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에 갔다가 퀴어퍼레이드를 봤다. 아니다. 퀴어퍼레이드도 볼겸 신촌에서 약속을 잡았다. 오후 5시, 행사장 부근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접근이 힘들었다. 찬송가 소리 같은 것들, 서울역 앞에서 들리는 그런 사랑과 자비일수 없는 노래소리가 들렸다. 퀴어퍼레이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령, 이런 문구가 눈에 들었다. '동성애자들은 하나님의 즉결심판을 받으리라'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 형광옷을 입은 전경들, 사명감에 가득찬 교회사람들; 겹겹이 둘러싸인 인파의 틈을 파고 연구실 친구들과 접선했다. 반가운 말,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
올해 가장 감동적으로 본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언니들 커플이 멋지게 춤을 춘다. 시선을 모으고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행복해보였고, 해방된 에너지가, 유연한 신체가 쫌 부러웠다. 난 죽기전에 저러고 놀아볼 수 있을까, 싶은 ㅋ.
반면에 가장 굳은 얼굴을 한 두 사람이 있으니. 앳된 얼굴의 두 여성이 '청소년들이 동성연애로 에이즈에 걸린다?' 뭐 이런 피켓을 들고 있었다. 어떻게 저리도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고, 이 축제판에서 심판자의 표정으로 외로움/두려움을 무릅쓰고 저 자리에 서 있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것으로 보이는 무지개 머리띠와 어여쁜 꽃안경을 낀 언니님과 파란머리님이 납시어 '대화'에 임하신다. 아름다운, 거리의 설득자!
퀴어퍼레이드 행진이 막혀서 한참을 서 있었다. 1호차, 2호차, 3호차, 4호차 4차4색. 사람의 몸이 자아내는 기운은 어마어마한 거 같다.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보다가 놀다가. 노동당, 정의당, 녹색당 등 소수정당의 깃발도 보였다. 선거는 선거고 일상은 일상이고. 우리 곁에 누가 있나. 둘러보면 그래도 그들이다.
다음날, 친구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연희동 '분더바' 앞에서 보잔다. 장사가 잘 되는 카페였는데 주인장이 마구잡이로 나가라고 한 모양이다. 홍대의 두리반 같은 곳, 투쟁현장이라고. 맘 놓고 장사하고 싶은 사람들, 전국'을'연합, 두리반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 등이 같이 맘을 보태고 있었다. 또 올만에 보는 친구들도 만나서 노닥노닥. 어제 퀴어퍼레이드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벗들에게 물었다. "어제 퀴어퍼레이드 왔었어?" "못갔어요. 일이 있어서.." "재밌었는데. 눈이 휘둥그레지더라 ㅋ" "갔어야하는데, 감퇴된 성욕도 끌어올릴겸." 키득키득 지들끼리 숙덕거린다. 그곳에 조금 앉아있다가, 친구와 걸으며 황금연휴에 '밀양 송전탑' 싸움 현장 다녀온 얘기를 들었다. 깊은 산속 움막에서 2박 3일 보내고 왔더니, 불켜진 거, 물쓰는 거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는, 그런 가슴 철렁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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