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농성장에 가다

[사람사는세상]

 함께 글쓰기 공부하는 학인들과 <시와 육개장의 첫눈밤> 보내고 왔습니다. 

이어말하기 대회에 저 은유와 학인들이 참여해서 일인일시, 낭독하고 

손맛 좋은 학인이 육개장 끓이고 과일 챙겨와서 배불리 먹었습니다. 

사람 곁에 사람, 시 곁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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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삶의 입구

[글쓰기의 최전선]



시 낭독회 풍경을 기사로 써보세요.” 지난시간 돌발과제를 내주었다. 그랬더니 수업시간에 엄청 조용했다. 한 사람이 시를 낭독하고 소감을 발표할 때면 사각사각 볼펜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침묵을 깨는 말말말. 그렇게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당신에게 여행은 무엇이냐. 중저음으로 깔리는 물음들. 잔뜩 긴장한 표정들. 지금 청문회 아니니까 편하게 대화하라고 말하는데 웃음이 났다. 처음엔 다들 토시 하나 안 놓치고 열심히 적더니 나중엔 손놀림이 점점 느려졌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무척이나 기운 빠지는 일. 듣기도 어렵고 쓰기도 고되다. 나는 조심스레 예측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억의 편집은 저마다 다를 것이라고.

반만 맞았다. 의외로 대동소이한 글들. 예비작가들은 자기 육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일에 서툴렀다. 여행, 죽음, 학창시절 추억 등 스토리가 강렬한 에피소드, 즉 기억하기 쉬운 사례는 모두의 글에 빠짐없이 등재됐다. 시에 대한 인식변화 역시 공통으로 언급했다. 대학시절 보들레르와 랭보의 시를 읽었으나 해석하기 급급했고 기형도는 지적 허영같아 멀리했다는 정연씨. “처음 해 본 낭독회는 내가 미처 놓친 시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감정의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이 들려주는 고유한 풍경에 흠뻑 취해도 보고, 한편 스스로에게 감정을 이렇게 드러내도 괜찮다며 다독이는 그런 자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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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인 - 나의 시는 1.5인칭 공동체 언어다

[행복한인터뷰]

 

“사실 시를 쓰면서도 열심히 시를 읽지 않았어요. 당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친구가 저보다 시집을 많이 읽은 문학소녀였죠. 그 친구가 기형도 시집을 빌려주었어요. 그때 지하철 안에서 읽고 다녔죠. 꽤 여러 번 읽었어요. 그 이유가 뭐였냐 하면, 시집을 그 친구에게 돌려주면 바로 ’안녕’을 고할까 봐 ‘완독’을 미루고 있었던 거죠. 물론 그러는 와중에 빨리 돌려달라는 그 친구의 독촉 전화는 계속됐지만.(웃음) 그래서 아직 다 못 읽었다고 미루고 미루고 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결국 돌려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퇴짜 맞았죠.(웃음)”

                                        – 기형도 20주기 기념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 발간기념 좌담 중에서


남겨짐, 그 후 폐인되는 사람 있고 시인되는 사람 있다. 심보선은 시인이 됐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14년 만에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냈다. 문단에선 귀한 자리에 불러 마땅한 ‘2000년대 젊은 시인’이고 그를 사회학자로 아는 어느 네티즌에겐 ‘생각보다 유명한 시인’이며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슬픔의 자산가’(허윤진)이고 장모님에겐 ‘꽤나 진지한 태도의 시인’이며 유학시절 사회운동가 친구에겐 ‘한국에서 온 좌파 급진주의’이다. 시편의 자기진술을 보면 ‘지상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 지상을 태우고 남은 자’인 나는 ‘키 크고 잘생긴 회계사가 될 수도 있었던’ ‘크게 웃는 장남’이자 ‘해석자’이며 이따금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이고, 이 모든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껌처럼 쓰고 버린 시, 스물넷 시인의 탄생

시(詩)를 논하는 것은 신(神)을 논하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라고 일본의 시인 니시와키 준사부로는 말했다. 시인을 만나는 일도 못지않다. 한 때 신적인 지위였던 옛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반은 두렵고 반은 설레는 일이다. 어느 가을날 심보선 시인을 만났다. 아니, 시인과 마주하면 언제나 가을이다. 마침 그가 은행잎 빛깔의 상의를 입었다. 가슴팍이 노랗다. 몸에서 우수수 떨어진 말들이 낙엽이 된 걸까. 아주 고전적인 시인의 몽타주를 그리려는 순간 그가 붓을 슬며시 가져간다.

“시인이라고 하면 보헤미안 스타일에 가난하고 늘 반쯤 취해 있고 오타구적인 그런 모습을 생각하잖아요. 주위에 그런 시인 친구가 있긴 한데 저는 아니에요. 시인 중에는 드물게 정규직에 유학파이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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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시 - 막힌 것들을 뚫는 詩

[극장옆소극장]

나는 시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누구도 행복할 땐 시를 쓰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내가 살만할 땐 시를 읽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생이 막막할 때 삶에 지칠 때 처방전을 찾기 위해 시집을 편다. 톨스토이의 통찰대로 행복한 사람들의 이유는 대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 오만가지 상처의 사례가 시에 들어있다. 발생 가능한 사건과 충돌 가능한 감정이 정결한 언어로 상차림 돼있다. 시를 읽다 보면 생각이 가지런해지고 울렁증이 가라앉는다. 시라는 언어의 상찬 덕에 삶은 종종 견딜만해진다. 식탁위에 말라붙은 김칫국물도 생이 흘리고간 빨간 구두발자국이 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세계를 감각할 수 있으므로 고통도 충분히 아름답다. 시 안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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