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여름이 되나봐. 희망버스 후유증으로 시들었어. 여러 가지로 우울하다.
흠 강정마을에 있다. 여기도 참 심란하네. 곳곳에서 우울한 풍경만 날아다니고 그래.
한 우울이 다른 우울에게. 뉴스를 보고 마음이 영 좋질 않다. 고객숙인 남자. 폭염주의보까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넋두리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트위터를 하는가 보다. 말이라도 하고 나면 숨통이 트이려나. 깨어있을 확률 100% 심야생활자에게 문자를 전송했더니 제주도다. 이상한 나라. 곳곳에 우울특파원.
4차 희망버스는 유람버스. 시내를 맴돌았다. 청계광장에 있다가 광화문역 화장실을 갔다 오니 대오가 흩어졌다. 난간에 기대 서서 물길 따라 이동하는 깃발 행렬을 보았다. 꼬리가 사라지고 무대 스피커가 떼어지고 현수막이 걷혔다. 서서히 뒤따랐다. 어디로 가야하나 수소문. 본대오는 한은본점. 명동 밀레오레 11시. 각각 다른 답변이 왔다. 을지로 입구에서 깃발무리를 봤다. 명동에서 모이겠구나. 안심하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지름길로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비정규직철폐 분홍손수건을 맨 2명의 남녀가 왔다. 그 뿐. 가짜 택이었다. 목적지는 독립문. 버스로 따라가서 합류했다.
밤 12시 독립문 공원 계단. 발이 쑤시고 눈이 아팠다. 새로 산 렌즈가 불량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물감이 컸다. 만화주인공처럼 양쪽 검은자위가 활활 불타올랐다. 물 사러 간 친구에게 식염수를 사다달라고 연락했다. 신을 벗고 눈을 감고 기다렸다. 눈을 감으니 귀가 열렸다. 주위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확성기를 댄 것처럼 크게 들렸다. 욕반 말반. 조폭영화에서 나오는 걸죽한 남도사투리. 전국에서 노동자가 모였음을 실감했다. 핏발 서린 눈 위로 렌즈를 뺐다가 다시 꼈다. 이건 뭐 비에 젖은 나무토막 위로 비가 내린다보다 더 처량했다. 토끼 눈을 달고는 깡총깡총 뛰어서 ‘희망의 토크쇼’가 열리는 맨 앞자리로 갔다.
#2.
첫 번째 발언자.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 육담이 끝내준다. 막 시동이 걸리려는데 키가 짤막한 50대 아저씨가 무대로 다가간다. “다 자다가 깼어요. 건너편까지 들려요. 내일 일하러 가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떠들면 어쩌구 저쩌구....” 목청을 높인다. 거친 항의와 삿대질이 길어진다. 참다못한 반격. “야, 비켜라.” “하룻밤 불편한 것도 못 참냐” “저 새끼 뭐야! 끌어내” 파란색 셔츠 입은 스머프 아저씨들 사이에 욕설이 빗발쳤다. 선량한 시민이 열 받았다. “내가 왜 욕을 먹어야 돼! 나도 실업자야! 씨*” 누군가 맞받아친다. “야이 *새끼야, 난 해고자다. 일하러 갈 데도 없어! 잃을 것도 없다. 씨*” 결국 거구의 해결사 2인이 나서서 선량한 시민을 번쩍 들다시피 달래서 내보냈다. 상황종료.
뒷걸음질 치며 사라지는 그 아저씨가 아른거렸다. 그건 발버둥이었다. 다음 날 일하러 간다며 핏대를 세우더니 1분도 못 되어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나는 실업자다’ 이에 맞서 ‘나는 해고자다’ 옥신각신 싸우는 사람들. 웃겼다가 슬펐다가. 애잔하다. 같은 하늘. 같은 나이. 같은 처지. 같은 남자. 같은 욕설. 같은 설움. 어쩌면 그도 희망버스에서 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들이닥쳤다. 노래공연도 아니고 말소리인 데다가 시끄럽기도 전이다. 잠을 못 자서 온 게 아니라 사람이 그리워서 온 게 아닐까. 공원 바닥에 앉아 밤새 술잔 기울이며 신세 한탄이라도 하고 나면 그 ‘출구를 찾지 못한 울분’이 조금은 사그라질 텐데. 어깨 맞댈 동료가 있는 곳, 자기의 비빌 언덕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 찾아가기 마련인가 보다. 아저씨. 나중에 어버이연합 가지 마시고 희망버스 타세요.
#3.
설움이 번져 나오는 기원으로서의 삶. 희망버스에서 생생히 목도한다. 스테레오 사운드로 욕을 들으니 그 때 그 욕이 생각난다. 정독도서관 근처 유명한 청국장집. 창창한 하늘이 훤히 드러나는 마당에서 음식점에서 주방아주머니와 서빙아주머니 두 분이 싸움이 났다. 짧은 순간 심한 욕설이 오갔다. 머리끄댕이를 잡고 늘어졌다. 오랜만에 화끈한 싸움을 목도했다. ‘맛집’이라며 거기로 데려간 사람이 무안해했다. 미안하단다. 사과를 반사했다. 삶의 짜증과 피로와 울분이 뒤엉킨 자리에서 발생한 접촉사고다. 그 자리에선 누구라도 당한다. 화폐라는 충신이 있다면 저 분들도 고상과 품격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되도 않는 고갱님 타령보다 훨씬 좋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건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저께는 마트 야외매장 신발코너를 기웃거리다가 직원이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도나도 발에 끼어보고 간 구두더미를 정리하면서 지나가는 직원에게 하소연이다. 구두가 짝이 없고 사람이 몰리니 힘들다고. 내 또래의 여성이다. 혼잣말로 작게 그런데 강하게 내뱉었다. ‘아, 씨발’
가난한 사람들은 왜 욕을 할까. 예전부터 궁금했다. 인격 문제는 아니다. 먹고 사는 기본적 필요가 보장 돼야 품위도 지키고 무소유도 하고 정신적 향유를 누릴 수 있다. 동네 놀이터를 지나다 보면 초딩 애들도 욕을 추임새처럼 넣는다. 목동은 부자동네. 그런데도 왜 아이들이 욕을 할까. 놀기 본능이 억압당해서 같다. 배울수록 잠식당하는 영혼. 암기할수록 가난해지는 머리. 욕은 ‘사회적 약자’의 자기표현이다. 욕 잘하는 팀장이 있다면 본부장한테 닦달당해서다. 아도르노는 욕은 사회의 부조리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부당한 가난'을 재생산하는 사회로부터 당하는 모욕을 단어에게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말된다. 부당한 가난. 억울한 가난. 신경질나는 가난. 모욕이 욕을 낳는다. 인간다운 자기유지가 보장되지 않은 세상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마찰음이 나는 거다. 김수영 시구대로 ‘어린 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운 세상. 희망버스는 설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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