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주 - 이백

[올드걸의시집]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 하였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황하 강물은 하늘에서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廻 분류도해불부회   바삐 흘러 바다로 가서는 다시 못 옴을

又不見 우불견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명경비백발   고당명경에 비친 백발의 슬픔

朝如靑絲暮如雪 조여청사모여설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었다지

人生得意須盡환 인생득의수진환   쁨이 있으면 마음껏 즐겨야지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금잔에 공연히 달빛만 채우려나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준 재능은 쓰여질 날 있을 테고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재물은 다 써져도 다시 돌아올 것을

烹羊宰牛且爲樂 팽양재우차위락   양은 삶고 소는 저며 즐겁게 놀아보세!

會須一飮三百杯 회수일음삼백배   술을 마시려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岑夫子,丹丘生 잠부자,단구생   잠부자, 그리고 단구생이여

將進酒,君莫停 장진주,군막정   술을 마시게, 잔을 쉬지 마시게

與君歌一曲 여군가일곡  그대들 위해 노래 한 곡하리니

請君爲我側耳聽 청군위아측이청   모쪼록 내 노래를 들어주시게

鍾鼎玉帛不足貴 종정옥백부족귀   보배니 부귀가 무어 귀한가

但願長醉不願醒 단원장취불원성   그저 마냥 취해 깨고 싶지 않을 뿐

古來賢達皆寂莫 고래현달개적막   옛부터 현자 달인이 모두 적막하였거니와

惟有飮者留其名 유유음자유기명  다만, 마시는 자 이름을 남기리라.

陳王昔日宴平樂 진왕석일연평락   진왕은 평락전에 연회를 베풀고,

斗酒十千恣歡謔 두주십천자환학   한 말 술, 만금에 사 호탕하게 즐겼노라

主人何爲言少錢 주인하위언소전   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적다 말하겠나

且須沽酒對君酌 차수고주대군작   당장 술을 사와 그대들께 권하리라

五花馬,千金구 오화마,천금구   귀한 오색 말과 천금의 모피 옷을

呼兒將出換美酒 호아장출환미주   아이 시켜 좋은 술과 바꾸어오게 하여

與爾同銷萬古愁 여이동소만고수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녹이리라.


9월 둘째주 금요일. 씨네큐브에서 조조로 <우리 선희>를 봤다. 술집-거리-여관을 순회하는 홍상수 영화 장소의 룰을 벗어나지 않는 영화. 단, 이번영화에는 여관신이 없고 대신에 술집이 지루할 정도로 길게 오래 나온다. 주인공들이 소주 혹은 맥주를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시다가 장면이 바뀌면 소주나 맥주 너댓병이 테이블을 채우곤 한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술병을 보는 것만으로도 취기가 오르는 특이한 현상은 홍상수 영화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꼭 낮술을 마신 것처럼 어질하다. (태)양의 기운이 승할 때 알콜로 몸에 열이 오르면, 음양의 조화가 깨져 더 취하는 법이라고 들었다. 홍상수 영화의 낮술효과도 그래서 생기나보다. 태양만큼 센 스크린의 빛에, 주인공들의 쉴새 없는 말들에, 테이블의 술병에 취하지 아니할 수 없는 거다. 

여기서 핵심은 말들인데, 말들이 꽤 지리하고 지독하다. 이자리 저자리 이사람 저사람 사이를 떠돌면서 공회전 되는 말들은 겨우 봉합해 놓은 일상계를 툭 건든다. 체면이나 허위, 가상 같은 어떤 '척'으로 유지되는 일상계의 허술한 틈이 드러난고 할까. 존재를 이루는 것들 또한 어찌나 엉성한지. 나는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까, 난데 없는 질문에 빠져든다. 극장을 나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맥주 일병을 시켰다. "홍상수 영화 보면 괜히 찔리더라.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두나두"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홀짝홀짝 마셨다. 우리는 대개 도덕적으로 단죄할 만한 사건을 저지르고 살지는 않지만 개운치 않는 일들과 말들은 많이 양산하면서 산다. 그건 일종의 앙큼함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엉뚱한 욕심을 부리거나 깜찍하게 분수에 넘치는 데가 있다는 뜻. '앙큼하다'의 수위와 빈도조절이 안 되면 곤란하니까, 자기를 타자화할 수 있는 홍상수를 주기적으로 봐야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생활의 발견>의 명대사를 떠올린다. "우리 사람되는 거 힘들어.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밥 먹고 나오니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후드득 떨어진다. 원래는 연구실에 정수샘한테 영어과외 받으러 간다고 했는데, 문득 내가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될 일이다. 문필하청업으로 맡은 일이 있는데 여름 내내 원고 붙들고 씨름하다가 전날 초고를 넘겼던 참이다. 아주 그냥, 좀, 지긋지긋했다. 일하고 공부하고 밥하고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놀고 싶어졌다. 충동적 인간답게 결심했다. 예전에 일하던 사무실에 놀러가야지. 처마 끝에서 비 떨어지는 소리 들으면 낮술 한 잔 더 해야지. 주간님한테 문자했더니 "막걸리랑 양상추가 입장료"라고 답이 왔다. 친근한 체부동 골목길을 구불구불 통과해 사무실에 갔다. 주간님 지인도 "비가 와서 마음이 동했다"며 술 한잔 하러 와 있었다. 같이 논어공부모임 하는 '김선생님'이라고 한다. 우연한 회동. 주간님은 전날 시청앞 팔도장터에서 산 멍게젓과 양상추, 두부부침, 김치전을 빛의 속도로 내오셨다. 주간님, 김선생님, 나, 후배. 넷이서 푸짐한 안주를 놓고 막걸리를 마셨다. 흥취가 오르자 김선생님이 '적벽부'를 원문 암송하셨다. 그 장강처럼 긴 시를. 요상야릇한 중국어 발음. 처음엔 웃겼다가 나중엔 뭉클했다. 다시 한국말로 번역해서 읊어주셨기 때문이다. 

시가 시의 꼬리를 물었다. 전날 글쓰기수업에서 '이성복'시 암송대회를 했는데 나는 그 때 읽은 시를 낭독했다. 김춘수의 시 '품을 줄이게'와 '소년' 서정주와 두보와 이백의 시를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해가면서 낭독했다. 바비킴의 노래를 듣다가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도 듣고 김수철의 못다핀 꽃 한송이도 들었다. 풍류의 치달음. 나는 저녁에 약속이 있던 친구를 사무실로 불렀다. "너도 그냥 여기 와서 같이 놀자." 늦게 합류한 친구가 자기를 소개한다. "저는 페미니스트예요." 하하. 생뚱맞고 웃겼다. 그 페미니스트는 대낮부터 술마신 우리와 '흥트러블'이 생길까봐 독주를 복용해가면서 진도를 맞추고 같이 막걸리를 마시며 흥취를 누렸다. 김선생님이 이번에는 이백의 '장진주'를 원문과-한글로 낭독해주셨다. '마신다면 모름지기 삼백잔이지'라는 문장에 우리는 감동했다. 그 장대한 스케일의 미학. 홍상수 영화의 술병은 기껏해야 삼십잔 일텐데, 술도 아니구나 싶었다. 김선생님은 조선이 오백년을 간 이유는 풍류를 즐겼기 때문이라며, 삶에서 풍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새 낮이 밤으로 바뀌고 비는 그쳤다. 혈관에 막걸리가 흐르는 것 같았다. 사무실을 나와 골목을 도니, 이상의 '제비다방'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돈가스살롱'이 생겼다. 아뿔싸. 그 자리는 이상의 생가인데 그걸 유지하지 못하고 흔해 빠진 돈가스집에 자리를 내어주었을까. 잡식성 자본주의. 탐욕스런 자본주의에 화가 났다. 시인 이상은 인간에 대해 누설하는 시를 쓴 몇 안 되는 귀한 시인인데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이리도 홀대를 받는다. 자본주의와 시적인 삶은 상극일까. 속상한 노릇이다. 주간님이 술자리에서 예전부터 꼭 내고싶었던 책이 있다고 했다. 체사레 파베세의 일기<삶이라는 직업>이다. 자기평가와 자기심문의 기나긴 연재물로 꼽히는 명저다. 내가 애정하는 책 <거대한 고독>(나중에 알고 보니 주간님이 현대문학에 있을 때 만든 책이었다)을 읽으면서 나도 그 책이 꼭 갖고 싶었는데 아직 국내에는 출판된 게 없었다. 주간님도 자본주의에 어울리는 인간형이 아니라 지성, 풍류, 감각 다 되는데 돈이 없다. 아니, 징하게도 돈 안 되는 책만 원한다. 한옥에서 음악 듣고 시 읊고 술 마실 때는 좋았는데 문밖으로 나오니까 흥이 스르르 깬다. 내남없고 안팎없는 풍류의 순환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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