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들어주기

[글쓰기의 최전선]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 기형도 '안개' 부분
.

지난주말, 기형도의 시적 정황을 빌자면 '안개가 명물인 읍'에서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있었다. 데이트폭력. 그래. 이름도 슬픈 데이트폭력. 뒤늦게 알고서 '쓸쓸한 가축처럼 긴 방죽'을 서성이며 밤을 보내고 있는데 메일이 왔다. 낯선 이름. (수업에서는 닉네임을 쓴다) 삐뚤삐뚤한 글자들. 

"선생님 진작연락을 하고싶었는데 몸이 말을듣지를 않아 이제야연락을 드림니다 자판을 친지가 오래다보니 손가락이 말을듣지않아 망설이다 두드려보는데 너무느려요 그래도선샹님께 말도없이와서혹시걱정하시지않을실까용기를 내서몆자보냄니다..." 

가정폭력 피해여성들과 글쓰기수업 중이다. 첫시간부터 가장 눈을 반짝거리며 듣고 글을 한 바닥씩 쓰는 분이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고 배움이 짧은 분이었는데 가장 용감하게 자신의 피해경험을 또박또박 글로 써내려갔고 여러 사람 앞에서 읽어나갔다. 그 다음주에 가보니 몸이 안 좋아 퇴소하고 안 계셨다. 몸이 약한 분이라 어찌 지내실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자기고통을 응시하고 글로 써낸 분이라 안심이되기도 했다. 

그분의 편지다. 역시나 당신은 잘 지내고 있다며 글쓰기 하고 나면 마음이 벅차고 풍요로워졌다고 그간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셨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말해주어 고맙다고. 언제든 말할 사람이 필요하면 주저없이 말씀하시라고 썼다. 메일을 보내고 나니 눈물이 났다. "나 좀 여기서 꺼내주세요"라는, 그분이 썼던 글의 한 문장이 선명히 떠올랐다. 또다시 그런 상황에 사람이 처하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안개가 명물인 세상.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안개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겠지만 안개와 식구가 되지 않을 수는 있다. 안개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더 많은 폭력이 말해져야 한다. 고통은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한다. 더 거칠게. 더 서툴게. 더 투박하게.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논리적 이론적 정합성이 부족해도 일단은 말해져야 한다. 그리고 고통이 말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따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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