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은 두 번 절망한다

[은유칼럼]


딸아이가 기르던 머리를 단발로 잘랐는데 친구들이 예쁘다고 했다며 하는 말. “엄마, 나 평생 이 머리만 할래. 박근혜처럼.” 이것은 엄마의 화를 돋우려는 중2의 반항인가. 하필 그분을 따라하느냐 물었더니 박근혜가 평생 한 가지 머리만 했잖아 한다. 그런데 왜 딸아이에게 대통령이 반면교사든 교사든 인생의 중요한 지혜를 알려주는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고, 헤어·패션·코스메틱의 교본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각인됐을까.


삼십대 후반인 비혼 친구는 수난을 당했다. 엄마가 제발 결혼하라 다그치며 한마디 했단다. “너 그러다가 박근혜처럼 될래!” 엄마는 설상가상 내가 널 박근혜처럼 외롭게 한 거냐고 자책했다고 한다. 완고한 스타일, 드라마 덕후, 미용 시술 애호가, 부모 여읜 불쌍한 딸, 남편도 자식도 없는 외로운 여자 팔자. 박근혜는 초유의 무능과 부정을 기록한 대통령이기 전에 가부장제에서 실패한 딱한 여자, 겉치장에만 골몰하는 한심한 여자가 됐고, 그렇게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오규원)로 구축된 생애 서사는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그즈음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 생애를 다룬 만화 <레드 로자>를 글쓰기 수업 토론 교재로 읽었다. 처음엔 생소한 인물이라며 심드렁하던 이삼십대 학인들 눈빛이 반짝였다. 로자는 고통감수성 영재였다. 열다섯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넉넉히 가진 자들의 양심에 짐을 지우고 싶다. 그 모든 고통과 남몰래 흘리는 쓰라린 눈물의 짐을.’ 여자로서 존재 각성도 단호했다. “작은 부리를 채우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엄마의 삶”에 몸서리치며 결심한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 로자는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자유로이 연애했다. 불법 신문을 제작하고 대중파업을 선동하는 혁명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생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런 여자의 일생도 있다니! 출산을 거부하고 더 인간다운 사회체제 이행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 백년 전 존재했단 사실에 가임기 여성 학인들은 혹했다. 왜 아니겠는가. 본보기로 삼을 만한 여자의 서사가 가뜩이나 귀한 한국 사회에서 자식 없는 여자 정체성을 내세워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탄생했으나 딸들에게 자부심은 허용되지 않았다. 여자 대통령은 자기 언어가 없어 기자회견을 기피하고 사소한 결정도 친분 관계에 의존하고 부역자들과 합심해 국가권력기구를 사유화했고, 그와 같은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보는 여자라는 종적 미숙함으로 환원되곤 했다. 이전 대통령들이 발포 명령으로 무구한 목숨을 앗아가고 4대강 사업으로 국토강산을 ‘건설 마피아’에 상납해도 남자라서 공격적이고 남자라서 생태감수성이 약하다는 말, 이래서 남자 대통령이 위험하다는 비난은 나오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딸들은 두번 절망한다. 한번은 국가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잇단 사건들에, 한번은 난세를 틈타 노골화되는 여성혐오에.


지난 토요일엔 딸아이와 같이 세월호 7시간을 다룬 시사프로그램을 봤다. 미용 시술이든 낮잠이든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 재난 상황에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가 쟁점이라는 것, 여자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의 ‘행동 능력’ 부재를 벌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희생된 아이들의 온전한 애도를 위해서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대목에선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청와대 사람들이 7시간을 비밀로 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다며 단발머리 딸아이가 중얼거린다. “국민들이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2010.html?_fr=mt5#csidx3f59b48c8288f4ab6eb88fd17d9fd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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