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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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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찾아라 아들이 시력이 나쁘고 난시가 심해서 하드렌즈를 낀다. 군에 갈 때 훈련용 안경, 생활용 안경 두벌을 가져갔는데 첫 휴가 나왔을 때 렌즈를 챙겨갔다. '사격'이 어려운데 렌즈를 하면 좀 나을까 싶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하드렌즈를 끼고 사격훈련을 받았는데, 오른쪽 눈에서 빠졌단다. 화들짝 놀라 왼쪽 눈의 것을 오른쪽에 끼고 훈련을 마친 다음 선임에게 말했더니 명령이 내려졌단다. "지금부터 렌즈를 찾는다. 한쪽에 20만원이다." 장정 10명이 엎드려 흙바닥을 뒤져서 렌즈를 찾아냈다고 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도 아니고 어떻게 가능한 건지. 하드렌즈는 신생아 엄지 손톱만한 크기에 투명하다. 아들에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찾아?" "그게 군대야. 엄마." 지난 토욜에 아들 부대개방행사를 다녀왔다. 이건 뭐 유..
돌려보내야할 것들 '본래 있던 곳을 잘 기억하고 있다. 궁극에는 돌려보내야 할 것이므로.' (문태준) 저 글귀를 얻고 기뻤다. 왜 사나, 자꾸만 올라오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할 때 체념인듯 구원인듯 저 말이 다가왔다. 적어도 내가 받은 것만큼은 돌려놓고 죽자. 살아야할 이유가 삶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평생 내가 받은 보살핌, 관심, 동정, 지지, 호의, 사유, 선물 같은 것들. 그러니까 엄마에게 받아먹은 수천끼니의 밥, 동료에게 얻어먹은 커피와 술, 책에서 쏙쏙 빼먹은 문장, 선배가 찔러준 택시비, 우울한 날 당도한 기프티콘... 어제는 학인이 손수 담근 간장게장을 주었고, 지역에 사는 분에게 가을가을 엽서도 받았다. 받는 것의 목록이 늘고 있다. 수고로움을 거쳐 가까스로 돌아돌아 내게온 것들. 부지런히 되돌려 내어놓지..
페미니즘 책 한권 보내주세요 숙소로 돌아온 아들이 군용배낭에서 '참치 캔 두 개와 수입과자 한 봉지'를 꺼내더니 서울 가면 여친에게 전해주란다. 열흘간 유격훈련 갈 때 마련한 비상식량인데 여친 주려고 애껴둔 것이란다. 낮동안 아들은 읍내에서 데이트를 했고 서울행 버스에 오르는 여친에게 선물로 주려고했는데 배낭이 숙소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다. 나로서는 그러니까 참치캔과 과자가 왜 선물이 되는지, 이 (흔한)게 뭐라고 주려는 거냐, 택배비가 더 나오겠다;;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거라도 주고 싶은 게 '군발이 마음'인가보다 싶어서 꾹 참고 있는데 아들이 덧붙인다. "엄마, 이거 보내면서 페미니즘 책도 한권 넣어주세요." 여친이 요즘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거 같다고 했다. 자기 동기가 방학이라 인턴으로 실습을..
아들의 편지 p.s. 안 우시고 걱정 안 하신다니 마음이 훨씬 놓입니다. 실은 편지를 더 감성적으로 쓰고 싶었으나 보다가 울까봐 굉장히 이성적으로 쓴 것입니다. 하하. 신병훈련소에 있는 아이에게 온 편지 추신. 이것이 더 눈물바람 유발한다는 것을 아이는 아직 모르나보다. 누군가 자기 마음을 헤아려줄 때 울컥하다. 훈련이 없는 일요일 를 읽는단다. 그동안 책 읽는 거 별로 못 봤는데 어떻게 저런 양서를 골랐을까. 집에 20년 책 전시해 놓은 게 무의식 효과가 있나보다. 책이 다가오는 시기는 저마다 다르다. 팔굽혀펴기를 74번 해서 체력 1급을 받았다고 한다. 난 아이방 침대에 놓인 고양이, 오리, 토토로 인형 쓰다듬으면서 이 섬세한 영혼이 군대에서 어찌 살까 눈물 지었다. 사람은 보고 싶은 면만 고정시켜서 본다. 엄마..
조덕윤의 Chopin Ballade no.1 in G minor op.23 군대 가려고 휴학했는데 입대 지원에 계속 낙방. 편의점 알바한 돈으로 학원 등록해 온종일 피아노만 치는 덕윤. "엄마, 나 차라리 병역거부할까?" 라고 물으심. "(차라리, 택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 후)그것도 좋지" 대답함.
꽃수레와 오월의 정동길 연휴 때 수레와 하루씩 나들이를 나갔다. 하루는 정동길에 가고 하루는 구기동 선배네 가서 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윤동주 문학관에 들렀다.꽃수레가 언제까지 나와 놀아줄까? 엄마 왜 자꾸 내 사진 찍어~ 라면서 카메라를 피한다.애기 때는 노상 예쁜짓을 하며 카메라에서 애교를 부리던 딸인데.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가능한가, 했는데 세월호 이후 아이 사진 올리는 것도 미안해지는 세상이다. 이 사진이 너무 좋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선량한 눈빛, 다정한 무관심책 읽는 엄마 사진 좀 찍어줘 해서 연출함. 꽃수레 위에 꽃뭉치저 길 끝에 천국의 문이 있을 듯한수레가 조르지만 않았으면 한시간 있고 싶었던 의자 꽃수레는 (윤)동주가 좋대고 난 (송)몽규가 좋다고 하고. 남자 취향 다름.
노들장애인야학 김호식을 추모하며 "호식이 형이 프리지아 받고 정말 좋아했어요. 태어나서 꽃 처음 받아본다고." 오늘 저녁 노들장애인야학 김호식 학생 추모제에 갔다. 김호식은 2011년 봄에 만난 나의 인터뷰이다. ( 202쪽에도 내 편견을 깬 멋진 인터뷰 사례로 등장한다.) 그때 내가 꽃을 사갔는데, 그 꽃을 많이 좋아했다고 당시 활동보조였던 친구에게 오늘 우연히 전해들었다. 그게 벌써 5년전 봄의 일이라는 것도,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실감 없다. 지천에 봄꽃 만발했는데 한묶음 꺾어 건넬 수도 없는 곳으로 그가 갔다. 시인 이상 말대로 '지상의 사람 바뀐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하고 슬픈 일인가. 철학 수업을 유독 좋아하고 루쉰과 니체를 좋아했던 그가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단다. 철학이 '세상을 살아..
절판기념회를 축하해도 되나요? 아마도 ‘국내 최초’가 아닐까 싶은 ‘절판기념낭독회’가 지난 3월 17일 역촌동 북앤카페 쿠아레에서 열렸다. 주인공은 나의 첫책 . 이 책은 여자, 엄마, 작가로 사는 이야기에 시를 곁들인 산문집이다. 2012년 11월에 출간됐는데 출판사의 사정으로 3년 만에 절판의 운명을 맞았다. 절판은 출판하였던 책을 더이상 펴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예기치 못한 절판 사건을 통해 지난 한달, 나는 출판 만큼이나 값진 경험을 했다. 먼저 물건 파는 법을 배웠다. 출판사에서 남은 책 100권을 내게 보내주었다. 사과 상자 크기 두 상자 분량의 책이 현관에 도착했다. 실물을 보자 아찔했다. 날 풀리면 야외 벼룩시장에서 팔까? 별별 궁리를 다하다가 페이스북에 절판 소식을 알렸더니 ‘페북에서 판매하라’며 ‘사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