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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인터뷰

권혁웅 시인 - 삼선동 달동네에서 그들을 보았다

모든 가난이 시가 되지는 않지만 시는 어김없이 가난을 노래한다. 백석의 가난이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을 내리게 하는 따사로운 가난이라면, 기형도의 가난은 문풍지를 더듬는 바람의 집에 갇힌 어둡고 쓸쓸한 가난이고, 김수영의 가난은 설움과 비애가 선을 긋는 형형한 가난이다. 2000년대 ‘미래파’ 담론을 일으킨 평론가이자 시인인 권혁웅은 ‘마징가Z’와 ‘투명인간’이 출몰하는 찡하고도 재기 발랄한 가난을 그렸다. 이런 시가 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박철순보다 멋진 커브를 구사했다/ 상 위의 김치와 시금치가 접시에 실린 채 머리 위에서 휙휙 날았다

- 시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略傳)’ 중에서

권혁웅이 살던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산 302번지 풍경이다. 술 취한 아버지는 툭하면 집주인과 다투었다. 결국 전세 계약 기간을 못 채우고 쫓겨나야 했다. 동물의 내장 같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두루 거쳐 갔다. 생후 7개월에 꽃씨처럼 날아와 사춘기를 통과하는 동안 도합 아홉 번 주소지를 옮겼다. 주인집과 이웃 집을 중심으로 인맥이 늘었다. 한 교회를 오래 다녀 마당발이었다. 명민하고 의뭉스러운 사내아이는 동네 사람들의 면면과 형편을 손금 보듯 뀄다.

 

그리고, 머리 위로 접시가 날아다닐 때마다 “선데이 서울을 옆에 끼고” 상상 속으로 달아나던 사내아이는 시인이 되었다. 권혁웅은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비평이, 이듬해 <문예중앙>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살던 산동네는 두 번째 시집 <마징가 계보학> 시편들로 복원되었다. 삼선동을 떠난 지 15년 만이다.

 

“어느 날 마을이 재개발에 들어갔더라고요. 벽에는 스프레이로 엑스(X) 자가 돼 있고 지붕부터 헐리는 집들을 보았죠. 아, 저기는 용구네인데, 저기는 인자가 살던 곳인데….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어디서 무얼 하며 살까. 집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지극히 사적인 기록이지만 나에게는 거기가 한 세상이었으니까요.”

 

 

 

 

기사 전문 보기 - http://na-dle.hani.co.kr/arti/issue/318.html 

 

* 나들8호 나들의 초상 - '투명인간' 기획에 맞춰 권혁웅 시인을 인터뷰했습니다. 나들이 온라인에 기사 중 몇 꼭지만 공개하는데 권시인 인터뷰가 올랐네요. 일독하시고, <나들> 오프라인 구매-구독도 해주세요. 두툼한 월간지, 읽을 내용 많아요. ^^ 우리 연구실 동료, 병역거부하고 감옥 다녀온 현민이 '감옥의 몽상'도 연재 중이랍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내면성찰형 글쓰기를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