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차오르는말들]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 '견딜 수 없네' 부분

잔인한 8월이 갔다. 삶 앞에서 엄살부리지 않는 사람 되려고 노력한다. 특히 글이 엄살의 수단이 되면 안될 터이다. 그치만 8월이 잔인했던 이유 몇 가지를 떠올리면 나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더웠다. 사고가 중지되니 두려웠다.엄마 기일. 엄마 제사가 되면 아직도 슬프다. 이사준비. 이십평 전세생활 청산하고 넓혀서 월세로 갈 집을 구했다. 사보일. 월세 마련을 위해 복직했다. 한달에 두 건만 하기로 했다. 독서. 르포 글쓰기 수업 준비 때문에 읽은 교재가 내용이 혹독했다. 술. 마음이 허해서 술을 자주 마셨더니 피곤했다. 8월 말에 소주와 와인이라는 악마의 조합으로 과음한 다음 날, 결심하고 실없이 떠벌리고 다녔다. 나 이제 금욕생활 들어간다 -.-

한달이라봐야 고작 삼십일이다. 절반 이상은 미친여자처럼 헤매고 다닌 거 같다. 집 구하러 다니면서 구슬펐다. 4인용 관짝 같던 집에서 더는 살수가 없어서 이사는 가려고 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는 자애로운 주인 덕에 시가에 비해 턱없이 저렴한 전세를 살고 있었다. 그돈으로 목동을 벗어난 어디도 갈수 없다. 서울 전셋값은 평준화됐다. 아들이 고2. 일년만 더 이 동네에서 살아야 한다. 딸내미는 거실에 침대 있는 애 자기밖에 없다고 시무룩하니 방을 꼭 만들어주고 싶었다. 온통 해야한다만 있는 상황. 남들은 경기도로 이사가는 해법을 제시하지만, 그건 너무 삶의 조건을 단순화시킨 해법이다. 2년은 이 동네에 더 있기 위해 나는 다시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들은 평생도 밥벌이 하는데 내가 무슨 공주라고 하고싶은 일만 하고살까. 생각하면서 나를 위로했지만 위로가 될 턱이 없다.

이사갈 집을 구하고 밤에 누우니 이사오던 날이 떠오르고, 이사하던 날을 생각하니 이사하기 전까지 과정이, 그 파랑같은 날들이 스쳐갔다. 나한테 그건 댐의 수문여는 일이다. 사보 일을 다시 시작하는 두려움. 원고 쓰는 일이 걱정되는 게 아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나에게 다시 가중되는 일의 무게감이 두려운 거다. 사보일 그만두고 나니 수입은 없을 지언정, 가사노동은 내가 완전 전담했더니 속은 편했다. 남편에게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시키지도 않았고 그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서운할 일도 싸울 일도 없었고 심지어 나는 돈 많이 벌어오라고 아양도 떨었다. 몸이 피곤하면 온통 예민해지고 신경질나고 내가 화내고 무너지는 게 싫다. 나는 이제 싸울 기운이 없다. 세포가 늙어가나봐요. 모든 일이 참을 만해요. 최승자 시 읽을 때 밑줄도 그어놓았다.

그런데 엄마 제사지내는 날. 음식을 장만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친정 갔다. 하루종일 한번도 웃지 않고 일만 했고 안 그래도 우울한데 엘리베이터에서 사달이 났다. 남편이 아들이랑 국어공부 어떻게 하니, 너는 논술 안 해도 되니, 뭐 그런 얘기를 하다가 나한테 그랬다. "당신도 애들 논술과외 좀 해보지 그래?" 예상치 못한 발언. 기가 딱 막혔다. 나는 지금 사보일까지 벌려놓고 마음이 천근만근인데 거기다가 또 바윗덩이를 올려놓는 발언을 하다니. 예전 같았으면 싸우거나 방에 들어가서 울었을 텐데 이젠 눈물도 화도 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남편도 월세, 교육비, 생활비 부담이 클 거다. 지금 이 시기가 돈이 가장 많이 들 때고 마음처럼 일은 안 풀리고 앞날도 모호하고 막막하겠지. 내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남편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그냥 내가 나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면 살아지는 이 생이 슬플뿐이다.   

조지오웰이 늘 품었던 물음. 인간의 삶이란 어떠해야하는가. 르포 글쓰기로 방향을 약간 바꾸면서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도전해 보고싶다. 해야할 일이다. 인생의 곡절을 표현할 수 없는 이들과 함께 하는 언어찾기. 나의 글쓰기는 어떠해야하는가. 그 질문을 내려놓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다. 조지오웰의 글쓰기, 가치관, 윤리, 유머 여러모로 맘에 든다. 그나마 힘든 8월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조지오웰에게 받았다. 이쯤이면 됐다 싶은 지점에서 한발 더 들어가는 근성을 배웠다. 나도 나이가 드는지 점점 소설에 매료된다. 파스칼키냐르 읽으면서 억압된 정서의 해방감도 맛보았다. 이 세련된 감수성은 정말이지 질투난다. 역시 글쓰기는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이번주 시세미나 한용운 시는 실망스러웠다. '님의 침묵'이나 '이별은 미의 창조', '알수 없어요' 등등 몇 편은 좋은데 시집 한권이 전부 그 얘기니까 느끼하고 황당했다. 강박증과 신경증과 망상증의 혐의가 엿보여서 오랜만에 프로이트 정신분석 책을 다 찾아봤다. 한용운의 '님'은 칸트의 '물자체'처럼 만질 수 없는 그것같다. 불안한 세계-내-존재가 부여잡으려는 그 무엇. 없음-무를 견디지 못하는 철학자는 몰라도, 시인은 멋 없다. 한용운 읽으니까 동시대인 백석이 얼마나 훌륭한 시인인지 새삼 알 수 있었다. 9월 진입 기념으로다가 신계행의 '가을사랑' 듣는다. 가사가 좋다. 오면 가지 말아라...그러고 보니, 나는 또 무엇을 붙들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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