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말은 빛나지 않는다. 차라리 남루하다. 1차 희망버스는 빛나지 않았다. 탑승객 700명. 세상은 무심했다. 2차 희망버스는 1만 명이 몰려갔으나 차벽을 넘지 못했다. 3차 대회를 지나 4차 서울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참가인원이 반으로 줄었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슬로건은 희마하게 번졌다. 허나 희망버스 그 후, 사람이 사람을 찾아가고 유머가 아픔을 퍼뜨리고 집회가 축제로 벌어지는 풍경은 익숙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1차, 2차, 3차, 4차 희망버스는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김수영)고.
부산 앞바다 고공크레인에 매달린 김진숙이라는 절망의 극점에서 전국으로 펼쳐진 희망의 이행, 그 연관은 빛나고 또 질기다. 여름 내내 반도의 땅을 달궜던 희망버스는 하늘 높은 가을날 강정마을에 평화비행기로 떴다. 희망은 평화를 순산했다. 이렇듯 규모보다 강도, 속도보다 방향, 그리고 대의보다 감성에 주목할 때 ‘희망버스’는 하나의 사건이다. 희망버스 시동부터 주행까지. 그간의 여정을 되짚어보는 좌담회가 신유아(문화연대활동가) 이진경(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창근(쌍용차해고노동자) 조약골(평화활동가)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8월 30일 수유너머N에서 열렸다.
내가 영도에 간 까닭은
“1차 희망버스 전에 두 차례 영도에 갔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랑 한번, 영상 하는 친구들이랑 한번 가서 꽃그림 그리고 왔다. 검찰조사 받는데 그러더라. 희망버스에 쓸 음향시설 점검하러 미리 내려간 거 아니냐고.(웃음)”
사전모의가 아니라 평소생활이다. 문화연대 활동가 신유아는 노동과 문화를 접목한 활동을 펼친다. 문화적 소통방식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장 만들기. 기륭전자와 유성기업 등에 그의 손길이 남아있다. 한진중공업도 같은 맥락에서 참여했다. 흑발의 긴 머리를 늘어뜨린 조약골은 제주 강정마을에 머문다. 올 초에는 신촌 두리반에 거주했다. 거점투쟁을 원칙으로 두리반, 영도조선소, 잡년행진, 강정마을, 희망버스 등 어디에나 나타난다 하여 ‘철새활동가’로 불리기도 한다.
“두리반 투쟁 막바지에 영도조선소에 예술가들이 다녀왔단 얘길 들었다. 직접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레이저태크 작업을 보고 감동받았다. 두리반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을 보았고 확산시키고 싶었다. 희망버스는 또 달랐다. 두리반만 해도 인디음악가, 잉여들,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 젊은이들인데 희망버스는 그들을 포함해 연령대가 더 다양했다. 정말로 애정과 열정으로 뭉쳐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사회운동에 소극적이던 이들이 같이 풀어나가고 동참했다. 1차에서 느꼈던 에너지로 4차까지 갔다.”
이진경은 2차 희망버스 탑승객이다. 반값등록금 집회현장에서 ‘희망버스’ 소식을 접하고 2차 희망버스를 예약했다. 당일 아침 편두통이 심해서 강의를 휴강하고 희망버스도 불참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KTX를 타고 갔다. 봉래삼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4차 희망버스에 참가했다. 희망버스가 끌어 다니는 힘이 뭘까. 투쟁 안건은 대단히 좌파적인 주제인데 사람을 빨아들이는 양상은 새롭고 감각적이다. 사회학자로서 그는 희망버스로 명명되는 사건이 갖는 힘에 주목한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대변인 이창근은 현재 평조합원이다. ‘쌍차의 죽음’을 계기로 신유아, 송경동을 알았다. “마음 급한 사람끼리 만나지 않았나 싶다” 투쟁은 시간과, 시간은 죽음과 겨룬다. 김주익 열사가 129일 만에 고공 크레인에서 몸을 던졌다. 그곳을 ‘승리와 부활의 자리’로 만들고자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갔고 계절이 두 번 바뀌던 즈음이다. 셋이 커피 마시면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129일이 다가온다. 누가 그 얘기하는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을 즐겁게 넘기자고 결의했다. 바로 전화를 걸어 기차를 알아봤다. 통으로 7-8량 빌려보자. 찔끔 가서 될 문제가 아니다. 압도해야 한다. 디데이는 5월 11일. 근데 기차 빌리는 게 안 된다더라.(웃음) 고공농성 150일에 맞춰 1차 희망버스를 띄웠다. 평택 수원 엮어서 같이 갔다. 쌍차 해고자들과 함께 하자. 한진에 빌붙어서 우리문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맞닿은 문제다. 조합원 상태마저도 똑같다. 일반인이 마음 아파서 참가하는 게 아니라 정리해고 당사자가 당사자를 연대하는 희망버스를 만들자. 그 결의를 쌍차가 먼저 하면 다른 데서 하리라 생각했다.”
안건1: 희망버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으나 무리였다. 그들의 삶은 희망버스와 분리되지 않았다. 첫 번째 안건은 자유발언이다. 희망버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창근, 신유아, 조약골, 이진경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희망버스를 ‘에너지’로 감각했다. 어디든 누구든 접속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신통한 놀이로서의 운동. 웃음과 용기를 잃지 않는 삼삼한 우정의 연대. 우발성과 자발성과 전염성이 만들어낸 희망버스, 그 못다한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졌다.
이창근 - 희망버스는 에너지다. 기본이 에너지이기 때문에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1차 700명, 2차 만 명, 3차 4차 몇 명이냐 규모의 문제로 설명하려 든다. 참여자들이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으로 모였을까? 아니다. 퀴어, 장애인, 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고 이들의 고민, 넘고자 하는 바는 다르다. 이 사회 정치 경제 체계가 많은 이들의 열망을 담기에 불가능한 낡은 구조다. 이 껍데기를 벗어나려는 노력들이다.
언론은 숫자에 연연한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기에 계속 숫자를 묻는다. 어느 순간 우리도 숫자에 주목했다. 청계광장 모여서 어떤 주장, 외침을 했는지가 없고 인왕산에 몇 명 올라갔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참가인원이 늘고 줄고는 중요치 않다. 4차 희망버스의 핵심 슬로건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였다. 4차까지 희망버스의 주장이 발전하고 있다. 한국사회 모순이 집적된 곳 ‘서울’에서 열렸고 엄밀히 말하면 4차에서 김진숙과 정리해고는 빠졌다.
조직적인 관점에서 4차 희망버스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찰의 원천봉쇄가 아니고......벌초였다. (좌중 폭소) 4차 희망버스 서울대회가 열린 8월 27일 28일은 추석을 앞둔 주말이라 벌초 가느라 사람들이 많이 빠졌다. 이런 얘길 기자한테 해도 안 믿더라. 진짜다. 앞으로 벌초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될 것이다. 벌초는 운동의 가장 큰 벽이다.
희망버스는 에너지, 담을 넘다
신유아 - 1차 희망버스의 성공 이유는 연대와 소통이다. 김진숙은 트위터로 소통했다. 1차 희망버스에 반응보인 사람들은 김진숙의 진정성에 대한 응답이다. 그간 단식, 삭발, 고공농성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치인들 단식은 며칠 하다가 명분 찾아 접겠지 예측한다. 김진숙은 129일 넘겼다. 동지가 죽고 나서 8년간 방에 불 때지 않았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사람들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운 좋게 희망버스가 떴고 시기적으로 잘 맞았다.
1차 때는 막히면 막히는 데서 돌파했다. 못 들어가는 건 생각도 못했다. 거기가 국가시설이고 뭐고 생각도 못하고 오로지 김진숙만 보고 갔다. 사람 보러 가는데 경찰이 왜 막아? 밀고 나갔다. 두려움이 없었다. 한진 아저씨들이 사다리를 내려주셨고 사람들이 우루루 담을 넘었다.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취지도 그거다. 집회-투쟁 하러 가는 거 아니다. 크레인 밑에서 우울해하면 위에서 더 우울하다. 그러니까 우리만의 판을 짜서 신나게 놀다 오자. 1차 때 해방감은 굳이 경찰 벽 뚫은 것도 아니고 싸움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흘러서 간 것이다.
서울에 오니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희망버스 회의에 왔더라. 2차 때 영도 봉래삼거리에서 막혔다. 1차 때 즐거운 모습 보고 간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3차는 다시 가서 싸우기로 했다. 더 많은 이들이 모였다. 85호 보이는 곳 어디든 괜찮다는 전략을 세웠다. 꼭 넘어가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다. 김진숙 크레인이 보이는 곳까지 찾아갔고 1박2일 문화난장은 성공했다. 민주노총 주도의 조합운동 아닌 새로운 운동의 양상이 나타났다.
4차는 서울. 왜? 문제해결 된 게 없다. 이제는 이명박 말고 싸울만한 사람이 없었다. 서울로 가자. 이런 결정은 희망버스 기획단이 내리는 게 아니다. 각 지역에서 희망버스 조직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시기와 방법을 논의한다. 4차 직전 주말에 희망 시국대회가 열렸다. 에너지가 흩어졌다. 4차를 끝내고 생각했다. 이건 실패도 성공도 아니다. 인왕산에 현수막 내리기, 도심 행진하기, 물 대포 피하지 않기는 쾌감이 있는데 사회적 메시지 던지기는 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거기서 시 낭송하려는데 괜찮아요?”
조약골 - 1,2,3,4차 희망버스에 참가했다. 희망버스 자체가 성공이나 실패를 떠나서 하나의 커다란 담론을 만들어냈다. 희망이라는 담론. 진부한 걸 밀어붙였고 그 이후로 희망 관련된 게 늘었다. 제주 강정마을은 희망버스 영향을 직접 받았다. 조직방식이나 분위기는 차용 하고 싶다고 해서 차용하는 건 아니다. 군사기지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 전역에서 평화버스가 강정마을로 가고 인천에서 평화크루즈도 가고 평화비행기가 뜨고 희망걷기가 생겼다.
또한 기존 운동과 달리 주변부 사람들이 나서서 행사 기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자발적인 운동의 흐름이 생겼다. 자발성이란 판을 깔아주면 사람들이 와서 채워나가는 것이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미리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몰려가서 자기가 해왔던 방식으로 장을 벌인다. 희망버스가 억눌린 사람들이 목소리를 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이진경 - 희망버스는 역설이다. 절망의 지대에서 만들어진다. 희망이란 있지도 않은 것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절망을 직시할 때 눈을 돌리지 않고 그것과 대결할 때 희망이 생긴다. 희망버스는 운동의 매체다. 그것이 부산 한진중공업만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다. 4차 때 서울로 방향 바꾸면서 그 지역만의 투쟁이 아니고 탈영토화 됐다. 구심적으로 진행되던 것이 원심력으로 바뀌면서 전국으로 펼쳐졌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가보다 훨씬 중요하다.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해고 문제가 국지적인 데도 불구하고 전체 문제라고 보여준 것이다.
4차 희망버스 만민공동회는 좀 지루했다. 퇴로를 청계천 물길로 잡은 것은 독창적이었다. 인왕산 등반도 좋은 아이디어다. 인왕산에 못 올라가도 성공이다. 경찰은 인왕산을 에워싼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그 지점 표시, 거길 뚫고 가려고 도로 점거하고 뛰어다녔다. 일반 사람들은 운전하다 열 받으면 도대체 왜 그래? 관심을 갖는다. 인왕산을 둘러치는 순간 이미 저들은 공격을 당한 거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가 문제인가를 스스로 보여주었으니 올라가지 못해도 성공이다. 새로움과 다름에 대한 강박이 필요하다.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의무감으로도 시위대에 앉아있었지만 요즘 친구들은 못 참는다. ‘재미와 감성’이 자발적으로 대중을 참여하게 만드는 힘이다.
신유아 - 대추리부터 용산투쟁까지 조약골이랑 인연이 깊다. 우리는 ‘집회는 축제여야 한다’고 말한다. 촛불집회와 전혀 다르다. 어떤 장이 마련되면 사람들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걸 갖고 온다. 와서 시키는 걸 하는 게 아니다. 이게 핵심이다. 그런 방식의 참여가 용산투쟁에 약간 있었다. 희망버스에서 자발성이 커졌다. 밥도 가져오고 잠도 잔다. 뭘 해달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여기서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
용산의 경우, 슬픈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해주겠다며 고민하고 오는데 희망버스에 오는 사람들은 뭘 나눌 것인가 고민하고 온다. 희망버스는 시스템만 갖추면 된다. 조약골에게도 말했다. “부산 친구들하고 연락해봐.” 그러면 밤새 놀 수 있는 프로그램 짜온다. 작가들은 “우리 거기서 시낭송 하려는데 괜찮아요?” 물어보는 식이다.
20년 투쟁방식 옳다. ‘무엇을’ 아닌 ‘어떻게’
이창근 - 신유아 동지가 말하는 새로움은 엄밀히 말하면 이미 금속노조가 시도했던 것들이다. 사람들이 몰랐을 뿐이지 부산까지 걷기, 버스 등 지금까지 장기투쟁 동지들이 했던 방법이다. 새로운 게 없다. 다만 여기에 마음을 담았다. 이게 핵심이다. 운동의 다른 방식이나 형식을 궁리하는 시간에, 그동안 시도했던 걸 돌아보고 거기서 뭘 놓치고 있는지 찾는 게 중요하다. 20년 동안 투쟁했던 방법은 옳은 방법이다.
우리가 늘 시도했던 방법은 가장 그나마 적합했기에 차용했던 게 아닌가. 여기에 마음을 담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지난번에 유성기업에 가서 그런 느낌 받았다. 용역이 펜스 안에 철조망 치고 서 있다. 금속노조 대오가 1500명이 왔다. 조끼 입고. 그런데 40분 지나니까 딴 짓 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 얘기하더라. 나중에는 누가 용역인지 모르겠더라. (일동 웃음) 민주노총에 용역이 있고 사측에도 용역이 있구나. 이 지점이 매우 아프게 보인다.
이진경 - 예전 것도 다른 것과 연결시키면 새로워진다. 그간 운동하면서 발명했던 수많은 것들 묻혀버린 것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결합했을 때 잠재력을 찾아주는 거다. 반복 되더라도 다르게 반복된다. 그건 다른 거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노동운동이 되돌아왔다고 말하는데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온 걸까? 똑같은 주제가 언급되더라도 같은 게 아니다. 희망버스에 실려서 되돌아온 비정규 문제는 이전과 같지 않다.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지 못했던 문제를 새로움의 감각으로 되살려냈다. 휘말리게 만드는 ‘매혹의 힘’이 컸다. 희망버스는 굉장히 중요한 걸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이슈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 맑스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고 말했다. 희망버스는 ‘어떻게’의 문제로 질문방식을 바꾸도록 만들어준 사안이다. 어떻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이점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강력한 현실적 힘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운동도 성공한다. 어떤 주제도 사람을 잡아끄는 힘으로 만들 수 있다.
안건2: 희망버스 노동운동의 귀환, 반복과 차이
이날 좌담회 사회를 맡은 박정수(수유너머R)는 1차 희망버스 참가 계기를 터놓았다. 한 후배가 울면서 희망버스에 꼭 가라고 당부했는데 ”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하면 그게 무슨 일이든 가야했다”는 것. 이에 이진경은 “운동이 대의 땜에 한다고 생각하지만 감각이고 감성의 영역”이라며 “대의가 뭔가는 중요치 않고 울면서 가는 것, 바빠 죽겠는데 머리통이 깨지도록 아픈데 가는 것, 이것이 센세이션의 정치학이다”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안건으로 넘어갔다. 희망버스의 쟁점은 노동문제다. 크레인 위의 김진숙은 우리사회 확산되는 삶의 불안정성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여기에 ‘지진보다 무서운 여진’으로 불리는 배우 김여진의 등장하여 눈물로 호소했다. 김진숙의 유머가 불씨를 지폈다. 눈물과 웃음이라는 감성바이러스 덕분에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사회로 확산되었다. 희망버스는 다른 운동과 결합한 ‘노동운동의 귀환’인가. 과연 희망버스를 통해 삶의 불안정성 문제가 확산됐을까.
지진보다 무서운 ‘여진’
신유아 - 삶의 불안정성은 희망버스 이전부터 이미 너무 많이 산재돼 있다. 김진숙을 계기로 노동문제가 나의 문제임을 인식했다. 촛불과 다른 점이, 촛불은 광우병이 피부에 와 닿았지만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는 알면서도 내 문제로 인식이 안 되는 경우, 인식해도 싸워야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문제로 생각한다. 뉴스를 봐도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제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뭔가 던져졌을 때 다가가는 거다.
이창근 - 김여진이 노동현안에 대한 색깔을 뺀 첫 주자다. 희망버스라고 하는 물줄기가 콸콸 나오는데 마중물 누가 부었는지, 몇 바가지나 부었는지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보면 김여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초반에는 김여진과 김진숙이 대립했다. 절친이 아니었다. 홍대 노동자 파업을 김여진이 해결하는 과정에서 김진숙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김여진에 대한 개인감정이 아니라 민주노총을 향한 질타이다. 배우 한명이 정리하는데 당신들은 뭐하냐는 말이다. 어쨌든 김여진으로 인해 하나의 장막이 걷히고 매주 영도에 오는 ‘김진숙 폐인’까지 생겨났다.
한진노동자 중에 해고당하지 않아도 싸우는 동지들 100여명도 싸움의 근거다. “부산용어로 의리, 운동용어로 연대”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아무 것도 안 했다고들 하는데 그리 보지 않는다. 공지영 작가가 쌍차에 500만원 기부하니까 금속노조 비판하더라. 공지영 작가 돈 내는 데 너네는 뭐하는가 말한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파업과 정리해고자 생계비에 50억을 썼다. 금속노조가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온 게 아니다. 한 개인을 욕하는 것과 한 개인을 추앙하는 것으로 변하는 상황은 없다. 자기 역할을 갖고 가는 거다.
이진경 - 희망버스 탄 사람들이 비정규직을 자기문제화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꼭 자기문제여야만 운동을 한다는 건 옛날 생각이다. 두리반 점거할 때 자기문제여서 한 게 아니다. 마음이 동하면 내 문제 아니어도 한다. 자기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고 돈과 시간을 무릅쓰고 희망버스에 가도록 한 힘이 중요하다.
희망버스에 복합적 요소 섞여있다. 상반되는 측면이다. 김진숙 목숨 걸고 있는 상황의 비장함과 진짜 죽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김진숙이 1월 6일 올라갔는데 다섯 달 가까이 가도록 모르다가 김여진 트위터로 쭉 퍼졌다. 외부세력이 가야한다, 당사자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관심 가져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여진의 트위터 코멘트는 감성적이다. 크레인 아래서 연설한 동영상 보는데 눈물이 펑펑 나더라.
또 한 가지는 김진숙이 심각한 얼굴이 아니라 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트도 그린다. 스스로도 “내가 여기 와서 별짓 다해본다”고 말한다. 유머가 있다. 쌍차는 너무 비장하기만 했다. 목숨이 걸린 내전이니까 두려움이 생기고 가까이 갈 엄두가 안 난다. 근데 여기는 농담과 유머와 일상이 섞이니까 김여진 까지 결합하면서 블랙홀이 됐다. 대중의 흐름 빨아들였다. 진지함은 무거워지기 쉽다. 유머가 있을 때 여유와 여백이 생기고 새로운 걸 찾아낼 수 있다.
신유아 - 희망버스 스태프가 쓰는 ‘깔깔깔’ 모자를 처음에 다 반대했다.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아저씨들이 다 싫어했다. 그런데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2차 3차 희망버스 때는 “고깔모자 어딨냐”고 다 찾더라. 완전 품귀현상이다.(웃음)
박정수 - ‘김진숙 트위터’에서 본 내용이다. 누가 구테타와 혁명의 차이를 물었다. 김진숙이 대답하기를, “구테타는 밤에 하는 것이고 혁명은 낮에 하는 것이다. 지금은 밤이다. 가서 자라.” (일동 폭소)
안건3: 운동의 연대, 연대의 운동
웃음은 웃음을 부른다. 고용불안이라는 심각한 주제는 유머에 실려 널리 퍼졌다. 노동운동의 주체는 조합원이 아니라 시민으로 확대됐다. 집회는 삶의 조건을 사유하는 장소이자 삶의 여백을 즐기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비장함이 아닌 발랄함의 운동이 대세다. 트로트풍의 운동가요보다는 펑크와 테크노가 어떠할까. 토론자들은 문화의 힘을 통한 새로운 감성의 수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태의연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이제 끝났다’는 일침도 나왔다. 해고노동자는 총파업은 결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일갈한다. 맑스도 말했다. “혁명이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따라잡는 것이다.”
이창근 -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문화운동에 대해 천박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문화공연은 여는 말 정도로 소모했다. 어떤 틀이 있었다. 쌍용차문제로 매주 화요일마다 보신각문화제를 했다. 나부터도 집회할 생각 전혀 없었다. 쌍차문제가 안 알려진 건 아니다. 다만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와 접촉할 수 있느냐, 우리 얘기를 어떻게 편하게 들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경찰과 티격태격 하면 사람들이 안 온다. 거기에 가면 노래라도 들을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기륭, 용산, 두리반을 봐도 문화의 힘이 굉장히 크다.
근데 이 양반들(문화예술활동가)이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을 거의 안 한다. 매우 자유롭다. 상상력은 그런 측면에서 나오는데 노동운동하는 사람은 경직됐다. 하루에 8시간씩 일하고 잔업하면 10시간씩 볼트 쪼아야한다. 그게 안 되는 거다. 파업 끝나고 6개월 감옥 살고 깨달은 건 우리가 문화랑 만나야한다, 그렇게 붙어야지 힘이 생기겠다는 점이다.
시위음악, 뽕짝에서 펑크로 바꾸자
이진경 - 두리반 경험은 중요한 걸 가르쳐줬다. 철거민 투쟁은 장기전이다. 지치는 싸움을 하는데 두리반은 참고 견디는 ‘낙타의 시간’이 아니라 공연을 보는 놀이의 장소로 만들었다. 두리반이 타결됐다고 했을 때, 이 밴드들 이제 어디서 공연하느냐고 물었다.(웃음) 무명밴드가 데뷔하고 연주하는 두리반에 가는 건 의무가 아니었다. 장기투쟁으로 지치기는커녕 두리반이 국제적으로 명소가 됐다.
서울 만민공동회 기본적인 정서가 뽕짝이다. 투쟁가가 나이든 사람은 그 정서가 맞는데 젊은 사람들 못 견딘다. 일본에서 1년 정도 머물렀는데 시위대가 디제잉 하면서 테크노 음악 틀고 간다. 독일 있을 때도 시위 그렇게 하는 거 봤다. 테크노, 펑크가 그렇게 될 수 있다. 펑크가아나키스트 음악이다. 흥분시키고 감정을 상승시킨다.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한 힘이 있다. 다른 종류의 음악으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문화운동 하는 분들이 적극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정서를 결합하지 않으면 운동은 노인들의 것이 된다.
신유아 - 만민공동회 전야제에 밴드를 배치했다. 문화연대가 그런 운동들을 지금까지 시도했는데 좋아 보이는지 민주노총에서 모방하더라. 근데 민주노총이나 금속에 가면 어르신 발언 주르륵 순서 정해놓고 중간에 펑크밴드 넣어놓으니까 진짜 웃기다. 잘못된 결합이다. 판을 전체적으로 바꿔야한다. 재밌는 운동 번져나가려면 조약골 같은 친구가 많아야한다. 락밴드도 현장에 왔다가 경찰이 깔려 있으면 무서워서 돌아간다. 충분한 소통과 공유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조합운동가는 판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어야하고, 락음악은 저항정신을 포함하지만 뮤지션이 자기만의 저항이 아니라 사회적 현안이랑 연결해야 한다.
박정수 - 희망버스로 인해 노조운동 하는 분들 감성이나 감각의 변화가 있었는가.
이창근 - 조심스럽지만 없다.(좌중 웃음) 노조운동 하는 분들, 직책 있는 분들 희망버스가 불편하다. 끌고 가야하는데 끌려가니까. 당이나 조직에서 권력과 뭘 쥐고 있는 사람들은 다 불편하다. 희망버스 태생이 갖는 문제다. 최근 금속노조 선거했다. 금속노조 장기투쟁 사업장이 몇 달을 치고 박고 싸우는데 누가 나왔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시민이 금속노조고 금속노조가 시민이라는 슬로건 걸고나오면 좋겠다. 총파업 선언하면 총파업이 되는가? 안 된다. 이번에 단독 후보였다. 빨리 희망버스 끝나길 바라고 있지 있겠나 싶다. 현대차 출신이 아니면 후보에 못 나온다. 금속노조 내 공고한 카스트 제도다. 비정규는 후보를 못 세운다.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
반성과 성찰이 없다. 이런 게 조직을 좀먹는다. 희망버스의 건강한 기운이 조직으로 들어가야 한다. 맹아는 있다. 발레오공조코리아도 타결이 임박했다. 내외부가 교류가 있어야 한다. 돌파구를 못 찾을 뿐이지 꽤 있다. 80%이상이 건강하다. 현재는 논쟁다운 논쟁을 안 하고 있다. 껍질 벗고 이념적으로 큰 차이 없으면 같이 해야 한다. 어떤 세력 배제하자가 아니라 이런 마음 모아서 다른 시도를 해봐야 한다.
“노동조합운동 끝났다고 본다”
신유아 - 조합운동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끝났다고 본다. 희망버스 생기면서 금속이나 민주노총이 희망버스 눈치를 본다. 그 사람들이 왜 우리 눈치를 보고 적극 결합하려고 했을까. 이것 좀 해주세요 요구하면 적극 거절하지 못하는데 이유가 있다. 희망버스가 조합에 영향을 끼쳤다. 민주노총 희망시국대회도 희망버스의 결과다. 정당들, 민주노총은 희망버스에 얹혀 타고 성과로 가져가려는 마음이 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이 100% 발을 못 빼고 있다. 그들의 그간 운동방식이 경찰과 합의하고 울타리 쳐서 그 안에서 놀다 끝나는 식이었다. 관성화 됐다. 변화해야 한다. 자극 받을 것이다.
4차 희망버스 끝나고 집에서 앓으면서 고민스러웠다. 형식이나 숫자에 얽매이지 말자. 평화, 희망 이름을 써서 다양한 방식, 각자의 방식으로 여기저기 연대하는 것이 희망버스 성과다. 5차는 부산으로 몇 만 조직해서 가겠다, 이건 아니다. 희망버스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창근 - 2차 희망버스가 185대 갔다. 불가능한 숫자였다. 회의 때 그런다. 우리 몇 대가 목표라고 질러놓고 채우는 방식으로 하지는 말자. 정말 안 좋은 방식이다. 날짜의 흐름에 따라 절박감이 극에 달한다. 240일 훌쩍 넘어갔다. 귀뚜라미 우는 가을이다. 이렇게 놔둬도 맞는 건가 싶다.
평택, 용산, 두리반, 영도, 강정 ‘비주류 운동주체’ 생산
조약골 - 김진숙 지도가 트위터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조직했다. 이 정도면 나도 버스 한 대 조직해야겠다고 생각했고. 1차 얘기 들으면서 각자 열 명씩 모아보자 자연스레 얘기가 나왔다. 1차 때 700명 간 사람이 2차 때 10명씩 데리고 온 셈이다. 운동이 살아남고 힘을 내려면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희망버스가 본보기가 되었다. 사회운동 참여의 장벽을 낮췄다. 사람들이 쉽게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전부터 흐름이 있었다. 비주류나 세력화되지 않은 주체들이 널려있었다. 2006년 평택, 용산, 두리반 등을 통해서 그런 주체들이 생산되고 목소리를 내려했지만 그늘에 가려졌다. 희망버스를 계기로 전면에 나선 것이다. 아까 김여진 이야기가 나왔지만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트위터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이진경 - 정치적 의미에서 어떻게 사건이 사건화 되는가를 보면, 희망버스에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다. 70-80년대는 기본적으로 전태일, 광주시민 등 죽음이 깔아주는 비장함, 숭고의 정서에 기반해서 운동했다. 죽음으로 향해있는 거대한 힘을 넘어서게 했는데 90년대 이후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촛불 때 대중들은 숭고의 정서가 아니라 자기표현의 욕망으로 운동에 참가했다. 밝았다. 그래서 100일 넘겼다. 비장한 운동은 길게 못한다. 그러나 이전의 비장한 운동은 돌파하는 힘이 있는데 즐거운 운동은 그게 없다.
운동의 정서가 바뀌었다.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힘이 없고, 돌파하는 힘이 없다. 이 난점을 어떤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절묘하게 결합한 사례를 희망버스가 보여주었다. 죽음이라는 구 좌파적인 낡은 운동의 테마들에도 불구하고 비장함, 의무감, 무언가를 걸어야 한다는 당위의 운동이 아니다. 표면적인 영향력보다 잠재력을 갖고 있다. 또 그래야만 운동의 미래가 있다. 희망버스는 운동전체에서 중요하다. 조약골처럼 운동의 중요한 영역과 따로 놀다가 결합하기도 했고 여러 측면을 가진다. 이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희망버스는 한국 사회운동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모자랄 것 같다.
이창근 - 교수님 얘기 들으니까 저희들은 구속 되겠다. (좌중 폭소)
낡은 경험, 낡은 언어, 낡은 감각을 넘자
조약골 - 이전부터 축적됐던 모순이 여기서 폭발했다. 80년대 90년대 말씀하셨는데 2000년대 또 달라진다. 예를 들면 집회에 오는 사람에게 뭘 알려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요즘은 정보가 넘친다. 집회에서 누가 두들겨 맞아 죽었다 폭로할 때 분노하고 투쟁하는데 이제 사람들 알고 싶으면 안다. 사람들이 몰라서 행동하지 않는 게 아니다.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걸 알고 있다. 정보 과잉이니까. 집회에서 뭘 알려주겠다는 게 아니라, 5개 팀 밴드 공연하고 1명 연사 발언만 해도 충분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계속 있게 하는 힘이 뭔지 그걸 관심 있게 봐야한다. 그게 문화예술의 힘이다.
이창근 - 전적으로 동감한다. 연설은 많은데 진짜배기 말이 없다. 발언 많이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김지도가 좋은 말 많이 하는데 일일이 쓴다. 이야기에 힘이 있고 전달력이 있고 내용이 있다. 말이 생기 있고 슬프고 즐겁기 위해서는 밴드가 기타 연습하는 것처럼 말도 연습해야한다. 지부장, 본부장이라고 발언권만 준다. 연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문은 보는지 문학책은 보는지 모르겠다. 정보도 늦다. 사람들은 트위터로 다 알고 있는데. 간극이 크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겠다. 첫째는 희망버스는 어디로 갈지 모른다. 에너지라 줄일 수 있다. 규모를 의도적으로 줄일 수 있다. 정말 힘이 센 조직은 삼만 명, 십만 명으로 늘 수 있는 상황에서 오백 명으로 줄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적들은 고민할 것이다. 관계 속에서 봐야하는 문제다. 인원을 늘려서 해결할지 줄여서라도 해결할지는 고민을 해봐야겠다.
둘째는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경험이 전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어떤 사람들은 4차 때 안 오고 훈수만 둔다. 운동을 좀먹는 핵심이다. 정치인도 좀 더 나가야 한다. 수혈이 필요하다. 누구나 판 벌리면 된다. 공간이 열렸다. 기획단이 어디 있나. 내부적으로도 상상력은 고갈되었지만 체력적으로 고갈되진 않았다. 당이나 연구소에서 의견을 주길 바란다. 배후가 더 많아져서 경찰조사가 더 혼란스러워야 한다.
셋째는 희망버스 관련 하이에나 습성 가진 사람들이 살점 어디 없나 뜯어먹을 것이다. 시장선거라든지... 결론은 물어뜯기는 과정에서 정말 마지막 남을 건 뭘까. 박제화 된 뼈다귀로 남을 건가. 건강한 물고기로 유영하고 다닐 건가. 희망버스라는 단어에 집착이 아니라 이것이 갖고 있는 마음, 방향, 지켜야할 가치를 본격적으로 지켜야한다. ‘희망버스’라는 이름을 전매특허 하듯이 가로채지 말고 순도 높은 투쟁으로 전진하길 바란다. (끝) (왼쪽부터 이진경, 조약골, 박정수, 신유아, 은유, 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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