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선물

[은유칼럼]



예전 동료와 연락이 닿았다. 나의 신간 '쓰기의 말들'이 인터넷 서점에 나온 것을 보고는 그가 연락을 한 것이다. "새 책 나왔네? 여전히 부지런해!" 밀린 수다가 오갔고 대화는 급물살을 타며 언제 밥 한 번 먹자가 아니라 다음주에 당장 날잡자로 이야기 됐고 그날이 왔다. 문자 안부가 아닌 실물 상봉은 거의 4-5년 만이다. 그간 그는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해 일과 육아를 병행했고, 난 살림과 집필을 수행했다. 우린 너무 바빴다.


그는 규모가 있는 편집회사 사보기획자, 나는 늦깍이 프리랜서 작가였다. 요즘 말로 따지면 그는 을 나는 병이다. 둘이 일 궁합이 좋았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거의 모든 사보를 나에게 맡겨야 안심했고 그 모든 일을 나는 마다 않고 완수했다. 갑이 요청하는 급작스러운 일들, 그러니까 대표이사 인삿말 윤문 같은 것들도 정해진 시간 내에 써주었고, 갑의 핵심 사업인 신기술 관련한 까다로운 내용도 빈틈없이 정리해서 원고를 납품했다. 사보 제작 관행상 작가 여러 명이 한꼭지씩 써야하기에 필명을 세 개 돌려가면서 다른 인격으로 원고를 쓰기도 했다. 돈이 필요했던 나, 그리고 갑인 클라이언트에게 '빠꾸' 맞지 않을 원고가 필요했던 그. 우린 서로를 원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버스에 앉아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며 상념에 젖는다. 8월의 태양을 직통으로 맞고 건물이 내뿜는 실외기 열기까지 감내하고 있는 저 플라타너스가 대견하다. 이 뙤약볕에 여전히 버스정류장에서 낡은 의자 쿳션 깔고 앉아 채소를 파는 할머니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올해의 폭염처럼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지리멸렬한 고통의 시간대를 나는 일을 하면서 통과했고, 지금 그를 만나러 간다. 


한 존재가 살아가는 일의 '기적'에 대해 생각했다. 우주가 돕는다면 사람이 우주일 것이다. 아무 기반도 없이 글밥 먹고 사는 일을 시작한 나를 믿고 일감을 몰아준 그가 새삼 고마웠다. 덕분에 쌀독에 쌀이 비는 불상사를 막았다. 더 고마운 건 ‘왕성한 집필기’를 거치며  작가로서 글쓰기의 근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 때도 고마웠는데 표현하지 못했다. 혹여라도 선물이 뇌물이 될까, 평등한 동료 관계가 비대칭의 갑을관계로 기울어버릴까 조심스러웠다. 이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으니 뭔가를 전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광화문 네거리, 더바디샵에 들러서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향기로운 선물을 골랐다. 카페에서 만나 포옹하고 “어머, 그대로네.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느냐” 예의 그 호들갑스런 인사를 한바탕 시연한 후 자리에 앉아 그에게 곧장 내밀었다. “이거 선물이야. 당신 덕분에 내가 살 만한 삶을 살았네. 고마워. 너무 늦은 거 아니지?” 10년 묵힌 마음, 10년 만의 선물이다. 


며칠 후, 그에게 문자가 왔다. 내 책을 읽고 잠시나마 문학소녀였던 그 때 그 설렘이 훅 먼지처럼 일어나고 가슴이 콩닥거려서 커피우유 사다 마셨다고. 책에 인용한 문장과 에피소드가 절묘하다며 그가 말했다. “대체 얼마나 뇌즙을 짜낸거야?” 난 ‘뇌즙’이란 말에 무릅을 쳤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생각했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옛날에 그대가 썼던 말이야. 원고 보내면서. 하도 콱 박혀서 잊혀지지가 않아.” 


난 당황했다. 왠지 내가 삼십대였던 그 땐 총기도 있고 체력도 좋아 글을 힘들이지 않고 썼다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보 일이나 책 집필이나 그냥 써지는 글을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글쓰기에는 일정량의 ‘뇌즙’을 바쳐야한다는 것. 그가 내게 돌려준 10년 숙성된 명언, 10년 만의 선물이다. 



* 방송대 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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