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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글쓰기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망설임들’로 꾸며진다

집앞 버스정류장 앞에 허름한 가게가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천막을 치고 만든 점포니까 번듯한 가게도 그렇다고 노점도 아니다. 그 경계에 자리한 좁고 긴 가게에서 야채, 과일, 잡곡, 약초, 그리고 반찬을 판다. 노모와 다리가 불편한 중년 아들이 주인인데 무척 부지런하다. 저녁 8시쯤에는 폐점 준비로 물건을 천막으로 덮어놓고도 남은 찐옥수수 한봉지를 팔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있곤 했다. 추운 겨울에는 군밤을 그렇게 악착같이 팔았다. 

며칠 전, 버스를 기다리며 보니 매대 물건이 바뀌었다. 여름 내 팔던 천도복숭아 대신 양파가 분홍바구니에 담겨 나란히 놓여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아들은 절룩거리며 매대에서 양파 바구니 위치를 계속 옮겼다. 얼핏 보기에 갯수도 크기도 비슷한 그것들을 하나 빼서 앞에 두었다가 뒷줄 것과 바꾸었다가 다시 앞줄에 놓았다가 마냥 그러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도 그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무엇을 하는 것이었을까. 더 실한 물건을 앞에 두어 사고싶게 만드는 노력인가. 얼핏 그의 반복 행위는 아무런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그거 같았다. 그런데 또 그의 행위는 방금 전까지 내가 하던 짓 아닌가. 별반 다르지 않은 낱말을 주무르고 넣었다 뺐다 문장을 지웠다 살렸다 하는 일과 양파바구니를 앞줄로 뒷줄로 옮기는 일은 얼마나 다른가. 

그 망설임들로 꽉찬 시간들.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거기서 막 빠져나온 나에게 그의 동작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러내기. 무모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 기르기.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글쓰기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망설임들’로 꾸며진다. - 롤랑 바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