화와 훈계의 차이를 특유의 예민함으로 걸러내고 체벌과 훈육의 노골적인 차이를 간파한다. 가족이든 학교든 회사든, 그 조직의 가장 약자는 많은 진실을 알고 있다. 묻지 않으니 말을 안 할 뿐.

 

*한겨레 삶의창 6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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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눈물

[은유칼럼]

고양이 무지는 아침마다 베란다 창틀로 뛰어오른다. 18층 꼭대기는 세상을 관찰하기 좋은 전망대다. 그런 고양이의 의젓한 뒤통수를 나는 책상에서 감상하곤 한다. 하루는 무지가 생소한 울음소리를 냈다. 옆동 옥상에서 먹잇감인 새를 봤을 때 내는 우렁찬 야생의 소리랑은 달랐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아파트 난간에 사람이 있다. 24년 된 단지의 페인트칠이 시작된 거였다.

작업자는 밧줄에 매달려 페인트 스프레이를 빠른 손놀림으로 뿌려댔다. 방석만한 깔개에 엉덩이를 댄 그는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떠 있었다. 간당간당 흔들리는 사람을 보자 현기증이 났다. 건물 벽에 붙은 사람이 지상에서는 검은 덩어리로 보이는데 같은 층 높이에선 인체 형상이 온전히 드러났다. 나는 커튼을 닫았다. 무지는 꼼짝 않고는 간간히 요상한 소리를 냈다. 내게 묻는 듯했다. “날개도 없는 닝겐(인간)이 왜 저기에 매달려 있는 거야?”

나는 인터넷 창을 켜고 ‘아파트 외벽 작업’을 검색했다. 청주시 J(62)씨, B(35)씨, 의정부시 A(78)씨, 수원시 J(47)씨, 서울시 김모(55)씨, 광주시에 사는 한 50대 남성, 춘천시 인부 B씨, 수원의 러시아인 A(25)씨…. 아파트를 칠하다가 떨어져 사망한 이들이다. 설마 했는데 ‘전신 골절’이란 단어가 들어간 지역신문 단신은 끝도 없이 나왔다.

2년 전 양산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나도 본 기억이 났다. 옥상에 설치해둔 밧줄을 주민이 커터칼로 절단해버려 숨진 인부 이야기. 김모(46)씨는 오전 8시쯤 음악을 틀고 일하던 중 수면에 방해된다며 음악을 끄라고 항의하는 주민에게 변을 당했다. 고인은 칠순 노모, 아내, 그리고 열일곱살부터 세살까지 5남매 등 일곱 식구의 가장이었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에서 작업하는 분들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일까. 고층건물 외벽으로 출근하는 심정과 그런 가장을 바라보는 가족의 질긴 불안을 헤아려본다. 살다 보니 떠밀려간 자리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아파트 난간 같은 ‘벼랑 끝’일 순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생과 사의 완충지대가 10센티미터도 확보되지 않는 일자리는 있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살기 위해 일하지만 일하다가 죽도록 내버려두는 이 부조리한 구조는 너무 노골적이라 가려져 있다.

우리 아파트는 화사한 봄옷을 갈아입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으나 그 며칠간 무지는 매일 외부의 낯선 소리와 냄새와 움직임에 반응하며 ‘저기를 보라’ 명령했다. 나는 고양이를 따라 응시했다. 외벽 작업을 하는 반나절만이라도 땅 위에다 매트리스 같은 안전장치를 깔아놓으면 좋겠다 싶다. 당사자는 덜 불안하고 존중감이 들도록. 주민들은 그를 운 나쁘면 죽기도 하는 도구적 인간이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살아야 하는 존엄한 존재로 보도록. 그러면 적어도 벽에 붙은 벌레 털어내듯 사람을 떨궈내는 일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내 안전 구상을 이웃 아주머니에게 말했더니 실현 가능성 없다며 흘려버린다. 사고가 줄지 않는 걸로 봐서 도장 업체 대표나 노동자의 안전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무신경하다. 아들 용균의 죽음으로 세상 돌아가는 비밀을 알아버린 김미숙씨는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나라는 안전장치를 하는 것보다 목숨값이 쌉니다.”

고양이에게 면목 없는 인간 세상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날개도 없이 허공에 매달려 일할 것이다. 그들은 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들이 흘린 ‘페인트 눈물’로 우린 깨끗한 아파트, 쾌적한 도시에 산다. 인간 불평등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새가 있을 자리에 사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

※ ‘페인트 눈물’은 30년 경력의 도장 노동자가 “작업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눈에서 페인트 눈물이 나온다”고 말한 데서 빌려왔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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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은유칼럼]


“애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 이제 마음에 묻어라.” “교통사고다 생각해라.” “시간도 흘렀는데, 옛날처럼 같이 산에도 다니고 만나서 술 한잔도 하자.” “아이를 잃은 건 슬프지만 너는 그만큼 보상을 받지 않았냐?” 세월호 유가족이 들었던 위로의 말들이다. 상대방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으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유가족을 배려하는 행동도 배려가 되진 않았다. “유가족입니다” 하는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시킨다. 커피 한 잔, 물 한잔 마시려고 해도 “앉아계세요, 제가 타드릴게요.” 하고 어딜가도 유가족 자리는 따로 마련한다. 지나친 배려는 때론 배제가 된다. 유가족이 술을 시켜도 되나, 화장은 해도 되나, 여행 간다고 손가락질 하면 어쩌나 지레 주눅이 든다. 


세월호 5주기에 맞춰 발간된 유가족 육성 기록집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에 나온 몇 가지 에피소드다. 유가족은 자식 잃은 비통함에다가 거친 말들과 시선까지 감내해야 했다. “슬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슬픔의 일부다.(론 마라스코)” 그래서 부모들은 모임을 꺼린다. 광화문 농성장에 모여있어도 말은 돈다. 울기만 한다고 뭐라고 하길래 웃었더니 웃었다고 다시 뭐라고 하니까, 서로 이렇게 충고한다. “간간히 울어.” 


책을 한 장 넘길 때마다 고개가 숙여졌다. 이 나라는 아이들만 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세월호의 슬픔에 빠진 유가족도 손 잡아주지 못했구나 싶었다. 나도 찔리는 구석이 있다. 상처를 건드릴까봐 고인의 이야기는 삼갔다. 예의인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 17년 키운 자식을 한순간 잃었는데, 갑자기 이름도 불리지 않고 존재가 싹 지워진다면 그건 너무 쓸쓸한 일일 것이다. 


우린 슬픔에 무지한 종족이 됐다. 세월호 이전에도 슬픔은 허용되는 삶의 모드가 아니었다. 슬픈 사람은 약자로 분류되고, 약자는 구제의 대상이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 공적 발언의 장이 주어지지 않고, 슬픔은 각자 삭혀야 할 사적 과제로 여긴다. 슬픔을 표현하는 말도, 슬픔에 공감하는 말도 공동체에 흐르지 못하니까 슬픔에 관한 언어가 빈곤하다. 슬픔에 관한 지혜가 모자라다. 


세월호 가족 이야기가 그래서 귀했다. 5년이란 고통의 시간을 견딘 목소리가, 슬픔에 단련된 말들이 쟁쟁하게 빛나는 슬픔의 교과서다. 해야 할 말과 해선 안 될 말이 무엇인지 배운 것만으로도 내겐 공부였다. 그리고 좋은 책이 그렇듯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담겼다. 슬픔을 기르는 법이 정신을 가꾸는 길로 통한다.


“이 시간이 내 정신 세계를, 중요한 게 뭔지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을 좀더 성숙하 게 만들어놨다”고 이지민 엄마는 고백한다. 이영만 엄마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세상에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며 이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오준영 엄마도 깨어났다. “다 연결되어 있다고. 다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말한다.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을 나한테 계속 강요한다”는 이재욱 엄마는 멋지다.


죽은 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아이들은 여전히 곁에 남아 부모의 결정에 개입하고 선한 영향을 미친다. “집에 들어가면 회의 녹음한 걸 세 번, 네 번, 어떤 때는 다섯 번까지 들어요. 이해를 하려고요. 우리 아들이 옆에서 자꾸 공부를 가르치는 것 같아요.” 호성이 엄마의 말이다. 세월호의 시간 5년, 유가족은 주변에서 그토록 권하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나 한 사람의 분별력 있는 시민으로 복귀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삭막한 땅에 슬픔의 눈물을 떨구어 진실의 언어를 심는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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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물리치지 않는 사람들

[은유칼럼]

산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갔더니 연탄난로가 서있다. 학창시절 교실에서 보곤 처음이다. 동창이라도 만난 듯 다가갔다. 불꺼진 난로 옆에 연탄 여덟 개가 대기 중이다. 어릴적 엄마랑 외출했을 때 엄마는 연탄불이 꺼질까봐 늘 발을 동동거렸다. 연탄 구멍 사이로 엄마의 초조한 눈빛이 보인다. 너는 누구를 위해 한번이라도 연탄을 갈아봤느냐, 유명한 시구를 내맘대로 고쳐 써본다. 대합실 벽면엔 ‘축 발전’이 새겨진 거울이 걸려 있다. 서울에서 고작 두 시간 이동했는데 다른 시간대에 떨어진 영화 주인공처럼 나는 두리번거린다. 


괴산 솔멩이마을에 글쓰기 강연을 왔다. 섭외 제안이 연애편지 같았다. 진즉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못하다가 사업비가 생겨서 부른다는 사연. 가난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괴산이라서 더 그랬을까. 괴산은 빈민운동가 정일우 신부가 88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이 철거되자 터를 잡은 곳이다. 이곳에서 땅을 살리는 유기농법 전파에 힘을 쏟았다. 그의 다큐멘터리 <내 친구 정일우>에서 그는 말한다. “더 가난해졌으니까 잘 된 것이다. 가난해야 천국에 가깝다.” 이 말 뜻을 이해하고 싶어서 괴산에 가보고 싶었다. 


강연을 주선한 엄선생님이 터미널에 마중을 나왔다. 차를 얻어타고 가는데 점심을 먹자고 한다. 식사 초대는 매번 딜레마다. 강연 전에 낯선 사람과 식사를 하면 기운을 뺏기고, 강연 후엔 기운이 소진돼 밥이 안 넘어 간다. 정중히 사정을 말하고 사양하곤 한다. 때마침 남은 시간도 빠듯해 핑계도 적당했다. 그런데 웬 걸. “강연에 좀 늦어도 돼요. 밥 먹고 갈테니까 차 마시면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한다. 


메뉴는 김치찜. 윤기가 반들반들 흐르는 묵은지를 보자 침이 고인다. 반찬으로 나온 계란말이도 특별했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조리법인데, 노란 테두리에 하얀 속살 사이사이 오색 채소가 박힌 도톰한 계란말이는 젓가락 대기도 아깝게 고왔다. 계란말이에 대한 찬사를 건네자 주인이 그런다. “계란말이만 7년을 연구했어요.” 그 말이 내겐 이 원고는 퇴고만 7년 했어요,로 들렸다. 평소 농담처럼 말하지만 글은 밥과 경쟁한다. 밥 한그릇 만큼 필요와 만족을 채워주는 글을 쓰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예정대로 10분 지각했다. 강연에 늦고도 이토록 속 편한 것도, 수도가 얼어 화장실을 쓰지 못하는 강연장도, 마을회관 같은 오붓함도 처음이다. 암막 커튼이 없고 햇살이 눈부셔서 스크린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두 시간이 태평하게 흘렀다. 강연료가 적어서 미안하다며 엄선생님이 꾸러미를 건넸다.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만든 누룽지, 딸기잼, 블루베리잼, 계란, 술이 한보따리다. 


“산이 참 깊네요.” 들어올 때 안 보이던 풍경 나갈 때야 보인다. 울울창창한 산세에 감탄하는 내게 엄선생님 말한다. “저 아랫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은 산에서 내려온 호랑이를 봤다고 해요.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머리는 남기고 몸통만 먹는대요. 멧돼지는 머리까지 다 먹고요.” 전래동화처럼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본 적 없는 공룡도 믿는데 할머니가 본 호랑이를 못 믿을 건 무언가. 자연에서 반나절, 시간 엄수, 근거 확립, 신속 정확 같은 도시의 감각에서 잠시 놓여나니 마음이 들녘처럼 넉넉해진다.


<내 친구 정일우>의 원래 제목은 ‘사람 물리치지 않는 정 신부’였다고 한다. 사람 물리치지 않는 사람 품은 고장에서, 그가 말하곤 했던 사람 물리치지 않는 주문을 되뇌어본다. “사람은 누구나 깨진 꽃병이다. 이렇게 막고 저렇게 막고 해봤자 깨진 걸 숨길 수 없다.” 연탄 난로와 깨진 꽃병의 마음이 있는 그곳이 천국이겠구나 생각하며 서울을 향한다.


한겨레 3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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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은유칼럼]


<출판사 책소개>

나를 과시하거나 연민하기 바쁜 시대,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지만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 되는 시대. 《다가오는 말들》은 이런 ‘나’ 중심의 시대에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일의 가치를 역설한다. 은유는 우리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때 내가 가진 편견이 깨지고 자기 삶이 확장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럴 때 나는 나와 타인을 돌볼 수 있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우리가 서로 연결되면서 세상도 좋은 쪽으로 약간의 방향을 틀게 된다.

“글쓰기를 배우려다 인생을 배웠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얻은 《글쓰기의 최전선》과 《쓰기의 말들》, 여성이자 엄마로서 살아오며 겪은 편견과 차별, 외로움과 절망, 울분을 여러 편의 시와 엮어 풀어내면서 독자들이 잊었거나 몰랐던 감각을 깨워준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모두 아우르면서도 그 책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은유의 말을 빌리자면 《다가오는 말들》은 “나에게서 남으로, 한발 내디뎌 세상과 만난 기록”이다.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은유의 글은 읽는 사람의 마음과 시야를 열어주며, 독자들은 더욱 성숙하고 단단해진 은유의 문장들을 통과하다 보면 자신 역시 성장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새 책이 나왔다. 그동안 쓴 글을 모은 게 아니고 이 책을 위해서 그동안 글을 썼다. 순서가 그렇다.

이환희 편집자가 책 내자고 제안하고 , 꾸준히 글을 쓰게끔 채널예스와 시사인에 연재를 잡아주었다.

지난 2년 간 편집자와 매주 연락을 주고 받고 글과 말을 나눈 협업의 결과물이 <다가오는 말들>이다. 

편집자에 대한 고마움은 서문에 별도로 쓰지 않았다. 책 낼 때마다 편집자와 출판 관계자분에게 너무 고마워서 

그 고마움에 답하고자 1년 전 <출판하는 마음>으로 냈기 때문이다. 

수레가 묻는다.  엄마는 언제 이 책을 썼어? 너 잘 때, 학교 갈 때, 놀 때 썼어.

아이들이 모를 정도로 일상에 지장 없었으므로 가족들에게도 특별히 미안할 것은 없다. 

내 밥 지어 먹고 애들 다 돌보고 스스로 앞가림 하면서 글 쓴 것이 떳떳하다. 

책 내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그렇듯 위대하게 평범한 일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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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엄마를 보다

[은유칼럼]

영화 <로마>의 주인공은 연애를 하다가 아기를 갖는다. 임신 사실을 극장에서 연인에게 말한다. 스크린을 등지고 여자의 몸을 탐닉하던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한다. 영화도 안 끝났는데 어딜 가냐고 여자가 묻자, 금방 올 거라며 뭐 사다 줄까? 묻기까지 하더니만 결국 오지 않는다. 남자는 종적을 감춘다. 이후 남자의 행동은 예상대로라서 슬프고, 예상치 못한 대목에선 참담하다.


주인공의 성정은 외유내강하다. 유명한 회화 속 ‘우유 따르는 여인’처럼 매일매일의 노동을 묵묵히, 만삭이 되도록 수행한다. 영화 끝무렵 딱 한번 감정의 수문을 연다.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았다”며 목 놓아 운다. 나도 따라 울었다. 남자를 비난했고 여자를 연민했다. 여자의 엄살 없는 살아냄을 존경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 어디서나 그래도 되는 남자가 계속 생겨나는 가부장제 시스템에 분개했다.


같은 영화를 본 친구는 주인공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원치 않았던 아기’의 존재에 감정을 이입했다. 친구는 말했다. “어쩌면 나도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 그리고 그 복잡한 사연과 심정을 글로 남겼다. 엄마의 냄새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엄마에 대한 정보는 두 가지뿐이다. 아빠와 아빠의 부모에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것. 자신이 생후 백일 무렵 홀연히 떠났다는 것. 친구는 자기도 엄마로 십년 넘게 살아낸 지금에야 엄마를 바로 본다며 이렇게 글을 맺었다.


“그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엄마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것뿐이다. … 엄마는 나에게 역할이 아닌 주체로 살라고 최초로 보여준 사람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20대 후반의 엄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드라마나 소설 같은 허구에서 엄마의 부재는 가능한 시나리오다. 자식을 버린 여자, 엄마가 되지 못한 엄마는 있었다. 나쁜 년이고 독한 년으로 불려나왔다. 현실에서는 보기 어렵다. 아니, 드러나지 않는다. 배타적인 직계가족주의 사회에서 엄마의 부재는 커다란 결핍이고 모성의 거부는 금기였으니까. 가족은 숨겼고 당사자는 숨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그들을 본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소위 숭고한 모성의 기준에 미달한 존재를, 감히 자식을 저버린 엄마의 서사를, 그것을 진술하는 용감한 목소리를 듣는다. 조용한 감동이 인다. 이 사회에서 자리를 할당받지 못한 ‘모성 없는 (존재로 낙인찍힌) 여자들’은 약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는 법과 언어를 익힌 자식의 몸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영화 <로마>도 낮고 깊은 시선의 영화다. <그래비티>로 잘 알려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엄마, 누나, 보모 등 자신을 키운 여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그중에서도 보모가 중심이다. 보모의 너그러운 품에서 먹고 자고 놀던 아이가 자라서 50여 년 후 영화를 내놓았다. 그것은 백인 가정에 고용된 원주민-보모?여성이라는 불리한 생애 조건에 놓인 한 사람을 역사와 서사 속에서 바라보는 데 걸린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친구도 44년 만에 엄마를 재의미화했다. ‘엄마는 왜 나를 두고 갔을까’에서 ‘엄마는 왜 나를 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로 질문이 나아가기까지 한 세월을 바쳤다. 친구가 그간 읽고 쓰고 보고 들은 모든 것은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이해는 그만큼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한 편의 기품 있는 영화가 불러온 이야기를 전하며, 친구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또 다른 삭제된 존재로서 여자의 서사가 태어나길 기대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1393.html?_fr=mt5&fbclid=IwAR2OhH2J3x6-wOGvuWKO63YEO8p1RBX6NWpxHSTcJPe0g3eCZXog_StSdUw#csidx92c87cc429f4782a92a32cdee053d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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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믿음

[은유칼럼]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첫인상은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나는 무시무시한 소음에서 비롯된다. 갱도 안에서는 멀리까지 볼 수가 없다. 램프 불빛은 뿌연 탄진에 막혀 얼마 뻗지 못한다.” 조지 오웰이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한 장면이다. 1936년 영국 북부지역 탄광노동자의 실상을 기록한 오웰은 그곳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보던 지옥 같았다”고 말한다.

오웰이 묘사한 지옥을 얼마 전 나도 보았다. 석탄 먼지 어둑한 공간을 밝히는 희미한 손전등. 굉음을 내며 굴러가는 컨베이어벨트. 그 아래 수십개 구멍에 몸을 반으로 접어 머리를 넣어 살피고 바닥에 떨어진 석탄을 삽으로 치우는 사람. 2㎞ 넘는 동선을 오가며 일명 ‘낙탄 작업’을 나 홀로 처리하던 스물넷 청년은 기계에 빨려들어가 몸이 분리된 채 숨을 거둔다. 태안화력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사고 당일 폐회로텔레비전(CCTV) 장면이다.

오웰은 같은 책에서, 해마다 광부 900명당 하나꼴로 사람이 죽어갔다며 오랫동안 광부생활을 한 이라면 누구나 자기 동료가 목숨을 잃는 광경을 보게 된다고 보고한다. 김용균씨가 일하던 작업장도 다르지 않다. 태안화력이 속한 한국서부발전에서 지난 7년간 산업재해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다.

이 통계가 섬뜩한 것은 죽음의 누적이 아닌 죽음의 허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떨어진 석탄을 손으로 줍지 않도록 개선해달라, 어두워서 위험하니 조명을 밝게 해달라, 요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됐다고 한다. 이 의도적 외면은 죽어도 되는 사람과 죽지 않는 사람이 갈리는 원인이자 결과가 됐다.

왜 그들에겐 대낮처럼 자명한 ‘위험’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간 사망사고를 보고받았을 안전담당 책임자, 원·하청 관리자가 눈감고 지나친 그 현장을 최초로 ‘본’ 사람은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다. ‘내가 이런 데 아이를 보냈구나’ 넋이 나가 중얼거린다. “아들이 일했던 현장을 직접 가보니 전쟁을 치르는 아수라장 같았다.” “아직도 우리 용균이보다 험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들이 많이 있다. 우린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초조하게 호소한다.

탄광지대 체험 후 조지 오웰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가 누리는 품위는 모두 그들과 같은 밑바닥 인생들의 혹독한 노동현장과 일상적 가난에 빚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노라.” 아울러 그는 보통사람이 지닌 근원적 품위와 잠재력을 누구보다 신뢰했다. 보통사람들이 눈을 떠서 대세에 저항하기만 하면 역사는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어머니 김미숙씨를 보면서 오웰이 말한 ‘눈뜬 자’의 힘을 느낀다. 김용균법으로 일컫는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지만, 어머니는 누워 있지 않고 광장이나 현장에 있다. 지난 주말 ‘고 김용균 3차 범국민 추모제’에서도 다른 죽음을 막아내자고 목소리를 냈다. 안타깝게도 이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최다 추천을 받았다. “나라 구하다 죽은 위인도 이렇게 길게 추모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하라.”

이제 그만하라고 해야 할 것은 무고한 죽음을 양산하는 이 잔인한 체제다. 성실하게 일하다가 죽는 청년이 더는 없도록 하는 게 나라 구하는 일이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에게 자식은 햇빛이다. 그 빛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나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단지 이 느낌을 다른 부모가 겪지 않게 해주고 싶은 게 지금의 바람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8066.html?_fr=mt5&fbclid=IwAR3A9KYzYRS1L0R5Gb2QKagU1r9rm85fEqRo-UarB2TbUc6vlV2qusG6LYw#csidx0b35705ae20fe8788f451e046acbb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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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사자가 된다

[은유칼럼]
찬 바람 불자 동네마트 앞에 미니트럭이 등장했다. 붕어빵집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호떡집이다. 호떡을 사며 혹시 붕어빵은 안 팔 계획인지 물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젓더니 “에유, 반죽하면 어깨 나가요. 그거 못해서 이제 호떡이랑 핫도그만 팔아” 한다. 게다가 붕어빵이 다 프랜차이즈라서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단다. 핫도그랑 호떡에 승부를 걸고 있으니 꼭 맛을 평가해달라고 아저씨는 신신당부했다.

세가지 사실에 놀랐다. 붕어빵에까지 자본 시스템이 침투했으며, 누런 주전자에서 수도꼭지의 물줄기처럼 흘러나오는 흰 반죽은 극한 어깨 노동의 산물이었고, 호떡 레시피도 계속 업데이트된다는 것. 세상에 쉬운 일 없다고 말하면서도 난 붕어빵 장사를 만만하게 여긴 듯하다. “퇴직하고 농사나 짓겠다”는 말이 농사에 문외한이어서 가능하듯, 관용구처럼 쓰는 “붕어빵 장사라도” 역시 무지에 기반한 소행이었다.

며칠 후 찬 바람 뚫고 ‘성 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회 토크콘서트에 갔다. 전시를 주최한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피해자에 대해 양육자와 눈 맞추고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그래서 처음엔 뭘 물어봐도 “싫어” “재수 없어” 두마디로만 답하는 아이들이었다고 표현했다.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이나 학대를 당하던 아이들이 ‘살려고’ 집을 나와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을 따르다가 피해를 입는 구조라는 것.

그런데도 아이들은 보호받기는커녕 ‘쉽게 돈 번다’며 비난받고 낙인찍힌다. 조 대표는 말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현장을 모르는 행정부 어른들과 싸우는 게 더 어려워요.” 심지어 단속에 적발된 성 구매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러 센터에 직접 찾아오는 일까지 있다며 “어째서 구매한 놈이 당당한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내가 배운 것도 세가지다. 첫째, 소위 원조교제나 조건만남으로 불리는 십대 성매매는 동등한 입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주는데 한쪽이 취약한 처지이므로 성 착취라는 말이 합당하다. 둘째, 전세계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 범죄에 대해 엄격하게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는 보호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범죄라는 인식조차 미약해서 그들이 외려 당당하게 군다. 셋째, 성 착취라는 말이 일반화되면 “당당한 놈들도 바퀴벌레처럼 숨을 것”이며 성 착취도 사라질 것이다.

십이일간의 전시가 끝났다. 난 더 많은 이들이 보기를 바랐다. 교복과 모텔 가운이 나란히 걸린 쓸쓸한 사진을, ‘용돈 급히 필요한 여성분 경제적인 도움 드릴게요. 수수하고 담배 안 피우는 분 뵙고 싶어요’라는 성 구매자의 역겨운 메시지를, 아이들이 방탕하거나 불쌍하기만 한 게 아니며 알록달록 천개의 마음이 있음을 표현한 미술 작품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주변에 열심히 권했다. 너도 꼭 가봐. 왜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무도 묻진 않았다.

지금도 답지를 쓰는 중이다. ‘당장 붕어빵을 안 먹어도 붕어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야 타인의 노동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을 수 있다. 성 구매자들이 “내 돈 내고 내가 한다는데”라며 죄책감 없이 취약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려 들 수 있는 건, 피해자를 비난하고 구매자를 숨겨주는 ‘언어 관습’을 믿기 때문이겠지. 한마디로 공동체의 무신경함. 그렇게 우린 성 착취 산업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성 착취 문화의 당사자가 된다. 찬 바람이 부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찬 바람을 막는 단단한 언어의 집을 지을 수는 있지 않을까. 당사자라서 가는 게 아니라 가서 보면 내가 당사자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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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

[은유칼럼]

글을 낭독할 차례가 됐는데 침묵이 흐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온 얼굴로 눈물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다. 잠시 후 그가 청했다. 누가 대신 읽어달라고. 그가 쓴 글에는 “한번 내기 시작한 화는 산불처럼 번져 좀체로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온다고, 그 무렵 네시간마다 깨어 수유하던 나로서는 아이를 공감하기보다 억누르고 명령하는 편이 수월했다”와 같은 문장이 담겼다. 제목은 ‘좋은 엄마’.

글쓰기 합평 시간에 애 키우는 여성 필자의 낭독 중단 사태는 종종 벌어진다. 피로감과 죄책감의 잔가시가 목에 걸려 그렇다. 애한테 짜증 내서, 충분히 못 놀아줘서, 모유를 못 먹여서, 아픈 애 떼어놓고 출근해서 등등.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가책과 한탄의 목록은 언뜻 사소해 보이나 그 사소한 일은 놀랍게도 엄마들을 수시로 심판대에 세운다.

그냥 엄마가 아닌 좋은 엄마를 나도 꿈꿨다. 첫애를 낳곤 베개 대신 육아서를 베고 잤다. 건강 유지, 품성 함양, 학업 증진, 진로 모색까지 좋은 엄마의 책무는 점점 방대해졌고 거기에 매진할수록 자아는 빈곤해졌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쏟아지는 증상도 자식을 키우며 얻었다. 아이가 둘로 늘고 이건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싶었지만 그때마다 ‘신이 인간을 일일이 돌볼 수 없어서 엄마를 보냈다’ 같은 말을 되새기며 힘을 냈다.

여자로 길러지며 자동 적립된 ‘모성의 언어’가 바닥이 난 게 엄마 십년 차. 때마침 통장도 비어갔다. 아이의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식사 제공만 신경 썼다. 그마저도 힘에 부쳤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난 밥만 해주는 엄마니까. 아무리 애써도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답답해 글을 썼다. 압력솥에서 김 빼는 심정으로 몸에 쌓인 울화를 뽑아냈다.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정리했다. 내 욕망과 능력을 직면하면서 좋은 엄마라는 허상에서 풀려났고 되는대로 살아갈 용기가 조금씩 생겼다.

우는 엄마들에게서 나를 본다. 누가 우리에게 모성을 가르쳤을까. 얼마 전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읽었다. “실패자들의 군서지”인 감옥을 인생의 학교로 삼은 선생이 써내려간 겸손의 문체와 품격, 힘, 속도를 갖춘 시적인 문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다만 보이지 않던 문장이 눈에 들었다.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품이 넓”은 어머니, “태산부동 변함없”는 어머니 같은 부분이다. 1970~80년대 쓴 글로 전형적인 한국형 모성을 재현하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아이가 군에 간 21개월도 걱정에 몸이 닳았는데 20년 세월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지 감히 가늠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과거의 나는 이런 글을 보며 대인배 엄마가 ‘누구나’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거의 남성 저자의 책으로, 즉 남자 사람의 관점으로 인생을 배웠다. 어머니의 육체노동을 희생, 헌신, 은혜 같은 큰 말로 추상화하는 가부장제 언어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여자다움이나 엄마 됨의 자세와 기준을 체득했으리라 짐작된다.

한 젊은 여성은 이런 글을 썼다. (좋은 엄마가 아닌) 엄마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만 연구되고, 자식이 엄마에게 미치는 영향은 왜 연구되지 않는 거죠? 영화를 보고 엄마에게도 자아가 있음을 알게 됐다는 딸의 문제제기였다. 아, 관점을 바꾸면 질문도 바뀌는구나 실감했다. 엄마들의 글쓰기가 존재 본래의 생기를 잠식하는 모성의 독을 빼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아닌 나를 주어로 놓고 쓰다 보면 죄의식의 분비물인 눈물도 멎는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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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봉은 얼마일까

[은유칼럼]

한번은 강연장 포스트잇에 이런 질문이 쓰여 있었다. ‘연봉이 얼마예요’. 그걸 읽고 다 같이 웃었다. 연봉 있는 작가라니! 참신한 오해다. 하긴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며, 희망 연봉을 제시했다. 여러모로 앞서갔다. 지금 시대엔 직업을 이해하거나 평가하는 기준이 돈이다. 연봉이 높으면 좋은 직업, 낮으면 안 좋은 직업. 그 기준으로 작가는 연봉 책정이 불가능한 이상한 직업이다.

일부 소설가나 시인은 대학교수, 편집자 같은 직업을 겸한다. 최승자 시인은 그 훌륭한 작품을 쓰고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냈다. 전업 작가는 고정 수입이 없다. 주된 활동이 책 펴내는 일이고 저자 인세는 대개 정가의 10%다. 만삼천원짜리 한권 팔리면 저자한테 천삼백원이 돌아온다.(이 얘길 하면 다 놀란다) 어떤 책을 내도 십만부 판매가 ‘무조건’ 보장되는 국내 저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대개의 책은 초판 나가기도 힘든 상황이라서 일이만부 정도 팔리면 성공작으로 본다. 내 책은 2~3년간 누적으로 그 정도 팔렸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일년에 오천부가 팔려도 천만원이 채 안 된다. 개인마다 다르지만 책 한권 쓰는 데 최소 6개월은 걸린다. 작업 기간 길고, 판매 불확실하고, 후불로 지급되는 인세만 믿고 있다간 굶기 십상이다.

작가들이 강의를 나가는 이유다. 나도 일감 걱정을 벗어난 건 근래인데, 책 관련 강연으로 생계의 틈을 메운다. 내밀한 대화를 삶의 쾌락으로 여기는지라 ‘혼자 떠드는 느낌’이 드는 대규모 강연이 아니라면 즐거이 임하는 편이다. 그런데 말하기와 글쓰기는 반대의 에너지가 든다. 글은 자기 생각을 의심하는 일이고, 말은 자기 확신을 전하는 일이다. 그게 가끔 혼란스럽다. 그걸 기질적으로 못하거나 사람들 앞에 나서기 꺼리거나 강연 기회가 없는 작가는 책만 팔아서 밥을 구해야 하는 극한 처지에 몰린다.

올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체공녀 강주룡>을 감동적으로 봤다. 소설가 박서련이 궁금해 인터뷰를 찾아보니 20대 젊은 작가다. 어렵사리 등단했지만 원고 청탁이 없었단다. 스타벅스 아르바이트,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중장비 자격증까지 알아보다가 이 소설의 기획이 한 단체의 지원사업에 선정돼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하마터면 나올 수 없었던 소설이라고 생각하니 착잡했다. 젊어서 고생이 성과물로 수렴되지 못하는 작가 지망생들,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기형도) 작가들은 얼마나 많을까.

시와 소설을 쓰는 순문학 분야는 각종 문학상이나 공모사업 기회라도 있지만 르포르타주를 다루는 논픽션 분야는 더 척박하다. 전업 작가부터 희소하다. 논픽션을 애정하고 섭취하며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책이 아니라 강연으로, 작가가 글보다 말로 살아야 하는 현실에 ‘어쩔 수 없다’며 젖어들지 말고 ‘어쩌면 좋을지’ 물음이라도 붙들고 있으려 한다.

동네서점 주인장들도 한숨이 깊다. 서점 또한 책만 팔아서는 유지가 불가능한 구조라서 유명 저자를 초대하거나 독서모임을 하는 등 끝없이 이벤트를 기획한다. 근데 작가를 초대해도 사람들이 작가만 보고 갈 뿐 책을 사진 않는다는 거다. 저자는 책 쓰려고 강연하는데 독자는 강연 들었으니 책을 안 산다는 얘기다. 이 무슨 얄궂은 상황인지.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것만큼이나 아이러니다. 종이책 시대가 저무는 건 알겠는데, 작은 서점이 사라지는 풍경, 일생을 다 걸고 글 쓰는 사람이 소멸하는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6586.html?_fr=mt5&fbclid=IwAR2WOBuMzfaS5QMp7bQ7lJOD7caYTN3plhIn_xxFJ3YJQbK_G57hEwHCL3g#csidx717a83abe665ed780a4fc438ab06a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