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히 - 보사노바뮤지션 '너무 흔한 비밀을 노래하네'

[행복한인터뷰]

[내 몸, 파르헤시아] 보사노바 뮤지션 소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방법 방법/ 약간은 낙관적으로 강해질 것/ 남들의 시선을 나에게 대지 말기/ 잘할 수 있는 일들에 열중하기/ 부드럽게 환하게 서로를 지켜보기/ 나보다 세다고 눈감아주지 말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중

소히 1집 <앵두>(2006)에 수록된 노래다.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가사에, 흥겨운 보사노바 리듬을 입혀서 청아한 음성으로 부른다. 그해 처음 반팔 셔츠를 꺼내 입은 날 살갗에 떨어지는 노란 햇살처럼 묵은 감각을 깨우는 기분 좋은 노래다. 아니다. 그해 처음 내리는 겨울비가 콧등에 떨어질 때처럼 시큰하기도 하다. 경쾌하거나 애잔하거나. 소히의 노래는 빙긋이 웃게 한다. 이름의 주술적 힘일까. ‘소히’(sorri)는 포르투갈어로 ‘미소짓다’란 뜻. 본명 최소희(昭喜) 역시 웃는다. 기쁘게.

데뷔 이전부터 서울 홍익대 앞 인디신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온 소히는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로 통한다. 어느 뮤지션은 “우리나라에서 소히보다 브라질 음악을 깊게 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고, 어느 팬은 “완전 동안 보사노바 가수”라고도 했다. 한국 가요와 브라질 음악의 섞임이 돋보이는 2집 <밍글>(Mingle·2010)에 이어 세 번째 앨범 <데이케어>(2013)를 낸 소히는, 어느 인터뷰에서 “보사노바 말고도 하고 싶은 음악이 많다”고 했다.

“이번에 3집 음반은 제가 직접 프로듀싱을 했는데 밝은 음악만 있지 않거든요. 슬프고 우울한 면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1집, 2집 때 보사노바 이미지 때문에 시종일관 미소지어야 하고 샤방샤방해야 했어요. 그걸 벗어나니까 사람들이 무거워졌다고 느끼더라고요.”

기타를 잡은 지 10년. 소히는 외려 자신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면의 어둠을 표현할 만큼 비로소 ‘낙관적으로 강해진 것’이다. 워낙 기질이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방 안에 오도카니 놓인 소녀가 음악과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싶지만 그 반대다. “혼자 있어서 음악을 만난 게 아니라 음악을 만나서, 음악만 듣느라 혼자 있게 됐다”며 웃는다.

 

흑인음악과 보사노바, 사춘기 반려음악

순수한 마음은 상처받기 쉽고/ 커다란 눈은 세상과 싸우고/ 영악하지 않으면 거친 세상에 살기 힘들 거란 생각에/ 모두 초조해지고/ 그리워라/ 따사로운 시선/ 느끼고파/ 연결된 기분/ 느끼고파/ 혼자가 아니란걸 <왈츠> 중

중1 때 <지구촌 영상음악>이라는 TV 프로를 보았다. 흑인음악이 잠깐 나왔는데 그루브한 리듬앤드블루스(R&B) 음악이었다.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듯 넘실대는 흥겨운 리듬에 단박에 사로잡혔고 그때부터 음악을 찾아들었다. 더 어릴 때 김완선의 무대를 보면 가슴이 뛴 적도 있다. 열정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할까. 기타를 처음 잡은 것은 고3 때다. 록을 좋아하는 사촌언니를 따라 라이브클럽 ‘드럭’에 갔다가 음악 하는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밴드를 하게 됐다. 고등학교 때 한 달 정도 기타를 배우고 그때부터 혼자 연습했다. 소히의 첫 그룹은 슈게이징 록밴드 ‘잠’이다.

“흑인음악은 듣는 건 좋은데 직접 하려면 힘들었어요. 감정을 오버해야 하는데 제가 과하게 표현하는 걸 못 견뎌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러다가 스무 살 때 ‘잠’에 들어가서 베이스를 쳤죠. 슈게이징(Shoegazing)이 고개 푹 숙이고 신발만 보고 연주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거든요. 록밴드지만 액션 없이 정적으로 하니까 좋았어요. 성장기의 우울함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었죠.”

‘내 몸’에 가까운 음악은 따로 있었다. 보사노바가 소히의 귀를 두드렸다. 우연한 계기다. 서점에 갔다가 브라질 가수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의 베스트 앨범을 반값에 팔아서 반가운 마음에 샀고, 들었고, 반했다. 풍부한 리듬에 절제된 감성이 깃든, 그 건조함에 매료됐다. 음악이든 일상이든 감정을 발산하기보다 억누르는 것을 추구했던 소히다. 그 길로 인터넷 보사노바 동호회에 가입했고, 그곳에서 베이시스트를 구한다는 공지가 떠서 오디션을 보고 브라질 음악 밴드를 시작했다.

보사노바(BossaNova)는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경향’이란 뜻이다. 삼바의 복잡한 리듬에 모던재즈 기법을 도입해 세련되고 단순하게 발전시킨 브라질 음악으로, 1960년대 세계적인 유행과 더불어 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서는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한영애의 <어느 날>,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 등이 보사노바 장르에 속한다. 브라질 음악으로 앨범 전체를 소화하는 뮤지션은 소히가 유일무이하다.

왜 브라질 음악일까. 음악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음악으로 청춘을 기대고 영혼을 돌보고 앨범을 채운다는 것은 호기심이나 의지를 넘어서서, 존재의 요청이다. 브라질 음악의 어떤 요소가 소히와 부합했는지 묻자 소히는 ‘쇼로’(Choro) 이야기를 꺼낸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으면서 음악도 영향을 받았대요. ‘쇼로’라는 전통음악이 있는데 되게 슬프거든요. 원래 아프리카 노예들을 통해서 브라질에 흑인음악이 들어왔으니까 역사적 배경에 따른 특유의 정서도 있겠지만, 쇼로의 영향으로 브라질 음악이 밝지만 슬픔이 있어요. 삼바를 들어봐도 리듬을 잘게 쪼개고 박자가 빠르지만 멜로디는 구슬프거든요. 포르투갈 음악 자체가 슬픔을 깔고 있대요. 쇼로가 ‘운다’라는 뜻이거든요.”

 


‘웃으면서 말하기’ 모방하고 싶다

나나나나 나나나나/ 하고 싶은 말 있어/ 나나나나 나나나나/ 에겐 슬픈 일이 많아/ 나나나나 그래 너처럼/ 모두 내 잘못인 줄 알았어/ 하필이면 왜 나였는지/ 그냥 재수가 없었어/ 나나나나 참 웃긴 건/ 하필 나인 사람 너무 많아 <나나나> 중

울음이 끝난 뒤 하늘 같은 무구한 표정으로, 소히는 아동 친족 성폭력 피해 경험을 얘기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이 정말 절망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정상이 아닌 것 같았고 긴 시간 동안 자신에 대해 긍정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괴로워했다기보다 주위의 시선이나 매체에서 다루는 기사로 인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쉬이 상처받고 자주 위축되는 상황에 처하면서 그 사건을 많이 탓했다.

“아동 성폭력의 괴로움은 우선 내 편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가족, 친구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죠. 어머니가 알게 됐는데 구체적인 피해 사실까지는 모르고 장난을 쳤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저를 엄청 혼내셨어요.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혼이 나니까, 잘못했구나 생각했죠. 돌이켜보면 그때 엄마도 당황하신 거 같아요. 나이가 들고 학생이 되고 나서 제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내 잘못이고 그런 게 괴로웠고, 큰 비밀이었어요.”

2007년 8월, 소히는 피해 사실을 남들에게 처음 말했다. 홍대 앞 인디신에서 친하게 지내던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멤버 송은지의 제안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한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에 참여할 때였다. 앨범 제작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정민아·송은지 등의 가수 외에도 글 쓰는 이들까지 6명이 위안부 관련 세미나를 듣고 학습 친목모임을 꾸렸다.

처음 모인 날, 술을 마셨는데 여성주의에 관한 이야기로 흐르면서 ‘나 이런 적 있다’며 성폭력과 성추행 얘기가 나왔다. 그 자리에서 소히도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이듯 말이 나왔다. 피해 사실을 축소시키기는 싫었고 있는 그대로 떨리는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그 뒤로는 성폭력 피해와 관련된 얘기가 나왔을 때 마치 “나는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처럼 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소히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란 책을 만났다. 서문을 읽는데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거의 모든 인간의 고통은 ‘말’ 때문에, 즉 지배 규범을 내면화할 때 발생한다는 것, 자신을 다양한 존재로 개방해나가야 한다는 것 등 구절구절이 뭉친 과거를 어루만져주는 느낌이었다. 극렬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누가 한마디만 잘못해도 가만 안 두는. (웃음)”

영화, 음악, 책 등 두루 섭렵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조세영 감독의 성폭력 피해 생존자 다큐멘터리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를 보았다. 스크린에서는 ‘같은 고통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영화에 출연한 이들은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활짝 웃으며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다. 침울하지 않은 분위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항상 울면서 이야기하는 상황이 불편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여성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소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매달 주최하는 성폭력 피해여성 자조모임 ‘작은말하기’ 자리에 나갔다. 

 


 

나를 피해자로 본다면, 그건 애석한 일

내 옆자리에 앉아 내 옆구릴 스치는 느물거리는 손/ 심증의 손/ 편하단 말에 존중은 없고/ 존중한단 말에 진심이 없는/ 아/ 가녀린 내 마음/ 오해가 될까 착각이 될까/ 억울해할 테지만/ 난 말할 거야 <심증> 중

진실 말하기, 이후 실존의 변형이 일어났다. 탈소심. 자기억압에서 조금씩 놓여났다. 무대도 확장됐다. 소히의 음악이 공감할 수 있는 품이 넓어졌다. 여성단체나 반성폭력운동 진영과의 인연으로 크고 작은 행사에 초대됐다. 성폭력 생존자의 증언 기록인 은수연의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북콘서트에서 축하 공연을 했고, 전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성폭력 피해자 글쓰기 워크숍 문집 발간 북콘서트에도 출연했다. 노래가 끝난 뒤 기타의 여음 속에서 소히는 나지막이 말했다. 저도 아동 성폭력 피해자인데요, 라고.

“제 피해 사실이 알려져서인지 관련 행사에 자주 부르시더라고요. 고맙게 가죠. 페이를 주니까. (웃음) 불러주지 않으면 제가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데 가서 얘기도 듣고 노래도 하고. 피해여성들이 자기 경험을 말하는 그 힘이 느껴져서 좋아요. 그런 자리가 비공개잖아요. 근데도 갈 때마다 느끼는 게 ‘이렇게 피해자가 많구나, 여전히 많구나’예요.”

타인의 아픔이 눈에 든다. 받은 것을 돌려줄 차례다. 과거의 자신처럼 끙끙 앓고 있는 피해여성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횃불 같은 선구자가 되겠다는 것도 아닌데 막상 현실에 직면하면 이것저것 걸린다. 자기개방과 자기보호라는 상치된 두 욕망 사이에서 적어도 하룻밤은 뒤척인다. (소히에게 인터뷰를 제의했을 때 하루만 더 고민해보고 다음날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그것도 여성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예상되는 반응은 피해자로서의 낙인이다. 대개는 폭력을 폭력으로 보지 않고 성적 이슈로 본다.

이런 관습적 해석의 또 다른 폭력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그렇게 개인의 고통은 사회적 의미망에서 생겨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폭력 피해를 말 못할 사연, 큰 비밀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건 사실 (피해자가) 말을 안 하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해요. 음, 말을 했을 때 누가 나를 이상하게 섹슈얼하게 본다면 그건 그 사람이 미친놈이지 내가 그런 사람까지 고려해야 할 이유는 없는 거예요. 사실 저는 가진 게 없어요. (웃음) 제가 좋아서 음악을 하는 거니까 잃을 게 별로 없죠. 만약 누군가가 거부감을 갖는다면 애석한 일이겠죠. 여전히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게 애석하겠지만 그것까지 제 힘으로 바꾸려는 건 지나친 욕심 같아요.”

서정주의 유명한 시구대로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뉘우치지 않을란다’ 하는 자세가 때로는 필요한 법. 소히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강함이 생기는데 더 강해지기 전에 얘기하고 싶다고, 더 강해지고 나서 얘기하면 의미 없을 거라고 했다. 소히의 진실 말하기는 확신과 의지가 아니라 불안과 긴장의 힘에서 매번 시도되는 것이다.

 

인디뮤지션의 밥벌이, 그리고 108배

마치 높은 성처럼/ 쌓인 관념을 깨뜨리는/ 모두 다 딱 쿵 짝/ 들어맞진 않아도/ 너의 모습들이 참 좋아/ 남의 고통 느끼는 상상력이 좋아/ 힘 빠르기 자랑 안 하는 네 기타가 좋아 <좋아> 중

소히는 우울한 손가락을 가졌다. 희고 가늘고 기다랗다. 아슬아슬하지만 정확하고 날렵하게 기타 줄을 탄다. 의사표현도 그러하다. 물속의 수초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어조인데 모호하게 말하는 법 없이 선명하게 전달한다. 말간 표정은 정지된 듯 섬세하게 변화하는 감정의 결을 활발하게 실어 나른다. 그 서정적인 손가락과 담대한 말하기와 갸우뚱한 감정선의 합작품으로 소히만의 고유한 노랫말이 나온다. 세 장의 앨범에 가사를 거의 직접 썼다.

이번 3집 앨범을 보면, <왈츠>는 상처를 잘 받는 작은 마음이 들어가 있고, <심증>은 성추행을 당할 때 큰소리 내지 못했던 억울한 상황을 표현했다. <투명인간>은 장기 투쟁에도 불구하고 사 쪽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떡볶이 식사>는 노점에서 1500원짜리 밀가루 떡볶이로 한 끼를 때우면서 드는 상념이 부의 불공정한 분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나아간다. 이런 이야기들은 평소에 조금씩 메모해놓은 생각, 감정을 관찰하고 일상의 경험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것이다.

뮤지션이고 노동자인 소히의 일상은 다채롭다. 20대부터 꾸준히 일했다. 방과후 선생님, 회사 경리직, 서빙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전직을 거쳤다. 현재는 “웹디자이너는 아니고 웹디자인 일을 한다”. 음악을 다루는 툴과 원리가 비슷해 어렵지 않게 배웠다고 한다. 주 5일 하루 5시간씩 생활비를 벌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을 한다. 음악 하는 사람이 다른 일을 하는 게 약점일 수 있다고들 하지만, 소히는 오히려 더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으로 못 먹고산다는 걸 방증하니까요. 현재 음악판이 그렇다는 걸 숨길 이유가 없는 거 같아요. 음악은 다 스트리밍으로 듣고. 스트리밍 해봤자 1원, 2원 들어오나요. 공연이나 해야지 수익이 나는데 기회가 많지 않아요. 아이돌이나 주류 가수가 아니면 신보가 나와도 음악 사이트 메인에 안 뜨거든요. 결국 버는 사람만 계속 벌고, 똑같은 시스템이 공연에도 적용되는 거죠.”

소히의 3집 앨범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3 앨범제작 지원사업’ 선정작이다. 금전적인 큰 어려움은 덜었다. 1년간 작업한 곡들을 장필순·고찬용 등이 소속된 뮤직레이블 ‘푸른곰팡이’에 보내서 앨범을 발매하는 등 좋은 동료와 작업하는 행운도 얻었다. 소히 3집 앨범은 이전의 브라질 음악에 대한 경쾌한 해석이나 소녀적 감수성에서 나아가 종교적 색채와 재즈적 분위기가 덧입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본인의 해석은 좀 다르다. 대략의 곡 작업을 기타로 했고 리듬이 부각된 흑인포크 성향으로 이동했다며 이전 앨범보다 더 리드미컬한 앨범이라고 말한다.

소히는 요즘 불교에 관심이 생겼다. 종교적 접근이라기보다 성찰적 계기 정도다. 틈틈이 108배를 하는데, 목탁을 쳐주는 ‘108배 애플리케이션’을 틀어놓고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돌아본다. 기도는 존엄을 잃지 않고 고통을 참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던가. 스마트폰을 앞에 두고 몸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온갖 잡다한 생각을 정리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어제 그런 일을 하면서 왜 그랬지 등등. 아무려나, 백팔번뇌의 팔 할은 음악이다.

“제 목적을 망각할 때가 많아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고 3집 앨범을 낸 건데, 좋은 반응이 없다고 상처를 받아요. 남들의 평가보다는 제 음악적 표현이 중요한데…. 만약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20명 있었는데 지금은 5명이다. 그것 때문에 슬퍼하기보다 5명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5명도 없다고 치면, 지금까지 음악 하는 게 어디야.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성폭력지원센터 만든 가수 ‘메리 제이 블라이즈’처럼

넌 내가 보이지 않나/ 보이는데 못 본 체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 왜 우린 투명해져야 하는가/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 그렇게/ 그렇게/ 안아달라/ 애기하자/ 말하고 싶어/ 우리는 사랑했어/ 사랑을 잊으려고 하는 바보넌/ 투명인간? <투명인간> 중

피오나 애플은 12살 때 당한 성폭력의 기억을 음악으로 승화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재즈아티스트다. ‘힙합 솔의 여왕’으로 불리는 메리 J. 블라이즈는 미국 뉴욕의 빈민가 출신으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성폭력, 약물중독 등 온갖 역경을 딛고 최고의 뮤지션으로 성공한 그녀는 자신의 성장통을 음악에 고스란히 표현한다.

소히에게 특별한 뮤지션들이다. 특히 메리 J. 블라이즈는 음악과 삶에서 두루 존경한다. 그녀는 학대받는 여성들의 교육과 경력 개발 등 성장을 돕는 여성발전지원센터를 설립했다. 피오나 애플은 미디어의 선정주의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서 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음악을 통해 자신을 담는 걸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개인 체험에 대한 선정주의적 시각에서 음악을 분리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고 전한다.

이처럼 유명한 외국 가수들이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소히는 큰 자극과 위안을 받았다. 피오나 애플은 피해 사실을 가사에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소히 역시 피해 사실 때문에 음악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게 음악의 한 흐름인데 피해 사실을 떨어뜨려놓고 표현하거나 굳이 없었던 일처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말했다. “걸작이란 혼자서 외톨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해 동안 일단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이다.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도 경험의 사적 소유를 주장할수는 없는 일이다. 소히의 음악에는 피오나 애플과 메리 J. 블라이즈의 애절한 음성이 숨 쉰다. 밝게 웃는 성폭력 피해여성들과 떡볶이 노점상 아주머니와 콜트·콜텍 노동자들과의 경험이 존재한다. 이 사회에서 투명인간으로 살아가지만 소히의 눈에는 보이는 그들과의 공동 창작물이 소히의 음악이다.

흑인음악에서 슈게이징록을 지나 쇼로의 영향을 받은 보사노바까지, 역사적으로 형성된 오랜 슬픔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소히는 어느새 ‘상처받을 수 있는 능력’(레비나스)이 생겼다. 하고 싶은 음악을 추구하고, 하고 싶은 말을 설파하는 힘이 길러졌다.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 것이다.

“음악을 통해서 제 솔직한 생각과 마음을 알리고 싶어 요. 누구에게나 각자의 슬픔이 있잖아요. 그 슬픔을 저의 슬픔으로 위로하고 싶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져왔던 선입견이나 통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음악을 통해 만들고 싶어요.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치유되는 사람은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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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월간지 <나들>에서 '내 몸 파르헤시아'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소히가 3번째네요. 파르헤시아는 '진실말하기'라는 뜻으로 성폭력피해여성이 몸의 진실-삶의 얘기를 풀어가는 인터뷰입니다. 인터뷰이 요청에 따라 온라인 공개를 선택합니다. 소히는 공개를 해도 좋다고 해서 싣습니다. -> 본문보기 

* '내 몸 파르헤시아'에 인터뷰를 원하는 분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varyeyes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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