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세상이라니. 가만히 말해보는 것만으로도 입 안 가득 풀내음이 고인다. 곱고 정결한 느낌 그대로, 환경시민단체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은 생명과 평화 그리고 행복을 나누는 조용한 마음의 운동을 지향한다. 비오리, 갯돌, 골목길 등 자연물에게 ‘풀꽃상’을 주는 방식으로 환경문제에 다가가는 예의바르고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풀꽃세상을 찾았다. 자연과의 공생 꿈꾸는 풀씨들의 합창 그들의 언어는 아리땁다. 사무실은 ‘풀꽃방’이고 회원들은 ‘풀씨’라고 부른다. 게다가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의 자랑 ‘풀꽃상’까지 있지 않은가. 이름마다 하도 고와서 작은 탄성이 일고 만다. 풀꽃방에 들어서자 탁자위에 사과 세 알이 먼저 반긴다. 소복하니 서로 몸을 기댄 모양새가 정겹기 짝이 없다. “이 사과는 의성에서 별풀님이 보내준 사과예요. 이건 충북 음성에 사는 풀씨님에게 온 거고요. 보세요. 빛깔이 좀 다르죠?” 이재용 사무국장이 사과 두 개를 마주 대니 신기하게도 빛깔의 차이가 드러났다. 세상살이 비슷비슷 해보이지만 서로 조금씩 다른 꿈을 갖고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풀꽃세상을위한모임’ 풀씨들이 꾸는 꿈은 소박하다. 이렇듯 좋은 먹을거리가 있으면 서로 나누고, ‘우리는 억새 한포기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며 자연의 친구임을 자처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나눈다. 그리하여 조금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잔잔한 일상의 운동을 펼치고 있다. 어느새 12년째다.
자연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 회복하는 풀꽃상
“1999년 1월에 발족해, 그해 3월 '동강의 비오리'에게 제1회 풀꽃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해마다 지금까지 열 두 차례 ‘풀꽃상’을 드렸습니다. 이 상은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을 위해 자연물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풀씨들에게 후보추천을 받고 30여 개로 후보를 추린 후 토론을 거쳐 수상자를 결정합니다.”
그간 풀꽃상의 역대 수상자는 다채롭다. 보길도의 갯돌. 가을 억새, 인사동 골목길, 새만금 갯벌의 백합, 지리산 물봉선, 지렁이 자전거, 논, 간이역, 비무장지대, 그리고 최근엔 값싼 미국산 밀가루에 밀려 거의 자취를 감춰가는 ‘앉은뱅이밀 씨앗’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해마다 그 시기의 중요한 환경이슈가 되는 것들 외에도 지렁이, 간이역, 골목길 등 짠한 울림을 주는 수상자가 선정되기도 한다. 이재용 사무국장은 80여 명의 풀씨들이 모여 풀꽃상 수상자를 결정하는데 그 과정자체가 무척 소중하다며 말을 이었다.
“풀씨들이 나름의 논리로 추천의 변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큰 환경공부가 됩니다. 몰랐던 걸 알게 되고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에 관심을 갖게 되지요. 다른 후보가 더 낫다며 스스로 후보를 철회하는 풀씨들도 많습니다. 이번에 앉은뱅이밀 씨앗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간 우리가 너무 소홀히 했다는 자각이 일어 한 번에 평정이 됐다니까요.”
고속철 반대하는 조용한 외침 ‘도룡뇽 수놓기’
이 지혜로운 풀씨들을 비롯하여 풀꽃세상을위한모임에는 3000여 명의 풀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농부, 직장인, 선생님, 문화예술인, 학부모, 학생 등 길가의 들꽃만큼 다양하다. 변산바람꽃 허정균 운영위원장을 대표로 재용풀씨, 얼떨풀, 올해 초 새 식구가 된 다라풀씨까지 세 명의 상근활동가가 일한다.
“풀꽃세상은 새만금 지키기의 일환으로 ‘바닷길 걷기대회’ ‘우리쌀지키기 일만인대회의’ ‘소달구지 걷기행사’ 등 실천이 수반된 조용한 마음의 운동을 펼칩니다. 거창한 정치적 구호로 압박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니까 항상 즐겁습니다. 2005년 고속철도 관통터널 반대운동 때는 풀씨들이 광화문에 모여 도룡뇽 촛불집회와 백만 마리 도룡뇽 접기 그리고 도롱뇽 바느질 수놓기 등의 행사를 열었습니다.”
6년 째 상근활동 중인 얼떨풀님은 풀꽃세상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곧 “보여줄 것이 있다”며 가보를 꺼내듯 고이 간직해둔 작품을 펼쳤다. ‘고속철도는 도룡뇽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글씨와 함께 형형색색의 도룡뇽 수십마리가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것은 한 땀 한 땀 풀씨들의 정성이 서린 위대한 예술작품이었다. 눈이 부실만큼 저마다의 빛깔로 반짝이는 이 작품이야말로 ‘사용가치가 아닌 존재가치로서 모든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풀꽃세상의 신념을 형상화한 듯했다.
생산자를 존중하는 ‘적정가격’ 내세우는 먹거리 장터
"올해는 풀꽃장터를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저희 홈페이지에는 감귤, 솔체네 차, 별풀님 댁 사과, 순창댁 배, 호야네 맛김 등 장터가 열려 있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오랫동안 공동체 정신을 이어온 분들입니다. 풀꽃장터는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시중가보다 무조건 싸게 팔지 않습니다. 생산자의 땀의 가치가 소중히 여겨지는 생산자를 존중하는 ‘적정가격’을 기본으로 좋은 먹을거리를 나누고, 사람끼리 부대끼며 사는 정이 오가는 그런 생활 장터를 추구합니다.”
날로 척박해져가는 세상살이에 우물 같은 인심이 모이는 곳, 맑고 소박한 무공해 환경단체 풀꽃세상에는 언제나 한들한들 여유와 웃음이 꽃핀다. 글. 김송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