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공동체, 누가 왜 무엇을 읽는가

[올드걸의시집]

1.

“완전 다른 시집이야. 혼자 읽을 때와는 다른 시집이라니까” 시세미나 끝나고 나오는 길, 한 친구가 들떠서 중얼거렸다. 나도 그랬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세미나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달랐다. 낮이 밤으로 바뀌는 동안 여럿이 모여 시를 읽고 나면 어둡던 시집은 환해지고 모난 가슴은 둥글게 부푼다. 마른 장작 같이 뻣뻣하던 시집이 분홍빛 솜사탕처럼 끈끈하게 몸에 엉긴다. 좀처럼 속내를 보여주지 않던 그 쌀쌀맞은 시집이 갑자기 얼마나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지. 마치 등 돌리던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미소 짓는 것처럼 그만 설움이 일시에 녹아버리곤 했다. 그러니까 시세미나로 인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나는’(한용운)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다. 2011년 10월 15일부터 폭염 작열하던 2012년 8월 4일에도, 매주 토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그랬다. 그렇게 가을에서 겨울, 겨울에서 봄, 봄에서 여름까지 서른일곱 권의 시집과 네 번의 계절을 보냈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 기형도

2.

시세미나를 만든 계기는 글쓰기수업이다. 언어감각을 기르고 수사법을 배우기 위해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교재로 넣었다. 좋은 시를 한 편 고르고 느낌을 한 쪽 적어오라고 했다. 수업시간이 되었고 20여 명이 저마다 삶의 경험에 비추어 ‘시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느리게 촘촘히 흐르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수줍고 소박한 그 말들이 그저 겨웠다. 그날 밤 나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미처 말해주지 않은 ‘영원히 닫힌 빈방’의 시적진실을 보아버린 것 같았다. 수년간 하도 읽어서 귀퉁이가 닳아버린 시집이었건만 부끄럽게도 처음 발견하는 시구도 있었다. 거기에는 내 편협한 삶이 가닿지 못해 놓쳐버린 구절들만 있는 게 아니라 합당한 언어를 찾지 못한 나의 감정도 잠복해있었다. 그 낯선 혼란, 묘한 흥분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함께 시를 읽은 동료들도 ‘수능 끝나고 처음 시를 읽은 감격’과 ‘감수성 주체’로 거듭난 설렘을 터놓았다. 바로 이거다! 말이 회복되면 삶도 회복될 것 같았다. 한번 가보고 싶었다. 시에게로. 시를 관통한 나에게로.

시는 가장 혁명적인 혁명이면서 동시에 가장 보수적인 계시인데,

그 이유는 원초적인 말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옥타비오 파스

3.

‘만인을 위한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부제를 차용하여 만인을 위한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시간으로 세미나를 잡았다. 토요일 오후 6시. (잠재적) 임노동자에게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그 감질 나는 ‘가처분 시간’은 가족과 보내거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취미 혹은 친교활동을 하거나 하릴없이 빈둥거리거나 크고 작은 집회 참가에 쓰인다. 자본을 욕망하든 자본에 저항하든, 이 꽉 짜인 코드시스템의 한복판에서 버젓이 시를 읽고 팠다. 교양이나 취미가 아니라 가장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시를 읽을 동지를 구한 것이다. 예상보다 호응이 컸다. 내가 아끼는 시를 모은 시즌1 ‘올드걸의 시집’과 여성의 시인들 작품으로 추린 시즌2 ‘여자의 시집’은 매주 열댓 명이 모이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위기는 시즌3 ‘미래파의 시집’에서 찾아왔다. 난해한 표현과 시제와 인칭을 이탈한 시어들. 그 불친절함과 난해함을 견디지 못하고 시벗들이 하나 둘 세미나를 떠났다. 미래파를 시작하면서 최악의 경우 나 홀로 일인세미나를 할 각오로 임했지만 막상 토요일 6시 즈음 결석통보문자가 쌓이는 날이면 몹시도 서글펐다. 급기야 두 개 붙였던 책상을 치우고 책상 하나에 다섯 명이 세미나를 할 때는, 휴관일 날 해 떨어진 고궁의 담벼락처럼, 나는 쓸쓸했다.

시의 감수성은 잘 살아가는 사람의 감수성이 아니라,

늘 지워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사람의 감수성이다. – 황현산

4.

이 시대에 누가 시를 읽는가. 일주일에 시집 한 권 읽는 일이 읽지 않은 것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읽는다. 초면에 학번과 전공과 주민증을 공개하지 않고도 서로를 알아가는 호기심 넘치는 사람들이 읽는다. 돈 얘기, 집 얘기, 자식 얘기, 교육 얘기, 연예인 얘기, 스펙 얘기가 아닌 시담(詩談)만으로 다 큰 어른들이 서너 시간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일에 적응하는 이들이 읽는다. 시집 어딘가에 숨겨진 진실 하나 찾아내어 확대하고 비틀어보는 놀이에 도취된 사람들이 읽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애인이 없어 토요일이 헐렁한 사람들이 읽는다. 정리하자면, 이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이단아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밖에서 끊긴 길을 안에서 다시 이으려고 읽는다. 현재 시세미나는 파도처럼 들고 나는 이들 속에서 나름의 단란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어딜 가나 주인 아니면 노예의 자리에 끼워질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만난 수평적 인연들. 문학 전공자, 국어교사, 공공미술가, 소설가 지망생, 전시기획자, 비정규직 노동자, 생협활동가, 데이트생활자 등이 시적공동체라는 뿌듯함으로 함께 한다. 8월 11일부터 시즌4 심연의 시집을 읽을 예정이다.

시는 그것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랑을 받아내는 그릇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 이성복

5.

시가 왜 좋은지 조금씩 배워가면서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황현산의 말대로 ‘시는 소란한 현실 위에 걸리게 될 예쁘고 평화로운 액자도 아니었고, 삶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찾아가는 망명지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음악과 커피도 해준다. 시는 대체 불가능한 그 무엇. ‘잘 표현된 불행’이다. 사람은 고통을 못 참는 게 아니라 이유 없는 고통을 못 참는다. 이별을 당하고 나서 왜 헤어졌는지 이유나 알자고 매달리는 절규에는 거짓이 없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하더라도 그 아픔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위로가 된다. 세상에는 시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불행이 있고, 그 불행의 자리는 누추하다. 그것을 가지런히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그걸 시가 해준다. 그렇게 어둠의 뿌리까지 내려간 불행의 자리는 타자가 들어서는 순수의 자리가 된다.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삶의 윤리이기도 하다. 시가 어려운 이유는 ‘시의 비유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내밀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을 기억한다. 누군가 ‘삶의 총체’에서 비롯된 불행이 그리 쉽게 이해된다는 것은 임의로 단순화시켜버리는 폭력일 것이다. 지금 나는 『백석 시집』을 붙들고 있다. 단어 하나 하나 넘어가기가 어렵다. 한 번도 쉬운 시집은 없었다. 한 사람의 사유와 감각의 속도와 결을 맞추는 일은 참 고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낯선 시와 교섭하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일이 순조롭다면 또 가능하다면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이룰 수는 없었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말대로 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시로 인해 늘 많은 것을 배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절망이 있을지 모르지

 

* 시세미나 소개+단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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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미나_말들의 풍경_시즌3_ 미래의 시집

[올드걸의시집]

"시 세미나 쉬니까 좋아? (싫어?)"

 

세미나 하던 친구들과 통화할 일 생기면 다짜고짜 물어보게 됩니다.

이 무슨 투정인지 앙탈인지 모르겠습니다. 저것은 특정 반응을 유독하는 전형적인 닫힌 질문아니겠습니까.ㅋ   

다행스럽게 "시 세미나 없으니까 일주일이 힘들어요. 위로받을 데가 없어서요." 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바람도리님도 댓글로 말씀하셨네요. 시 세미나 없는 토요일이 허전하다고요.^^

 

우리는 그저 아름다운 시어들과 소소하고 자질구레한 느낌들을 나누었을 뿐인데

그 말들의 풍경이 영적구원과 은총의 시간이 되었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시즌1 올드걸의 시집, 시즌2 여자의 시집에서 총 26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시즌3은 미래의 시집  '아무도 가본적 없는 도시에 서다' 시집 10권과 편집시집, 평론집 각1권씩 12권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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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파는 2000년대 이후 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을 일컫는 말로

시인이자 평론가인 권혁웅씨가 그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인칭과 시제초월, 극단의 상상력이 가득한 실험시의 향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걱정이 앞섭니다.  

사실, 저는 미래파 시를 찬찬히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눈에 안들어와서요. (물리적인 노안만 있는 게 아님)

그래서 같이 공부하면서 읽고자합니다.

 

시즌3은 시읽기_중급반 진행방식으로!

이전까지는 시 한편 고르고 느낌을 생각만 해왔다면 이번부터는  

각자 시 한편 고르고 느낌이나 해석을 곁들여서 A4 한장으로 정리해오세요.

인터넷이나 책에서 자료를 찾아오셔도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면 됩니다.

 

>> 첫 시인은 미래파 핵심당원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 5월 12일 오후 6시. 수유너머R 세미나실

>> 회비 15000원 챙겨주시고요. 

>> 간식은 서로가 시벗들을 위해 조금씩 준비해오기로 해요.

 

 

 

시즌3. 미래의 시집 아무도 가본적 없는 도시에 서다

 

1

2012.5.12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2

2012.5.19

김행숙

이별의 능력

 

 

3

2012.5.26

김언

소설을 쓰자

 

 

4

2012.6.2

이민하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5

2012.6.9

장석원

아나키스트

 

 

6

2012.6.16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7

2012.6.23

오은

호텔 타셀의 돼지들

 

 

8

2012.6.30

황병승

트랙과 별판의 별

 

 

9

2012.7.7

김이듬

말할 수 없는 애인

 

 

10

2012.7.14

권혁웅

마징가계보학

 

 

11

2012.7.21

서동욱

거대한 뿌리여 기괴한 청년들이여

 

 

12

2012.7.28

함도균

예외들

*평론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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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 시즌2 '여자의 시집'에 초대합니다

[올드걸의시집]

시를 읽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시를 읽으면 왜 좋은 것일까.  이유를 모른 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이국의 언어처럼 막막한 그것들을 저마다의 경험과 입김을 통해 더듬더듬 번역하였습니다.
시어 하나 하나, 한 행 한 행을 우리는 풀어나갔고 시 한편으로 세상이 환해지는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이 가는 사이 시즌 1 '올드걸의 시집'이 끝났습니다. 열 세권을 시집을 읽었지요. 
그 과정에서 알았습니다. 시는 약자의 언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억압의 결을 섬세하게 살려낸 고운 언어!
지배언어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현실과 감성을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써내려간 기록이, 바로 시였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위로받았나봅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누가 내 머릿 속에서 오래 멈춰 있던 현을 고르고 있다'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시즌 2에서는 '여자의 시집'을 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육아집중기를 거치면서 폭풍고독에 시달릴 때 달디단 술처럼 원샷드링킹하던;; 시편입니다.
여자라서 싫다기보다 여자의 몫으로 주어지는 일들이 싫었고 그렇다고 남자가 되고싶다기보다 
그냥 인간이어서는 안 되고 항상 여자 아니면 남자이어야 하는 게 갑갑하고 원통했던 날들.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어떤 '여백'을 만들어낸 여자-시인들 시집 12권을 골랐습니다. 

이 시적인  '애이불비의 연대'에 함께 하실 분들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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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음악이 난무하던 성탄의 밤

[올드걸의시집]


어느 한 해 성탄절이
음악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 생은 복되다, 주머니에 손 넣고 만지작거릴 추억이 있으니까. 20111224일 자정을 보내며 든 생각입니다. 예고했던 대로 말들의 풍경성탄특집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뭉근한 촛불처럼 한들한들, 흥겨운 캐롤처럼 왁작지껄, 시와 음악이 난무하고 말과 웃음이 교통하는 시간이었죠. 고종석이 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신구라고 말했는데 살짝 정정하고 싶군요. 시는 세상에서 가장 센티멘털한 놀이라고요. 이날 세미나의 공식명칭은 '말들의 풍경 : 시적인 것의 추구에요. 시를 읽은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 널린 시적인 울림을 주는 노랫말이나 글을 가져오기로 했지요. 약간의 음식도요. 아래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 음향담당; 몽월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음악 제공)
- 사진담당; 한준
- 기타연주; 안단테
- 스페셜게스트; 송성복 (명운의 반려자)
- 파티메뉴; 케이크, 칠레산 와인2, 맥주와 음료, 절편, 영양떡, 고급쿠키, 제주감귤, 양념치킨, 고구마 구이 등등.
- 시 낭독; 혜진, 명운, 화이트, 은미, 한준, 안단테, 은유, 몽월, 은재, 소영, 현민, 단단, 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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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담(詩談)

[차오르는말들]

손가락 사이로 물 빠지듯 흘렁흘렁 지나가는 시간. 책 몇장 뒤적거리고 설거지 삼세탕하고 나면 훌쩍 지나가버리는 하루. 그렇게 이틀, 사흘, 나흘...사는 일이 다 그렇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포기가 안 되는 시간과의 싸움. 왠지모를 억울함과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는데 그래도 시 세미나를 하니까 하루는 온전히 내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습다. 논문발표도 아니고 그저 시 한 편씩 돌아가면서 낭독하고 느낌을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말 한두마디 더 얹는 일이 전부다. 이 시 왜 이렇게 어려워요. 글쎄 말이에요. 이게 맞나요? 저게 아닐까요? 정답 뜯긴 문제집을 푸는 아이들처럼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시세미나 제목에 걸맞는 '말들의 풍경'이다. 꽤나 수런거리는.   

시 세미나의 여운이 한 이틀은 간다. 감흥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스카이프에서 추장을 만났다. 추장은 문학동아리에 가담했었고 '시'이야기로 담소가 가능한 동료다. 지금 뉴욕에 체류중인데 날마다 99%집회 참가해서 글 쓰기 바쁘다. 출국 전, 사람들이 왜 하필 물가도 비싼 뉴욕이냐고 물었을 때 호기롭게 말했었다.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자본주의 망하는 걸 좀 보고 와야겠다'고. 누구도 믿지 않았다. 올초만 해도 어떤 조짐도 없었다. 그래서 허경영 공약처럼 황당해서 유쾌하게 들리던 선언. 그런데 반자본의 외침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주 편집회의할 때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더니, 하늘이 알아서 세팅을 다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며 월스트리트 상황을 보고하던 그다.
 
은: 집회 댕겨왔어요?
고: 어제 폭풍 일정이 있어서 집회는 못 갔어요.
은: 그랬군요. 어제 저는 시세미나 -오규원했어요.
고: 아, 오규원... 예전에 길거리 풍경... 오규원 맞나? 헷갈리네. 어떻든 좋아했던 것 같은데...ㅎㅎ
은: 시세미나 완전 대박이에요. 개인적으로 폭풍감동!! 고추장한테 고마워요. 나를 수유너머로 인도해줘서.ㅎㅎ
고: 웬... 셀프 감동
은: 뭐든 셀프하고 삽니다.ㅋ
은: 수유너머 처음 오는 분들이 많아서 놀라요.
고: 그래요? 좋은 징조네요.
은: 네!! 좋은 징조죠. 다 알토란 같은 분들. 이 시대에 시를 읽겠다고 나오니..ㅋㅋ
고: 잘 하면 시가 수유너머R을 구원하겠는데요...ㅎㅎ
은: 시는 원래 인류를 구하는 사명을 띠었죠. ㅎㅎ

이런저런 수다로 흘러가다가 추장이 말했다. 우리가 편하게 있는 거라고. 낮에 발리바르랑 스피박, 피터오스본, 해리하루투니언을 만나고 밤에는 지진 후 상황을 알리려, 말 그대로 여기저기 호소하러 다니는 운동가들, 지식인들을 만났단다. 가난뱅이 역습의 저자 마츠모토 하지메, 현대사상의 전설적 편집자 이케가미 요시히코, 그리고 지난 지에잇 때만난 활동가들. 근데 이케가미씨 말은 정말 벼락이 치는 느낌이었다고.  대략 추려보면. 지금 일본 사람들 정말 힘들지만 대단한 싸움을 하고 있다. 어제 미국인 학자 한 사람이 이번 원전사태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원전 없이 지금의 삶이 유지될 수 있을가 의심한다고 하자 이케가미 선생의 답변은 이랬단다.

"앞으로 2-30년간 아이들이 앓게 될 암이라든가, 하는 병들... 자신들이 4-50년대 반원전싸움에서 패배하지만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60년이 지나 다시 싸우게 되었다고...우리는 이미 지금 원전 없이 살고 있다고. 지금 원전 몇 기를 대중들 힘으로 중지시켰대요. 원전은 없어도 된다고. 밤에 좀 어두우면 뭐가 어떠냐교. 전기기기 안 쓰면 뭐가 어떠냐고. 지금 일본 사람들은 그런 걸로 고민하지 않는다고. 문제는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아이들이 앞으로 앓게될 여러 병들... 먹는 것, 숨쉬는 것, 마시는 것... 이것 때문에 갖게 될 삶에 대한 두려움들 그런 거라고... / 멋있었어요. 아마 낮에 본 학자들은 '원전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주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하고 자빠졌겠지만... 이케가미 선생은 한마디로 결연하게 말했죠. 그런 건 문제도 안 된다고." 

오규원이 시로 담아낸 두려움. 자본에 잠식당한 삶에 대한 성찰. 다르지 않았다. 너무도 같았다. 먹는 것, 숨쉬는 것, 마시는 것에 대한 오규원과 이케가미 선생의 감각 말이다. 세미나에서 탐구대상이 됐던 시구. "사람을 찾아오는 길 하나 / 불치의 병처럼 갈 줄 모른다" (시인 구보씨의 일일 14) 이부분이 떠올랐다. 우리가 어떤 길을 찾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길이 사람을 찾아온다고 시인은 말한다. 언뜻 이해가 쉽진 않았다. 그런데 원전으로 오염되고 4대강으로 파헤쳐진 길이 우리 앞에 찾아와버린 현실이 자각됐다. 그 길은 불치의 병처럼 갈 줄 모르고, 사람들은 길에서 투병중이다.

희희락락 수다 떨다가 허리가 곧추 세워졌다. 할일 많은 세상. 가슴이 먹먹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의 물음. 하고싶은 일, 하던 일 밖에 할수 없을 뿐인데 국가 혁명 자본을 넘나드는 말 쓴 자신이 부끄럽다고 큰 슬로건은 자제할 거라고 추장은 말했다. 난 현실에서 작동하는 언어를 쓰는 건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생활캠페인처럼 내주변부터 바꿔보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슬로건을 접지 않겠다고 했다. 이 남루하고 둔감한 세상. 말이라도 아름답고 당당하게 쓰고 싶은 거다. 나도 안다. 우리가 무슨 혁명동맹도 아니고, 연구실의 일상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단조롭다. 콩나물 머리를 뜯고 설거지를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고 커피 한모금 마시고 회의하고 때로 싸우고 때로 웃고. 책 몇장이랑 시 한쪽 읽는 게 전부다.

그런데 그게 또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오며가며 마주치는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생각이 다른 옆자리 동료와 화내지 않고 마음의 결을 맞추고 끼니 거르지 않고 밥 챙겨먹고 커피를 음미하고 상형문자 같은 시인의 말을 헤아리는 일이 말이다. 대충대충의 유혹이 꼬리친다. 그러니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겠지만, 또 원리상 나를 제대로 바꾸면 세상은 저절로 바뀌는 거다. 광장으로 뛰쳐나가기는 쉬워도 일상을 지키기는 어렵고 고백하기는 쉬워도 그대로 있어주기는 어렵다. 시세미나 폭풍감동을 시작으로 원전을 거쳐 R의 나아갈바를 모색했던 토킹어바웃의 결론은 이렇다. "대충하지는 말자. 작게할 지언정" 




   장필순 '그대로 있어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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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 세미나 - 말들의 풍경

[올드걸의시집]


 
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시가 쌓입니다. 이 삶을 다시 살고 싶다고 후회할 때 시가 다가옵니다. 시집에는 어김없이 얼굴이 누워있습니다. 인연이 매개한 ‘말들의 풍경’은 그대로 세상 읽기의 독본입니다. 반려생물처럼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동안은 사는 일이 쓸쓸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불온한 언어는 정신의 성냥불을 확 긋기도 합니다. 그러니 시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황동규)이며, 추위를 이겨내는 입김(김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시가 필요한 시절, 그리고 계절. 같이 둘러 앉아 시를 낭독하고 느낌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 10월 15일 토요일 6시부터 
-  반장: 은유 016-233-8781 
- 회비: 월 15000원 (수유너머R의 모든 세미나 참가 가능)
- 함께 하실 분은 수유너머R 홈페이지 - 세미나 게시판에 댓글로 성함과 연락처 남겨주세요!

 *  시즌1. 올드걸의 시집 -  '사람 사이에 시가 있다. 그 시를 읽고싶다'
: 우선은 제가 좋아하는 시집으로 골랐습니다. 시즌별로 시평론 한권 끼워읽습니다. 

 

•<김수영전집1> 김수영, 민음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오규원, 문학과지성사
•<잎 속의 검은 입> 기형도, 문학과지성사
•<북치는 소년> 김종삼, 민음사
•<가재미> 문태준, 문학과지성사
•<게 눈 속의 연꽃> 황지우, 문학과지성사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문학과지성사
•<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민음사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김경주, 랜덤하우스
•<슬픔이 없는 십오초>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앵무새의 혀> 김현 엮음, 문학과지성사
•<젊은 시인들의 상상풍경/말들의 풍경> 김현문학전집, 문학과지성사
 

 * 시즌2. 여자의 시집 -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원한다'
: 최승자, 고정희, 김혜순, 허수경, 김선우, 나희덕, 최영미, 진은영, 김행숙, 김민정 (추후 공지)

 

수유너머R이 10월 1일 삼선동(성신여대입구역/보문역)으로 이사갑니다. 멋진 카페와 세미나실이 갖춰진 새로운 공간! 시 읽기 좋은 곳이죠. 어제 도배와 페인트 칠하고 왔습니다~ '페인트의 신'이라 불리우는 사나이의 모습에 감탄하는 사진ㅎㅎ  이제 공부만 하면 됩니다^^ 시 읽고 싶은 분들 오세요. 현재 생각은 매주 50권 정도 읽고싶습니다. 일년동안 시를 읽으면 피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합니다. ㅋ 강의 아니고 세미나이므로 여유롭게 임하면 됩니다.
(신청은 수유너머R 게시판 http://commune-r.net/xe/?document_srl=18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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