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기차역 맞은 편 주택가에 자리한 ‘뿌리와 새싹’은 오랜 연인같은 책방이다. 들어서자 마자 이내 마음이 푸근해지고 찬찬히 둘러볼수록 사랑스러운 것들이 눈에 차니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마냥 눌러앉게 된다. “손님들이 그러세요. ‘뿌리와 새싹’에 오면 볼 게 너무 많아서 막상 책을 못 본다고요.” 자랑인 듯 푸념인 듯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는 매니저 박하재홍 씨. 게다가 오묘한 미소까지 곁들여 여운을 남긴다. 아니, 책방에서 책이 뒷전이면 무엇이 우선이란 말인가. 그러나 뿌리와 새싹에서 들어서서 5분만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그 말뜻을 알게 된다. 물론 이곳의 8할은 헌책이다. 하지만 나머지 2할을 채우는 것들이 ‘뿌리와 새싹’ 고유의 분위기를형성한다.
재활용과 핸드메이드.. 따뜻한 인테리어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은 동물학자 제인구달 박사가 제안한 운동으로 ‘환경, 동물, 이웃’을 위한 지역 환경운동을 뜻한다. 환경과 나눔의 정신으로 지역사회에 새싹을 틔우는 젊은이들의 용기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환경을 주제로 꾸며졌다.
먼저 낮은 한옥 건물에 터를 잡았다. 바람도 사람도 들고나기가 수월하고 통풍이 잘 되는 열린 구조다. 안에는 벽돌과 판자, 수출입 박스 등 재활용품을 이용해 책꽂이로 골격을 짰다. 바닥은 깨진 타일과 나무로 깔았다. 버려진 의자는 등받이만 떼어내 간의 의자로 탈바꿈했다. 한켠에는 추억의 LP와 CD 등 음반들이 놓여있다. 커다란 유리창에는 파란 가을하늘이 들어차고, 화장실로 가는 쪽문을 나서면 작은 정원과 화가가 직접 그린 벽화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화장실로 말하자면 양은 세숫대야로 된 세면대와 병뚜껑을 이용해 벽면을 꾸민 개성만점의 별채다.
“2005년 12월에 문을 열었는데 뭔가 특색 있는 카페를 만들고자 콘셉트를 잡았지요. 핸드메이드와 재활용을 이용해서 정서적인 느낌이 우러나죠. 기존의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생활과의 단절되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찾아오시는 분들이 이 안에 들어오면 아늑하고 편안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느끼신다며 참 좋아하세요.”
그의 등 뒤로 주방 찬장 벽면에 붙어있는 ‘여성환경연대가 지정한 촛불 켜는 가게 4호점’이라고 써진 팻말이 눈에 띈다. 책방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전깃불을 끄고 ‘촛불과 낭독의 밤’을 연다. 플러그를 뽑고 한 박자 천천히 시간을 느끼며, 책방 손님들과 함께 책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언제라도 몇 백 원의 값에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다.
“책 10권 사면 한 권은 기증하세요.”
도심 속 호젓한 쉼터로서 소솔한 낭만이 가득하지만 어쨌거나 이곳은 헌책방이다. 다만 사장님이 직접 헌책을 구입해오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일반 헌책방과 다르다. 뿌리와 새싹에 구비된 인문사회, 한국문학, 외국문학, 수필, 시, 어린이 등 1만2천여 권의 책은 전부 기증받은 책들이다. 매니저 박하재홍 씨는 자원을 아끼고 나눔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책 10권을 사면 2-3권은 기증할 것을 손님들에게 권유한다고 말했다.
“책 수집가 분들이 책을 대량으로 기증하는 경우가 많아요. 수백 권을 내 놓으면 또 그 책은 필요한 사람 4-5명이 거의 가져가죠. 아름다운 가게에 헌옷을 기증하듯, 집에서 안 읽는 책도 기증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요즘 젊은 사람들 헌책방 잘 안 가잖아요. 대부분 저희 매장에 오시는 분들은 헌책방을 처음 방문하는 경우거든요. 여기에 오면서 헌책방에 관심을 많이들 갖는데 다른 데도 이용하시라고 근처 헌책방을 많이 소개해드려요.”
뿌리와 새싹은 단순히 독서문화의 확산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나눠읽은 독서문화’, 즉 환경과 나눔의 문화공동체를 지향한다고 박하재홍 씨는 강조했다.
이곳은 또한 지역문화를 만드는 풀뿌리 책방이기도 하다. 주로 인근지역 대학생들과 이웃 학생들, 주민들이 이곳을 이용하는데 오전에는 할아버지들이 조용히 들러 책을 보고, 학기 초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방학 때면 엄마와 손잡고 온 아이들이 한나절이고 반나절이고 마냥 책을 읽다가 가는 마을 도서관이기도 하다. 책방 내에 12개의 간이의자가 책꽂이 사이사이에 위치해 있어 헌책방 치고는 앉을 곳은 충분하다.
아울러 신촌지역 축제에도 꼭 참여하고, 매월 1회 토요일마다 동사무소 앞에다 돗자리를 깔고 ‘알콩달콩 책시장’을 열어 책을 팔고 책방을 소개하는 등 지역 속에 뿌리내리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다.
“저희 뿌리와 새싹이 나름대로 유명하거든요. TV, 잡지, 영화 까지 매스컴을 많이 탔어요. 근데 매출이 안 올라요.(웃음) 너무 외진 곳이라 그럴 수도 있고요. 매니저로서 좀 속이 상하죠. 앞으로는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려고요.”
책은 동료를 구하는 몸짓이라는 말이 있다. 책은 길을 열어주고 사람을 끌고 관계를 살찌우며 삶을 다독여준다. 뿌리와 새싹에서는, 그 달콤한 일련의 과정에 ‘나눔과 환경’의 소중한 체험이 한 가지 더해지는 셈이다.
아름다운책방 신촌점 ‘뿌리와 새싹’ 월~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 빨간 날은 쉼.
전화 : 02-392-6004, 홈페이지 : http://cafe.naver.com/rootsandshoots.ca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