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힐 수 없는 공동체 - 쌍용차조합원 죽음을 애도하며

[비포선셋책방]

얼마 전 쌍용차 노조원이 임씨가 죽었다. 13번째 사망자다. 쌍용차 사태 당시 1년 후 복직이라는 약속을 받고 무급자로 있던 조합원이 ‘차일피일 복직을 기다리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더 안타까운 사연은, 이 노동자의 아내가 지난해 4월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둘 있다. 고2아들과 중3 딸. 부모가 일 년 사이 잇달아 세상을 등졌다.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이다. 졸지에 고아가 된 충격도 크겠지만 지난 2년간 부모의 피폐한 처지를 겪어내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쌍용차 노조원 부부 죽음의 사연연이 전해지면서 모금이 전해진다고 한다. 공지영씨가 500만원 보내고 정혜신 전문의가 아이들 상담치료를 지원한다고 기사가 났다. 나도 일단 소액이지만 돈을 보탰다. 송금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돈으로 해결하고는 알량한 부채감을 털어버리고 잊을까봐 걱정이다. 십시일반 물심양면 아이들을 도우는 게 중요하지만, 일시적 관심에 그치면 아이들은 더 외로울 거다. 가난의 대물림, 고통의 대물림, 소외의 대물림이 자명한 상황.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방법은 좋은 이웃들과 삶이 오밀조밀 엮이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의 모금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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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공간 - 카프카와 작품의 요구

[비포선셋책방]

모리스 블랑쇼가 누구냐. '쓴다는 것은 매혹이 위협하는 고독의 긍정으로 들어서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다. 더없이 클래식한 표현. 왠지 프랑스에서 태어나 걸음마 떼면서부터 철학을 시작하여 문청을 거쳐 사상가로 깊은 주름을 만들어낸 프렌치코트 깃 세운 노신사가 떠오른다. 맞다. 1907년에 태어나서 2003년에 돌아가셨으니 참 오래 사셨다. 철학과 문학비평 등등 작품이 많다. <문학의 공간>이 주저서로 알려졌다. 그 책을 넘기면 '철학책'스러운 관념어들이 나열돼 있다. 본질적 고독, 문학의 공간, 작품과 떠도는 말, 릴케와 죽음의 요구, 영감, 문학과 근원적 경험 등등. 예상대로 읽기가 수월치 않다. 강밀도가 높다. 그러니 고급수제초콜릿처럼 한번에 읽어치우지 말고 혀에 품고 녹여야한다. 글을 눈에 바르고 있으면 풍미가 느껴진다. 시 같은 책이다. 단숨에 안 읽히는 도도함에 은근히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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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인 - 나의 시는 1.5인칭 공동체 언어다

[행복한인터뷰]

 

“사실 시를 쓰면서도 열심히 시를 읽지 않았어요. 당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친구가 저보다 시집을 많이 읽은 문학소녀였죠. 그 친구가 기형도 시집을 빌려주었어요. 그때 지하철 안에서 읽고 다녔죠. 꽤 여러 번 읽었어요. 그 이유가 뭐였냐 하면, 시집을 그 친구에게 돌려주면 바로 ’안녕’을 고할까 봐 ‘완독’을 미루고 있었던 거죠. 물론 그러는 와중에 빨리 돌려달라는 그 친구의 독촉 전화는 계속됐지만.(웃음) 그래서 아직 다 못 읽었다고 미루고 미루고 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결국 돌려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퇴짜 맞았죠.(웃음)”

                                        – 기형도 20주기 기념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 발간기념 좌담 중에서


남겨짐, 그 후 폐인되는 사람 있고 시인되는 사람 있다. 심보선은 시인이 됐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14년 만에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냈다. 문단에선 귀한 자리에 불러 마땅한 ‘2000년대 젊은 시인’이고 그를 사회학자로 아는 어느 네티즌에겐 ‘생각보다 유명한 시인’이며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슬픔의 자산가’(허윤진)이고 장모님에겐 ‘꽤나 진지한 태도의 시인’이며 유학시절 사회운동가 친구에겐 ‘한국에서 온 좌파 급진주의’이다. 시편의 자기진술을 보면 ‘지상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 지상을 태우고 남은 자’인 나는 ‘키 크고 잘생긴 회계사가 될 수도 있었던’ ‘크게 웃는 장남’이자 ‘해석자’이며 이따금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이고, 이 모든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껌처럼 쓰고 버린 시, 스물넷 시인의 탄생

시(詩)를 논하는 것은 신(神)을 논하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라고 일본의 시인 니시와키 준사부로는 말했다. 시인을 만나는 일도 못지않다. 한 때 신적인 지위였던 옛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반은 두렵고 반은 설레는 일이다. 어느 가을날 심보선 시인을 만났다. 아니, 시인과 마주하면 언제나 가을이다. 마침 그가 은행잎 빛깔의 상의를 입었다. 가슴팍이 노랗다. 몸에서 우수수 떨어진 말들이 낙엽이 된 걸까. 아주 고전적인 시인의 몽타주를 그리려는 순간 그가 붓을 슬며시 가져간다.

“시인이라고 하면 보헤미안 스타일에 가난하고 늘 반쯤 취해 있고 오타구적인 그런 모습을 생각하잖아요. 주위에 그런 시인 친구가 있긴 한데 저는 아니에요. 시인 중에는 드물게 정규직에 유학파이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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