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 잔인한 나의, 홈

[행복한인터뷰]

돌고래는 친족 성폭력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감독 아오리) 주인공이다. 피해 여성 당사자로서 두 해에 걸친 법정 공방을 좇는 카메라에 민얼굴로, 목소리로, 일상으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7년형을 선고받지만 이 영화는 아버지를 거대한 악으로 다루지 않는다. 제목의 암시대로 한국 사회의 도구적 가족주의의 실상을 드러내고, 자기 몸의 기억과 싸우는 작고 용감한 한 여성의 성장에 주목한다. 7살 때부터 원하지 않는 것을 당해야 하고 바라지 않는 것을 겪어야 했던 맏딸이 자신이 경험한 진실을 또박또박 말하고 부단히 흔들리면서도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돌고래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함에서 행함으로. 이 고난도 존재 이행의 드라마를 선보인 돌고래가 나는 몹시도 궁금했다. ‘진실 말하기’(파르헤시아·Parrh?sia)에 따르는 치욕, 불안, 고립, 파탄을 감당하면서도 집을 나와 지내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표정에는 거짓이 없었다. 원한의 힘이 아닌 진실의 힘으로, 세상을 향해 존재를 개방하는 이 신기한 생명체는 누구인가. 두 차례 인터뷰가 성사됐다. 까르르 웃어넘기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명랑함으로, 때로는 죽음과 존재의 허무를 아는 것 같은 종교적 차분함으로, 재능에 가까운 솔직함으로, 돌고래는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싫다고 말해요

말을 할까 말까 결정하는 게 힘들었어요.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자연스럽고, 포장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거 같거든요. 숨기는 건 힘을 거꾸로 쓰는 거고. 그래서 힘들고. 그 억압하는 힘을 빼면 솔직한 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걸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웠어요. 이 사회의 진행 과정의 목표랄까, 결과적으로는 진실이 드러나는 쪽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진실이 알려지는 게 자연의 흐름이다. 제가 바라는 것이면서도 그렇게 믿는 것이기도 해요.”

돌고래는 스물다섯이다. 다큐멘터리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자신이 드러나는 걸 받아들이고 환영한다고 했다. 보호의 논리로 침묵을 요구받던 시기를 보내고 자연의 이치로 말하기를 택한 것이다.

돌고래가 친부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 세상에 나온 것은 3년 전이다. 시작은 이랬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어떤 책을 보게 된다. <난 싫다고 말해요>. 제목에 꽂혔다. 나는 싫다고 말해요? 그것은 돌고래가 외치고 싶었으나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던 그 말이었을까. 어린이를 위한 성폭력 예방 그림책이었다. 책장을 넘겼다. 단순한 의문, 단순한 비교였다. 그 책에 나오는 가족은 엄마·아빠가 자식을 보호해주는 사람인데, 나는 왜 엄마·아빠가 괴롭히는 사람이지. 책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 다친 데 없느냐고 묻는데, 나는 왜 솔직하게 말하면 혼나고,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을까. 돌고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왜 나는 괴롭히는 사람이 부모야?’

책 맨 뒷장에 성폭력 관련 기관 연락처가 나와 있었다. 돌고래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전담센터인 해바라기아동센터에 전화했다. 상담사는 근처의 지역 성폭력상담소로 연계해주었고 상담이 진행됐다. 소장이 엄마를 보자고 했다. 면담에서는 별말이 없던 엄마가 상담소 밖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동생들 교육비를 내야 하는데 너에게 계획이 있냐. 아빠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밝혀지면 동생들 혼삿길은 어떻게 할 거냐. 돌고래는 엄청 화가 나서 말했다. 나는 엄마 딸이 아니냐고.

니체는 우연을 유서 깊은 귀족이라고 했다. 때로 우연은 삶을 예속 상태에서 구제하고 고귀하게 만들어준다. 돌고래는 우연히그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몰랐다. 아빠의 이런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은 아빠가 다 아는 사람인데 네가 전화해서 뭘 어쩌려고, 너랑 나 사이에 있던 일은 무덤까지 비밀이다, 엄마는 나약한 사람이니까 이 일을 알면 슬퍼할 거다, 네가 얘기하면 가족의 행복이 깨진다, 같은 말들이 돌고래의 입을 다물게 했다. 건강한지 보는 거라며 아빠가 몸을 만지기 시작한 7살부터 집을 뛰쳐나온 그날까지.

“21살 때 만난 남자친구가 있어요. 내가 좋아하고 끌리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사귀는 중에 결혼하고 싶다는 맘이 들었어요. 근데 아빠와 저 사이에 있던 일을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에 너무 괴로웠어요. 솔직해지고 싶어서 얘기했고 그게 남한테 처음 말한 거예요.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아빠가 오는 걸 막게 되고 집안이 싸늘해지고 용돈을 깎거나 하고. 더 집을 나오게 되었죠.”

 

세 가지를 놓다

 

20101월부터 지역상담소에서 머물며 상담과 고소를 진행했다. 피해 경험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돌고래는 세 가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째, 이거 말하면 친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얘기하고 싶은가. 둘째, 결혼을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얘기하고 싶은가. 셋째, 직업을 구하기 힘들 수 있다. 고용자들이 내 경험을 알게 되면 일을 잘 못할 거라 생각해서 뽑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얘기하고 싶은가.

친구, 결혼, . 이 세 가지를 잃게 되더라도 지금 살고 싶었어요. 이 말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 어쩔 수 없다. 될 대로 돼라. 그래서 말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내 주위를 봤을 땐, 친구도 애인도 생계를 위한 일자리도 있었어요. 저한테 이렇게 말했죠. , 막연한 걱정이었나보다. 얘기하기 잘했다!”

지역상담소에서 머무는 동안 돌고래는 세상을 기웃거린다. 영어 홈스쿨링 강사, 과외 등으로 직접 돈을 벌었다. 외교관이 꿈이던 돌고래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리는 정치포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지식과 언어에 반한 돌고래는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휴학 중이던 대학을 자퇴하고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놈에게 복수하는 법>(감독 최미경)이라는 단편영화를 보았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감독이 말했다. 다음 작품으로 친족 성폭력을 다루고 싶은데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그 순간 돌고래의 마음에서 나는 괜찮아라는 말이 올라왔다. 감독에게 다가가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고 연락처를 나눴다. 한 달이 지나도록 감독에게 연락이 오지 않자 돌고래는 먼저 전화를 걸었다. 영화는 언제부터 찍느냐고.

<잔인한 나의, >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순간 돌고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틈틈이 고민했다. 내가 이걸 왜 찍고 있지, 뭘 위해서 찍고 있지, 이 다큐멘터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저런 감정이 밀려오고 생각에서 생각으로 돌아눕길 반복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마냥 걱정만 하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을 알아채고 질문을 바꿨죠. 나는 이 영화가 어떤 의미였으면 좋겠나. 이 영화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지 물으면서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이 영화가 엄마·아빠를 욕하고 싶어서 만든 게 아니다, 같이 욕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찍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다큐멘터리를 통한 존재 개방의 시도는 자기 인식의 방편이기도 했다. 돌고래는 말했다. “내가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피해가고 싶지도 않고 못 본 척하고 싶지도 않다. 영화를 찍으면서 더 분명하게 보고 싶었다. 이런 태도는 영화에도 잘 드러난다. 특히 타로카드 점 장면. 아오리 감독은 20대 젊은이의 모습을 찍는다는 식으로 촬영 허가를 얻었다. 그런데 돌고래는 사실대로 말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선의의 거짓말을 한 감독은 몹시 난처해한다. 두 사람은 친구처럼 옥신각신한다. 결국 타로카드 리더와 마주 앉은 돌고래는 말문을 연다. 저는 성폭력 피해자인데요, 라고. 

카메라가 없어도 얘기했을 거예요. 타로카드 점을 솔직하게 보고 싶었어요. 제 피해 경험을 알리려고 영화를 찍는데 직접적으로 알리는 걸 막는 일이 저한테는 역설적인 거예요.”

 

열림터, 존재 회복의 시간

 

돌고래는 지인의 소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림터에 들어갔다. 열림터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집을 나와 거주하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누워서 시름시름 앓는 시간을 보냈다. 누가 나를 또 아프게 하지 않을까 막연한 불안과 근심이 서렸다. 시간이 지나자 그곳이 점점 좋아졌다. 가족과 있을 때는 이 지구상에 혼자만 겪는 일 같고, 자신이 유발한 일이라는 자책이 많았고, 그래서 더욱 누구한테도 얘기할 생각을 못했다.

열림터에서 다른 피해 사례를 대하면서 돌고래는 자신의 피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얻었다. ‘저 사람이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듯 나도 내 잘못이 아니구나느꼈다. 피해 경험자들과 같이 밥 먹고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매달 열리는 작은말하기에도 참여했다. 작은말하기는 여성 10명이 모여서 피해 경험을 나누는 자리다.

제 이야기를 처음으로 시작했어요. 좀 지나는 순간 확 열리는 느낌이 들면서 같이 많이 울었어요. 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고. 다 같이 얘기가 시작됐죠. 처음 순간 뭔가 침묵이 흐를 때 답답했는데 제가 먼저 얘기할 수 있었던 게 고맙기도 해요.”

소소한 일상도 즐겼다. 돌고래는 열림터에서 최고 연장자였다. 대부분이 10대이지만 돌고래에게 화장을 해주고 선물도 주었다. 돌고래는 친구들에게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가르쳐주기도 했다. 관심과 칭찬의 말을 나누었다. 야외로 놀러 갔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개인기인 막춤을 춘 일, 명절에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놀이공원에 간 일은 신나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돌고래는 집에서 지낼 때 엄마에게 두 팔 벌려 안기려 했다가 밀침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 놀란 가슴 때문인지 나는 여자와 잘 지낼 수 없다, 여자는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열림터에서 지내는 동안 여자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고 관계가 만들어졌다. 서로의 살아 있음, 서로의 존재 자체가 치유였던 날들. 꽉 채운 2, 고마운 시간을 살았다.

 

잔인한 나의 홈

 

법정 공방도 끝났다. 20101월 경찰 조사가 시작돼 20127월 최종 선고가 났다. 돌고래의 아버지는 1심 무죄판결이 뒤집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영화에서 공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온 돌고래는 엄마, 어떡해요라며 오열한다. 복도 바닥에 신발처럼 쓰러져 운다. 재판 승소는 가족 파괴와 다름없다. 엄마는 돌고래에게 네가 아빠를 유혹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한 가해자였지만, 재판이 끝나자 남겨진 아내라는 친족 성폭력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이 어찌할 수 없음으로 인한 좌절, 연민, 통한, 설움의 눈물로 뒤범벅된 장면에 대해 변성찬 영화평론가는 가장 슬픈 승리라고 표현했다.

돌고래의 홈(home)은 겉보기에 멀쩡했다. 아버지의 안정된 경제력, 전업주부인 엄마, 세자매로 구성된 가족이다. 맏딸이 침묵의 봉인을 풀면서 균열이 일어났다. 엄마는 그 말을 통째로 묵살했고, 할머니와 동생들은 아버지를 위해 탄원서를 썼다. 등 돌린 가족. 이 상황은 가정이 보살핌과 배려의 공간이 아니라 온갖 갈등과 폭력이 있더라도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가족이라는 형식을 유지하고 결속하는 도구적 가족주의가 작동하는 공간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돌고래에게 아빠와의 경험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일주일에 몇 번인지 구체적인 숫자가 아니다. 지역상담소에 처음 가서 진술서를 쓸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어라고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것은 일상적 기억이면서 외상적 기억이다. 살면서 한 번도 언어로 발화되지 못한 몸의 느낌과 감정과 일들은 돌고래의 것이면서 돌고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행동이 일어날 때마다 턱턱 막히는 게 반복됐고 말로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단어랑 표현을 찾는 데 오래 걸렸어요. 상담소 선생님이 정히 어려우면 소설 쓰듯이 해보라고 해서 그렇게 썼더니 선생님이 야한 연애소설 같다고 하셨어요. 상담소에 있으면서 계속 쓰고 말하니까 기억이 또렷해지기 시작했어요.”

돌고래에게도 저항의 순간이 있었다. 한번은 아빠한테 말했다. 나 건드리지 마라. 어디 가서 돈 주고 해라. 엄마랑 해라. 그만해라. 21살 때인가도 일대일로 말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말했다. 아빠는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던 거 같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고 또 방에 들어왔다.

항상 초식동물처럼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참 싫은데도 집요하게 구걸하는 걸 버티기가 힘들었다. 아버지의 요구에 따르게 되는 일도 있었다. 너무 어려서 생긴 일이다. 처음엔 아빠가 네가 싫으면 안 할게했고 그 말을 믿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공부도 우정도 엉망이 됐다. 돌고래는 괜찮은 성적으로 외고에 들어갔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머리에 뭐가 꽉 찬 거 같아서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1 때 친한 친구가 있었다.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그 애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해지면 경험을 얘기하고 싶다. 따뜻한 게 필요하고 나누고 싶으니까. 그런데 친구를 멀리했다. 다르다는 것. 저 아이는 깨끗하고 나는 더럽다. 나를 싫어할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이성복의 시구대로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내 안에서 캄캄한가알지 못한 채 십대가 저물었다.

고소하기 전에는 그랬다. 돌고래는 아빠의 행동에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달고 싶지 않았다. 불편하고 꺼림칙하고 귀찮고 제발 그만했으면 좋을 것 같은 어떤 거였다. 아빠니까, 잘 따지지도 못하고 용서하고 다음에 다가오면 당하고 또 용서했다가 까먹었다가 또 당하고, 그런 반복이었다. 그때는 자신의 경험이 성폭력이라는 생각보다 ‘()관계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고소를 안 했으면 안 끊어졌을 거 같아요. 고소한 걸 후회하는 측면이 있는데. 미안하다고 아빠랑 앉아서 얘기했는데, 법이 아니고 내 힘으로는 어떻게 못해요. 엄마가 말릴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밖에 알려지지 않으면 끝날 수 없었어요.”

 

자유에 이르는 기술

 

돌고래는 현재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있는 주거공동체 빈집에 산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마을 활동을 위한 회의에도 참여한다. 빈집 생활이 재미있지만 어떻게 정착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탈출할까를 문득 생각한다.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계속 살핀다. 이 사람을 언제쯤 떠나야 하나. 돌고래에게는 피하는 것이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간 자신을 살게 해준 그 방어기제에 고마워하고 제사를 지내고 감사 표시도 하고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알려주고 이 순간순간을 보려 한다.

자꾸 과거를 탓하지 말자. 아빠가 감옥에 들어간 뒤에 깨달았어요. 아빠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빠가 없는데도 힘든 거예요. 나한테 책임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억울했어요. 어느 순간까지는 필요하죠. 그 사람이 잘못했고, 다 그 사람 탓이고, 그 사람만 아니면 이런 일 없었다, 이런 말들. 그런 다음에는 나를 보는 거예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남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고 실천하기. 계속 나로 돌아오는 것. 남 탓에서 벗어나 내 상처에 스스로 책임지기. 그럴 때 그 사람에게 자유가 오는 거 같아요.”

영화 <잔인한 나의, > 후반부에서 돌고래는 재판 뒤 추석에 집을 찾아가지만 엄마는 전화만 받고 만나주지 않는다. 보호자를 잃은 동생들도 언니를 외면한다. 돌고래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가끔 전화를 건다. 엄마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이야기해주지도 않고 묻지도 못하고 있다.

돌고래는 이런 상황이 아프지만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한 사람이나 상처를 입은 사람이나 공동체, 마을, 국가 안에서 둘 다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면 좋겠다고, 건강한 삶을 위해 서로 도울 수 있는 기술이나 인식이 있는 따뜻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그래서 아빠가 나한테 성폭력하기 이전의 아빠와 나의 관계, 엄마와 나의 관계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진실 말하기-들어주기

 

돌고래가 재판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신뢰하고 의욕하는 삶을 살기까지 성폭력상담소 같은 사회적 자원의 도움이 컸지만 주변 지지자들의 역할도 절실했다. 몸은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하고 고통은 들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돌고래는 피해 경험을 터놓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회피하지 않았다. 가령 누군가와 깊이 친해지고 싶을 때, 왜 가족이랑 따로 사는지를 물었을 때, 말한다. 그 사무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개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당황한다. 돌고래가 가장 고맙고 짠한 말은 말해줘서 고맙다” “믿어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한 친구가 저에게 묻더라고요. 자기가 엄마·아빠 얘기를 해도 괜찮냐고요. 그래서 말했죠. 너의 아빠 얘기 들을 때 어떤지 알려줄까? 나는 안심된다. 딸이랑 아빠랑 성적인 게 개입되지 않고 부모와 자식으로 지낼 수 있는 것, 그런 세상에 살고 싶기 때문에 든든하고 안심된다고요.”

연애할 때도 늘 혼란스러운 문제다. 돌고래가 피해 경험을 처음 말한 상대는 남자친구다. (그의 증언은 법정에서 결정적 사실로 채택된다.) 그때는 마음이 깊어진 뒤에 말했지만, 이후에는 호감 단계에서 미리 말한다. 이걸 알고도 나랑 함께할 수 있느냐 묻는다. 어떤 친구는 자기에게 너무 큰 일이라며 돌아섰다. “섹스를 하기 전이라서 다행이라며 돌고래는 씨익 웃는다.

한 친구는 마음 아파하면서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고 네가 어떤 슬픔과 고통을 겪었는지 모르겠다, 가늠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말했죠. 굳이 네가 가늠 안 해도 된다. 가늠해서 어쩌려고. (웃음) 내가 느낀 걸 네가 다 느끼게 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고통스러울 때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돌고래 삶이 내는 소리

 

돌고래는 비폭력대화 중재 전문가 과정을 배우고 있다. 엄마·아빠와의 갈등을 크게 경험하다보니 살기 위해서평화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게 중요했다. 그 외에 칵테일 제조 기술도 배우고 싶고 영화도 찍고 싶다. 이것저것을 시도하고 탐색한다. 과거의 상처로 하고 싶은 일까지 못하면 너무 억울하니까 다 해보고 싶다며 두 눈을 반짝인다. 시시각각 다른 눈빛, 다른 기류다. 쾌활하고 담대하다가 침울하고 잔망스럽다. 해사하게 웃고 짓궂게 굴고 이내 흔들리다 빤히 응시한다. 감정선이 올올이 살아 있다.

느낄 줄 알고, 물을 줄 알고, 말할 줄 아는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잔인한 나의 홈을 벗어난 돌고래는 끝없는 생성이 일어나는 힘들의 바다 위에 놓였다. 돌고래는 진실 말하기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힘이 있어서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함으로써 힘을 얻고 인연을 끌어오고 그 수행적 힘으로 살아낸 것이다. 상승과 하강의 몸짓이 만드는 생의 파동, 돌고래의 삶이 내는 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 당신의 권리임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나들>2014년 1월호에 '내 몸, 파르헤시아'에 실린 연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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