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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장 365일 28일째

 

지난 달 24일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몇몇 학인들과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장에 갔다. 같이 공부하는 한 학인이 그날 문화제에서 풍물공연을 한다기에 '같이 갈 사람 여기 붙어라' 동을 뜬 것이다. 농성천막을 강제 철거하고 꽃밭을 만들어놓았다는 뉴스를 접했고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던 터다. 연구실에서 성북천 지나는 길. 하늘에서 마지막 벚꽃비가 내렸다. 성북천 울타리는 조팝나무가 희게 흐드러졌다. 그 꽃길을 숨, 이슈트, 동희, 태영, 나 다섯이 갔다. 벌꿀과 로맨스조는 먼저 출발했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는 쌍용차해고노동자 복직뿐 아니라 탈핵(밀양 송전탑, 반전과 평화(제주 해군기지), 용산참사, 4대강 등 다양한 생명-이슈를 두고 '함께 살자' 외치는 장소이다. 지난해 4월 4일 쌍용자동차에서 22명이 목숨을 잃고 평택 쌍용차 앞에 이어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에도 분향소를 마련한 것.  

 

5월 1일 노동절,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장이 꾸려진 지 어느덧 365일 하고 24일째 되는 날이라고 한다.

 

 

오후 6시 반 넘어 도착했는데 아직 환했다.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용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사가 매일 열린다는데 그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궁금해서 찾아봤다. 4월 8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매일 미사’가 시작됐다고.

 

 

매일미사는 4월 4일 새벽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고 그 과정에서 56명이 연행되는 일이 벌어짐에 따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나승구 신부)이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나승구 신부는 미사를 제안하는 글에서 “그 새벽, 노동자들은 동료들 죽음의 억울함을 풀고 사태 해결을 위해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을 잃어버렸다. 잔인한 시대, 야만의 문명이 불러온 참극이며, 일하는 자들이 천대받는 죄 많은 시대”라고 한탄했다. 이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으로 대항할 수 있을지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급박하게 내린 결정이지만,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이 자리로 부르고, 그 부름에 대한 응답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시청 앞, 오랜만에 촛불을 들려니 손이 어색했다. 광장은 어느 덧 내 삶에서 멀어진 장소. 촛불은 낯선 사물이 되었다.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퀵 오토바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경적소리가 뒤엉켜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한버씩 흘끗 거리며 잰걸음으로 지나간다. 이어폰 끼고 앞만 보고 직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다가 멈춰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들. 이성선의 시구가 떠올랐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그냥 산다고 사는데, 알게 모르게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외롭게 하면서 사나보다. 

빨리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맴맴 맴도는 사람도 있다. 수요문화제에서 두물머리 풍물놀이패가 길놀이를 준비했다.

 

 

신명나는 풍물가락. 큰 북 치는 이가 같이 공부하는 로맨스조. 꽃밭을 한 바퀴 돌고 대한문 앞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도 하고, 밀양 농성장 어르신들의 응원 메시지도 영상으로 보고, 우리 응원 메시지도 찍어서 보냈다. 사람을 내 쫓고 만든 꽃밭. 꽃은 죄가 없다만, 꽃이 저렇게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이기는 처음이다. 꽃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름다운 꽃만이 존재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 대한문 앞 미사는 매일 오후 6시 30분, 전국에서 모인 사제들이 공동집전하며, 요일별로 각 교구와 수도회가 맡아 진행할 예정이다. 13일 토요일은 특전 미사로 봉헌하며, 주일 미사도 예정돼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