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규정하기, 사랑을 정의하기. 각각도 큰 주제인데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소설이 참 논쟁적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생과 사람 마음에 대한 순수하고 직관적인 정신이, 투박하지만 그래서 힘있게 펼쳐집니다. 뜨겁다가 거북하다가 애달프다가 슬프다가 불쌍하다가 웃기다가 온갖 감정의 과잉상태를 넘실대며 페이지가 넘어갔어요.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가난(문학적 빈곤)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지만, 가난이 사랑의 최대 훼방꾼 노릇을 하네요. 소설에서도요.
그런데 저는 남자주인공 제뷔스낀이 그리 비참해보이지 않았어요. 저 많은 언어들, 표현들, 감정들이 어떻게 화수분처럼 계속 나올까? 비록 동어반복이고 유치해도 자기 감정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가면서 말을 기르고 어르고 달래며 정신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후반부에서는 사유가 정교하고 표현이 풍부해지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여자주인공 바르바라랑 지적 층위를 못 맞추고 정서적 결을 벗어나 일방적인 장광설을 퍼부었던 게 안타깝지만, 사랑할 때 자기상태가 객관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모든 사랑은 비대칭. 더 많이 사랑한 자가 을이 생성되는 구조인걸요. 말의 독과점도 흔한 현상이고요.
아무튼 가난을 정의내리는 여러 관점이 있겠으나, 제가 생각하는 가난은 이렇습니다. 관계의 가난=경험의 가난=언어의 가난, 이 연결고리가 삶을 비극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제뷔스낀이 더 호감이 갔나봐요. 쓰고 말하는 주체로 산다는 것. 자기 가난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거기서 고양된 힘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왜 사랑이 아니란말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투명한 물음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 깻잎
사랑은 범위가 커요. 부모자식사랑, 사제지간 사랑, 이성(동성)간의 사랑, 삶-일에 대한 사랑 등. 이 글에서 사랑이 모호하게 뭉뚱그려저 쓰였어요. 남편이 “왜 네 전공이잖아.” 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배우자에게 ‘사랑’ 전문가로 인정받으셨는지. 멜로드라마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사례가 있어야겠죠. 그리고 “세상은 사랑으로 돌아간다”는 저자의 말과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는 시구와 아이들에게 현충일과 광복절 차이를 설명하는 일이 맥락이 연결되지 않아요. 필자가 구체적으로 사람이나 일 등 사랑의 에너지에 휩싸이면 어떻게 변신하는지 구체적인 사례가 곁들여졌으면 저 겉도는 문장들이 퍼즐처럼 맞춰졌을 텐데요. 사랑에 빠진 깻잎이 마냥 궁금합니다.
# 정수
찹쌀떡 같은 글이네요. 솔직하고 날카롭고 청승맞고 애잔하고 발랄하고 진부한데 재밌어요. 사랑으로 시작해서 굽이굽이 돌아돌아 사랑으로 끝나는 글. 카톡이 물흐르듯 이어지다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이 황송했다가, 나를 보는 눈빛이 빛을 잃은 걸 알아차렸다가, 사랑의 좌절로 살이 10키로그램이 늘어나기까지...사랑의 생장소멸이 다 담겨 있어요. 역시 좋은 글은 깊은 고민(사유)에서 나온다 싶게 빛나는 문장도 보이고요.
이 글에서 가장 좋은 것은 이별 후 분석이죠. ‘연애를 해도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를 수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이 좋아요. 이 글이 그렇고 그런 연애고백이 아닌 칼럼이 되기 위해서는 연애사는 압축하고 사랑 그 후 성찰을 비중있게 다루면 좋겠어요.
- 짇굳은-> 짖궂은, - 설랬다-> 설렜다.
- 그래놓고서 신중한 척 삐댄 것이다. -> 그래놓고 신중한 척 굴었다.
-감정이 낯설고 두려워서 바둑두듯 견제하며 연애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 감정이 낯설고 두려워 바둑 두듯 견제하며 연애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이 낯설고 두려웠던 것이다.
-> 나는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이 낯설고 두려웠다.
# 귤 (마징가계보학)
심상하게 흘러가는 카메라를 따라 같이 벚꽃 핀 천변을 걷고 눅눅한 집에 잠시 발을 들여놨다가 이사간 것 같아요. 소시민들의 일상. 사람 사는 냄새가 그려지는데, 주제의식이 희미해요. 삼선동 천변 봄풍경, 혹은 지하생활자의 생활 등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택하면 좋은 글이 되겠어요. 그리고 천변 폐지 줍는 노인, 대학생들, 연극인들이 자리를 바꿔가며 나타나는 부분은 재밌어요. 이 사람들 일상의 모습을 볼 때 내 마음에 일었던 파동, 그걸 추적해본다면 글이 깊어지겠어요. 습기 먹은 스펀지 같은 이불, 몸을 볕에 말리고 싶었다는 문장 등은 살아있어요. 경험에서 길어낸 좋은 표현입니다. 읽기만 해도 눅눅해져요.
# (가난한 사람들)
절절한 내용인데 덤덤한 필치로 물기 하나 없이 써내려 갔네요. 절제의 미학이 돋보입니다. 의뭉스럽기도 하고. 다 안 보여주니 안달도 나고. 주어가 단정한 사람인 게 글을 살리네요. 단정한 사람은 다정하지 않았다. 같은 표현. 사랑의 주요 골자 및 사건 몇 가지 정보로 원과 직선 운동을 표현하면서 시각화 시킨 게 글에 긴장을 줍니다. 사랑하면 시인된다더니. 그러네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깊이 몰입하면 앞으로도 이런 글 쓸 수 있어요. 성명서 선언문 많이 쓴 공력이 시적언어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앞머리를 묵직하게 내린 옆 가르마를 한 머리를 했다.
-> 옆가르마를 타고 앞머리를 묵직하게 내린, 특별할 것 없는 머리였다.
# 바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브람스의 편에서 삼각관계를-사랑을 해석하는 ‘분명한 입장표명’, 일상과 연결시킨 구체적인 ‘예화 제시’, 브람스 클라라 슈만의 음악과 사랑이야기를 통한 ‘다른 세계로의 안내’ 등 글이 탄탄해요. 후반부에 반전이 있네요. 결혼한 형의 여자친구에게 쓴 편지라는. 근데 이건 좀 도덕교과서 적 훈계로 느껴져요. 싱글들 끼리의 결혼만 정상적 사랑이라고 규정하는 것 같고요. 제도적 규범에 따라서 정답을 제시하는 글보다는 ‘다른 가능성’을 탐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글,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글이라면 어땠을까요.
- 삶을 같이하는 것 자체가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클라라가 슈만과 함께 했던 그 삶이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인생의 격전을 함께 치르며 쌓이는 감정도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생각합니다 반복 수정)
-> 삶을 같이 하는 것 자체가 사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클라라와 슈만의 일상적 부부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을 봅니다. ... 인생의 격전을 치르며 쌓이는 감정도 고귀한 사랑이 아닐런지요.
# 여백
“단 한번 완성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완성해봐야 보는 눈이 생기고 다음번 그림도 완성할 수가 있다.” 화실 선생님 (좋은) 말씀을 주제로 글을 이끌고 가니 매우 잘 읽힙니다. 아마 아저씨에 대한 사랑의 힘이겠죠. 바라는 것, 말하고 싶은 게 분명한 글이라서 글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 부분, ‘난희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보겠다고.. ’부터 고대장님 나오는 부분이 더 보충설명 필요합니다. ‘아저씨도 알겠지만, 나는 2년 전 (동료?) 난희와 사회적 기업을 만들려고 했어요.’ 뭐 이런 식으로, 필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결정적 아쉬움. 아저씨 캐릭터가 안 그려집니다. 정보가 너무 없어요. 아저씨는 그간 ‘미완성’하는 습성이 있었는지, 타인에게 인정욕망이 커서 자존감이 낮은지 같은 사례가 없습니다. 아저씨 인격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세요. 그래야 독자도 ‘아저씨가 완성해가는 아저씨의 삶을 응원’ 할 수 있습니다.
# 그레이스 리
이웃에 멀리 취재를 다녀오셨나봐요. 귀한 글 봤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만이 아니라 일상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반찬을 주는 등 십시일반 마음이 보태지는 장면도 뭉클하고요. 이웃 취재기가 더 몽글몽글 필자의 숨결이 피어나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레이스 리님에게 어떤 변화나 발견이 있었는지, 새롭게 알게 된 것, 느낀 점은 무엇인지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후속 글도 틈나면 써주세요.
(발표자)
# 꽃파랑
가난을 후각으로 그려보려는 시도가 돋보입니다. 가난하지 않아서 가난의 기호로 냄새를 감지할 수 있었겠지요. 캐나다 장애인의 삶은 신선합니다. 한국이 워낙 편견에 휩싸인 나라라서 그들의 편안한 어우러짐을 볼 수 있었겠지요. 어떤 가난은 후각을 마비시킵니다. 어떤 편견은 사람을 쪼그라들게 합니다. 내게 감각적으로 ‘어떤 작용’을 일으킨 이야기를 가지런하게 정리해나가면 오감의 감도가 좋은 꽃파랑 님은 좋은 글 많이 쓸 수 있습니다.
# 지그믄
연극 대본 같기도 했습니다. 시나리오가 지그믄님의 글 호흡에는 더 잘 어울리겠다 싶기도 했고요. 겉도는 말이 아닌 직진하는 말의 힘이 크네요. 응시와 통찰이 뒷받침 되니까 글이 힘이 있어요. 앞으도로 계속 써보세요. 안에 단단하고 빛나는 부분들이 더 나올 게 많을 것 같습니다. 단 독자가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정보를 주어야할지를 시간적 공간적 배경, 호칭, 관계 등 정보를 정확히 충분히 주고 있는지 계속 점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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