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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셋> 옛사랑과 격한 100분 토론을 벌이다 오래전 주택복권이 나오던 시절, 인생역전을 노리며 매주 복권을 사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지갑에는 항상 1억 원 상당이 들어 있어." 틀린 말은 아니다. 결과를 보기 전까지 복권이 1억 원의 가치를 갖는 건 사실이니까. 내겐 사랑이 복권이다. 내 가슴에는 항상 운명적인 사랑이 들어 있다. 복권당첨을 소망하던 그처럼 난 사랑당첨을 꿈꿔왔다. 여러 숫자들의 우연한 배치가 복-돈이 되듯 다양한 감정이 운동하다가 충돌해서 불-꽃을 일으키는 거다. 일상에서든 영화에서든 소설에서든 상관없다. ‘사랑’ 그 자체, 그러니까 전무후무한 기념비적인 사랑을 보고팠다. 은 그런 나의 오래된 러브로망을 구현해준 억만금짜리 영화다. “기념비란 잠재적 사건을 현실화함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시킴, 즉 거기에 실체를 부여함이다...
조계사에서 촛불로 밝힌 明절 마지막 날 해마다 명절을 맞는 기분이 달라진다. 철부지 시절의 명절은 맛난 음식 많이 먹고 친척들도 만나고 며칠 연달아 놀 수 있는 축복된 날이었다. 게다가 설날엔 새뱃돈으로 지갑도 두둑해지니 얼마나 좋았는지. 결혼후에는 부엌지킴이가 되는 명절이 그닥 반갑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사는 한 감내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몸이 힘든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촌오빠가 죽고 오빠가 아프고 집안에 우환이 닥치면서 명절이 유쾌하지 않게 됐다. 가가호호 웃음꽃이 피는 (것처럼 보이는) 명절엔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명절은 집안에 아픈 사람없고 실업자도 없고 비혼자도 없는 무탈하고 단란한 가족에게만 '밝은 날'이란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후엔 더 최악이다. 최근 3-4년 동안 눈물의 명절..
심용식 소목장 - 우주로 통하는 '생각하는 문' 짜다 집이 사람이라면, 창호는 얼굴이다. 집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머무는 곳이 창호다. 어린 시절 수덕사에 드나들던 한 소년은 수덕사의 '얼굴'에 반해버렸다. 전통문살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그후 첫사랑의 얼굴을 가슴에 품듯 묵묵히 나뭇결을 쓰다듬고 깎으며 살아왔다. 그러길 40년,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그를 ‘장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바람세와 빛의 양, 사람의 성향까지 고려한 ‘생각하는 문’을 짜는 심용식 소목장의 얘기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소목장 심용식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빗발이 제법 세차다. 서울 도심에서 비가 내리면 고층 빌딩에 하늘이 잘리고 우산을 든 인파에 시야가 가려서 온통 발아래 흙탕물에만 신경이 간다. 하지만 한옥은 다르다. 북촌에 자리한 ‘청원산방’은 비..
<오르가즘의 기능> - 파시즘의 욕망, 욕망하는 파시즘 '오르가즘 능력'이란 단순히 성적 흥분의 절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장애 없이 생체 에너지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능력"을 말하고 이같은 결여가 어떻게 파시즘 등의 비인간적 체제에 동조하는 인간상을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한다. # 대중의 억압된 욕망을 유혹한 파시즘 ‘파시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파시즘이 일정한 외연과 내포를 가진 어떤 정신적 실체라는 전체를 함축한다. ‘정의의 정치학’이다. 그런데 파시즘은 하나가 아니다. 군사기계, 학교기계, 가족기계, 국가-민족기계, 소통기계, 연애-결혼기계 등 파시즘은 이 각각의 기계들의 계통 속에서 그 기계들이 생산하는 욕망들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파시즘의 특이성은 기존의 권주의 체제 (가족, 종교, 부르주아 국가)에 의해 억압된 성충동..
[친환경문구브랜드 공장] 친환경제품의 '촌티' 벗길래요 학창 시절, 학교 앞에는 문구점과 분식점이 나란히 있었다. 떡볶이로 육신을 살찌웠다면 편지지로 영혼의 허기를 달랬었다. 연습장·공책·수첩·메모지·필기도구 등 문구용품은 그저 구경만 해도 배가 불렀다. 반들반들한 하얀 종이는 뽀얀 김 모락모락 나는 쌀밥이었다. 끼니와 끼니를 잇대어 나이를 먹듯 종이와 종이를 채우며 자란 셈이다. 친환경 문구브랜드 '공장(gongjang)' 가는 길. 그래서 더 설렜다. 친환경 종이로 만든 공책은 어떤 느낌일까. '유기농 문방사우'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궁금했다. 하긴 유기농 식단과 유기농 의류가 이미 보급된 마당에 늦은 감이 있다 싶기도 했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8월의 태양을 이고 서울 합정동 주택가 골목을 돌아 '공장' 앞에 당도했다. 공장(工匠)은 '공방에서 물건을 만..
<문명속의 불만> 프로이트의 문명론 프로이트의 문명론은 흥미로운 주제였다. 무려 세 가지나. 금기의 내면화. 사회적 생산관계에 따른 욕망. 국가와 전쟁의 차이말살 동일화 기능까지. 수시로 자신을 피고인석에 앉혀놓고 심판하는 일을 즐기는 행위는 선천적 질병이다. 모두 같아질 것을 원하는 동질화의 사회를 '국가에 대항하는 성숙한 원시사회'로 되돌릴 방법은 무엇인가. 끝모를 부유함으로 최대의 가난을 경험하는 현대인들을 누가 이렇게 바보로 만들었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집단(합)심리학’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개인심리학일까? 그렇게 보인다. 프로이트는 집단의 다수성이 갖는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집단심리는 개인심리의 양적 확장에 불과하고, 사회적 본능은 개인본능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집단을 집합으로’ 이해하는 구조주의-..
안향미 최초여자야구선수 - 프로팀 '여직원'으로 입단 권유받기도 인생을 9회말 투아웃 이후에 비유하지만 그의 삶은 '1회 초'부터 드라마틱했다. 열두 살 나이에 남자들만의 리그에 진입했다. 모진 홀대와 시린 외로움을 견디며 야구를 배웠다. 세상은 매번 그에게 '삼진아웃'을 선언했지만 꿋꿋이 견딘 그는 한국 최초 여자야구단 창단이라는 통쾌한 홈런을 날렸다. 야구방망이가 지팡이로 바뀔 때까지 뛰고 싶다는, 여자야구팀 '선라이즈' 안향미 감독을 지난달 24일 만났다. "저희 팀이 남자 사회인야구단하고도 시합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저를 모르는 분은 없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줄은 몰랐어요." 꾸밈없는 성격과 소탈한 웃음이 금세 주위를 밝게 만든다. 사실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안향미' 이름 석 자 모르는 이가 없다. 한국 최초 여자야구선수로 널리 알려졌다...
<늑대인간> 세상을 바꾸는 힘 '동물-되기' '여자-되기' 프로이트에 따르면 정상인은 신경증, 분열증, 편집증을 조금씩 가진 사람이다. 내면을 억압하고 외부의 인식세계에 경도됐던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맑스주의자들은 편집증자였다.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분열증의 속성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한 단계 넘어서 밀고나갔을 때는 엄청난 변혁 에너지가 된다. 저마다 내면에 깃든 '무리본능' 에너지를 일깨워서 '동물-되기'로 승화시키기. 양자택일이 아니라 포함적 이접관계로 무수한 생성을 창조하기. 되기를 시도하자. 고양이가 되자. 쥐박이 없는 세상을 낳는 위대한 '여자-되기'를 권한다. 프로이트의 은 지독히 난해했다. 슈레버 박사의 사례도 어렵다. 신경증과 분열증의 사례분석을 '되기'의 생성에너지로 엮어내니 조금 소화가 되는 기분이다.-.- 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