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새해 달력이 나오면 한 장씩 넘기며 휴일부터 헤아렸다. 사과보다 더 맛있게 보이던 빨간 숫자들. 하루걸러 휴일이 깔린 ‘수확의 달’ 10월은 최고였으나 뒷장은 실망 그 자체였다. 검은 숫자로 빼곡한 11월. 칙칙하고 음울했다. 매년 그랬다. 그런데, 그저 노는 날이 적어 투정부리던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11월의 다른 얼굴을 만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 같은 달력의 부피감도 허전하거니와 11이란 숫자의 모습도 애잔하다. 외로운 둘이서 언덕 저편으로 넘어가는 듯한 쓸쓸한 형상이다. 삶의 9부 능선을 넘어가는 11월. 그 길을 지나 12월을 통과하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성지는 13월의 풍경을 담고 있다. 절두산(切頭山)은 말 그대로 머리가 잘린 곳으로 병인양요 당시 천주교 박해현장이다. 절두산 성지에는 우리나라 가톨릭 순교 성인 외에도 일반 신도들이 잠들어 있다. 교육관 건물 지하 4층 5층에 자리한 ‘부활의 집’이 그곳이다. 한 평생 자식농사 지으랴 밥벌이 하랴 허리가 휘어버린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부활의 집에 자리를 마련해놓고 엄마는 나 죽어서 갈 곳이 생겼다면서 든든해하셨어요. 그 뒤로 여기를 고향처럼 여기셨지요. 힘들 때마다 찾아와 기도를 하셨는데 4년 전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엄마를 절두산에 모시던 날, 저편에 강물이 잔잔히 흐르고 새가 지저귀고 포근한 태양이 내리 쬐고 사방이 고요하고, 너무 평화로워서 꼭 여기가 그림책에서 본 천국 같았어요. 엄마가 더 좋은 곳으로 가셨다는 믿음이 생겼지요.”
김지영(40)씨는 엄마 송영숙(67,알비나)씨가 생전에 그토록 마음을 의지하던 곳으로 갔다고 생각하자 죽음이 그리 슬프지만은 않았다고 터놓았다. 죽음이 삶의 단절이 아니라 삶의 일부임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이는 죽음을 통해서 배울 수밖에 없는 뼈아픈 진실이다. 두렵기에 외면할 뿐, 죽음은 은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거룩한 신념에 따른 희생이 아니더라도 끔찍한 자연재해를 당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한번 죽음을 겪는다는 사실을 ‘부활의 집’은 조용히 일러준다.
장선희(64,세실리아)씨는 남편 이종철(66,시실로)씨 기일을 맞아 아들 부부, 손자 등 친인척 11명과 부활의 집을 찾았다. 아들 이효수(안드레아)씨가 아이를 번쩍 안아 납골함 자리를 만져보게 한다. “할아버지, 동현이 왔어요. 우리 인사드리자.” 차가운 대리석 뚫고 고사리 손의 체온이 가닿았을까. 옹알옹알 아이의 재롱에 주변에 웃음이 번진다. 가족들과 함께 30여분 예배를 드린 장선희 씨는 남편이 폐암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벌써 2년이 됐네요. 그동안 매월 첫째 목요일마다 절두산 부활 미사에 참석했어요. 집이 영등포구청이라 가까워서 오다가다 이 사람한테 자주 들리거든요. 남편 가고 나서 애들도 저한테 더 잘하고 이제야 적응이 됐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없어요. 여기 오면 마음이 편안해요.” 아들 이효수 씨는 스웨덴에 사는 이민자다. 아버지 기일이라서 잠시 들렀다. 하지만 훗날 생을 다하면 그도 한국 땅으로 영원히 돌아온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곁에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다시 3대가 한 자리에 모이는 셈이다. “꽃다발과 사진도 없고 묘지보다 깨끗하고 조용해서 좋다”는 그는 언젠가 돌아올 삶의 자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아담한 돔형 천장에 스테인 글라스 장식이 돋보였던 지하 4층에 비해 지하 5층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중앙에 부활하는 예수와 수호천사 입체조각상이 놓여있어 역동적이다. 오른쪽 룸에서 고운 치마 차림의 50대 여인 둘이서 기도를 드린다. 강향옥(52, 데레사)씨가 대모와 함께 남편을 찾아왔다. 남편 김현수(베드로)씨는 전립선암으로 17개월 투병 끝에 작년 12월 이곳에 잠들었다. 임종을 준비할 때 ‘부활의 집’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여주었더니 정결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만족했다고 전한다. 아직도 남편이 곁에 있는 게 느껴진다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이 평소에 말하곤 했어요. 인간이 별거 아니라고, 하느님이 주신 영원성을 이어가는데 잠깐 이 세상으로 여행 보내주신 거라고요. 제가 집착과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었는데......남편의 죽음으로 거기에서 많이 벗어났어요.”
강향옥 씨는 남편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던 지옥 같은 날들을 막 통과했다. 요즘은 화초를 가꾸며 생명의 환희를 느끼고 거울 앞에서 매일 ‘웃는 연습’을 한다며 해님처럼 활짝 웃어보였다.
부활의 집 격자형 봉안소에는 저마다 다른 죽음의 사연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을 간직하는 이들의 자세는 모두가 같다. 겸허하고 사려 깊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그러한 고민들이 삶을 풍요롭고 해주었다고 입을 모은다. 신비롭다. 누구도 목청 높이는 자가 없는 침묵의 공간, 아무 일어남도 없는 정지의 시간 13월에, 맹렬한 삶의 의지가 꽃핀다.