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북뉴스 - '다가오는 말들' 신간 인터뷰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일상에서 읽고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냥 지나치던 삶의 작은 결을 좀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고, 그러면서 전에 몰랐던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고, 그래서 전보다 손가락 마디 하나 만큼이라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이다. 

은유 작가의 에세이 『다가오는 말들』은 그렇게 읽고 쓰고,아니 그 전에 낯선 세계와 만나고 듣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마음을 열고 낯선 세계에 한 발자국 다가갈 때 나에게 '다가오는 말들'의 경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다가오는 말들』의 은유 작가와 만났다. 질문을 받으면 먼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떠오르고, 천천히 말을 꺼내고, 잠시 멈추어 서서 단어를 고르는 모습이 은유 작가의 글을 읽을 때와 너무 비슷한 느낌이라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 사이 인터뷰집은 몇 권 내셨는데 에세이로 나온 책은 오랜만이에요.  

저는 책을 너무 자주 내는 것 같아서 약간 걱정인데요? (웃음). 생각이 변화되거나 편견이 깨지거나 혹은 몰랐던 걸 새로 알게 되는 그런 사고의 확장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서 글로 남기려고 하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공유하고 싶거든요. 『다가오는 말들』은 그런 제 일상의 경험에 대한 글들이에요. 

 

제목인 '다가오는 말들'이라는 표현이 저는 참 좋았어요. 저도 일 때문이지만 여러 작가님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원래 맥락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말들이 그때 제가 갖고 있던 의문이나 고민들과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을 종종 경험했거든요. 그럴 때는 ', 이 말들이 나에게 다가왔구나!' 하고 느껴져요. 

맞아요. 우리가 많은 말들을 주고받고 듣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나에게 다가와요. 내 삶의 고민이라거나 문제가 있을 때 그런 말들이 다가오면 더 나의 것이 되기도 하고요. 

저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에 낯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낯선 자극을 받는 환경에도 많이 노출돼요.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만나는 학인들과 그분들이 쓴 글에서 내가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경우도 많고, 강연을 가서 청중들에게 저는 생각도 못 해본 엉뚱한 질문을 받기도 하니까요. 책을 읽다가 다가오는 말들도 있고요. 그러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을 부지런히 전파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글을 쓰고 있어요(웃음). 

 

# 글쓰는 삶

 

글쓰기 수업을 오랫동안 진행하고 계신데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사람과 말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 책에서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글쓰기 수업은 단순히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기도 하던데요. 

글쓰기 수업에 오시는 분들은 직업이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자기 고민이 있는 분들, 풀고 싶은 문제,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분들이 많죠. 그냥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고요.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과 공유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좀 더 책임감 있게 글을 쓰게 돼요. 나만 본다 생각할 때는 좀 거칠게 정리 안 된 생각도 쏟아낼 수 있지만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단어 하나도 정확하게 쓰려고 하고 글에도 좀 더 공을 들이게 되고요. 

일단 밖으로 나온 생각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위로나 공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반론을 듣거나 내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전해들을 수도 있죠. 내 생각에 대한 검증이 되는 부분도 있고요.  

 

글과 말을 통해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이 쉽지는 않거든요.  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할까 생각해보면, 내 얘기를 다른 사람들이 왜곡 없이 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자신이 없어요. 이해 받고싶어 꺼낸 이야기인데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혹은 너무 상투적인 반응을 보이면 더 상처가 되기도 하거든요. 

자기 입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불편한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고요. 성숙한 태도는 서로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하는 경험이 많아야 나올 수 있는데, 사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해볼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 자주 노출되고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죠.  

듣는 사람은 최대한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 해야 해요. 나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이야기일지라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는 자세, 평가나 판단하려 하지 말고 이해해주려는 태도, 이해가 안 된다면 그때 왜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말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요. 그렇게 나의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에 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 또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일상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고통들을 많이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 감정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고통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을 아예 피하는 경향도 있고요. 

자기가 경험한 것이 아니면 '그런 일이 어디 있어? 너무 왜곡된 것 아니야?' 그렇게 잘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단은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최대한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섣부르게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그랬구나'하고 동조해주고,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의 말을 하고,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 지 모르겠으면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겠냐고 물어보고요.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괜히 아는 척할 필요도 없고 위축될 필요도 없고요. 그냥 고통 역시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표현하면 좋겠어요.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크건 작건 누구나 다 고통을 겪어요. 고통에 대해서 정중한 태도를 가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고통에 대해서 마치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처럼 경직되게 받아들이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글을 읽고 쓰는 것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고, 확실히 글을 읽고 쓰게 되면 타인에게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되요. 그리고 타인에게 공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게 되고요.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거든요. '차라리 몰랐다면 더 속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고요.  

타인을 이해하는 건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가 커지는 일이에요. 타인의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내가 힘들 때 내 고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내 고통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지 모르게 되잖아요. 문제를 돌파해야 할 때, 내가 서툰 부분이 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요. 

"나는 힘든 일이 없는데 왜 남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줘야 해?"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이 점점 둔감해지고, 남에게 상처 주는 줄도 모르고 함부로 이야기하게 돼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하죠. 

 

 

# 글 쓰는 사람

 

『다가오는 말들』에 담긴 글들은, 일상과 책에서 읽은 것, 그리고 작가님의 생각이 잘 엮이고 잘 스며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과 책, 그리고 생각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요. 

계속 고민을 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갖게 하기 위해 퇴고를 많이 해요. 자연스럽게 글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요.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읽히게 하기 위해서요.  

세상에 노동 아닌 것이 없는데, 글쓰기도 노동이거든요. 계속 앉아서 일을 하니까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머리도 써야 하고 신체도 써야 하니까 힘들죠(웃음). 

 

요즘은 사이다, 일침, 이런 단정적인 말들을 좋아하지만, 『다가오는 말들』에서는 그런 확고한 결말보다는 애매하고, 모호하고, 뭐라 단정하기 어려운 느낌,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글들이 많더라고요. 

결론에서 뭔가 맺어줘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삶에도 결말이 없는데 글에서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미화하고 봉합해서 아름답게 마무리를 하는 것도 바르지 않은 것 같고요. 저는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고민 중이면 고민 중인대로, 내가 오늘 생각한 지점이 여기까지면 여기까지라고 말하면서 글 쓸 때의 느낌과 상황으로 단락을 매듭 지어요. 거창한 이야기를 하면 의미도 없고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잖아요. 글쓰기 수업에서도 학인들에게 결말에 너무 장황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고요. 

 

글 쓰는 자아와, 생활인인 나의 자아 사이에 차이가 있나요? 

차이가 난다기 보다는, 글을 쓸 때 좀 더 차분해지고 사려 깊어지는 것 같아요. 글 쓰는 행위의 특성이겠죠. 좀 더 정교하게 생각해야 하니까요. 말은 날아가버리지만 글은 아니잖아요. 논리적 모순도 너무 금방 드러나니까 더 심사숙고 하게 되고요. 그래서 글 쓰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좀 더 침착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어떤 문제를 직시하는 시간을 갖게 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렇게 정교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글을 쓰면서 '그래, 이래야겠어!'라는 스스로 결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생각도 하고 글로 남겨 놓아도 막상 현실에서는 그 생각대로 살지 못하거든요. 작가님도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셔서 현실에서도 굉장히 '센캐'일거라고 생각했는데(웃음) 글에서는 여전히 '엄마'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시원하게 떨치지 못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더라고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나 혼자만 바뀌어서 되는 거라면 생각한대로 실천하고 행위 하면 끝이지만, 관계 안에 있으니까요.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지만 상대방은 아직 생각이 없다면 그 사이의 간극을 꾸준히 노력하면서 바꿔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당장 이렇게 해야 한다고 조급해할 것이 아니라 결을 맞추어 간다는 느낌으로요. 저도 아는 대로 살아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단숨에는 안 돼요. 

 

# 가까이 있는 낯선 세계

 

책에서 우리 일상에서는 좀 낯선 세계,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저에게 가장 낯선 존재는 청소년인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까 청소년들하고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한 기억이 정말 없더라고요. 

사실 청소년들과 만날 접점이 없어요. 사회적으로 청소년들을 인정해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분위기도 아니고요. 그리고 아이들도, 어른들은 공부 하라고만 하고 명령이나 하지 자신들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거든요. 청소년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고 미성숙한 존재,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존재로만 치부하는 거죠.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다 성숙한가요? 그렇지도 않잖아요. 아이들은 그 자체로 완전해요. 어떤 부분에서는 미성숙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놀라운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청소년들을 만나면 많이 배워요. 

 

'불행'도 가까이 있지만 낯선 세계인데요. 황현산 선생님의 『잘 표현된 불행』에서 끌어낸 생각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늘 '행복'만 찾고 불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늘 불안하고요. 하지만 불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자유로워지는 부분이 있다고요.  

왜 꼭 행복해야 하죠? 사실 행복하기가 어렵잖아요. 우리나라처럼 사회 안전망도 없고 노동도 과중하게 하고 경쟁도 심하고 각박하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행복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 아닌가요.

그리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고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고통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고통을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야 할까요. 부정도 긍정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마치 불행이란 있어선 안 될 것처럼 거부하는 게 더 큰 불행인 것 같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의 이상형이 너무 규격화되어 있기도 해요. 실제로 그런 규격화된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을텐데도 규격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하다, 불쌍하다, 그런 시선을 받고요. 

우리 사회가 남과 다른 걸 못 견뎌 해서, 아니면서도 다 그런 척, 괜찮은 척 연기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어떤 점은 힘들고 어떤 점은 힘들어요. 행과 불행이 공존하고요. 그런데도 아닌 척 하느라 에너지가 많이 들죠. 

 

어른들의 문제는,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지레 걱정만 하는 거라고 쓰신 부분에도 공감이었어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 경험도 많고 지식도 쌓일텐데, 이상하게 더 재는 것도 많고 걱정도 많아서 더 쉽게 시작을 못하기도 하거든요. 

해 본 후에 아니면 말면 되는데 말이에요. 너무 의미를 부여하면 더 시작하기가 힘들어요. 뭔가를 한다고 해서 그게 인생을 확 바꿔주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 좋겠어요.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것도 권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글쓰기 수업을 할 때도 이 말을 많이 해요. 실패할 권리를 누리라고요. 글 한 편 쓸 때도, 좀 못 쓰면 어때요. 우리가 백일장 나간 것도 아니고 신춘문예 응모하려고 모인 것도 아닌데, 마음껏 쓰고 실패도 해봐야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요.

 

뭐든지 해보기 전에는 재단할 수 없어요. 이것저것 해보고, 이건 나에게 안 맞는구나, 그런 걸 알아야 경우의 수를 점점 좁혀갈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직접 해보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실패라는 말은 없어져야 한다 생각해요. 그냥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이고, 적어도 내가 그 일하고는 안 맞는다는 것이라도 배운 거잖아요. 저는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수영을 배우면서 느끼는 게, 난 역시 운동을 안 좋아하는구나, 하는 것이에요(웃음). 같이 다니는 친구는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 흥미도 못 느끼겠더라고요. 이 시간에 책을 더 읽을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그래도 꾸준히 수영을 다니고 있지만요.   

 

 

# 다시, 읽고 쓰는 삶

 

읽고 쓰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도 쓰셨는데요. 

제가 글에서 쓴 건, 부모들의 과잉 교육열로 아이들에게 책읽기는 강요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책읽기가 중요하니까 꼭 읽어야 한다, 그렇게 강요하는 것이 책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절실함이 없을 때 책을 읽으면 들어오는 것도 없고 다가오는 말들도 없어요. 

 

이건 중요하니까 꼭 해야 해, 저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책만이 진리다, 글을 써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게 단적으로 말할 수 없어요. 읽기와 쓰기는 사려깊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에요.  책 한 권 안 읽고 글 한 줄 안 써도 지혜롭게 사는 분들도 많아요. 그리고 책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지만 자신이 저지르는지도 모르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고요. 

 

한창 뛰어 놀고 싶은 아이를 붙잡아놓고 학원 보내듯 억지로 책 읽고 글 쓰게 하면, 아이들은 금방 알아채서 어른들이 좋아할 얘기만 써요. 글쓰기는 진실해야 하는데, 자꾸 꾸며내는 글만 쓰면 그게 또 뭐가 좋을까요. 저는 그럴 거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읽고 쓰지 않을 권리도 존중해줘야 해요. 많이 읽고 쓰는 것보다 존중받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동안 인터뷰집과 글쓰기, 에세이를 쓰셨는데, 새로운 장르나 형식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

새로운 장르나 형식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특별히 없어요. 저는 논픽션, 르포르타주를 쓰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르포가 많이 읽히지는 않죠. 내용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많이 다루다 보니 독자분들이 재미있다고 생각을 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벽을 허물고 르포를 편안하게 읽힐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우리가 살면서 나와 상관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리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세상에 나와 상관없는 문제는 없더라고요. 상관이 있는 줄 몰랐을 뿐이죠. 나와 관계 없어 보이는 사회문제들이 사실은 나와 관계가 있었구나, 그런 걸 보여주는 르포를 잘 써보고 싶어요.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인문]  다가오는 말들
은유 | 어크로스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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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직업을 말한다는 것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지난주 실검 1위에 임희정 아나운서 이름이 올랐다. 설마?하고 봤더니 맞다. 우리 학인이었다. 일년반 전 글쓰기 수업에 찾아왔고 10주간 글을 썼다. 초반엔 글쓰기 처음 배우는 이들이 흔히 그렇듯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많았다. 피트백을 해주면 꼭 고쳤다. (글고치는 학인은 드물다) 경험상, 성실하게 글을 쓰는 학인은 꼭 풀어야할 풀고싶은 자기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임희정 학인은 그것이 아버지 얘기였다. 

글쓰기 수업 중반 즈음 아버지가 등장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도 못 나왔고 지금껏 막노동을 하고 계시다고. 그게 부끄러워서 방송국 다닐 때 아버지를 '건설회사 대표'라고 속였다는 고백도 했다. 왜 아버지를 부끄러워해야 했을까. 나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질문을 받아 글을 썼다. 지금도 지하철 첫차를 타고 일하는 아버지는 누구보다 근면했다고,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 문제는 평생 일해도 가난한 사회구조이고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문화에 있는 것이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쓰고 고치면서 완성한 글을 그는 아버지의 70회 생신에 읽어드렸다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필력보다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있는 임희정 학인에게 용기내어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올려볼 것을 권했고 그곳에 발을 디뎌 그는 시민기자로 활동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출판의뢰가 여기저기서 온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브런치에 아나운서라는 자신의 직업을 처음 말했고, 그랬더니 일파만파 파장이 일었다고 한다. 

아침에 문자가 왔다. 실검에 오르고 핵폭탄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사실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 기뻤지만 부모님 얘기라 걱정되는 것도 많고 또 제가 글 쓴 지 1년반이 됐는데 아나운서라는 걸 밝히니까 이렇게 파급력이 커진 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그러게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아나운서가 단지 직업이 아니라 얼마나 권력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뭔가 풀어야할 과제가 있다는 것을 그도 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 청년들이 저도 제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며 너무 큰 힘이 됐다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더 잘 써야할 이유가 선명해 졌어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번에 오마이뉴스에 실렸을 때도 자신의 글을 보고 '아버지 직업 커밍아웃'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길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정육점에서 일해서 아버지한테 늘 비릿한 피냄새가 나서 싫었어요. 같은 이야기들. 자신의 글이 그런 분들이 말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거면 됐다. 나는 그를 아나운서가 아닌 누구보다 성실한 학인,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사람, 자신의 억압을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한 사람, 그것으로 타인에게 용기를 준 사람, 임희정으로 기억한다.


(*기사 내용 중 '개천에서 난 용"이란 표현은 사라져야 할 말이다. 소위 말하는, 뜻으로 쓰인 것일 텐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 개천-용 프레임 자체가 계급적 직업적 위계에서 나온 비유다. 희정샘도 지금 배우는 중이라 아마 언어를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고르리라 생각한다. )

https://entertain.v.daum.net/v/20190215102859242?fbclid=IwAR1KKeyCtDAQsBEtpEb-JRSBtb9MGn8BfZKhzGq8kIitL0Be9WHQDvDW1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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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기조 [2019.04.22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정말 뜻밖에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기회가 되면 뵙고 님의 학인이 되고자 합니다. 학인, 정말 멋진 선택입니다. 제자, 문하생 등의 표현이 거북해서 남 밑에서 배우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각설하고, 한말씀 드립니다.

    *기사 내용 중 '개천에서 난 용"이란 표현은 사라져야 할 말이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저는 그 다음의 해석에 꼭 그렇게 볼 이유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개천은 커다란 용이 살 정도의 크기가 아닌, 우리가 살기에 척박한 환경이지만, 서민들이 사는 일상의 환경일뿐 계급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개천은 그냥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 보다도 작은 하천이 개천인 것이지요. 서울같은 대도시(바다)보다도 작은 중소도시(강)의 인근에 있는 소읍(개천)에서 소위 S대학에 가면 개천에서 용 난 것이라고 봅니다. 거기에 무슨 계급을 들이댈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kjcho@kyungnam.ac.kr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 북토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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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학당 - 읽고 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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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학당 수강신청 페이지 bit.ly/2rtLi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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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유미 11주기 - 방진복행진 함께 해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고 황유미 11주기가 다가옵니다. 9주기에 한겨레에 글을 썼었는데 두 해가 흘렀네요. 그 사이 이재용은 석방됐고요. 저번엔 글을 썼으니 이번엔 몸을 쓰려 합니다. 방진복행진 9km 걷기에 참여할 건데요, 혹시 같이 걸으실 분 오세요. 

삼성에서 일하다가 118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영정사진 들 사람이 부족할 거 같아요. 리움미술관 1시 출발 - 서울고등법원 4시 약식 기자회견 - 강남역 반올림농성장 5시 도착 일정입니다. 봄날 서울 나들이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박보검의 책으로 소문난 ㅋㅋ <쓰기의 말들> 11권 가져가서 선물하겠습니다. 

[참여신청] goo.gl/9hRqsJ
[3월 6일 집중행동의 날]
- 기자회견 (11시, 리움미술관)
- 방진복행진 (리움미술관 1시 출발 - 서울고등법원 4시 약식 기자회견 - 반올림농성장 5시 도착) 
- 7시 농성장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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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선정, 2017 올해의 저자 10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② 2017 올해의 국내 저자 10
국문학자·역사학자·음식평론가·화가·공대 대학원생‐ 대중 교양서의 滿開


지난주 '올해의 책 10'에 이어, '올해의 국내 저자 10'을 소개한다. 가나다순으로 국문학자 김건우, 의사 출신 사회역학자 김승섭, 소설가 김혜진, 만화 그리는 공대생 맹기완, 시인 박준, 역사학자 설혜심, 작가 은유, 화가이자 에세이스트 이미경, 건축가 출신 음식평론가 이용재, 변호사이자 신부인 한동일이다. 올해는 추천위원을 75명으로 대폭 늘렸다.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좀 더 재능 있는 저자들을 추천하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번역서 강세인 국내 출판 시장에서, 참신한 국내 필자의 발견을 시도하고 응원한다는 취지가 '올해의 국내 저자 10'에 있다.

'2017년 올해의 저자 10'은 작가·학자·번역가·출판평론가·출판사 대표·서점 대표 등 전문가 75명이 최대 3명까지 추천하고 조선일보 Books팀이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대상은 2016년 12월~2017년 11월 사이에 책을 낸 저자를 대상으로 했다. 그중 가장 많은 추천과 지지를 받은 고려대 김승섭 교수와 한동일 신부의 인터뷰를 커버 스토리로 싣는다. C14·15면에 계속. 추천 위원들의 개별 추천 리스트는 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분법 극복하는 제3의 길 학병세대 재조명_ 대전대 교수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김건우 지음|느티나무책방|296쪽|1만7000원


‘사상계와 1950년대 문학’에 이어 펴낸 두 번째 책으로 2017년 올해의 저자가 됐다. 서울대 국문과 87학번인 대전대 국문과 김건우(50) 교수가 그 주인공. 핵심은 이분법의 파괴다. 친일과 반일, 독재와 반독재, 민주화와 산업화 등의 기계적이고 관념적 도식을 버리고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대상이 되는 인물은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김수환 지학순 조지훈 김수영 등이다. 1920년 전후의 다섯 해 사이에 태어난 이들로, 대부분 학병과 서북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김시덕 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의 분열·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 즉 보수와 진보,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인물들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부제 ‘학병 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온천·여행·소비‐역사 인문 영역의 지속적 확장_연세대 교수 설혜심

소비의 역사

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496쪽|2만5000원


설혜심(51)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이번에 택한 주제는 ‘소비’였다. 영국 근대 온천 발달을 다룬 ‘온천의 문화사’(2001), 18세기 유럽에서 자녀 교육 목적으로 세계 여행을 보냈던 풍조를 분석한 ‘그랜드 투어’(2013)에 이은, 역사 인문서 영역의 지속적 확장이다.

미국 시어스 백화점의 카탈로그 판매에서 현대 홈쇼핑의 기원을 읽고, 흰색 비누가 제국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한다. 노예가 재배한 설탕은 먹지 않겠다는 ‘윤리적 소비’는 요즘 공정무역을 떠올리게 한다.

16·17세기 영국 온천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을 때 ‘문제의식이 없는 주제’라고 핀잔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설 교수는 서구 일상사 연구를 지속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설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도 유명 저자 책을 번역하는 것 이상의 주체적 연구가 가능함을 보여준다”며 “소비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하는 대목도 매우 시사적”이라고 했다.



글쓰기로 연대하는 세상의 가장자리 직유 아닌 은유의 힘_작가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서해문집|296쪽|1만3500원



이 작가는 어떤 희망의 상징 같다. 우리가 스스로를 투명하게 고백하는 글을 쓴다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 그리고 그 깨달음을 윽박지르지 않고 알게 해 주는. 필명 은유, 직유와 은유를 구분할 때의 그 은유다. 본명 김지영(46). 2016년 올해의 저자였던 문화연구자 천주희씨는 2017년 올해의 저자를 이렇게 추천했다. “성찰하는 여성의 글이 얼마나 건강하고 따뜻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 같다. 세상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시선과 언어를 통해 드러나고 연대한다”

구체적인 일상을 에피소드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산문을 쓴다. 가령 이런 주제. 엄마는 왜 크고 좋은 수박 한덩이 마음껏 못 사 드시고 살았을까. 소재는 구체적이고, 문장은 단단하다. 2012년 첫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을 시작으로,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등이 모두 1만부 이상 팔렸다. 요즘 출판사들이 앞다퉈 책을 내고 싶어하는 작가 중 한 명.



교양이 아니라 재미로 승부하는 '과학만화'의 쾌감_만화 그리는 공대생 맹기완

야밤의 공대생 만화

맹기완 지음|뿌리와이파리|392쪽|1만6000원


수시로 격한 웃음이 찾아온다. 책을 덮자, 복근이 경련한다. 과장이 아니다. 저자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누가 미적분(微積分)을 먼저 개발했는지 논쟁하는 과학과 수학 이야기로 독자를 눈물 나게 웃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컴퓨터구조학을 공부하는 맹기완(27)씨가 쓰고 그렸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재학 당시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던 만화가 인기를 끌었고 올해 책으로 펴냈다. 만화의 ‘탈’을 쓴 교양 만화가 아니라, 진정 ‘재미있는’ 과학 만화라는 게 이 책의 예외적 힘.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파인먼 같은 천재 과학자들의 정사와 야사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과학 천재들의 지질한 모습을 밑자락에 깔아 독자들을 유인한 다음, 위대한 과학의 면모를 드러낸다”고 평했다.

맹씨는 “‘카더라’성 이야기들은 낭설인 경우가 많아 신빙성 있는 자료를 조사해 그렸다”며 “생애 첫 출판물이 논문이 아니라 만화책이 될 줄은 몰랐다”고 재치있게 답했다.







사랑 ·죽음 ·가난‐소박하고 진솔한 시와 산문의 힘_시인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집|난다|192쪽|1만2000원


스스로 시인이자 이 책을 만든 편집자 김민정은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는 내게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사랑, 죽음 그리고 가난.”

시인 박준(34)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산문집.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이 산문집까지 단 두 권으로 대중이 사랑하는 이름이 됐다. 지난 7월 1일 출간된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이번 주 10쇄, 10만부를 찍었다. 공교롭게도 2012년 펴낸 첫 시집 ‘당신의…’ 역시 이번 주 5000부를 추가로 찍어 10만부를 돌파했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사랑·죽음·가난은 한국인들을 무장해제시키는 키워드. 주어의 진솔한 고백을 듣고 나면 일단 같은 편이 될 수밖에 없는 정서들이다. 그래서 통속의 소비라는 비판도 있지만, 진실과 솔직을 정확하고 간명한 문장에 담아 읽는 사람에게 힘을 준다. 소박하지만 강력하다.



전통? 손맛? 한식 평가는 맛의 과학이어야_음식 평론가 이용재

한식의 품격

이용재 지음|반비|532쪽|1만8000원.


“명절이면 부쳐 먹는 전은 튀김의 열등한 형태다. 재료의 특징도 효율적인 조리법도 고민하지 않고 계란물부터 두른다.”

건축가 출신 음식 평론가 이용재(42)는 한식에 직격탄을 날린다. ‘전통’ ‘손맛’ 같은 추상적 가치는 배제했다. ‘그래도 우리 음식인데…’라는 이유로 눙치는 법도 없다. 간혹 이건 음식판 ‘자학(自虐) 사관’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냉정하다.

국내 모든 음식점이 맛집이라고 광고하는 지금, 그는 ‘맛’의 과학을 통해 각자 한식을 평가할 잣대를 제시한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맛을 쌓아올리는 방법을 건축가 출신답게 블록 단위로 체계적으로 분석한다”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식의 완성도만 평가한다”고 했다.

블록이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의 다섯 가지 맛. “짜야 할 끼니 음식은 달고, 달아야 할 후식은 짜다”는 말을 이해하면 이 음식평론가의 예외적 문제의식을 알 수 있다. 미쉐린 별 받은 식당이 나왔다고 한식이 발전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장편으로 강렬한 조명 '딸의 생애'_소설가 김혜진

딸에 대하여

김혜진 장편소설|민음사|216쪽|1만3000원


여자로 태어나 늙어버린 자가 여자로 태어난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소설. 노숙자(‘중앙역’)나 3류 인터넷방송 진행자(‘어비’) 등 전작을 통해 세계와 불응하는 인간 속에서 사랑의 서사를 길어올려 온 소설가 김혜진(34)은 두 번째 장편으로 등단 5년 만에 가장 강렬한 조명을 받게 됐다.

동성애자 딸을 둔 어미의 1인칭 시점. 늙어 깨닫게 된 ‘삶을 지탱해주는 것’에 대한 신념은 딸에게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절규하게 하고, 그 외의 부질없음에 몸서리치게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저자는 복잡하지 않은 세대론을 구사해가며 지금 한국 사회를 조용히 폭로한다. 당연하게도 ‘여성’의 화두가 빠질 리 없다.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을 예감하는 생애. 아들이 아닌 딸의 생애. 소설은 발간 3개월 만에 판매 부수 3만 부를 넘겼다.



담담하고 정겨운 구멍가게 세밀화 추억 향기 솔솔_화가 이미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글·그림|남해의봄날|208쪽|1만7000원


편의점 혼밥 세대도, 구멍가게 세대도, 이 책에서 위로를 얻었다.

이미경(47) 작가는 구멍가게 그림 연작과 에세이를 엮은 첫 책으로 올해의 저자가 됐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둘째를 낳고 붓을 놓았다. 우연히 만난 구멍가게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했다. 펜으로 그린 세밀화이지만 구멍가게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만남과 소통을 상징하는 너른 평상, 빨간색 우체통, 아름드리나무를 꼭 함께 그렸다. 소박하고 정겨운 구멍가게 그림과 담담한 글로 풀어낸 본인 경험담은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게 했다. 윗세대에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는 “아이돌 앨범도 아닌데 주변에 선물하겠다며 이 책만 10권씩 사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한국을 따뜻하게 한 구멍가게에 영국 BBC방송도 주목했다. 책은 내년 중 프랑스·일본·대만에서도 번역 출간된다. 구멍가게의 온기는 지구촌으로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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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희 [2017.12.17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 축하해요~~!! 너무너무 멋지고 자랑스럽고 기쁘고 그러네!!! 만나서 밥먹어요. 제가 살께요. 축하밥!

  2. 맘썰렁 [2017.12.19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출판사들이 앞다퉈 책을 내고 싶어하는 작가! 은유 너무 멋진거 아녀?!

  3. [2018.03.29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상 안 받으셨어도
    은유 작가님은 제게 최고셨지만
    요런 상까지 받으신 거 보고
    암요 암요
    고개 격하게 끄덕입니다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특강 -11/10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촛불 1년, 광장의 민주주의를 청소년의 삶으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연속 특강

 

청소년 참정권 보장의 이슈부터 ‘학생인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까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준비한 연속특강에

어린이‧청소년 인권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2018년 지방선거는 청소년과 함께! 청소년 참정권이 바꿀 세상>
  11월 4일(토) 14:00 서울시NPO지원센터 1층 강당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청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누가 청소년을 괴물로 만드나> 
  11월 10일(금) 19:00 서울시NPO지원센터 1층 강당 
  은유 작가,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저자

 

<헌법이 말하는 학생인권, 학교에서 시작하는 민주주의!> 
  11월 13일(월) 19:00 서울시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 「헌법의 귀환」 저자


<혐오, 차별, 그리고 학교 - 아픔에서 길 찾기> 
  11월16일(목) 19:00 서울시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 참가신청 : https://goo.gl/Utv9Y1
자발적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별도의 참가비는 없지만 후원금 전액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에 쓰입니다.

 

★ 주최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 문의 : youthact2017@gmail.com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선거·정당관련법 개정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 △학생인권법 제정(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위한 입법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여나가기 위해 청소년/교육/인권/시민사회 단체들이 결의를 모아 결성한 연대체입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다음 세 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하나. “청소년을 시민으로!”: 청소년 참정권 보장 

 : 2018년 6월 13일에는 교육감, 시장・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지방선거가 열립니다. 이 선거를 청소년이 참여하는 첫 번째 선거로 만들기 위해 선거관련법 개정에 힘씁니다.

 

둘. “어린이․청소년인권법은 나라의 기본이다” : 어린이청소년인권법 제정

 : ‘아동(청소년)인권법’제정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합니다. 시민의 열망과 힘으로 어린이․청소년인권법이 올바로 제정될 수 있도록 합니다. 

 

셋. “학교는 민주공화국이(이어야 한)다” : 학생인권법 제정

 : 학생을 존엄한 인간과 시민으로 대접하고 민주주의가 실현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을 개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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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삐삐 [2017.11.11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님 안녕하세요? 서울인데요, 은유님이 준비하셔야할 행사가 정말 많아 보입니다. 더 시간의 부담을 드리는 대신 하시는 일들이 더욱 큰 의미가 되고 더더욱 에너지 충만하게 나가시길 기대하고 빌어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은-유 [2017.11.19 0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샘 서울 오셨군요. 제가 책 마무리랑 규슈 가는 일정 땜에 시간이 어렵겠어요. 마음의 여유가 안 생기네요. 다음에 서울 오실 때 귀띔해주세요. 맛난 음식 같이 먹어요. ^^

11월 11일 교하도서관 - 글쓰는 여자는 힘이 세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신청링크 : https://goo.gl/forms/jlmPVKrAArPrJQu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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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인터뷰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글자를 배우기 전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 리베카 솔닛이 처음 되고 싶었던 건 도서관 사서였다. 도서관은 일어났던 모든 일이 저장되어 기억되는 장소였고, 그 안에는 세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책이라는 보물 상자를 열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누구라도 될 수 있었고,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책과 한층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결국 그렇게 됐다. 

ⓒ시사IN 윤무영

솔닛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깊고 넓어서다. 때로 시 같기도 하고 때로 잠언 같기도 한 문장은 독자를 오래 책 속에 붙든다. 자전적인 이야기와 성찰에서 출발하는 글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비평을 잇고, 환경과 인간의 역사를 엮으며, 종내 사회와 정치에 대한 논평으로 밀고 나간다. 

여러 사상가와 작가의 문장을 재료로 삼지만, 솔닛의 글은 단단한 ‘현장’ 위에 서 있다. “내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가르쳐준 것은 네바다 핵실험장이다(영국 문예지 <화이트리뷰>, 2013년 인터뷰)”라고 할 만큼, 솔닛은 작가와 활동가라는 두 가지 역할을 충실히 살아왔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고,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부터 인권운동, 기후변화,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권 반환운동, 반전운동, 반핵운동의 현안에 참여해왔고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도 적극 가담했다. 2010년 미국의 대안 잡지 <유튼 리더>는 솔닛을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꼽기도 했다. 

솔닛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는 2008년에 찾아왔다. 미국의 독립언론 매체 <톰 디스패치>에 기고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라는 제목의 원고는 이전에 쓴 어떤 글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널리 퍼졌다. ‘맨스플레인(mansplain:man+explain)’은 2010년 <뉴욕타임스>가 꼽은 ‘올해의 단어’가 됐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도 등재됐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는 국내에서 3만 부가 넘게 팔렸다. 

신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와 개정 출판된 <어둠 속의 희망>(창비), <걷기의 인문학>(반비) 출간을 기념해 솔닛이 8월25일 4박5일 일정으로 처음 방한했다. 강연회를 연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신청자가 폭주했다. 애초 15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강연 장소를 준비했던 출판사는 800석 규모의 행사장을 다시 마련해야 했다. 최종 신청자는 1400명이 넘었다. 유료 행사 ‘페미데이’ 역시 일찌감치 마감됐다. 몇 년 전 방한한 마이클 샌델이나 슬라보예 지젝을 능가하는 대중 동원력이었다. 주요 매체가 강연 현장을 보도했다. ‘솔닛 현상’이라 부를 만했다. 

<시사IN>은 8월26일 서울 마포구 베스트웨스턴프리미어 서울가든호텔에서 리베카 솔닛을 만났다. 대담자로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서해문집),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 등을 쓴 은유 작가가 나섰다. 독립 연구자이자 에세이스트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여성의 글쓰기와 에세이에 대해 1시간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회견과 강연장에서는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시사IN 윤무영 8월26일 은유 작가(왼쪽)와 리베카 솔닛은 에세이스트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글쓰기와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은유:이번에 개정 출판된 <걷기의 인문학>에 “솔닛의 글쓰기를 훔치고 싶었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환경운동가·철학자·페미니스트·예술가 등 다양하고도 입체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계기가 있었나? 솔닛:이민 2세대(솔닛 어머니의 조부모는 아일랜드, 아버지의 부모는 러시아와 폴란드 국경지대 출신이다)이자 좌파 성향을 가진 가정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트로츠키주의자였고, 외할아버지는 아일랜드의 반식민혁명을 지지하셨다. 또 내 남동생은 사회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다(솔닛의 남동생인 데이비드 솔닛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던 시애틀에서 이른바 ‘시애틀 대첩’이라 불리는 반WTO 시위를 주도했다). 동생이 뉴스레터를 발간할 때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 이슈들이 얼마나 응급한지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됐다. 

은유:현장 기반의 공부가 글을 쓸 때 어떤 도움이 되었나? 솔닛:일단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를 말하고 싶다. 여성으로 산다는 일은 일상적으로 굉장히 많은 위협에 시달리는 일이다. 여성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또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나는 이를 일종의 시민권 문제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게 여성 이슈는 사적인 문제이니 그냥 이런 환경에 적응하라고 조언했다. 이를테면 좀 더 남자처럼 보이게 입어라, 아예 총을 사라, 호신술을 배워라, 생활수준이 높은 동네로 이사를 가라…. 남성 폭력이 만연한 환경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적응하라고 나에게 강요했다. 

은유:나는 가부장 사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에게 부여되는 많은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페미니즘 공부가 절로 됐다(웃음). 당신에게 부여된 다양한 역할이 있는데, 일과 공부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나? 솔닛:조카를 여럿 둔 고모로서 나 역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웃음). 남편이 없고, 아이가 없다는 게 시간을 절약해주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활동가나 작가로서 공적인 삶이 요구하는 것들이 늘어나다 보니 사적으로 연구를 하거나 공부하는 데 시간적으로 방해를 받기도 한다. 다행히 이번 방한 일정을 마치면 히말라야에서 머물 예정이다. 그런 시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은유:솔닛이 추구하는 인문학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성의 인문학과 어떻게 다른가? 솔닛:페미니즘의 근간이 되는 생각은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많은 가정폭력이나 차별 같은 불의한 일이 분리되고 구별함으로써 감춰지는데, 나는 그것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내 작업을 해왔다. 역사학자는 이거, 인류학자는 이거, 하는 식으로 각각의 학문 분야를 분리해서 보는 시각은 거부한다. 특정 분야에 국한되기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생태학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모든 것은 상호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위기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보수 이데올로기가 야기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빈곤의 문제는 사회나 경제 시스템과는 무관한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으로, 이 말대로라면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줄 필요가 없다. 고립주의적인 보수 이데올로기의 대립항으로 상호연결성, 의존성에 기반한 진보 진영의 사상이 인문학의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은유:한국에서는 논픽션이나 에세이를 낮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사사롭게 여긴다고 할까. 솔닛:미국에서도 논픽션이 비슷하게 폄하되는 측면이 있다. 시나 희곡, 소설은 고매한 문학인데 저널리즘은 쳐주지 않는 식으로. 그러나 지난 20여 년에 걸쳐 미국에서는 논픽션의 위상이 계속 올라간 측면이 있다. 

은유:솔닛의 영향인가?(웃음) 솔닛:전혀(웃음). 나는 사실 논픽션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데 마치 유색인종을 지칭할 때 논화이트(non-white, 백인이 아닌 사람)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픽션을 기준으로 하는 분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전이나 지도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논픽션이 세계를 소유하고, 픽션은 그 안에 있는 섬 아닌가? 나는 논픽션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은유:사람들이 나에게 ‘언제 소설 쓰냐?’ ‘시는 안 쓰냐?’라고 묻는다. 솔닛: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그렇게 묻는다. 그게 꼭 글쓰기가 오를 수 있는 정상인가? 되묻고 싶다. 

은유: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다’라고 했다. 어떤 독자가 당신의 방한 행사를 다녀와서 이런 후기를 남겼더라. ‘나에게 리베카 솔닛은 조지 오웰이 온 정도의 존재다.’ 솔닛:글을 쓸 때 ‘오웰이라면 어떻게 썼을까’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너무 감사한 평가다. 

은유:글쓰기 수업을 할 때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반비)을 꼭 넣는다. 에세이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굉장히 공감하는데, 남성들은 난감해한다. 이 감수성의 차이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솔닛:여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위주의 교육,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와 책을 접하게 되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콘텐츠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책을 쓸 때도 남성 독자에게도 꼭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멀고도 가까운>을 쓸 때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생각하거나 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건 논픽션에 대한 이야기와도 이어질 것 같은데,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과거에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나 성 소수자,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렇다. 논픽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겼던 체제나 현상을 깨뜨리는 증언을 담는 것이다. 

은유:<멀고도 가까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독자를 말하는 주체로 끌어낸다. 솔닛:그 부분이 내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했던 바다. 내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와 연결하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 

ⓒ민음사 제공 8월26일 민음사 주최로 열린 ‘페미데이’에 참석한 리베카 솔닛(마이크 든 이)이 ‘공적 공간을 걷는 여성의 역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은유:어머니가 딸에게 가하는 억압은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책에 나온 당신과 어머니 사이의 에피소드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과 어머니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아들은 곱셈이고, 딸은 나눗셈”이었던 경험 같은 것들이다. 

솔닛:<멀고도 가까운>은 내가 쓴 책 중 가장 여성주의적인 책인데, 서평 등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많이 읽히지 않았다는 게 흥미롭다. 최근에 한국에서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여성혐오를 페미니즘을 통해 극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는 여성으로서 남성보다 더 열등한 지위, 제대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고통받았지만 또 그걸 나에게 물려준 측면이 있다. 그게 내 지난 50여 년의 삶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극복되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머니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계와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게 됐고, 어머니와의 긍정적인 경험들도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 

은유: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걷기의 인문학>은 20년 전에 쓴 책이다. 새로 보낸 서문에 한국의 ‘촛불혁명’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솔닛:걷기의 힘을 볼 수 있는 사례는 역사에 고스란하다. 근간에는 아랍의 봄이 그랬고, 한국의 촛불혁명이 그렇다. 공적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증거다. 100만명이 물리적인 공간에 함께 모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걷기를 통해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 

은유:촛불집회는 공적인 감각을 몸에 새기는 경험이었다. 당신은 낙관적인 것 같은데, 광장에서 진보적인 구호를 외치고 현실에서는 보수적이고 위계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들처럼 민주주의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괴리가 생기더라. 솔닛:광장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평등을 경험했길 바란다. 이를 통해 위계질서를 거부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특히 가정의 영역에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이룬 경험이 사적 경험으로 스며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은유:싸워야 한다는 건가?(웃음) 솔닛:경험이 전염성을 갖기를 바라는 거다(웃음). 

은유:정권교체라는 큰 과제 앞에서 젠더 이슈는 뒷전이 된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여성혐오 발언이 나왔고, ‘해일 밀려오는데 조개 줍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남성중심성 앞에서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솔닛:미국에서 힐러리에 대해 사람들이 보여줬던 반응과 굉장히 유사하다. 물론 힐러리는 젠더와 무관한 이슈로 싫어할 만한 이유가 많이 있지만(웃음). 삼성의 이재용도 보자. 그 사람이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남성’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남성은 어떤 일을 저질렀을 때 모든 남성의 대표로 취급되지 않지만 여성 한 명의 잘못은 모든 여성의 잘못이 된다. 젠더를 기반으로 해서 여성 정치인에 대해 폄훼하고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트럼프는 가부장제의 모든 해악을 대표하는 존재로, 남성을 대표한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웃음).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줄리언 어산지를 보면서도 느끼지만, 사람들은 여성의 권리가 중요하긴 한데 다른 모든 것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는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 여성 이슈 중요하지. 근데 아직 너네 차례 아니니까 저 뒤에서 기다려.’ 이런 느낌이랄까? 가부장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싸워온 시간은 아직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은유:말씀하신 것처럼 여성은 계속 사적 존재, 보조적 구실로 취급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공적 자아에 대한 공포가 큰데 한국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공적 공간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솔닛:한국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한국 여성들은 지난 몇 년간 아주 훌륭한 일들을 해왔다. 노력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변화가 더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다. 여러분이 바꾸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래, 깊은 뿌리를 가진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남성에게 가정과 일을 다 건사하고 있느냐고, 잘하고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일·가정 양립’은 당연히 아내 몫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그런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이슈들을 계속 공론화하길 바란다.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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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이벤트 - 규슈의 가을을 걷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창간 10주년 기념 ‘함께 걷는 길-규슈올레 편’

규슈의 가을을 걷다

“나 자신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올레길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어 더 행복했어요.”
<시사IN>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진행 중인 ‘함께 걷는 길’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의 반응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행선지는 규슈올레. 광활한 대자연과 굴곡진 역사가 있는 그곳을 ‘은유 읽다’를 연재 중인 은유 작가와 함께 걸어 봅니다.
군함도 답사와 서경식 교수의 특강도 준비돼 있습니다

● 일시
2017년 11월23일~26일(3박4일)

● 프로그램

날짜세부일정식사
제1일
11월23일
07:20 인천국제공항 국제선 앞 미팅
09:35 인천국제공항 출발 
10:55 후쿠오카공항 도착, 입국 수속 후 사가현으로 이동
규슈올레 다케오코스 걷기(일부구간)
사세보로 이동, 석식 및 은유 작가와의 만남
HOTEL:사세보 파라다이스 가든 호텔 또는 동급(2인1실)
중:현지식
석:호텔식
(뷔페식)
제2일
11월24일
08:30 호텔 조식 후 히라도 이동
규슈올레 히라도코스 걷기(전 구간)
아리타 도자기 마을로 이동
우레시노 이동, 호텔 체크인 후 온천욕
HOTEL:우레시노 사쿠라 호텔 또는 동급(2인1실) 
조:호텔식
중:현지식
(도시락)
석:호텔식
(가이세키)
제3일
11월25일
08:30 호텔 조식 후 나가사키 이동
군함도(하시마) 배편 이동 및 답사
서경식 교수 특강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등 시내 답사
HOTEL:나가사키 도미인 호텔 또는 동급(2인1실)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제4일
11월26일
08:30 호텔 조식 후 후쿠오카현으로 이동
규슈올레 미야마·기요미즈데라코스 걷기(일부구간)
후쿠오카 시내로 이동, 자유시간
18:20 후쿠오카 공항 출발
20:05 인천국제공항 도착 및 해산
조:호텔식
중:현지식 

※ 상기 일정은 항공편 및 현지사정에 의해 변경 될 수 있습니다.
※부산 김해공항 출발/도착을 원하는 분은 신청시 메모란에 기재해주시기 바랍니다(문의 전화 02-3700-3284, event@sisain.kr). 부산 출발/도착 독자는 인솔자가 없으니 e-티켓을 보내드리면 개별적으로 발권을 진행한 뒤 후쿠오카로 이동 후 공항에서 합류해 주셔야 합니다. 부산 출발/도착도 참가비는 동일합니다.

● 참가비 
* 성인 139만원(<시사IN> 정기·후원독자 본인은 10% 할인, 125만원), 아동(만12세 미만) 119만원
※지금 <시사IN> 정기구독(1년 이상)을 신청하시면 신청 완료와 동시에 독자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참가신청 후 예약금(1인당 30만원) 입금이 확인되면 예약이 확정됩니다. 나머지 금액은 10월20일까지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입금은 신청자 이름으로 해주시고, 입금 계좌는 다음과 같습니다. 농협 301-0206-0861-11(유한회사 퐁낭) 
   예약금 입금과 동시에 여권사본을 이메일(event@sisain.kr) 또는 팩스(02-3700-3299)로 보내주십시오.

● 숙소
* 3박4일 전 일정 동안 호텔에서 숙박하게 됩니다.
* 호텔은 2인1실(성인)입니다. 
   어린이는 성인 2인과 같은방을 사용해야 합니다(엑스트라베드가 필요할 때는 미리 요청해 주십시오). 
* 호텔 1인실을 원할 경우 10만원(3박)의 추가요금이 발생합니다. 

● 참가인원
70명(선착순)

● 기타
* 출발 30일 전에 전자항공권, 예약 확정서 및 개인 준비물 안내사항을 메일 또는 팩스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 규슈의 11월말은 가을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입니다. 날씨가 비교적 온화하나 일교차가 심한 만큼 건강과 복장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규슈올레 구간에서는 7~14km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됩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분은 차량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 환불 규정
* 여행 개시 30일 전까지 통보시:계약금 환급
* 여행 개시 29일 전~20일 전 통보시:참가비 중 10% 제하고 환불
* 여행 개시 19일 전~10일 전 통보시:참가비 중 15% 제하고 환불
* 여행 개시 9일 전~8일 전 통보시:참가비 중 20% 제하고 환불
* 여행 개시 7일 전~1일 전 통보시:참가비 중 30% 제하고 환불
※항공권 발권 이후는 취소 수수료 200,000원이 발생합니다.
※상기 수수료율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른 것입니다(천재지변 등의 이유로 여행 출발이 취소될 경우에도 동일한 규정이 적용됩니다). 

■ 다른 궁금한 내용이 있는 분은 다음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전화 02-3700-3284, event@sisain.kr)

■ 이 프로그램은 (사)제주올레 및 예비 사회적기업 퐁낭과 함께 진행합니다. 예비 사회적기업 퐁낭 로고

● 함께 걷는 길 게스트 소개

은유(작가)

2011년부터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강좌를 시작했다.  
삶에 밀착한 글쓰기와 말하기로 독자층의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여성·청년·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을 위한 글쓰기 수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글쓰기의 최전선><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등을 썼으며, <시사IN>에 ‘은유 읽다’ 칼럼을 연재 중이다.

서경식(도쿄게이자이대 교수)

일본 교토에서 재일 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현재 도쿄게이자이대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젊은 시절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형 서준식과 서승의 구명 운동을 벌였으며, 
1990년대 이후로는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재일 조선인의 역사와 현실, 예술과 정치의 관계, 동아시아 평화 등을 화두로 글을 써 왔다. 

● 함께 걷는 길 코스 소개

# 다케오 코스

다케오는 사방을 에워싼 산들 속에 고요히 자리잡은 오래된 온천마을이다. 
수령 약 3000년의 신비하게 생긴 거대한 녹나무들과 오래된 역사를 지닌 온천들, 4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도자기 가마 90여 개가 있어 전통적인 풍광과 자연경관이 잘 어우러져 있다. 
올레길을 걸은 뒤 혁신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다케오도서관에서 자유시간을 갖는다. 
한국에도 이 도서관을 기획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이 번역·출간돼 있다.

# 히라도 코스

히라도는 이미 1500년부터 포루투갈, 네덜란드 등과의 상업적인 교역을 시작한 곳으로 ‘서쪽의 도읍’이라 불릴 만큼 풍요로운 과거를 지녔다. 
정갈한 히라도항에서 보이는 바다는 투명하고, 정박한 배들과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 위의 건물들은 새침한 소녀처럼 예쁘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으로 불린다는 가와치 언덕을 비롯해 천주교 성지, 절, 교회, 마을 등이 공존하는 이국적인 풍광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종점에서는 소박한 족욕탕이 올레꾼들을 기다린다.

# 군함도

일본명 하시마. 섬이 군함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처음부터 석탄을 채취하기 위해 개발됐다. 
1920년대 후반부터 석탄이 생산됐으며, 1940년경에는 그 생산량이 연간 40만여t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800여명의 조선인들이 이곳에서 배고픔과 위험에 처한 채 하루 12시간 동안 채탄 작업에 시달렸다. 
오랫동안 출입이 금지됐다가 2009년 이후 관광지로 개방됐다.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한국 등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 미야마·기요미즈데라 코스

미야마·기요미즈데라 코스는 일부러 설계한 듯 역사와 자연이 딱 맞게 안배된 코스다. 
특히 기요미즈데라절(淸水寺)로 가는 구간은 이 코스의 백미다. 
마을 사람 모두가 힘을 합해 만든 석조 다리 메가네바시를 지나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 기요미즈데라 혼보정원(淸水寺本坊庭園)이 나타난다. 
섬세함과 형식미를 자랑하는 일본 정원의 원형을 보여주는 정원이다. 
가을단풍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정원을 나서 기요미즈데라 절도 둘러본다. 오백나한(五百羅漢)이 기다리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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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17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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