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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칼럼

죽여주는 여자 - 한 병 딸까요?

배우 윤여정이 ‘박카스 아줌마’로 나온다기에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챙겨보았다. 윤여정이 맡은 배역은 소영.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삼팔3.8따라지’(전쟁 고아)로 태어나 식모살이, 공순이, 양공주 등 여러 직업을 거친다. 젊었을 때 미군 흑인 병사와 살림을 차렸고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안 돼 해외로 입양 보낸 사연이 있다. 하필 전쟁통에 삶에 제약이 많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필두로, 살면서 몇차례 난폭한 우연을 통과하자 남은 거라곤 몸뚱이 뿐. 65세 여성 노동자는 가방에 박카스를 챙겨넣고 파고다 공원 일대에서 남성 노인들에게 다가가 안색을 살피며 슬쩍 운을 뗀다. “한 병 딸까요?” 


날 밝으면 가방 챙겨 출근하고 ‘한 건’ 하면 먹을거리 사들고 너털걸음으로 귀가하는 소영.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노동의 일상은 나른하고 덤덤하다. 그리고 그것은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보편적인 노동자의 모습과 겹친다. 


소영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거절 당할 각오를 하고선 말을 걸어야 하는 세일즈맨이기도 하고, 돈 주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단골이 생기고 일이 끊기질 않는 프리랜서이기도 하며, 참지 못하면 살지 못하니 참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어 수치심을 감내하고 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매매노동자인 그녀는 “춥다, 아프다, 무겁다 같이 정해진 시간 동안 어떤 감각을 계속 느끼는 것을 견디고, 그 대가로 얼마쯤 돈을 받는”(기시 마사히코) 육체노동자이기도 하며, 일하다가 생긴 질병(성병)으로 며칠을 공치는 일용직 산재 노동자이기도 하다.


“한병 딸까요?” 


소영이 따는 그것. 박카스는 신진대사 기능을 회복시켜 정신적, 육체적 활력을 증강시키는 약이다. 박카스를 따겠다는 것은 제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팔겠다는 뜻이다. 항상 이윤을 창출하는 유일한 상품은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마르크스의 통찰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자기를 파먹으며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지식과 경험을 사유 노동으로 체화해 놓았다가 판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도 내 마음의 영화를 한 편 딴다. 한번 읽어보실래요? 내 글에 공감하는 독자들에게 만족을 안겨주며 밥벌이를 한다. 모든 노동하는 사람의 수고로움이 들어있는 말. 한 병 딸까요? 산다는 것은 내 안에 무언가를 계속 따야하는 일이리라.


윤여정은 이 영화 개봉 즈음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부모 밑에선 소중한 딸 아니겠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착잡해졌고 우울해졌다. 사람들은 왜 할 일이 많은데 저런 일 하냐고 손가락질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거다.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겠더라.”


윤여정은 또한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을 세계를 안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내밀한 연기 덕분에 나 역시 평소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변조 된채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한 존재의 생활 세계를 경험했다. 한 사람의 속사정에 다가갔다. 영화 제목만 봤을 땐 ‘죽여주는’이란 수식어가 직업적 숙련도를 뜻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성적 쾌락과 죽음 대행,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소영이 하는 일이란, 산 사람 살게 하고 죽으려는 사람 죽게 하는 것이다. 그녀의 단골 고객 증언대로 “소영은 천사”였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그건 지상의 가장 낮고 위태위태한 자리에서 일생을 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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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