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이 - 엄마가 말하는 폭력, 아들과 바꾸는 세상

[행복한인터뷰]

 

손경이는 전문 강사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성·학교·가정·직장 폭력 예방 등을 주제로 강의한다. 2012년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았다. 손경이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다. 강의 도중 그 자리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피해 경험을 터놓는다. 삶의 진실함에서 나온 묵직한 강의에 대부분 감동하지만 이런 반응은 피할 수 없다. “아, 자기가 당해서 성폭력 강사를 하는구나.” 어떤 이는 대놓고 구시렁거린다. “어쩐지 드세더라. 남자를 가만 안 둘 기세야.”

편견의 말은 대개 단순논리로 반복된다. 특히 성폭력에 관해서는 논리적 성찰을 허용하지 않는다. 삶의 여정에서 흘러들어온 모든 것의 퇴적층이 성정이다. 특수한 경험이 직업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드물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의사 할까. 더군다나 그는 반대다. 성폭력 경험이 있어서 강사를 하는 게 아니라, 강사로 일하다가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기억하게 됐다.

손경이씨


성폭력 나만 당했다… 나도 당했다

어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이다. 손경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했다. 2년차 새내기 강사는 매뉴얼대로 별다른 감정 없이 강의에 임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관한 통계를 보여줬다. 한 해에 ○○명이 사건을 겪고 가해자 1위는 사촌오빠, 2위 의붓아빠, 3위 친아빠, 4위 외삼촌, 5위 오빠다, 라고 설명하는데 한 여자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빠한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한 그는 수업이 끝나고 상담하자며 얼버무렸다. 강의가 끝나자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성폭력 통계를 보여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가해자 2·3위가 아빠였다니, 이건 자기 문제가 아니고 아빠의 잘못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간 다른 강의에서 통계를 제시하면 반응이 시큰둥했다. 비경험자는 못 믿는다. ‘그런 아빠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경험자인 아이는 달랐다. ‘나만 당했다’에서 ‘나도 당했다’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내처 아이는 서운함을 토로했다. 자기가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공개했을 때 박수를 쳐주었어야지 왜 손을 내리라고 했느냐고. 선생님도 경찰이랑 똑같다고. 어른들은 왜 무조건 숨기느냐고. 그러고는 “선생님이 원칙이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9개월 남짓, 강의를 하다 중단하다 했다. 열두 살 아이의 당당한 모습이 부러웠다. 강사로서 부끄럽고 어른으로서 미안했다.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진정한 감동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라고 했던가. 이전 지식은 폐기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성폭력 교육 자료를 조목조목 의심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그때 안에서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소리를 질러라? 소리 지르면 죽을 수도 있는데. 소리 질러서 산 사람이 있을까. 짧은 치마를 입지 마라,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 성폭력 예방 지침의 모든 항목이 피해자 유발론인 거예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이런 인식 때문에 여성이 피해를 입고도 자기 잘못이라는 자책감에 시달려요. 신고율도 저조하고. 내가 완전히 잘못 가르치고 있구나. 피해자 유발론에서 가해자 책임론으로 접근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았죠.”

어떻게 하면 강의를 잘할 수 있을까, 그것만 연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놓고 드나들면서 사례를 참고했다. 그 무렵 ‘제3회 성폭력 생존자 큰말하기대회’ 공지가 떴다. 호기심에 찾아갔다.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붙잡고 자기의 피해 경험을 얘기하는 여성들을 보았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눈물이 솟구치고 기억이 떠올랐다. 십수 년 전에 폭발해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된 것이다.


교육중독자, 자격증과 자존감을 얻다

스물넷 봄날. 손경이는 촉망받는 회사원이었다. 여상을 졸업하고 대기업 경리과에 입사해서 1년 만에 그룹 경영기획실 인사과로 자리를 옮겼다. 주경야독으로 의상학과 대학을 마쳤다. 계열사 의류업체에서 재능을 펼치고 싶었다. 인생에서 가장 승승장구하던 그때, 꿈과 일에 빠져 살던 5월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다. 낯선 남자에게 끌려가 닷새 동안 감금당했다가 풀려났다. 경찰에 신고했고, 잡지 못했다. 그러고는 잊었다. 해리 현상. 모든 종은 위험이나 전멸의 무시무시한 위협에 생물학적 반응을 한다. 해리는 신체적·정서적으로 뭔가를 느끼는 능력이 완전히 차단되면서 고통과 공포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으로, 효과적인 생존 기제다. 그도 그랬다. 기억은 지지직 타버리다 끊어졌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일하고 몇 개의 돌부리 같은 사건을 지나며 일상을 살아갔다. 심해의 깊은 어둠을 밀고 올라온다는 산갈치처럼 외상의 기억이 불쑥 떠오르기 전까지는.

손경이의 일상은 늘 2배속으로 흘러갔다. 결혼 전에는 타고난 근면함과 탈(脫)가난에 대한 욕망으로 직장생활에 전념했고, 결혼 후에는 실질적 가장 노릇에 대한 책임감으로 자신을 밀어붙였다. 백화점에서 스카우트 대상 1순위 숍매니저로 거론됐다. 밤이고 낮이고 일해서 돈을 벌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하루에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아이에게 가장 미안했다. 왜 열심히 살수록 관계가 끊어지고 심신이 피폐해지는가. 삶보다 앞선 근원적인 질문이 돋아났다. 돈이란 뭘까. 부모란 뭘까. 사는 게 뭘까.

좋은 부모가 되자. 일을 그만두었다. 동네 구청에서 하는 부모교육을 받았다. 그때 난생처음 성교육을 접했다. 흥미로웠다. 상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회복지학, 심리학까지 파고들다보니 40여 개의 자격증 및 수료증을 취득했다. 서른 중반에 ‘성폭력 예방 강사’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 자칭 ‘교육중독자’가 되어 지식을 미친 듯이 습득했으나 정작 자신에게는 무지했다. 강의에서 만난 열두 살 여자아이, 그리고 다른 성폭력 생존자들의 외침은 그런 그를 일깨웠다.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나를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나를 온전히 인정하기 위해서는 성폭력 경험의 재해석과 기억의 복원이 필요했다.

나를 알아가는 진짜 공부가 시작됐다. 피해여성들과 대화하고, 전문가와 상담하고, 여성학 공부에 몰입했다. 그렇게 3년간 복구한 몸의 기억을 들고 손경이는 2007년 ‘제5회 성폭력 생존자 큰말하기대회’에 섰다. 성폭력 사건으로부터 14년이 흐른 뒤다.

“드러내자, 세상에 아픔을 드러내자. 하지만 잘 살고 있다는 것도 같이 보여주자. 항상 성폭력 피해자는 아프고 힘든 모습만 보여주는데,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피해자들도 잘 사는 방법을 찾지 않을까 생각했죠. 저라고 해서 아예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힘듦이 점점 줄어들고 의식이 바뀌고 주변 사람이 바뀌면서 덜 힘들어졌거든요.”

가치의 전환이 일어났다. ‘보이는 나’가 아닌 ‘변화하는 나’로 사는 쾌감이 컸다. 열심히 살수록 경험과 관계가 쌓이고 그의 풍요는 주변으로 넘쳤다. 비로소 좋은 삶에 안착한 것이다. 그러자 삶의 의미를 나누고 싶었다. 성폭력피해생존자 다큐멘터리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감독 조세영·2009) 출연을 수락했다. 영화에서는 ‘한새’라는 별칭으로 나온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는 성폭력 피해자와 달리 음성 변조나 모자이크 없는 최초의 다큐인권영화라는게 저한테는 신선했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항상 죄인처럼 가려야 하는 현실이 싫었거든요. 약간의 군중심리랄까.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했는데 주인공 네 명이 같이 하니까 용기가 났어요.”

영화 시사회 때 가족을 초대했다. 아빠, 엄마, 남동생, 여동생, 여동생 남편,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를 보러 왔다. 그가 십수 년 전 닷새간 행방불명됐을 때, 집과 회사에서는 “연애에 실패하고 죽으려다 며칠 바람 쐬고 살아 돌아온 사람”으로 돼 있었다. 그도 차마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영화를 본 가족들은 박수와 눈물로 외로웠을 그를 다독였다. 친정엄마는 밖으로 나가 연신 눈물을 닦았다. 아들 상민군은 무대에 올랐다. 극중 손경이의 일상을 다루는 장면에 출연하는 나름 조연 배우 자격인데, “내 허락도 안 받고 영화 찍었어요. 전 중학생인데 저 너무 창피해요”라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 엄마의 기록영화에 출연한 아들은 그 자체로 통념을 깨뜨렸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들은 말했다, 엄마는 성폭력 생존자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엄마의 어깨 위로 머리가 쑥 올라오는 상민군은 곧 대학생이 된다. 법대에 일찌감치 합격했다. 엄마와 나란히 서서 대각선으로 시선을 나누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여전히 쉴 새 없이 떠든다. 각별히 “공을 들여서” 키운 아들이다. 손경이는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빠와 남편, 그리고 성폭력 가해자까지 ‘남자’에게 상처가 많다. 아들만큼은 젠더 감수성을 키우고 올바른 성의식을 갖도록 노력했다. 아이의 존중(사정)파티를 열어주는가 하면 엄마의 경험과 생각을 자주 들려주고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런 일상에서 영화 출연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상민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처음 들었다. 세월에 눅이고 삭이어 지금은 질감이 달라진 그날의 기억을 덤덤한 목소리로 되짚었다. “책이나 신문에서만 봤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피해 당사자)게 엄마라니까 느낌이 이상했어요. 상상도 못했죠. 엄마한테 뭐라고 얘기하려다가 너무 복잡한 거 같아서 그냥 똑같이 대했어요. 내가 하던 대로 해주면 엄마도 살던 대로 살겠구나….”

상민군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혹시 내가 아빠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설정,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인물의 처지가 되어보기도 했다. 그런 미묘한 감정의 결까지 살려서 속내를 편안하게 터놓는 아이가, 평소 하던 대로 대해주는 아들이, 엄마는 마냥 미덥다. 특히 성폭력 사실을 듣고 나서 의연하게 대하는 일은 어른도 쉽지 않은 고난도의 배려 행위다. 대견하고 든든했다. 한때 “성폭력 얘기만 들어도 지겹다”고 말했던 상민군도 타자의 고통에 대한 수용력을 키워준 엄마가 고맙다. 전 여자친구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잘 들어줄 수 있었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겪는지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들은 때로 강의에도 함께 나간다. 고아원이나 보육시설에서 성교육을 할 때, 상민군은 마지막 20여 분 특별강사로 나선다. 두 사람이 이심전심 마음이 척척 맞는 건 아니다. ‘야동’ 문제에선 의견이 갈린다. 엄마는 ‘왜곡된 성의식을 심어줄 수 있고 성차별성이 많으니 되도록 보지 말라’는 쪽이고, 아들은 ‘어차피 안 볼 수는 없으니 가짜임을 알고 보라’는 쪽이다. 상민군은 당당하다.

“야동을 한번 보고 나면 억제하는 건 불가능해요. 판타지 영화가 가짜라는 건 알지만 빠져서 보잖아요. 무조건 보지 말라고 막는 거보다 저건 허구라는 걸 알려주고 비판 능력을 길러줘야죠.”

상민군이 자기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를 전할 때 청중은 몰입한다. 옳은 주장으로 가득한 ‘어른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들도 ‘아이의 말’에는 눈을 반짝인다. 이 확연한 차이를 보며 손경이는 강사이자 엄마의 입장에서 배우는 게 많다. 물론 아직도 야동 반대 의견에는 변함없다. 하지만 어차피 ‘정답 없음’의 삶이다. 다른 세대, 다른 존재가 각자의 견해를 드러내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건전한 배움의 장이 되지 않을까 믿을 따름이다.

평소에도 두 사람은 왕왕 시끄럽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낙태 문제를 놓고 잠시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낙태를 반대하는 아들의 비판은 가차 없고, 엄마는 페미니즘 이론을 근거로 제시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종교 문제로 쟁점이 이동돼 토론을 유보해야 했다. 두 사람은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심상하다. 소개팅에 입고 나갈 두툼한 코트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그냥 있는 옷 입으라는 엄마가 옥신각신 정겹다. 아무튼 두 사람에게 대화는 일상이고 논쟁은 활력이다. 중요한 건 ‘차이’를 좁히는 게 아니다. 그 차이가 대화의 단절이 아니라 대화의 촉매가 되어주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우리 아이가 너무 착한 남자는 아니에요. 근데 솔직해요. 자기감정을 안 감춰요. 뭐 땜에 힘든지 다 말해요. 그러니까 대화가 잘돼요. 변화할 가능성이 있고, 문제가 뭔지 빨리 파악하고 인정하는 아이예요. 지난 4~5년간 수없이 싸웠죠. 지금은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줘요. (웃음)”

손경이씨와 아들


‘느낌 없음’의 청소년, 가정폭력이 낳은 괴물

아이가 스승이자 친구이다. 손경이는 아들과 싸울 때마다 조금씩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삶에서 도출한 앎은 이렇다. “좋은 남자를 많이 만들면 나쁜 남자는 사라진다.” 아들과 그랬듯이 꾸준히 대화를 나누면 이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나쁜 남자는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믿는다. 앎은 다시 삶을 이끌었다. 강의 초점을 성폭력 예방이 아니라 관계 교육에 맞추기 시작했다. 그가 작정하고 차린 연구소의 이름은 ‘관계교육원/연구소’. 강의의 목표는 좋은 여자, 좋은 남자 만들기다.

“제가 경험한 세상은 올바르지 않은 세상이거든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성적 위주의 투자 개념으로 봐요. 학원을 다녔으면 성적이 좋아야 하지 않느냐 다그치잖아요. 그런 부모의 태도가 사채업자 같다고 아이는 말하죠. 부모는 늘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아이는 다르게 느껴요. 남편은 자기가 돈 갖다 주는 사람 같다고 하고, 아내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손경이가 볼 때 성폭력 가해자는 한국 사회가 만든 괴물이다. 그래서 가해자의 무지를 미워하지 가해자의 인격을 미워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법무부에서 ‘상담조건 기소유예’로 배정된 청소년이 있을 때 매달 정기적으로 청소년 가해자 상담을 진행하는데, 그들의 내밀한 고백을 통해 아이들만 나무랄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아챘다. 야동, 대중매체, 친구, 부모, 학교 등 세상이 잘못 가르친 탓이 컸다. “엄마·아빠 대신 선생님이 사과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을 여는 강사는 3m 높이의 담장을 쌓아올린 아이들 마음도 허물어뜨린다.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듣다보니 나는 예비 가해자가 아닐까 싶다”며 강의 뒤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만 보면 스윽 만지고 싶고, 여자가 못 알아차리게 교묘히 성희롱을 하는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고 실토한다. 어쨌거나 가장 빨리 바뀌는 대상은 청소년들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느낌 없음’의 아이들이 눈동자가 흔들릴 때면 보람이 크다. 3∼4년 전에 상담했던 아이들에게 연락이 와 피자를 사주며 의젓해진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힘으로 손경이는 무겁고 어둡고 살벌한 폭력 예방 교육이 아니라 밝은 이야기, 밝은 생각, 밝은 교육을 하게 됐다.

“저의 요즘 관심사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및 성매매의 유사관계예요. 늘 아빠가 엄마를 학대하는 걸 보고 자란 아들은 여자를 하찮게 여기죠.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은 늘 주눅 들어 있고 의사표현을 못하고요.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어요. 그래서 큰 틀에서 보면 가정폭력이 성폭력의 시발점이죠. 아주 밀접해요. 성폭력을 일부 남자, 일부 여자의 문제로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거든요. 일반인들이 내가 가해자도 만들고 피해자도 만든다는 의식이 있어야 해요.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군대폭력, 직장폭력 등 모든 폭력의 시작은 가정폭력이에요.”

그의 명함은 길다. ‘범죄예방위원회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고양시 일산서지구 협의회 위원 손경이’. 뒷면에는 이력서 한 장 분량의 소개가 빼곡하다. 원래는 이름과 주소만 적힌 명함을 들고 다녔으나 “센 사람처럼 보이려고 법무부 로고를 아예 넣었다”며 눈을 다 감고 좋아라 웃는다. 호신용 명함을 들고 정부기관 위주로, 대기업·학생·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해에 500여 회 강의를 나간다. 10년차 강사는 요즘 물이 올랐다. 어서 빨리 좋은 세상이 오기를,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학수고대한다. 그래서 전국을 누비며 강연하고, 영화도 찍었고, 지난해 12월엔 지상파 TV에도 출연했다. KBS 다큐멘터리 <공감> ‘성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편. 성폭력 예방 인기 강사이자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얼굴을 공개했다. 


내 힘은 작다, 그러나 침묵은 우릴 돕지 않는다

“저는 힘이 작아요. TV에 나오고 신문에 나와도 세상은 안 바뀌겠죠. 강의를 10년 했으니 어림잡아 5만 명을 만난 거 같아요. 세상이 변했나? 그대로죠. 그래서 이제 저도 당사자임을 공개하면 더 빨리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를 업신여길까봐, 남편 있는 여자처럼 행세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가정폭력으로 이혼했고 성폭력 피해자라는 걸 용기 있게 말해요. 그러면 깨닫는 가해자가 있을 거예요. 제가 그랬거든요. 성소수자를 혐오했는데 레즈비언 강사가 직접 나와서 당사자의 사례를 들어 얘기하는 인권 강의를 듣고 이해하게 됐어요. 재해석이 일어난 거죠.”

지킬 것이 없고 나눌 것만 남았다. 나는 학교폭력·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입니다, 라고 편히 얘기한다. 단, 앞서 말한 대로 ‘안전한 장소’라고 판단되는 경우다. 안전의 기준은 무얼까. “질문하는 사람이 많은 강의”다. 가령 이런 상황이다. 남자가 여자의 허벅지를 만진 성희롱 사례를 얘기한다. 조직에서 의무교육을 받기 위해 수십∼수백 명이 모인 경우라면, 보통은 듣고만 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조금 더 있는 자원봉사자들 강의에서는 달랐다. “그 상사 몇 살이에요?” “술자리에서 동영상 찍은 사람 없어요?” “그 여성 고소 안 해요?” 1시간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나의 사례로도 교육 내용을 다 풀어냈다. 남의 얘기로 듣는 사람은 안 바뀐다. 내 문제로 듣는 사람이 바뀐다. 질문하는 행위는 관심 있고, 알고 싶고, 의식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손경이는 강의의 꽃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꽃 대신 칼이 날아드는 순간도 더러 있다. 생존자임을 밝힌 뒤 조롱하거나 낙인찍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손경이를 피하거나 주춤하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한다’는 생각이 단단하다. 사명감이 남다른 이유를 묻자 엉뚱하게 드라마 <추적자>(SBS·2012) 이야기를 꺼낸다. 이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저항하는 손현주 역할에 감동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도와줘야 한다”는 걸 배웠고, 아무리 두렵고 힘들어도 정의와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불편해야 인간이다.” 그렇다. 인간다운 삶의 추구를 위해 손경이는 불편한 상황을 감내하고 불편한 말을 약으로 삼는다. 그런 사람을 이해하면 강의의 질이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말한다.

“악의적인 사람을 바꾸기보다 나의 주변을 먼저 바꾸는 게 더 낫죠. 청소년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학생에게 성의식의 중요성을 현실성 및 실천가능성 있게 가르치면 돼요. 젠더 감수성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살 거고 언젠가 누군가 그 사람을 신고하겠죠. 악의적인 사람이랑 싸우는 건 소모적인 일이에요. 일반 사람을 감수성 있는 좋은 사람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에요.”

손경이는 얼마 전 아이와 함께 케이크에 불을 밝혔다. 이상민에서 손상민으로, 상민군의 성씨 변경을 기념하는 조촐한 파티였다.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과 친가의 의도적 배제와 비윤리적인 대우로 정서적 폭력을 겪은 뒤 엄마 성을 따르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재판장에서 판사에게 성씨를 바꾸려는 이유를 또박또박 개진하고 온 상민군은 능청스럽게 물었다. “엄마, 오늘 모성애만이 아니라 부성애도 느꼈지?” 세상은 바뀌는가, 안 바뀌는가, 더디 바뀌는가. 분명한 것은 지구상에서 이 두 사람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부딪치며 인간에게 주어진 ‘변신의 권리’를 실천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세상은 바뀌고 있다.

 

* 한겨레 사람매거진 <나들> 내 몸, 파르헤시아 2014년 2월호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