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 4장 - 잠언과 간주곡

[니체의답안지]

4장은 짧은 잠언으로 이뤄졌다. 맥락에서 걸어 나온 한줄 문장을 해석하는 건 위험하고 부질없다. 그래도. 울림을 남기는 좋은 문장을 읽고 나누는 일은 아름답고 유용하다.   

65.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 안다는 것은 나의 무지와 편견과 빈구석을 아는 것. 그 손발 오글거리는 쪽팔림을 견디는 것. 자기를 알아가는 투쟁. 그것을 인식의 매력으로 표현하다니 니체는 대인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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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3장 종교적인 것 - 금욕의 두 가지 버전

[니체의답안지]

어디선가 신보다 신앙이 먼저 생겼다는 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같은 맥락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보다 종교적인 것이 문제라고. 신의 죽음으로 종교는 사라졌지만 종교적인 것은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는 것, 즉 우리시대에는 도덕, 과학 등이 ‘신 없는 신앙’으로 종교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비판이다. 종교적인 것의 어떤 부분이 문제이냐 하면 희생, 금욕 같은 것들의 강조이다. 삶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위한 삶이 되는 가치전도.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모든 자유와 긍지, 모든 정신의 자기 확실성을 바치는 희생이다. 동시에 이는 노예가 되는 것이며 자기 조소이자 자기 훼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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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2장 - 독립, 가장 위험한 놀이

[니체의답안지]

니체는 심리학자가 아닐까. 니체의 저서를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파헤치고 짚어내고 들춰내는 거침없음에 놀라고, 강자부터 약자까지 그가 제시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상에 ‘맞아’ ‘아, 그랬지’ 맞장구를 치게 된다. 니체가 높이 평가하는 고귀한 인간에게는 ‘고독’과 ‘독립’이라는 필연적 수사가 붙는다. 고독을 모르는 인간, 독립이 안 된 인간을 ‘평균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선악의 저편 2장 ‘자유정신’은 새로운 철학자의 도래에 대한 니체의 간절한 염원이 읽힌다. 그가 제시하는 고귀한 인간상의 유형 몇 가지만 살펴보자.

<정원 같은 사람>

“정원 같은 사람 - 또는 하루가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저녁 무렵 물 위를 흐르는 음악 같은 사람이- 그대 주위에 있도록 하라: 멋진 고독을,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여전히 잘 사는 권리를 부여하는 자유롭고 변덕스러우며 경쾌한 고독을 선택하라!”

니체의 풍류가 깃든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문장. 풍류와 유머가 공존하는 니체. 사랑스럽다. 정원 같은 사람이 뭘까. 향기로움. 아름다움. 어우러짐. 순간적임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아마도 기화요초 피어난 정원처럼 내면에 다양한 아름다운 충동이 자라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독립적인 인간>

“독립한다는 것은 극소수 사람의 문제이다.” 독립은 강자의 특권이다. 독립적인 인간은 자발적으로 “미궁”으로 들어가며 “삶 자체가 이미 동반하고 있는 위험을 천배나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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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1장 - 정지의 철학 vs 운동의 철학

[니체의답안지]

니체를 오랜만에 읽었다. 첫 장을 읽자 다시금 당혹감이 덮쳤다. 어? 니체가 뭐래?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질 때까지 두어 번을 읽어봐야 한다. 이 대목이 시방 비판인지 옹호인지 조차 분간이 쉽지 않다. 그것은 ‘습관화된 가치 감정’이 피부처럼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니체는 ‘진리를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진리를 의심하라고 “삶의 조건으로 비진리를 용인하라”고 말한다. 또 고통을 피해야할 그 무엇으로 여기는 ‘평균인’의 태도를 비판하는데 니체가 볼 때 진리만큼이나 거짓, 행복이상으로 고통 등이 삶에서 가치와 쓰임을 갖기 때문이다. 니체는 진리처럼 주장되어 온 것들을 모두 파헤쳐 보면 단순한 맹목이나 독단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아주 근엄하고 단정적인 냄새를 풍긴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겉보기에만 그런 것이고, 사실은 온갖 미숙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까지 독단론자들이 구축해 놓은 철학적 건물들이 실제로는 정말로 빈약한 것들이라는 사실이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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