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차오르는말들]

가끔 듣고 싶은 옛가요를 검색하면 블로그, 카페 등이 주르륵 나오는데 들어가보면 정말이지 비슷하다. 메인화면에는 등산복 입은 독사진이 있거나 꽃사진, 나무사진. 무슨 산악회, 초등학교 동창회가 대다수. 추억을 뜯어먹고 사는 연령대가 많구나 나도 저들과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데.. 어느 날인가 어떤 노래를 검색어에 넣고 클릭했더니 '중년의 행복방'이라는 카페가 나왔다. 순간 어떤 당혹감이 밀려왔다. '행복한 중년방'이었으면 덜 애잔했을 텐데. 행복한 중년들이 모인 방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중년의 행복방은 다르다. 중년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목적성을 갖고 모였으며, 그 일환으로 추억의 노래를 듣는가 보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메뉴얼이 총체적으로 빈약하다는 생각. 그에 반해 인생은 또 얼마나 긴지. 시세미나 하다가 중년의 행복방 얘기를 저번에 해주었다. 나 나이든 모양이라고. 취향에 맞는 노래 검색하면 이제 버젓이 중년방이 나온다고 했더니 젊은 친구들이 다들 킥킥거렸다. -.-;

지난주 세미나에서는 황동규 '봄밤' 읽다가 관련검색어 뜨듯이 생각나서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알려주었다. 대선 끝나고 멘붕상태를 헤어나지 못하다가 봄날은 간다를 틀어놓고 따라부르고 마음을 달랬다고 고백했다. 그 노래가 김윤아 노래 말고 또 다른 버전인데 가사가 특히 시적이고 아름답고. 나도 원곡자가 누구인지 잘 몰라 찾아봤더니 (백설희, 1956)이라고 써있어서 놀랬으며. 백설희가 그냥 원로가수려니 했는데 생각해보니 전영록 엄마더라. 전영록이라는 이름도 아득한데 무려 그의 엄마라니. 나는 완전 6.25세대의 노래에 심취했던 거고, 아마 좀 있으면 '꿈에 본 내고향' 듣고싶어지려나 어쩌려나 신세 한탄 늘어지는데 한 친구가 묻는다. "쌤, 혹시 중년의 행복방 가입하셨죠?" ㅋㅋㅋ  "아니, 아니야. ㅜㅜ"  어흑. 아무도 안 믿어주는 분위기. 어쨌거나 난 어둠의 자식. 봄, 꿈, 희망 같이 색소 들어간 노랫말은 부담스럽다. 알뜰한 그 맹세에도 불구하고 봄날이 간다. 소멸과 사라짐과 여운과 여백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가 좋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 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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