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에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서 목수가 되었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나무를 깎으며 해를 지우고 연장을 익히며 봄을 맞았다. 그 세월이 40년. 몸에 각인된 근성과 감각은 독창성으로 발휘되었다. 이음새 하나가 천년을 간다는 ‘장인의 윤리’로 봉정사 극락전, 백제문화단지 등 국보급문화재를 생생히 복원했다. 마음을 다스리고 나무와 교감하며 역사를 되살리는 대목장 최기영. “살아온 대로 말하고 원칙대로 일한다”는 그를 만났다.
상상을 현실로 짓는 큰 목수, 최기영
지난 추석에 KBS추석특집다큐멘터리 ‘천년문화재와 만나다’ 대목장 최기영 편이 방영되었다. 반응이 뜨거웠다. 인터넷 다시보기 순위 9위까지 올랐고 시청소감 게시판에는 찬사가 줄을 이었다. 둥근달처럼 넉넉한 표정, 소탈한 말투, 우직한 장인정신이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 것이다. 특히 나무를 고르기 위해 강원도 산골을 헤매던 중 그가 쭉쭉 뻗은 소나무를 향해 “야, 이놈들아~” 목청껏 소리 지르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부모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이 헤어진 연인을 목 놓아 부르듯 애끓는 회한과 절절한 사랑이 흠뻑 배어났다.
“나무는 내 생명과 같아. 솔직히 말해서 부인, 자식, 내 몸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해. 나무 중에 우리나라 소나무가 가장 좋거든. 그 중에서도 적송은 너무 귀해서 생활건축에는 못 써. 문화재 복구할 때만 쓰지. 그러니까 야 이놈들아! 니들은 다 내 것이다! 소유하고 싶어서 그것들한테 꼼짝 마라 한 거지.”
나무와 함께 있어도 늘 나무가 애타게 그립다는 그. 나무의 관상도 단박에 읽어낸다. 얼핏 비슷비슷해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저마다 고유의 향과 결이 있고 어디쯤에서 났는지 속이 어느 정도 부패됐는지 “딱 보기만 해도” 한 눈에 속속 들어온다고 한다.
창경궁 담장 넘으며 전통건축물 공부
나무와의 첫 인연은 50년 세월을 거슬러 간다. 올해 나이 예순다섯.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관통하는 “아주 고약한 시기”에 태어났다. 고생이 극심했다.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고 모래알 같은 꽁보리밥도 없어서 못 먹었다. 조실부모하고 의부 밑에서 자랐다. 눈치가 빨라야 살 수 있었다. “남다른 소질? 원대한 포부? 그런 거 없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목수가 됐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를 나와 열일곱 살에 상경해 당대의 도편수인 고 김덕희 옹 제자로 대목에 입문했다.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낮에는 스승의 어깨 넘어 배우고, 밤중에는 창경궁 담장 넘어 달빛에 종이를 대고 비춰보면서 전통건축물을 연구했다. 연장이 없으면 선배 목수에게 연장을 갈아주겠다며 빌려와 하루 종일 쓰면서 용법을 익혔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절박함과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집요함으로 목수 일을 깨우쳤다.
“잘 거 다 자고 장인 못하지. 난 지금까지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잖아. 그 역경을 딛고 견뎌야해. 그래야 좋은 거 나쁜 거 맛을 알지. 단돈 백 원, 천원 돈의 뜻을 알고, 한 방울 땀의 뜻을 알지.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삶에서 모든 걸 겪어야 인생철학이 생기는 거야.”
백제문화역사재현단지 10년 총지휘
초년 고생은 자수성가의 발판이 되었다. 서울 봉원사, 경기 용문사, 강화 보문사, 창경궁, 남한산성 등 수백채의 불교건축물과 한옥을 고치고 되살렸다. 매사에 원칙대로 일했다. “집을 다 지어놓고도 아니다 싶으면 기둥을 뽑아버렸다.” 남다른 일처리는 소문이 퍼졌고 성과를 낳았다. 마침내 목수 입문 40여년 만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대목장은 나무를 주로 이용하여 집을 짓는 일에서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설계는 물론 공사의 감리까지 겸하는 목수를 말한다. 궁궐이나 사찰, 군영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로 지칭하기도 한다.
(사진 -경주에 짓고 있는 신라시대 목조다리 월정교 모형)
봉정사 극락전, 태조 왕건 사당 등 굵직한 건축물을 살려낸 도편수 최기영에게 각종 공로패와 대통령 훈장 등 금빛 찬란한 표창이 뒤따랐다. 올 초에는 생애 최대의 역작을 탄생시켰다. 그의 진두지휘 하에 백제 시대의 왕궁과 사찰, 목탑 등 총 166동의 전통 건축물을 그대로 구현한 ‘백제문화역사재현단지’를 완수한 것이다. 장장 10년 만의 결실이다.
날렵한 처마 ‘하앙식 공법’ 밝혀내
문화재 복구는 과거를 살리는 작업이다. 모든 건축물은 기초에서 건축, 단청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진행된다. 기록이 소멸된 경우도 많다. 과학적인 기법에 상상력을 접목시켜야 한다. 이때 도편수의 내공이 발휘된다. 가령, 못을 쓰지 않고 목재와 목재만 얽어 처마의 하중을 떠받치는 '하앙식 공법'은 그가 중국과 일본을 수없이 오가며 그 시대 건축물을 연구한 끝에 밝혀내 이번 백제문화역사재현단지 공사에서 처음 사용됐다. 서까래 사이에 끼운 지지대가 아래로 향한 채 처마를 떠받치는 독특한 형태의 이 건축법은 백제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봉정사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도 그의 기량은 빛을 발했다. 지난 800년 동안 풍우작용으로 뒤틀린 나무를 들기름을 이용해 곧게 펴서 성공적으로 복구한 것.
“들기름은 내가 개발한 게 아니라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쓴 거지. 근데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내게 왔느냐가 중요하겠지? 배우는 사람은 몸 전체가 열심히 움직여야 해. 손, 눈, 마음 하나도 한 순간도 놓지를 말아야지. 책이나 주변의 것들 모두가 인간의 삶에 발전이 된다고. 그러니 내 자신이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거야. 어떤 문제가 안 풀릴 때 자꾸 관찰하고 생각하다보면 답이 나와.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 반드시 알 수 있어.”
전혀 다른 두 가지에서 새로운 연관성을 발견하는 힘,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현대 건축은 정확한 계산과 표본을 참고할 수 있지만 전통건축에서 지붕의 곡선 같은 경우는 도편수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일본말 건축용어 한국어로 바꾸고 죽을 것
대목장 최기영은 강사로도 인기가 높다. 국내 유수의 기업, 대학, 언론사에서 장인의 삶과 전통가옥의 우수성을 전파한다. 그에게 전통가옥 자랑을 부탁하자 “한옥은 흙과 나무 등 자연소재를 활용해 인간에게 이롭다”며 “집에 들어가는 순간 주름살 세 개가 쫙 펴진다”며 너스레다. 이어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 건축물 수명은 30-40년이지만 한옥은 천년을 가고 재료도 절반 이상 재사용이 가능하기에 사실은 더 저렴하다며 ‘천년 가는 집’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 뿐 아니다. 그는 요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곡된 건축용어의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스끼노미는 미는 끌, 사꾸리는 홈파기 등 100% 일본말로 된 건축용어를 지금까지 절반가량 우리말로 고쳐놓았다.
예순 중반에 이른 그이지만 여전히 청년처럼 일한다. 처마 끝에 구름 가듯 훌쩍 지나가버린 세월을 실감하기에 사는 동안 하나라도 더 ‘살리고 알리고 바꾸고 퍼주려’ 애쓴다. 제자들에게도 “아는 데까지 일러주고 밀어주고 죽을 테니 열심히 하라” 죽비 같이 매섭게 호령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겐 동양최대의 목탑인 경주 황룡사9층 목탑을 짓는 꿈이 남았다. 복원하다가 쓰러질망정 죽어도 지어보고 죽고 싶다며 말한다. “지금은 꿈이겠지. 근데 마음을 비우고 욕심 덜 부리고 살다보면, 내 생각이...하게 될 거 같아.” 살기 위해 목수가 되었으나 죽을 것처럼 일하는 대목장 최기영. 그는 상상을 현실로 지어내는 큰 목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