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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기억,기록

슬픔 주체로 살아가기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었다. 이 책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인 소설가 평론가의 글 모음집이다. 우리는 돌아가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도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내용을 진은영 시인이 자신의 글에 인용했다. 이 대목을 한 학인이 읽었다. 세월호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그러했던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학인은 황정은의 ‘가까스로, 인간’의 일부를 읽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지이잉 떨려왔다. 이 대목이 자기 얘기라서 뜨끔했다는 이십대 후반인 그는 낭독을 마치고 마저 훌쩍였다.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뗐다. 자기는 이제 ‘어른들은 왜 그래요’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가해자 덩어리에 어느새 속해 있더라고. 그게 슬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대안학교 교사인 한 학인은 아이들과 ‘그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1년이 지났는데 뭐가 달라졌느냐고 학생들이 물을 때 또 다시 응답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 봄을 견뎌야할 것이라고 글을 써왔다. 

갑작스레 찾아든 봄볕에 마음 설레는 3월 토요일 오후 2시 우리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양심의 침몰, 느낌의 침몰을 고백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가닿았다. 유가족이 일상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대신 싸워야 한다고 누군가 주장했다. 남의 아픔을 어떻게 대신 싸우느냐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다른 이가 조심스레 고개 저었다. 수업 후 한 학인이 후기를 남겼다. 세월호 1주기에 어디서 이렇게 가슴속 깊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꺼내놓고 슬퍼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 공부가 우리를 우리답게 하네요, 라고. 나 역시 글을 읽고 말을 나눠 후련하게 슬픔을 흘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존재의 편안한 열림을 경험했다. 

다시 야속한 시간이 흘렀다. 세월호 2주기를 보내고 지난여름, 글쓰기 수업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다. 학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구동성 말했다. 책은 진즉에 사두었지만 못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었다고. 그동안 왜 못(안)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마음이 아플까봐 두려워서”라고 했다. 책을 읽고난 후 우리는 또 말을 나눴다. “지하철에서 읽는데 눈물이 쏟아져서 혼났다. 창피한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휴지를 옆에 놓고 읽었다. 읽을 땐 마음이 아팠는데 읽고나니 이상하게 힘이 났다.”고 고백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상황에 두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 실천력에 자신도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전 첫 조카가 태어났다는 한 학인은 이런 글을 써왔다. 

“이렇게 축복으로 태어났을 295명의 아이들이, 한날 한시에 사망했다...그리고 현재까지 9명은 실종상태다. (...)책을 통해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눈물은 주룩 주룩 흘렀고,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 슬픔은 유가족의 슬픔이었고, 부끄러움은 세월호 뉴스 자체를 외면했던, 침묵하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는 이어 책을 펼쳐 자신의 마음을 찌르고 생각을 다잡아준 서문의 일부를 낭독했다. 

“부모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외면했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진실을 통렬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부모들이 평범한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회의 문제를 외면할 때 결국 화살이 돌아오는 곳은 자기 자신이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침묵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날도 눈물로 어룽진 수업을 마쳤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매주 한권씩 다양한 책을 읽지만 세월호 관련 책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앞서 학인들이 고백했듯이 ‘마음이 아플까봐’ 묶어두었던 감정을 허락한다. 이러한 풍경을 겪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면 왜 안 되는가. 우리는 왜 평소에 마음 놓고 슬퍼하지 못할까. 슬퍼하는 시간은 왜 금지당하는가.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 모아두었던 슬픔을 방류해야 하는가. 

그것은 애도의 시간이 생산의 시간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슬픔에 잠겨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해한다. 그러나 슬퍼하는 건 중노동이다. 슬픔이 과하면 탈진한다. 그 엄청난 감정-정서-육체 노동에 임하면서도 그것은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 되지 못하고 교환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들에 할애하는 시간은 그저 쓸모없는 낭비일 뿐이므로 그렇다. 

그렇게 온전한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이기에 슬픈 일이 자꾸만 생기고, 슬픈 일이 자꾸만 생기는데도 그 슬픔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해서, 슬픈 일이 끝나지 않고 있구나 생각하는 사이 세월호 천일이 지났다. 봄이 오면 세월호 3주기다. 
그날들에 나는 또 잠시 일상에 틈을 내어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주어졌다고 안도하고 자족하지 않기 위해서,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슬픔과 일상을 분리하지 않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이 세월호 천일 이후를 살아갈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다.



# 2017년 1월 이음책방 304낭독회에서 읽은 글

(위 글에는 <글쓰기의 최전선>에 있는 일부 내용 포함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