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시를 쓰면서도 열심히 시를 읽지 않았어요. 당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친구가 저보다 시집을 많이 읽은 문학소녀였죠. 그 친구가 기형도 시집을 빌려주었어요. 그때 지하철 안에서 읽고 다녔죠. 꽤 여러 번 읽었어요. 그 이유가 뭐였냐 하면, 시집을 그 친구에게 돌려주면 바로 ’안녕’을 고할까 봐 ‘완독’을 미루고 있었던 거죠. 물론 그러는 와중에 빨리 돌려달라는 그 친구의 독촉 전화는 계속됐지만.(웃음) 그래서 아직 다 못 읽었다고 미루고 미루고 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결국 돌려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퇴짜 맞았죠.(웃음)”
– 기형도 20주기 기념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 발간기념 좌담 중에서
남겨짐, 그 후 폐인되는 사람 있고 시인되는 사람 있다. 심보선은 시인이 됐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14년 만에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냈다. 문단에선 귀한 자리에 불러 마땅한 ‘2000년대 젊은 시인’이고 그를 사회학자로 아는 어느 네티즌에겐 ‘생각보다 유명한 시인’이며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슬픔의 자산가’(허윤진)이고 장모님에겐 ‘꽤나 진지한 태도의 시인’이며 유학시절 사회운동가 친구에겐 ‘한국에서 온 좌파 급진주의’이다. 시편의 자기진술을 보면 ‘지상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 지상을 태우고 남은 자’인 나는 ‘키 크고 잘생긴 회계사가 될 수도 있었던’ ‘크게 웃는 장남’이자 ‘해석자’이며 이따금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이고, 이 모든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껌처럼 쓰고 버린 시, 스물넷 시인의 탄생
시(詩)를 논하는 것은 신(神)을 논하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라고 일본의 시인 니시와키 준사부로는 말했다. 시인을 만나는 일도 못지않다. 한 때 신적인 지위였던 옛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반은 두렵고 반은 설레는 일이다. 어느 가을날 심보선 시인을 만났다. 아니, 시인과 마주하면 언제나 가을이다. 마침 그가 은행잎 빛깔의 상의를 입었다. 가슴팍이 노랗다. 몸에서 우수수 떨어진 말들이 낙엽이 된 걸까. 아주 고전적인 시인의 몽타주를 그리려는 순간 그가 붓을 슬며시 가져간다.
“시인이라고 하면 보헤미안 스타일에 가난하고 늘 반쯤 취해 있고 오타구적인 그런 모습을 생각하잖아요. 주위에 그런 시인 친구가 있긴 한데 저는 아니에요. 시인 중에는 드물게 정규직에 유학파이고…(웃음)”
그는 컬럼비아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쳤고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있다. 날 때부터 시인도 아니었다. 학창시절 12년간 글짓기대회 수상경력, 문예반 활동경력이 전무하다. 글재주가 남다르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국어과목 여선생님을 좋아했는데 그 선생님이 아끼는 아이가 글을 잘 썼다. 그 아이가 선생님과 각별했다. 부러웠다. 질투는 나의 힘. 밤마다 일기장에 시를 썼다. 시 쓰기에는 나약한 저항의 뜻도 서렸다. “나는 너희들이 원하는 공부를 하는 척 하지만 아니다. 나는 백일몽에 빠져있다.”
저항하다 투항했다. 시에 매료됐다. 사회학도는 빈 강의실에서 시어를 찾아 헤맸다. 군대에서도 틈틈이 시를 지었다. 청춘의 낙서. 시가 낭자하게 적힌 노트를 고참이 훔쳐보았다. 재능 있으니 잘 써보라 격려했다. 문학하는 선배였다. 난생 처음 구체적인 작품평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자신감에 복받쳐 군대에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낙방했다. 아무려나 감성은 물올랐다. “시가 잘 써지고 시가 재밌었다.” 스물넷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풍경>으로 등단했다. 그간 쓴 습작을 애지중지 모아두지 않았다. 시편들일랑 ‘껌처럼 씹고 버렸다.’ 성장기 앨범에 빛바랜 상장도 책상머리에 수북이 쌓아둔 원고뭉치도 없이, 시인이 탄생했다.
詩, 기괴한 리얼리티 만들기
“소설가는 일정한 시간 책상에 앉아서 노동하듯이 일정량씩 글을 쓰던데 시인은 아니에요. 책상에 앉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요. 평소에 메모를 하긴 하죠. 일상에서 스치는 이미지와 느낌들. 영화 자막에서 묘한 느낌이 들어 시를 쓰거나, 스포츠 중계를 보다가 영감을 받기도 하고, 길거리 고양이, 개 등등. 어떤 말들이 흩뿌려져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백지에 옮겨놓았을 때 시가 되는 거 같아요.”
그 느낌의 쇄도들. 일상적 삶은 경이로운 시적 주제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그것들을 재료로 시를 제작한다. 시인은 말을 사물처럼 다룬다. 마치 화가가 물감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정념” 그 정념에 대응하는 말들을 찾아서 감각의 질량을 달고 어순의 배치를 바꿔 논리 외부의 세계를 만든다. 이는 하나의 기괴한 리얼리티를 짓는 일이다. ‘가출도 아니고 출가도 아니다/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집이 점점 멀어져갈 따름이다’ 와 같은.
“다른 시선, 다른 감각, 다른 추구. 그걸 통해 일상 속에서 내가 있을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하는 거예요. 그것은 만들어지는 순간 공적인 지평에 나오게 돼요. 엄밀히 말하면 더 이상 내 말이 아닌 거죠. 그래서 시는, 제가 시를 쓸 때 관객을 의식하지는 않지만 관객과 관계를 맺는 ‘비밀의 나눔’인 거죠.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소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타인들의 비밀과 내 비밀이 연결되고 감응되는 사건을 통해서 말이에요.”
‘비밀의 나눔’은 모리스 블랑쇼가 공동체를 설명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블랑쇼는 “가장 개인적인 것은 한 사람이 간직한 자신만의 비밀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개인이라는 테두리를 부수고 나눔을 요구하며, 나아가 나눔 자체로 긍정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무런 비밀도 가질 수 없기에 더욱 비밀스러워지는 것. 이는 시의 본령이자 심보선의 시학이다. ‘유일무이해지는 동시에 비밀이 되는 것, 이것이 비천한 자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일 아니겠는가’
불안한 두 인류의 사랑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는 연애시가 별사탕처럼 박혀있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시인의 애정변천사는 어떻게 시어로 빛을 얻는가. 사실 그의 시인-되기를 촉발한 국어선생님과 기형도 시집을 빌려줬던 그녀만 해도 애틋한 인연이다. 국어 공부하던 교실, 시집 읽던 지하철은 ‘그(녀)에게 구조당하고 싶어 폭설 내리는 내 마음의 알프스’였으리. 감각의 모공이 활짝 열리고 사랑이 혈관을 타고 맹렬하게 흐르던 시절, 그 활성화된 정념들, 허나 그것은 한 번도 시가 되지 않았다.
“옛날엔 연애시를 안 썼거든요. 근데 어느 날부터 제가 사랑시를 쓰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연애를 하던 안 하던 사랑 얘기를 해요. 누군가를 부르고 찾고 누군가를 통해 세상과 접속하려고 하죠. 매개자를 통할 때 나는 더 고독해질 수 있고 나는 독자적인 완결적 존재가 아니고 언제나 누구를 통해서만 ‘나’이니까요. <한낮의 어둠>이란 소설은 인간과 인류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 물어요. 저는 누구를 통해서만, 사랑을 통해서만 인류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지시하는 연애-사랑. 그것은 달달한 연애담이 아니다. 세계내적인 존재들의 만남이다. 사랑은 나와 너라는 개체의 사건이 아니고 “불안한 두 인류의 일이다” 너 없으면 못 산다고 말하지만 둘이서 천국을 건설할 수 없다. 그 불안을 짊어지고 사랑하는 것. 초연해질 순 없겠지만 나는 누구인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추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연애, “우리 얘기를 하면서도 우리보다 더 큰 얘기를 하고 있고 자극을 주고 상대의 어깨 너머 인류를 봐라 얘기해주는 그런 사랑”
삼십대에 ‘기적처럼 일어났던 사랑’을 살아낸 그는 또한 안다. 사랑은 사랑 안에서 가장 모자라고 충만할 때조차 불안하다는 것을. 그러나 어찌하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가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사랑 시는, 인간은 기침하고 슬픈 존재다. 그래도 껴안을 수밖에 없구나 말해야죠. 고전에 나오는 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개인의 내적 상처를 보편적인 의미로 승화시키기 때문이잖아요.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거리 두기가 중요해요. 나만 특별한 양 하지 않으려고 해요. 감정에 대해 솔직하되 인식에는 정확하자. 김행숙 시인이 1.5인칭이라고 표현했는데 “내 얘길 하되, 나를 드러내지는 말자” 이 흔들림, 긴장을 유지하는 게 제겐 중요한 싸움이에요.”
노선 상실한 1.5인칭 시인, 시랑 놀다
60년대 복판에서 김수영이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라고 노래했다면 80년대를 통과한 심보선은 ‘노선을 잃었다/버스 노선과 정치적 노선/둘 다’라고 혁명의 불발을 애도한다. 그의 시에는 치열한 이념과 투쟁의 웅웅거림이 없다. 큰 비 내린 후 상실의 흔적이 패어있는 그곳을 응시하는 껌뻑거림이 있을 뿐이다. 물웅덩이에 비친 구름과 안개의 모양을 탐구하는 ‘흐린날씨파’ 시인은 중얼거린다. ‘깃발, 조국, 사창가, 유년의 골목길/ 내가 믿었던 혁명은 결코 오지 않으리/ 차라리 모호한 휴일의 일기예보를 믿겠네’
물론 그도 한 때는 민중시를 써보았다. 잘 안 써졌다. 충분히 투신하지 않은 탓이라 여겼다. 항상 투쟁의 무리에 들어있었지만 노래할 때 같이 따라하지 못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거기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거리에 있음보다 거기에 있음 ‘환상과 지식이 만나면 고통 뿐’일지라도 “불편하지만 거기 있음이 중요했다.” 이러한 삶의 형식은 슬픔의 몰적지층화를 피하고 슬픔의 가시거리 확보를 가능케 했다.
요즘 그는 새로운 실험에 도전한다. 사람들이 시를 맘대로 읽고 시로 놀고 시의 소유권이 사라지는 그런 실험과 기획들. 일명 시의 경계 해체하기. 웹사이트 som.saii.or.kr/ymp에서 진행된다. 제목이 YOU.MIX.POEM 시인들의 시구 40개가 남녀노소의 음성으로 녹음돼 있고 계곡물소리, 공항소리, 버스 안 소리 등 다양한 음악샘플이 올라와 있다. 각자 배경 음악을 고르고 목소리를 선택해서 마음대로 시구의 행을 잇고 연을 갈라서 한편의 시를 만드는 것이다.
“관심 있는 건 장소들, 시나 책을 읽는 사적 장소와 공적 장소를 충돌시키는 것이에요. 사유재에서 공공재로 바뀌는 전환이자 작품을 쓰는 것과 동시에 작품이 아닌 게 되죠. 저의 문제의식은 시가 만들어지고 읽히는 지금의 사회적 맥락, 좋은 시인이나 좋은 작품이 유통 소비되는 출판시장이나 문학상, 블로거들의 교양을 넘어서는 ‘장’에 대한 관심이지요.
사람들이 시에 대해 갖고 있는 향수나 로망, 그걸로 현대시는 살아가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타락해도 시는 타락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들을 하죠. 시의 위상이 라이프스타일의 장식물로 변해가죠. 과거 황지우의 반시적 기획들이나 해체주의적 기획들이 문단의 제도적 관행 속으로 들어갔지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실험들 그 의미 있음의 연장에서 이뤄지는 일이죠. 시의 무용, 시의 무화 이런 기획들을, 아직 막연하지만 만들어 가는 중이에요.”
시는 공동체의 언어다
시가 쓸모없어지는 지점에서 시의 유토피아를 찾는 심보선. 또 하나의 꿈은 ‘공동체’이다. 시로 할 수 있는 공동체란 무엇일까. 설명에 앞서 그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으로 집단이 만들어진 것, 즉 “노동자와 시인, 문학과 혁명이 만난 것은 허구였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학적 추구와 혁명적 추구가 극적으로 만난 지점이지만, 그건 시의 온전한 독자적 힘이 아니라는 얘기다.
“제 시를 읽는 독자와 연대할 수 있을까요? 그들도 취향이나 교양으로 저의 시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일조했죠. 왠지 멜랑콜리 하고 야릇하고 우수에 젖으며 (웃음) 그런 부분이 제 시에 들어있으니까요. 그런 독자가 공동체 구성원일까? 개인주의 아닐까? 그들이 개인주의자가 되는 순간이 궁금해요. 만약 공동체를 만든다면 현재 노선이 네 개인 거죠. 문단의 추구와 나의 추구, 그리고 독자의 추구와 소비의 추구”
그가 종이위에 평행선 두 쌍을 나란히 그었다. 나는 문단이 인정하고 상을 주더라도 문단에 포섭되지 않을 것. 독자는 유혹당하더라도 불안한 소비로 함몰되지 않을 것. 그렇게 문단과 소비에서 최대한 거리를 확보한 두 개체 심보선과 독자가 다시 하나의 평행선으로 엮임. 이것이 그가 구상하는 공동체이다.
“우리 삶엔 문단이나 소비같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어떤 목적들이 있죠. 이데올로기나 이해관계에 종속이 되면 그 쪽으로 쉽게 넘어가요. 그런데 이데올로기나 목표에 못 가게 하는 결들이나 힘들이 있거든요. 그게 아까 말한 ‘비밀’이에요. 비밀에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걸 느꼈을 때 그 힘이 사람을 경계인으로 만드는 거죠. 한발 짝 더 들어가면 목적에 종속되고 더 밖으로 나가면 개인이 되니까, 그런 긴장을 안고 경계에선 사람들, 비밀 있음이 공동체가 되겠지요.”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첫 번째 시 [슬픔의 진화]에서 그는 고요히 외친다. ‘나에게 벼락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이 시적긴장은 뒷표지글까지 아스라이 이어진다. 삶의 자리로써 모서리를 수용하고 배회하는 그. 투쟁하기를 멈추는 순간 낙하하는 지점에서 위험한 삶의 비밀을 엿보고 시로 짓는다.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 없는 자들의 공동체의 언어”가 되길 꿈꾼다. 아마 심보선의 두 번째 시집은 1.5인칭 공동체로 이끄는 모서리에의 초대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