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은유칼럼]


나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중3 초에 그 학교를 알게 됐고 '공부 잘해야 가는 학교' '취업 명문'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가까스로 합격했고, 잠실에서 무악재까지 왕복 서너 시간 등하굣길을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다. 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일찌감치 따두었고 2학년 올라가서 5월에 국내 최대의 증권회사로 취업이 결정됐다. 그때부터 책 보고 시 베껴 쓰고 음악 듣고 학교 건물 뒤편 우애동산에서 낙엽 주우면서 한량처럼 놀았다. 금융권에서 여직원은 여상출신이 대부분이었는데, 여상 중에서도 서울여상 출신인 나는 어딜 가나 대접받고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기죽을 일이 없었다. 


고졸의 불편을 느낀 건 결혼할 때였다. 시가에서 노골적으로 내 학력을 문제 삼았다. 2세를 생각하면 엄마 머리가 좋아야한다면서 '그래도' 서울여상이니까 용납한다는 식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 또래의 엄마들과 교분이 생겼다. 남편이 목동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갔고 그 동네 평균 학력이 높다보니 난 또 불편을 겪었다. "00 엄마는 몇 학번이야?" 유모차 밀다가 벤치에 앉아서 말문을 트면 그런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냥 멋쩍게 "고등학교 나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뭔가 서로 민망했다. 속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덜 무안한 대답의 몇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고등학교만 나왔어요.' '고졸이에요. '대학 안 다녔어요.' '대학 안 나왔어요.' ' '여상 나왔어요.' '서울여상 나왔어요.' 그 어느 것도 상황이 산뜻하지 않았고 어딘가 구차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범함.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말대로,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난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글을 쓴답시고 밥벌이를 하게 됐고 철학 공부를 하러 연구공동체에 다닐 때다. 나를 아끼는 선배가 말했다. 네가 앞으로 작가로 활동하려면 그래도 대학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거기 다니며 공부할 시간과 돈과 공력이라면 대학을 시도해보라고 했다. 그건 나를 위하는 말이지만 옳은 말은 아니었다.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사회는 뭐지? 그때부터 유심히 지켜봤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거의 고학력자들이었다.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면서 학벌 중심 사회를 공고화했고 그 틀을 깨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를 내면화했고 자기 자식을 명문대 보내려고 애썼고, 자신이 어느 대학 몇 학번을 자연스레 노출했고 그로 인한 실리를 살뜰히 챙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학벌 세탁'에 드는 자원을 마련할 수도 없었다. 몰락한 중산층이 돼버려 월 백만원에 이르는 재수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생계 노동에 나서야 하기에 책상에 붙어 앉아 미적분을 풀 시간이 없었고, 두 아이 양육과 살림만으로도 생체 에너지는 고갈됐다. 그 모든 한계를 떨치고 일어날 만큼 공부에 '한'이 맺혀 있지도 않았다. 지금 책장에 꽂힌 책만 다 읽기에도 남은 인생이 부족할 지경이었는데 내가 왜 굳이 또 그걸.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고졸사람이었다. 비교적 문턱이 낮은 '자유기고가' 직업에 입문해 '열일'했고 전세자금도 올려줬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글쓰기 관련 강의도 나간다. 학력 문제는 계속 따라다닌다. 내가 주로 강의를 나가는 곳은 시민단체다. 나랏돈을 받아 운영되다보니 강사료 지급 기준이 박하고 엄격하다. 다른 통로로 최저 강사료를 마련해주기 위해 활동가가 애를 먹기도 한다. 작년에 모대학 특강을 갔을 때는 강사료 지급 기준에 석박사는 있어도 고졸 학력 기준은 아예 없어서 새로 만들어야 했다고 했다. 


불편해도 괜찮았다. 나의 평범하지 않음, 소수성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여러 갈래의 경험은 내가 사회학이나 여성학,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현실 문제에 부딪혀 본 것들이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자라서 불편한 게 많다 보니 피곤하긴 해도 생각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고졸이란 신분도 그랬다. 덕분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늘 되묻고 깨어 있어야 했으니까. 


얼마 전 어느 출판사에서 공저로 참여하는 출간 제안을 받았다. 공저자 명단에는 평소 내가 영향 받은, 밑줄 치며 책 읽는 저자의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나는 그의 언어로 젠더, 나이, 인종, 학력 등 온갖 차별에 눈떴다. 저항하는 법을 배웠고 인권 감수성을 키웠다. 내가 여기에 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심이 가는 주제여서 써보기로 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이유는 국가폭력피해자 인터뷰집 발행 작업을 마감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한 것 같아서, 주제가 겹치는 듯해서다. 


그런데 원고를 못 쓰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출판사의 난처한 입장을 전해 듣게 되었다. 공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 본인은 필자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며 내가 이 책의 저자로 끼어 있다는 사실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자세한 정황은 듣지 못했으나, 나는 ‘그것’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필진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될 까닭이 무엇인지 나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동등한 ‘저자’ 입장에서 본인이 참여하지도 않을 기획에 다른 저자의 참여에 불편함을 느끼고, (느끼는 것까지야 자유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획자에게 굳이 전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잊고 살아도 세상은 잊지 않으므로 ‘그것’을 자주 생각해야 한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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