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2차 피해자 해인 -"성서비스노동자의 성폭력 고통, 외려 커요"

[행복한인터뷰]

한겨레 박승화

 

더한 고통, 덜한 고통이 있을까. 같은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해도 내가 의미하는 고통으로 너는 이해하지 않는다. 고통은 서로의 상태를 비교하도록 허용되는 체험이 아니다. 영혼의 경험이다. 윤동주의 시구대로 “늙은 의사가 젊은이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내재적이고 전달 불가능하며, 그래서 비교 불가능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쉬이 비교당한다. 장소, 시간, 수법 등을 따져 육체적 경험으로 여기고 고통의 양을 객관화한다. 안방에 침입한 괴한에 의한 아동의 피해와, 모텔에서 일어난 유흥업소 종사자의 피해는 같은 성폭력이라도 달리 간주된다.

이해받는 고통, 의심받는 고통은 있다. 정숙한 여자와 타락한 여자라는 사회적 척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인(가명)은 후자의 경우다. 사건 직후 여성긴급전화에 요청했을 때도,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을 때도 도리어 고약한 의심과 핀잔의 말을 들었다. 성폭력과 성노동은 엄연히 다른 범주이지만 누구도 엄밀히 구분하지 않았다. ‘예/아니요’만 통하는 사법적 언어로는 피해사실을 낱낱이 설명할 수 없었다. 말의 불능 상태에서 보낸 3년. 자기언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해인은 고통의 독특한 존재방식으로 인해 철저히 고독했다.

“그 키스방 건인가봐?” 한 형사가 지나가면서 툭 던진다. 서울 강북경찰서 형사팀. 사무공간에 칸막이가 없다. 남자 형사 앞에서 피해를 진술하기도 수치스러운데 현장중계하는 꼴이다. 창피함에 목소리가 작아지자 담당형사는 크게 말하라고 다그쳤다. 바로 옆자리에는 업주가 앉아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성폭행을 저지르고 나서 “손님하고 2차 나갔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뻔뻔스럽게 말하던 자다. 1만원짜리 몇 장까지 쥐어주었다. 그날로부터 일주일 뒤, 해인은 업주를 성폭력으로 고소했고, 키스방 업소의 불법 성매매 알선에 대한 처벌 의사를 밝혔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는 성폭력을 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를 가만두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업주는 조사를 받으며 시종일관 ‘그런 적 없다’로 응수했다. 외려 해인더러 돈을 요구하며 성매매한 여자라고 주장했다. 키스방 종업원들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적이 없고 다들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며 거짓 진술을 일삼았다. 업주는 친구까지 대동하고 조사를 받으러 왔다. 해인은 기가 찼다. 서러운 노릇이었다. ‘나는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신뢰관계인도 없이 혼자 왔는데 가해자는 친구를 데려올 수 있는 일이구나….’

사방에서 옥죄는 남성의 시선들. 그 속에서 해인은 털 뽑힌 참새처럼 작아질 대로 작아졌다. 담당형사는 얼굴도 보기 전에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합의하실 거죠?” 대질심문 때문에 조사받을 때는 “증거가 없어서 처벌 안 돼요. 어차피 불기소예요”라고 했다. 마지막 남은 존엄의 깃털마저 뽑아버린 결정적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보통 다른 여성들은 피해 상황에서 상처를 입더라도 저항하기 마련인데 왜 그러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조사 말미, 업주는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사과를 하였고 고심하는 해인에게 형사는 메모지에 적어서 보여주었다. “어차피 불기소이니 사과를 받으세요.”

“저는 공황상태에서 온전한 판단력도 갖기 힘든데 계속 불기소를 강조하는 건 처벌 의사를 꺾는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또 몸에 상처가 남을 때까지 반항했어야 한다는 담당형사의 말은 정조를 생명보다 중요시하는 거잖아요. 여기서는 내가 불리하구나. 어떤 말을 해도 모텔까지 따라가놓고 성폭력 운운하는 여자의 횡설수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싶었죠. 암담하더라고요.”

단순히 젠더 감수성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건 직후 여성 상담원에게는 “그 나이 먹고 모텔까지 따라갔느냐”는 말을 들었다. 해인은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갔다. ‘과연 나의 경험을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퇴근길, 해인은 오늘도 어김없이 연체 이자를 송금했다. 하루라도 입금이 연체되면 다음날 타격이 크기 때문에 늘 조마조마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참고서나 옷 한 벌까지 얻어 입고 자랐다. 테이크아웃 커피조차 사치였다. 검박한 생활의 결과물은 엉뚱한 데로 고스란히 새나갔다. 월급 전액이 원금 상환은커녕 사채이자를 메우는 데 들어갔다. 아버지의 두 차례 투자 실패로 인한 뒷감당은 해인 몫이었다.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억울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빨리 부채를 해결하겠다는 일념으로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 전화로 문의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면접을 보러 오면 알려준다고 했다. 업주는 해인을 보더니 화장을 하지 않았다며 탐탁지 않아했다. 여기서 일하기엔 나이가 많지만 특별히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기억의 카타콤에는 공기가 더럽고

비좁은 방. 소파 옆에는 휴지가 있었다. 업주는 말을 바꿨다. 이곳은 무늬만 키스방이지 대부분의 손님은 성매매까지 원하니까 융통성 있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기본 시급만 받아서는 돈벌이가 안 되고 성매매를 해야 팁을 받을 수 있고 지정 손님도 생긴다는 거였다. 해인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하루만 일해보고 결정하라고 권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손님이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범벅이 된 채 성관계를 시도했다. 해인은 중간에 뛰쳐나왔고 업주는 어르고 달래고 협박했다. 손님 비위를 안 맞추면 어쩔 거냐, 환불을 요구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해인은 대기실로 와버렸고 대기실에 있던 최연장자가 대타로 투입됐다.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이중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업주는 단속에 대비한다며 일하러 온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강요받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각서를 받아서 책임 회피 수단으로 삼았다. 그런 부당함도 참기 힘들었다. 하루쯤 경험으로 여기겠다고 말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곧바로 업주가 전화를 걸어왔다. 거기에 있어보라고 다른 데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자신은 이런 데서 일하는 여자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온갖 감언이설로 위로하고 다독였다. 캄캄한 새벽길. 업주는 집에 데려다준다며 동행하더니 모텔촌으로 향했다. “비도 맞고 늦었으니까 씻고 쉬고 가라.” 그 말을, 수면 부족과 피로감에 지친 해인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모텔에서 ‘풀려나기까지’ 4시간이 걸렸다.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사비네 여인들의 강간>에 나오는 여인처럼 해인의 몸은 심각하게 꺾였다. 손을 아무리 내저어도 허공엔 잡을 것이 없었다. 한 마리 사나운 말처럼 돌변한 업주는 말발굽 같은 성기로 몸의 중심을 짓눌렀다. 화폭의 남성이 손에 칼을 쥐고 있듯이, 업주는 맥주병을 들고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남성의 동물적 폭력성의 파괴력은 그림의 안과 밖에서 조응했다. 평생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던 피카소와 살았던 두 여자, 마리 테레즈 월터와 자클린 로크는 자살했고, 반나절 몸 들인 유흥업소 업주에게 성폭력을 당한 해인은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동의하지 않아도, 밤은 온다. 사채이자처럼 꼬박꼬박 밀려오는 밤. 해인은 밤마다 울부짖었다. 성노예처럼 취급당했던 새벽의 시간이 되면 ‘기억의 폐수’(최승자)가 흘러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자살충동이 심하게 밀려올 때는 차라리 살인계획으로 전환시켰다. 죽어야 될 자는 내가 아니라는 억울한 심정에 가상의 복수극을 펼쳤다. 복수를 다룬 영화나 소설을 읽고 대리만족을 느꼈다. 신변의 안전과 방어를 위해 가방에 넣고 다닐 전기충격기와 가스총 같은 ‘무기’를 찾아다녔다. 택시를 탈 때, 가방에 무기가 없으면 근처 만물상점에서 식도를 사서 탑승하기도 했다.

“정말로 무기를 갖고 있어야 마음이 더 편하다기보다, 반항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조사 과정의 추궁에 따른 후유증이었죠. 그날 조사받다가 이대로 더 가다간 나만 만신창이가 되겠다 싶어서 바로 고소 취하장을 제출했어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증거가 될 수 있는데 그때는 몰랐어요. 법에 무지했죠. 지금도 고소를 취하한 건 후회하지 않아요. 수사기관에 신고한 것 자체를 후회했으니까요. 영화 <공정사회>의 결말처럼 사적인 복수를 택하는 게 현명하진 못해도 한심스럽진 않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최소한 2차 피해는 없었을 테니까요.”

고독한 이빨을 갈고 있는 살의, 아니 그것은 사랑

국가기관에 의한 2차 가해를 두고 “성폭력보다 더 고통스러운 폭력”이라고 해인은 말했다. 지금과 달리 2010년만 해도 성폭력 사건은 별도의 밀폐된 공간에서 여경에게 조사받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해인에게 원스톱지원센터의 존재나 신뢰관계인이 동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해주지 않았다. 현재 시행 중인 증인지원관이나 피해자 국선변호사 같은 피해자의 법적 권리를 위한 제도는 기소 이후 상황에 해당한다. 기소 이전 경찰 조사 단계에서의 피해자 인권보호 장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미흡한 실정이다.

아무튼 작은 천막도 없이 ‘2차 가해’라는 비바람을 맞은 해인의 정신적 외상은 컸다. 두 번째 자살 시도 이후 외래진료를 받다가 입원치료를 시작했다. 약물치료 덕분에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줄었지만 삶의 의욕도 같이 사그라졌다. 항상 우울감에 젖어 복수심을 느낄 기력조차 없었다. 말을 끊고 약에 취한 시간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약을 끊고 말을 시작했다. 입원 두 달 뒤 즈음 사이코드라마에 도전했다. 그때 성폭력 경험을 처음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겪은 상황만이 아니라 원했던 상황인 배려받는 수사 과정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심리극 진행자가 무슨 아르바이트였는지 물었을 때 해인은 또 말더듬이가 되어 ‘호프집’이라고 해버렸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성폭력 이후 신체적 ‘증상’에 대해서만 얘기했지 사건의 ‘정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모텔’과 ‘키스방’이라는 그 두 단어를 빼고 상담하다보니 늘 겉돌았다. 이야기를 해도 후련하지 않고 체한 것처럼 답답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한 말, 막힌 말이 아니라 트인 말을 하고 싶었다.

열망이 기회를 불렀을까. 지난해 하반기 해인은 성폭력상담소의 프로그램인 글쓰기 워크숍과 큰말하기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성폭력 생존자들과 관계를 맺고 말을 나누고 글을 썼다. 그곳에서도 해인은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다. 같은 생존자들이나 활동가들에게도 처음부터 피해사실을 터놓지는 못했다. 글쓰기 워크숍에서는 16주 과정의 마지막 수업에서야 한 편의 글로 사건의 전말을 온전히 고백했다.

“내가 말할 기회를 꼭 갖고 싶었어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죠. 글을 쓰면서 초안 만드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한줄 한줄 완성하면서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쓰기는 억압적이지 않은 말을 창조하고 자꾸만 끊어지려는 말을 잇는 과정이었다. 글로 정리하고 말이 트이면서 약도 줄일 수 있었다. 해인은 그간 정신과 입원, 약물 복용, 상담, 글쓰기, 말하기 등 수많은 치료 방법을 통해 고통의 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일련의 시도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본 방법은 글쓰기나 말하기 같은 ‘스스로 드러내기’였다.

고양이로서 실천할 수 있는 선행은 악행만큼 다양하고

“고양이가 되겠다고 집을 나온 첫날 밤부터 눈에서 빛이 났던 건 아니죠. 열세 살 때부터 고독한 눈알을 원했는데요, 초점이 사라질 때까지 눈알을 빙빙 굴렸을 뿐이죠.”

-김행숙, ‘고양이군의 수업시대’ 중에서

고양이 눈알로 응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해인이 어려서부터 목도한 세계다. 화장실 불을 켜지 않는 습관으로 지금도 어둠을 지향한다. 아버지를 ‘독재자’라고 부른다. 은유적 수사가 아니다. 해인이 자라면서 본 모습은 독재자의 호르몬이 분비되는 한 남자다. 가난의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신혼 때부터 재떨이를 던지고 폭언을 행사했다. 그런 아버지와 살면서 어머니는 더욱 순종적으로 변해갔다. 해인은 자살충동에 시달릴 때도 어머니를 떠올리며 견뎠다. 유일하게 혈육의 정을 느끼는 존재가 어머니다.

해인은 고양이-엄마가 되었다. 캣맘(cat-mom)이다. 동물에게서는 상처받지 않으리란 희망으로 유기묘를 3마리 데려왔다. 처음에는 무척 공격적이던 고양이들이 자꾸 보듬고 품고 애정을 주자 달라졌다. 도도하지만 사납지는 않다. 고양이와 해인은 서로 존재하는 것으로 돌보고 키운다. 해인은 고양이와 살면서 환경과 기질의 관계를 인식했고 생명체의 변화 가능성을 확인했다. 고양이에게 사랑과 책임감을 배우고 나니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 있는 용기까지 생겼다. 그뿐인가. 폭행이나 협박이 동반되지 않는 경우처럼 성폭력 유형의 편견 때문에 주저하는 이에게는 기꺼이 동행이 되어준다.

“성폭력 생존자 중에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못한 사람은 신고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신고한 사람은 유죄판결이 난 사람을 부러워해요. 그런데 유죄판결이 나기까지 1~2년 동안 그 지난한 과정에서 일어난 얘기를 들으면, 아휴 그냥 저기까지 안 간 게 다행이다 싶다고들 하죠. 제가 겪은 일이 어떤 형사의 개인적 자질이나 직업의식 수준의 문제는 아닐 거예요. 과중한 업무 속에서 성폭력 문제를 다루니까 감수성도 부족하고 무지해서 생긴 일이죠. 나중에 만난 생존자들 또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인지 수사 과정에서 겪은 고충은 비슷했어요.”

해인은 길게 본다. 지금은 명백한 성폭력으로 인정하는 사건도 동일한 조건에서 과거에는 가해자 처벌이 어려웠다. 성폭력을 둘러싼 조건은 계속 변해간다. 그 변화를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직접 참가하고자, 성폭력 피해자 지원 동행 자격으로 법정에 간다. 참관을 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점을 고민하고, 그렇게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다.

성노동 여성 당사자 운동도 열심이다. 성폭력 생존자의 문제는 여성단체에서 대리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물론 초반에는 보호와 상담이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치유됐을 때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단체와 시민사회에서 제도적인 문제를 풀어갈 때 동시에 생존자들도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야지 사회적 편견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해인이 자신의 2차 피해 경험을 당당하게 얘기하고 공론화를 시도하는 이유다.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부근. 수많은 간판들의 아우성 속에서 그곳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음지식물처럼 질기게 연명한다. 아직도 악취를 풍기는 기억의 거점. 사건이 발생하고 2년이 지났을 즈음, 한번은 분에 차고 억울해서 올라가본 적이 있다. 가해자였던 업주를 만나지는 못했다. 나중에 알았다. 그런 업소는 신고가 들어가면 폐업하고 사업자등록증 명의를 바꿔가면서 영업을 지속한다고 한다. 그러니 저 키스방이 사라진들 무엇할까. 업주들은 또 다른 신종 변종업소를 만들어내고 여자들을 인형처럼 부릴 텐데 말이다.

사건 당일, 잠깐이나마 머문 키스방 대기실 풍경이 떠오른다. 말이 부글부글 들끓었다. 방금 상대한 손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성토의 장이었다. 30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아 만근 수당을 받았다는 언니는 싱글맘이었다. 반값 등록금 실현은 요원한 일이어서 사립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온 앳된 학생, 낮에는 편입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에 출근하는 휴학생 등 제각각의 사연들을 갖고 있었다.

그 누가 알까, 아니 알려고 할까.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지’는 물어도 ‘그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는 거의 묻지 않는다. 성매매집결지는 물론이요 키스방이나 노래방, 안마방, 다방 같은 신종 변종업소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에 대한 크고 작은 인권침해들, 목숨을 위협당하는 (성)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인권 사각지대다. 가부장제 사회의 타자인 여성, 그 여성에서도 주변화된 존재인 성노동자는 실제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문제화하기 어렵다. 해인이 그러했듯이.

“여러 상황 중에 하필 키스방에 간 첫날 성폭력 사건이 생겼을까, 원망이 컸어요. 근데 제 사건을 계기로 다른 생존자들과 성노동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생겼어요. 매스컴에서 성노동자는 마치 쉽게 돈 벌려는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성노동의 특수성이나 그들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 건강권을 담보해야 하는 상황이 있거든요. 제 일이 아니었다면 저에게 상처 준 사람과 비슷한 가치관으로 살아가다가 저도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성매매 여성에 대한 큰 편견은 없었지만 약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봤음을 고백한다. 그들을 시혜받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여겼다. 그들이 고되게 일하는 노동자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성노동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인터뷰하는 것에 크게 지지를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정부의 지원을 조금이라도 더 잘 받는 게 실속 있다고, 그게 아니면 여성들이 하루빨리 그 일을 접고 사무직에서 일해야 한다고, 그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물론 아니다.

“제가 갔던 키스방에서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가 다른 직장과 다르게 취급돼야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성매매집결지 외에도 다방이나 키스방에 종사하는 여성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느 지역의 노래방 도우미들이 시급을 올려달라는 운동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간헐적인 움직임이겠죠. 감정과 육체를 팔아가면서 장시간 노동하는 여성들이 부당한 처우를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걸 막는 일에 작게나마 일조하고 싶어요.”

‘성매매가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이론으로만 이해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생각이다. 그들을 타자화하는 시선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나마 당사자로서 경험하면서, 해인은 ‘성노동자의 성폭력 피해 지원’과 ‘성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게 됐다. 이것이 특정한 사건 속에서 진리를 체험한 주체가 그 진리에 대한 충실성(fidelity)을 고수하는 윤리적 태도(알랭 바디우)일 것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의 권력과 자본이 여성을 수단으로 이익을 취하는 한, 성노동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은행원으로 오래 일하다가 어느 날 직업을 바꾸는 게 힘들고 두렵듯 성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새 출발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러니 성매매의 근절이냐 허용이냐의 거시적인 입장만 되풀이해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성노동자의 구체적인 삶을 보호할 수 없다. 그 틈에서 해인은 자신의 역할을 발견한 것이다.

얼마 전 반성매매 단체에서 자신의 피해 경험을 이야기했다. 개인적인 악몽에 그치는 게 아니라 분명히 지금 또 어딘가에서 고용주로부터 강제적으로 성상납을 요구받거나 당해도 신고 못하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언젠가 그들 목소리에 기대어 해인도 힘을 얻고 싶다.

더디 사라지는 고통, 안고 가는 고통이 있을 것이다. 가까스로 피해 경험을 다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해인은 아직도 투병 중이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들지 못하고 낯선 남자만 보면 안면 근육이 경직돼버린다. 슬픔은 가도 아픔은 남는 법이니.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익명과 뒷모습을 원하는 걸 보면 떳떳하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쓸쓸히 말한다.

모든 고귀한 변화가 그렇듯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것 같지만 실존적 차이는 있다. 해인은 더 이상 정신과 병동이나 방 안 같은 격리된 공간이 아닌 삶의 복판에서,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아프다. 아픈 세상에 가서 아프고자 한다. 의심받는 고통이 이해받는 고통이 될 때까지. 그리고 논리회로에 갇힌 단단한 언어가 분열하는 다성의 언어로 삶에 스밀 때까지.

 

*이 글의 각 중제는 허수경(‘울고 있는 가수’), 이성복 (‘기억에는 평화가 오지 않고’), 최승자(‘사랑 혹은 살의랄까 자폭’), 김행숙(‘고양이군의 수업시대’), 황지우(‘산경’)의 시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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